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끼 들고 으랏차차! 장작 쪼개다 허리 부러질라… 자연인 체험해보니

함양/조유미 기자 2024. 4. 27. 03: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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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무튼, 주말]
지리산에서 1박 2일

“으랏차차!” “으랴하!”

지리산 기슭에서 고함을 지르며 장작 패는 서울 청년이 있다? ‘그게 나다….’ 이곳은 산속 외딴 집. 난 비를 맞으며 도끼로 통나무를 쪼개려는 ‘시도’를 하고 있다. 이걸 쪼개 아궁이에 군불을 때고야 말겠다! “히야아압!” 우렁찬 기합이 무색하게 나무가 쪼개지기는커녕 내 허리가 쪼개지겠다. 땀인지 빗물인지 눈물인지 모를 것을 닦는데, 지켜보던 이가 말했다. “나무 다 젖어가 불도 안 붙는데 거 만다꼬 저라노… 전기장판 있다니까…”

조유미 기자가 아궁이에 군불을 때기 위해 도끼로 통나무를 내려찍고 있다. 나무는 끝내 쪼개지지 않았다. 허리가 부러질 뻔.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통나무는 무거웠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이번엔 ‘자연인’ 체험이다. 도배 체험(‘아무튼, 주말’ 4월 13일 자 B3면)을 다녀온 지 2주 만인가. 자연인은 뭘 먹고 사는지, 주말에 몰래 읍내 수퍼에 다녀오진 않는지, 산모기에 뜯겼을 때 침을 바르는지 물파스를 바르는지 모든 게 궁금했다. 경남 함양 지리산의 해발 500m 지점에서 올해로 18년째 홀로 오막살이 중인 자연인과 1박 2일을 보냈다.

◇‘베어 그릴스’는 아니었다

“어데요? 거가 어딘교?” 칠순이 넘은 택시 기사가 물었다. 오전 8시쯤, 버스터미널에서 택시를 잡아 타자 생긴 일이다. 마땅히 답할 말이 떠오르지 않았다. 기어들어가는 목소리로 “그… 산입니다”라고 대답했다. “거길 와 가요?” “여가 아닌 것 같은데…” “여기 가정집이 있어예? 암자(庵子)가 아이고?” 함양에서 나고 자란 택시 기사가 길을 헤매고, 내비게이션이 엉뚱한 길로 안내하는 곳. 그곳에 자연인 집이 있었다.

어렵게 만난 박경숙(53)씨는 생각했던 모습과 달랐다. 뱀을 생으로 뜯고 도마뱀 통구이를 즐기는 우락부락한 ‘베어 그릴스’를 상상했는데, 의외로 코스모스처럼 호리호리한 여인이 나왔다. “혹시 자연인이세요?” 좀 웃기는 질문을 하고 선물 겸 두루마리 휴지 한 팩과 소금을 건넸다. “양치 하시라고요” 하자 그가 “고맙긴 한데 맛소금을 사오면 어떡하냐”고 했다.

자연인 박경숙(53)씨는 생각했던 모습과 달랐다. 뱀을 생으로 뜯고 도마뱀 통구이를 즐기는 우락부락한 ‘베어 그릴스’를 상상했는데, 의외로 코스모스처럼 호리호리한 여인이 나왔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가끔은 꽃을 따 '꽃차'를 만든다. 이건 곱게 핀 목련.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자연인은 구수한 경남 사투리를 썼다. 하동 쌍계사 근처에서 2남 1녀로 태어났다. 읍내 사람들은 그를 ‘들꽃여인’이라 부른다. 가녀린 모습에 강인한 생명력을 가졌다며 붙인 별명이다. 2006년 모든 재산을 털어 400평 땅을 사고, 지금 자리에 자그마한 집과 오두막을 지었다. 그리고 줄곧 여기서 산다. 굳이 땅을 산 이유는 ‘사유지를 무단 점거하면 쇠고랑을 차기 때문’이라고 했다. 은근히 현실적이다. 그와의 1박 2일이 범상치 않을 것 같은 예감이 든다.

