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후변화 같은 큰 주제는 힘 모아야…한국 해조류도 연구”

박신홍 2024. 4. 27. 00: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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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아형 UCLA 공대 학장 방한
박아형 UCLA 공대 학장이 지난 24일 중앙SUNDAY와 인터뷰하고 있다. 최영재 기자
“고등학교 때 가장 못하는 과목이 영어였거든요. 그런 제가 미국에서 영어로 강의하게 될 거라곤 꿈도 못 꿨죠.”

한인 여성으론 최초로 미국 메이저 공대 학장에 선임된 박아형(51) UCLA 새뮤얼리공과대학 학장이 지난 23일 방한했다. 기후변화와 지속 가능 에너지 연구의 한 축인 탄소 포집 및 변환 기술 분야의 세계적 권위자로 꼽히는 그는 고교 졸업 후 유학을 떠나 2007년 34세에 컬럼비아대 교수로 임용된 데 이어 지난해 9월 UCLA 학장에 취임했다. 미 주요 대학 공대 학장이 대부분 연구 업적이 출중한 50대 후반~60대 초반임을 감안할 때 50세, 그것도 한국인 여성 공학자의 발탁은 현지 학계에서도 큰 화제를 모았다. 지난 24일 서울의 한 호텔에서 그를 만나 어떤 길을 걸으며 여기까지 왔는지 들어봤다.

Q : 한국을 찾은 계기는.
A : “UCLA 공대 학장은 매년 세계 각국에서 활동 중인 동문들을 찾아가 대학의 미래 비전을 설명하고 네트워크를 강화해 왔는데, 이번엔 제가 한국에도 가자고 제안해 처음 방문하게 됐다.”

Q : 이례적으로 젊은 나이에 학장이 됐다.
A : “사실 저는 공고가 뜬 줄도 몰랐다. 컬럼비아대에서 한창 연구에 몰두하고 있었는데 UCLA에서 관심이 있느냐며 스카우트 제의가 왔다. 여기저기서 추천을 받았다면서다. 갔더니 총장은 물론 학생·교직원까지 나와 며칠에 걸쳐 집중 면접을 했다. 특이했던 게 제 발표 시간은 전혀 없이 처음부터 끝까지 질문만 받았다. 알고 보니 최종 후보 서너 명 중에서 제가 대학 구성원들의 얘기를 고루 잘 들어줬고 그래서 가장 잘 통할 것 같았단다. 연구 성과는 기본이고 소통 능력을 더 중요하게 봤더더라.”

Q : 리더십도 주된 검증 포인트였다던데.
A : “공대 교수는 자기 연구에만 집중하는 경향이 강한데, 저는 왠지 다른 사람들이 무슨 연구를 하는지가 늘 궁금했다. 특히 기후변화 같은 큰 주제를 다루려면 함께 힘을 모으는 게 중요하다 싶었다. 그러다 보니 동료 연구자들과 연결 고리를 만드는 데 힘쓰게 됐고, 그러면서 자연스레 제 주변에 사람들이 많이 모여들게 됐다. 제 성격이 원래 소통하고 대화하는 걸 좋아하는 것도 한몫한 것 같다.”
‘탄소 포집이니, 변환이니 하는 용어가 매우 전문적이라 일반인이 이해하긴 쉽지 않겠다’고 하자 그는 손사래부터 쳤다. “제 어머니도 이젠 아주 쉽게 이해하고 계신다. 한마디로 탄소와 관련한 모든 연구를 포괄한다. 탄소를 안 쓸 수는 없으니 탄소를 쓰되 기후위기 대처 등을 위해 화석연료 대신 재생에너지를 최대한 활용하는 방안을 모색하자는 거다. 이런 방식을 통해 현재도 플라스틱, 건축 자재에 제트기 연료까지 만들고 있는데 아직은 스케일이 작다. 이를 어떻게 상용화·보편화할 것이냐가 당면 과제다.”

그러면서 “최근엔 한국에서 미역 등 해조류도 가져다 연구 중”이라고 소개했다. “해조류에서 추출한 수소가 새로운 에너지원으로 각광받고 있는데 한국이 그 어느 나라보다 해조류를 잘 키운다. 게다가 우리나라는 땅이 좁은 반면 삼면에 넓은 바다가 있지 않나. 우리도 이런 장점을 최대한 활용할 필요가 있다.”

Q : 고교 졸업 후 바로 유학을 갔는데.
A : “국제화 시대인데 영어도 잘 못하고 외우는 것도 잘 못하는 저를 보시고는 부모님이 ‘차라리 현지에 가서 언어를 습득하고 문화를 배우는 게 좋겠다’고 판단하셨단다. 다행히 다른 나라 문화에 호기심이 많았던 성격이 큰 도움이 된 듯싶다. 돌아보니 단어를 좀 몰라도, 발음이 좀 나빠도, 문법이 완벽하지 않아도 상대방의 문화를 이해하려고 노력하면 얼마든지 소통이 가능하더라. 그렇게 친구들을 사귀다 보니 영어도 절로 늘게 됐다. UCLA 공대도 한국·인도·중국·일본 유학생이 한데 모여 있는 만큼 학생들에게도 이 점을 늘 강조하고 있다.”

Q : 원래부터 공학도를 꿈꿨나.
A : “엔지니어셨던 아버지가 뭘 고치고 새로운 걸 만드는 걸 즐겨 하셨는데 어렸을 때부터 옆에서 따라 하다 보니 자연스레 공학자의 길로 들어서게 됐다. 주위에서 ‘연구 잘하는 비결이 뭐냐’고 많이들 묻는데, 생각해 보면 천만다행으로 좋아하는 것과 잘하는 게 일치했기 때문인 듯싶다. 주위를 둘러봐도 재밌어서, 그냥 즐거워서 연구하는 사람을 노력하는 사람이 따라잡긴 결코 쉽지 않더라. 제자들에게도 ‘네가 진정 좋아하는 게 뭔지 곰곰이 생각해 보라’고 조언하곤 한다.”

Q : 한국 기업·학계에 하고 싶은 말이 있다면.
A : “한국에도 연구 잘하시는 분들이 정말 많다. 그런데 너무 단기적인 성과에만 집중하다 보니 혁신적인 연구는 좀 힘든 분위기 같다. 이젠 우리 기업도 연구비 등을 지원할 때 좀 더 기다려줄 필요가 있다. 지금의 기술 경쟁은 하이 리스크 하이 리턴 시대 아닌가. 정부도 한국적 상황에 맞는 신기술을 전략적으로 선정해 지원을 집중했으면 싶다.”

Q : 공대 학장으로서 향후 계획은.
A : “미국 내 공대 순위를 더 끌어올리는 것 못지않게 저희만의 강점인 반도체와 인공지능(AI)·로봇 분야 성과 등을 최대한 활용해 새로운 분야를 개척해 나갈 계획이다. 할리우드를 끼고 있는 지역적 특성을 살려 엔터테인먼트와의 연계도 적극 시도할 생각이다. 가상현실 등 서로 시너지를 낼 수 있는 분야가 무궁무진하다. 우리가 고심해서 개발한 기술이 사람들을 즐겁게 해준다? 상상만 해도 가슴 설레지 않나.”
박신홍 기자

박신홍 기자 jbjean@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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