내일 일본 중의원 보궐선거, 1석에 기시다 운명이 걸렸다
진창수의 재팬 워치
기시다 후미오(岸田文雄) 총리로서는 반전의 카드가 없는 것이 최대의 고민이다. 이번 선거는 ‘정치자금 스캔들’로 인한 보궐 선거이기 때문에 자민당이 정치자금에 대한 비판적 여론을 의식하지 않을 수 없었다. 따라서 도쿄 15구와 나가사키 3구에서는 후보조차 내지 못했다. 자민당에 ‘마지막 보루’가 된 곳은 시마네 1구이다. 시마네 1구 보궐선거는 호소다 히로유키(細田博之) 전 중의원 의장의 사망에 따른 것이어서 자민당계 전직 의원이 금전 스캔들로 사퇴한 도쿄 15구나 나가사키 3구와는 사정이 달라 후보를 냈다. 더욱이 시마네는 다케시타 노보루(竹下登) 전 총리 등을 배출한 ‘자민당 왕국’이기도 하다.
시마네 1구, 전 총리 등 배출 ‘자민당 왕국’
기시다가 9월 총재 선거에서 재선에 성공해 정권의 수명을 연장하려면 시마네 1구의 승리가 필수적이다. 반면 패배할 경우엔 그 여파는 의석 하나를 내주는 것에 그치지 않고 자신의 운명과도 결부된다. 비슷한 사례가 있다. 2008년 4월의 중의원 야마구치 2구 보궐선거에서 당시 제1야당이던 민주당이 자민당에 승리했다. 지지율이 낮은 후쿠다 야스오(福田康夫) 총리는 중의원 해산 카드도 써보지 못하고 9월에 퇴진했다. 야마구치현은 자민당 색이 강한 ‘보수 왕국’이었지만, 자민당이 1석이 걸린 보궐선거에서 패배함으로써 결국 민주당에게 정권을 내주게 되었다.
현재 상황으로는 기시다 정권이 보궐선거에서 승리하고 9월 총재선거에서 재신임을 받기가 매우 어려워 보인다. 그러기엔 내각지지율이 20%대로 너무 낮다. 안정적으로 정권을 유지하기 위해서는 내각지지율이 자민당에 대한 정당지지율 40%와 엇비슷하게 나와야 한다. 일본 정치사에서 5년 이상 장기집권한 총리는 고이즈미 준이치로(小泉純一郞)와 고인이 된 아베 신조(安倍晋三) 두 사람뿐이다. 그 둘의 공통점은 지지율이 40% 밑으로 떨어진 적이 거의 없다는 점이다. 고이즈미 내각은 지지율 80%로 시작했다. 2002년 1월 다나카 마키코(田中真紀子) 외무상을 축출하면서 급락해 한때 45%까지 떨어졌다. 그러나 같은 해 9월에 북한을 전격방문한 뒤 10월 조사에서 60%까지 급상승했다. 그 이후 지지율이 40% 아래로 떨어진 적은 없었다. 2012년 12월에 출범한 2차 아베 내각의 경우 지지율이 30%대로 떨어진 건 95번의 조사에서 단 3차례밖에 없었다. 집단적 자위권 행사를 인정하는 안보 관련법을 심의한 2015년 7월, 모리토모 학원 등 스캔들이 터진 2017년 7월, 신종 코로나바이러스 사태가 있었던 2020년 6월이었다. 이 중 2015년과 2017년은 곧바로 경제 정책을 펼치면서 지지율이 반전했다. 반면 단명정권의 공통점은 지지율이 30%를 밑돌았다는 점이다. 1년 정도로 단명한 후쿠다 야스오, 아소 다로, 하토야마 유키오, 간 나오토, 노다 요시히코, 스가 요시히데 내각이 모두 그랬다.
내각제 일본 정치에서 중의원 해산은 총리에게 주어진 전가의 보도와 같다. 조기 선거를 실시해 새 판을 짜고 정국 주도권을 확실하게 행사할 수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지지율이 낮은 기시다는 중의원 해산도 마음대로 할 수가 없는 형편이다. 해산을 하고 선거를 앞당기면 자민당의 패배가 보이기 때문이다. 이런 상황에서는 앞서 말한 후쿠다 야스오의 경우처럼 해산도 못하고 총리가 물러나는 상황이 올 수도 있다.
기시다, 중의원 해산 타이밍은 작년 5월
이런 상황에서 기시다 총리가 정국을 장악하기 위한 최선의 방법은 중의원 해산이었다. 포스트 기시다가 마땅하게 부각되지 않은 상황에서는 설령 총선에서 의석수를 잃더라도 기시다 정권은 유지될 가능성이 높다. 그러나 기시다는 중의원 해산의 타이밍을 잡지 못했다. 돌이켜 보면 기시다가 중의원을 해산할 수 있었던 시기는 지난해 5월 주요7개국(G7) 정상회의가 끝난 직후였다. 내각지지율도 50%정도가 되어 선거를 하더라도 현상유지는 가능한 수준이었다. 그러나 기시다는 이 시기를 놓침으로써 선택지를 줄이는 결과를 맞았다. 올해 들어 내각지지율은 17%까지 추락하여 해산조차 하기 힘든 상황이 되었다. 아직도 기시다가 버틸 수 있는 유일한 이유는 자민당 내에서 포스트 기시다의 대안이 없다는 점이다. 그런 점에서 기시다는 정치운이 좋은 셈이다.
물론 기시다가 당장 중의원을 해산하고 선거를 앞당긴다고 해서 자민당이 야당에게 정권을 내주지는 않을 것이다. 아직도 제1당과 제2당의 지지율 차이는 4배 정도다. 2023년 12월 조사에서 자민당은 40%, 입헌민주당은 10%였다. 지리멸렬한 야당은 10%를 지키기도 어려운 상황이다. 이런 추세는 2017년 11월 입헌민주당이 자민당의 대항정당으로 설립된 때부터 지금까지 별로 변함이 없다. 1989년 이전의 자민당 일당우위체제 하에서도 자민당45%, 사회당 18%의 차이는 줄어들지 않았다. 정권 교체가 일어난 2009년의 예외적 경우를 제외하면 줄곧 자민당은 야당에 비해 4배의 지지율을 유지하고 있다. 이런 상황에서 정권교체는 일어나기 어렵다. 자민당이 단독 과반수를 지키지 못하더라도 공명당과의 연합으로 여당이 과반수를 유지할 가능성이 높다. 그럴 경우는 자민당 정권이 유지되면서 총리가 교체되는 ‘유사정권교체’가 일어날 것이다.
만일 이번 보궐선거에서 만약 자민당이 전패하면 기시다 총리를 교체하려는 움직임이 강해질 것이다. 선거의 얼굴이 되지 못하는 기시다를 끌어내리고 간판을 바꿈으로써 다음 총선에서 자민당이 참패하는 사태를 막으려 할 것이다. 현재 일본 정가의 분위기로는 이번 시마네 보궐선거에서 패배하면 기시다가 9월의 자민당 총재 선거에서 낙선할 것이란 관측이 유력하다. 경우에 따라서는 기시다가 총재 선거에 재출마하는 것조차 어렵게 될 수 있다. 중의원 의원 잔여 임기가 1년반 밖에 남지 않았다는 점을 감안하면 ‘기시다 끌어내리기’가 시마네 1구 보궐선거의 결과에 따라 현실화될 수 있다. ‘포스트 기시다’로 누가 등장할지는 아직 알 수 없다. 지금 일본 정치는 말 그대로 태풍전야의 상황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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