◇산야초는 너무 썼다

자연인은 오전에 무엇을 할까. 하루치 찬을 뜯는다. ‘소쿠리’를 들고 그를 따라 집 뒤에 자리한 가파른 산비탈을 기어올랐다. 10여 분 만에 숨이 찼다. 흙이 젖어 내 발은 자꾸 미끄러지는데, 자연인은 뒤도 돌아보지 않고 잘만 올랐다. 그는 “젊은데 벌써 힘드나? 내 맨날 다니는 덴 오도 몬하겄네”라고 했다. 온통 야생 풀밖에 안 보이는데, 어디 먹을 게 있다는 건지. 밭이라도 있나 싶을 때쯤 그가 주저앉았다. “여 있네, 돌나물. 옆에는 왕고들빼기.”

비슷비슷하게 생긴 것 같은 풀 사이에서 그는 ‘먹을 풀’을 잘도 골라 꺾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그를 따라 집 뒤에 자리한 가파른 산비탈을 기어올랐다. 10여 분 만에 숨이 찼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그가 “땅한테 ‘고맙습니다’ 해”라고 말했다. 떨떠름하게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비슷비슷하게 생긴 것 같은 풀 사이에서 그는 ‘먹을 풀’을 잘도 골라 꺾었다. 뭉쳐 자라는 정구지(부추), 봄에 새순이 오르는 땅두릅, 잎이 넓적한 산마늘(명이나물)…. 나도 쪼그리고 앉아 알려주는 대로 꺾었다. 그가 “땅한테 ‘고맙습니다’ 해”라고 말했다. 떨떠름하게 “고맙습니다”라고 했다. “향을 맡아보라”며 쑥처럼 생긴 신선초를 내 코에 들이민다. ‘냄새가 안 난다’고 했다가 “코마저 속세(俗世)에 찌들었다”는 소리를 들었다. 잎을 문지르자, 그제야 싱그러운 향이 났다. “약초 찾을 필요가 없다. 약 안 치고 야생에서 나면 질경이도 약초라 안 하나.”

◇소녀와 도인 사이 어디쯤

그의 성격은 털털했고, 시원시원했다. 만난 지 3시간 만에 ‘언니’라고 부르기로 했다. 언니는 날 ‘동생’으로 불렀다. 언니가 “자연을 맛보라”며 콩 섞은 현미밥 약간과 방금 딴 산야초(山野草)를 집 된장에 무쳐 내놨다.

음, 어릴 적 부모님이 억지로 먹이던 쓴 ‘익모초 즙’ 맛이 난다고나 할까. ‘쓴 풀 맛’이다. 언니가 “좀 나을 것”이라며 다른 반찬을 내왔다. 옻순과 당귀, 오이를 식초에 절여 만든 ‘피클’이었다. 이번엔 식초에 절인 ‘풀 맛’이 났다. “야생의 맛이 난다”고 했다가 “당연한 소리 한다”며 혼났다.

옻순과 당귀, 오이를 식초에 절여 만든 ‘수제 피클’.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반찬은 이게 다였다. “배만 곯지 않을 정도로 먹는다”고 했다. 뼛속까지 속세에 찌든 난 의심의 끈을 놓지 못하고 냉장고 안을 들여다봤다. 된장과 산야초, 지인에게 받은 일명 ‘속세 열무김치’(젓갈이 들어갔단다)가, 냉동실에는 가래떡과 콩가루·들깻가루·김이 있었다. ‘고기는 안 먹냐’ 물으니, “자연스럽게 안 먹게 됐다”고. 그러면서도 “육식이 나쁘다고 생각 안 한다. 호랑이가 사슴이나 토끼를 먹는 게 자연의 이치 아니냐”고 했다. 밥그릇에 밥 몇 알을 남겼다가 “다 먹으라”고 또 혼났다.

