SNS에 감성 사진 수두룩… 조국에게서 문재인이 보인다

김아진 기자 2024. 4. 2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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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좌파 특유의 감성팔이... 지지층은 더 단단해진다

최근 정치권에서는 사진 몇 장이 화제였다. 22대 국회에 입성하는 조국혁신당 조국 대표가 직접 몸통만 한 쓰레기봉투를 버리고, 열차를 타기 위해 줄을 서고, 어린이 눈높이에 맞춰서 무릎 꿇고 사인해주고, 식판 들고 식당에 앉는 장면 등이 담겨 있었다.

조국 대표가 쓰레기봉투를 버리고 있다(왼쪽). 이 사진은 총선이 끝난 뒤 측근이 “존경할 만한 분”이라며 공개했다. 조 대표가 봉하마을에서 노무현 전 대통령 묘역을 참배하고 있다(오른쪽). 그는 비를 맞고 있는 이 사진을 직접 공개했다. /페이스북

이를 두고 “쓰레기도 정장 입고 버리다니” “새치기 안 하는 게 정상이다” “연출된 사진으로 쇼 하냐” “그럼 식판도 참모가 들어줘야 하나” 등 비판이 쏟아졌다. 하지만 “역시나 너무 멋지다” “존경한다”며 엄지를 치켜드는 지지자도 넘쳐났다. 이 중에서도 눈에 띄는 댓글은 “문재인 전 대통령을 보는 듯하다”는 것이었다. 일종의 데자뷔 현상. 문 전 대통령과 조 대표를 동일시하면서 야권 지지층은 열광했다.

이성보다는 감성을 자극해 지지를 끌어내는 이른바 ‘감성팔이’ 전략은 좌파에서 주로 이뤄져 왔다. 노무현 정부가 그랬고, 문재인 정부 5년도 이런 마케팅을 배경으로 지지율 40%대를 유지했다고 해도 틀린 말이 아니다. 탄핵 이후 들어선 문재인 정부 초기엔 더했다. 재킷을 벗고 와이셔츠만 입은 문 전 대통령이 한 손에 커피를 들고 참모진과 나란히 청와대 경내를 산책하던 모습을 많은 사람이 기억할 정도다. 당시 민정수석 조국, 비서실장 임종석 등과 함께 ‘청와대 F4′로 불렸는데 이 별명이 그때 나왔다.

문재인 전 대통령이 재임 시절인 2021년 설에 청와대에서 반려묘를 보며 웃고 있다 /페이스북

문 전 대통령은 시시때때로 반려동물과 시간을 보내고, 헝클어진 머리로 서류가 잔뜩 올려진 책상에 기대 있거나, 휴가를 가서도 책을 읽고, 청와대 관람 온 시민들과 집무실 창가에서 인사를 나눴다. 몰라도 되는 일을 일부러 SNS에 공개한 데는 어떤 정치적 계산이 숨겨져 있는 것이다. 그러나 대중은 소탈한 동네 할아버지 같은 대통령에게 환호했다. 문 전 대통령이 모친과 손을 잡고 걸어가는 뒷모습 사진이 공개됐을 때는 “괜히 눈물이 나서 울었다”라는 댓글이 상당수 달렸다.

머리가 하얗게 센 채로 평범한 셔츠를 팔꿈치까지 걷어 올리고 슬리퍼를 신은 문 전 대통령 모습에, 한 네티즌은 “어머니 앞에선 그저 평범한 아들일 뿐이군요”라고 했다. “우리 이니 하고 싶은 거 다 해”와 같은 유행어가 괜히 나온 게 아니었다. 그 시절 청와대 관계자는 “부정적 여론에도 ‘연출의 달인’ 탁현민 전 의전비서관을 지킨 이유가 있지 않았겠냐”며 “그는 대중을 울리거나 웃기거나 분노하게 하는 방법을 기가 막히게 알았다. 한마디로 사람을 홀리는 재주가 있는데, 나쁜 말로 하면 눈과 귀를 멀게도 한다는 뜻”이라고 했다.

좌파 특유의 감성팔이는 그 효과가 대단하다. 이슈의 논점을 흐려야 할 때 더 빛을 발하고, 결과적으로 합리적 이성을 마비시킨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은 2011년 정계 입문을 앞두고 오래 신어 뒤축이 뜯긴 구두를 공개해 서민 이미지가 구축됐고 시장에 당선됐다. 한명숙 전 국무총리는 불법 정치자금 수수 혐의로 징역 2년을 살고 나와서도 자서전 ‘한명숙의 진실: 나는 그렇게 살아오지 않았다’를 출간했고, 지금까지도 지지자들은 그의 무죄를 주장한다. 대중은 실체를 알고 난 뒤 ‘더는 안 속아야지’라고 하지만 감성팔이에 또 가슴을 내어준다.

박원순 전 서울시장의 2011년 구두 사진. 네티즌들은 이 사진이 공개될 당시 "낡았지만 무언가 큰 뜻이 담긴 구두"라는 반응을 보였다. /트위터

이런 심리는 조 대표가 제일 잘 아는 듯하다. 여러 번 SNS 절필 선언을 했으면서도 SNS를 놓지 못하는 것도 이와 무관하지 않다. 야권 관계자는 “문 전 대통령과 조 대표의 감성 정치는 이재명 대표가 따라 할 수 없는, 외양에서 풍겨 나오는 뭔가가 있다”고 했다. 그는 자녀 입시 비리 혐의로 시끄러운 와중에도 책 ‘조국의 시간’을 내고 자신이 피를 흘리며 걷고 있는 그림을 올리는가 하면, 헬스장에서 턱걸이를 하는 영상을 게재했다. 이렇게 지지자들을 모았다. 여권에선 “기괴하다” “그래 봤자 범죄자지”라는 말로 공격했다. 보수 지지자들은 “아직도 이런 조작 선동에 넘어가는 인간들이 있으니 저쪽이 늘 이런 수법을 쓰는 것”이라고 했다.

그러나 조국당은 이번 총선에서 12석을 얻었다. 조 대표는 최근 한 차기 대선 주자 선호도 조사에서 7%를 얻어 3위에 올랐다. 그리고 일부 야권 지지자는 자신들 입장에서 문재인 정부의 2인자였다가 갖은 수모를 당한 조 대표에게서 문 전 대통령을 찾고 있다. 조 대표는 자녀 입시 비리 및 청와대 감찰 무마 혐의 등으로 2심에서 2년형을 받았다. 대법원 판결에 따라 그의 앞날은 180도 달라질 수 있다. 그때까지 조 대표의 감성 자극 정치는 계속될 것으로 보인다.

최근 봉하마을을 다녀온 그가 우산도 없이 비를 맞으며 눈물을 훔치는 건지, 비를 닦는 건지 모를 사진을 게재했다. 지지자들은 댓글로 “노 대통령님 보고 계신가요?” “대표님, 하고 싶은 것 다 하십시오. 저희가 어깨 걸고 함께하겠습니다”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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