그는 소녀처럼 깔깔거리다가도, 도인(道人) 같은 말을 했다. “동생, 설탕만 먹고 살면 거가 단 줄 알긋나? 쓴 것, 떫은 것 다 먹어야 단 걸 알지.” 가끔은 ‘속세의 맛’도 괜찮다는 것이다. 그 역시 1년에 한두 번 남동생이 찾아올 때면, 읍내의 ‘고구마 피자’를 부탁한다. 산에 들어오기 전 가장 좋아했던 음식이란다. 산이 뼈를 훤히 드러내는 겨울이 오면, 딱 이맘때 데쳐 얼린 고사리를 녹여 무치거나 가을에 주운 밤·말린 도토리, 고구마·감자 등을 박스째 두고 먹는다. 참, 그런 만큼 주말에 몰래 수퍼에 가진 않는단다.

◇누구나 혼자는 못 산다

“하이, 빅스비~ 내일 날씨 알려줘.” 자연인이 얼리어답터처럼 외쳤다. 순간 귀를 의심했다. 내 맘도 모르는 빅스비는 경쾌한 목소리로 “내일은 오전에 비가 와요”라고 했다. 아까 평소 취재하듯 노트북으로 언니의 말을 받아 적다가, “여까지 와서도 그라나, 꺼라” 소리에 노트북도, 휴대전화 인터넷도 모두 꺼 버렸다. 그래 놓고 언니는 빅스비를 쓰다니, 빅스비라니!

그는 소녀처럼 깔깔거리다가도, 도인(道人) 같은 말을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빤한 내 시선을 느낀 그가 “와? 날씨 억수로 중헌데”라고 했다. 비가 오면 처마가 없는 아궁이에 물이 자작하게 들어차, 사흘에 한 번 때는 군불을 놓을 수 없다. 대신 전기장판을 쓴다. 폭우가 쏟아지면 산사태가 날 수 있고, 건조할 땐 ‘불살개’(불쏘시개)의 불씨 하나도 조심해야 한다.

언니는 서른 무렵 난치병인 류머티스 관절염 진단을 받은 뒤 산으로 들어왔다고 했다. 그는 입버릇처럼 “사는 게 그래. 나 혼자는 못 살아. 절대 못 살아”라고 했다. 언니의 벗은 아침저녁으로 집 앞에 찾아오는 들고양이 ‘노랑이’다. 내가 머물 때도 두 번 찾아왔다. 몇 달 전에는 새끼 다섯 마리를 쳐서 나뭇가지를 얼기설기 엮어 집도 지어주고, 우유도 챙겨준단다. 2년 전쯤부터는 유튜브(’들꽃여인의 소소한 일상’)에 숲 생활을 찍어 올린다. 그는 “산에 들어와 몇 년간은 소통도, 왕래도 없이 살았다. 그랬더니 말하는 법도 잊더라. 애벌레 파 먹고 숨어 살아야만 자연인이냐”고 되물었다.

산에 살면 별 일을 다 겪는단다. 방에 불을 켜니 새끼 지네 수십 마리가 바글바글 몰려 있어 기겁을 하기도 하고, 문 앞에 맹독을 가진 ‘칠점사’(까치살모사)가 똬리를 틀고 있어 절절매기도 했다. 어느 날 ‘쿵’ ‘짹’ 소리에 밖을 보니 웬 참새 비스름한 새 한 마리가 창문에 머리를 박고 기절해 있었다고. 소금을 물에 개어 먹이며 살려냈다. 어쩌면 훗날 박씨라도 물어와 ‘은혜 갚은 참새 비스름한 새’가 될 수도.

밤이 깊어간다. 저녁으로 다시 풀을 먹었다. 이번엔 밥도 없었다. 안쓰러워 보였는지 언니가 대뜸 “라면 줄까?” 한다. 이건 무슨 소리? “가끔 속세 맛 본다. 유기농 감자 면이다 안 하나.” 대차게 거절했다. 자연인이 먹는 대로 먹을 것이다.

'별채'라고 부르는 오두막에서 차를 마셨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하지만 곧 이런 생각도 들었다. 밀가루든 감자든 뭐든 땅에서 키운 것일 터인데 그걸 면으로 빚어 좀 튀긴다고 자연이 아닌 것이 아니며, 화학조미료가 들었다 한들 결국 만물을 구성하는 원소(元素)를 배합해 만든 것이고 자연에 감사하는 맘을 갖고 먹는다면, 그건 자연인의 음식과 다름없지 않을까? “언니…. 라면 좀….” ‘자연에 감사하는 맘으로’ 먹었다. 밤사이 배는 든든할 테니 안심.

◇도심 속 자연인도 있다

안심하긴 일렀다. ‘아, 배고프다….’ ‘자연인 라면’은 소화도 빨랐다. 자려고 오두막에 누웠는데, 배가 고파서 잠이 안 온다. 나도 모르게 ‘달디달디 달디단, 밤양갱’을 흥얼거렸다. 갑자기 발뒤꿈치가 간지러웠다. 모기 녀석. 침을 모아 발랐다.

이 집엔 ‘밤 손님’이 많이 다녀간다. 멧돼지나 족제비, 너구리, 고라니 등. 눈이 소복하게 쌓인 날에는 발자국으로 누가 다녀갔는지 알아본다고 했다. 적막 속에서 휘파람 비슷한 소리가 2초 간격으로 들렸다. ‘휘파람을 불고 다니는 귀신인가…!’ ‘뻐꾹’인지 ‘소쩍’인지 ‘훠우’인지 모를 울음소리도 들린다. 휘파람 귀신이 아니라 새소리인가 보다. 숲에서 자려니 바스락 소리 하나에도 신경이 곤두선다. ‘에휴, 잘 수 있으려나….’

‘꿀잠’ 잤다. 머쓱하게 나와 소금을 이에 문질러 양치를 했다. 언니가 “니 손으로 했나? 나도 칫솔은 쓰는데, 하여간 나보다 더해”라고 했다. 5분 정도 가부좌를 틀고 아침 명상을 한다. 평화롭다. 근데 발이 저린다. 언니가 “편하게 앉지 가부좌를 왜 트냐, 피 안 통하그로”라고 했다. 떠날 채비를 했다. 정이 들었는지, 언니와 포옹을 하는데 눈물이 날 뻔했다. “동생, 기자 때리치우고 여서 내랑 자연인 할 생각 없나? 체질인 것 같은데…. 잘해줄게.”

이 집엔 ‘밤 손님’이 많이 다녀간다. 멧돼지나 족제비, 너구리, 고라니 등. 눈이 소복하게 쌓인 날에는 발자국으로 누가 다녀갔는지 알아본다고 했다. /이신영 영상미디어 기자

속세로 돌아갈 시간. 터미널에서 휴대전화 인터넷을 켰다. 언니의 유튜브 채널에는 팔뚝만 한 새끼 멧돼지 서너 마리가 줄지어 지나는 영상이 있었다. 농작물을 망치는 멧돼지는 ‘유해 조수’로 지정돼 있다. 나 역시 지난해 취재차 포획단과 함께 멧돼지 잡이에 나선 적이 있다. 내겐 퇴치의 대상이었지만, 자연인에게는 반가운 손님이요, 친구였다.

전날 언니가 말했다. “숲에 살아야만 자연인은 아니다.” 도심에 살아도 출근길 가로수의 푸름을 만끽하고, 들꽃의 생기를 눈에 담고, 또 산나물로 요리를 하고, 집 안에 식물을 두며 소중함을 느낀다면 그 역시 자연인이라고. 가끔 일에 지칠 때, 산에 들어가 살고 싶다는 생각을 한다. 하지만 내 마음가짐에 따라 도심도 자연이 될 수 있다는 걸 그에게서 배웠다. 당분간 그런 맘으로 살겠다고 다짐한다. “으랏차차!” “으랴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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