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팔리는 작품'에 집중, 넷플의 연상호 편애가 불안한 이유

2024. 4. 27. 0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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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동진의 전지적 시네마 시점
연상호 감독이 만든 넷플릭스 6부작 드라마 ‘기생수 더 그레이’. [사진 넷플릭스]
요즘 넷플릭스에서 인기를 끌고 있는 6부작 드라마 ‘기생수’는 3중의 모방 버전이자 확장판 리메이크다. 일본 SF괴수 영화 시리즈인 동명 작품을 가져 왔다. 일본 영화 ‘기생수’는 출판 만화가 원조인데 이 작품 또한 일본의 ‘베끼기’ 특기에 따라 할리우드에서 가져 온 것이다. 그 원판은 1956년 돈 시겔이 만든, 이 분야 최고 걸작으로 꼽히는 ‘신체 강탈자의 침입(Invasion of Body Snatcher)’이다. 돈 시겔 이후 영화계에 ‘바디 스내처’ 장르가 만들어졌을 정도이다. 모든 좀비물, 바이러스 영화의 원조 격이다.

‘신체 강탈자의 침입’은 어느 날 갑자기 마을 사람들이 이상하게 변하는 이야기이다. 겉모습은 멀쩡한데 정신이 완전히 나가서 전혀 다른 사람이 된다. 누군가, 뭔가에 의해 완벽하게 지배당한다. 주인공은 이 모든 것이 어디로부터 날아 온 이상한 꽃씨 때문이라는 것을 알게 된다. 사람들이 잠이 들면 그 꽃은 인간을 다른 존재로 변이시킨다. 주인공은 잠이 들지 않으려고 기를 쓴다.

넷플서 ‘지옥’ ‘방법 재차의’ 등 선보여

동명의 출판 만화를 실사화한 일본 영화 ‘기생수’. [사진 넷플릭스]
‘신체 강탈자의 침입’은 핵에 대한 공포, 혹은 공산주의에 대한 공포를 상징화해서 표현해 냈다 해서 주목을 받았다. 그러나 돈 시겔은 단순히 한 쪽의 이데올로기를 염두에 둔 것이 아니라 나 아닌 다른 것에 의한 지배, 그 다른 것에 대한 차별과 편견을 그리려 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러나 당시는 냉전시대였고 매카시즘이 한창인 때였던 지라, 돈 시겔의 속 마음은 나중에 가서야 재평가됐다. ‘신체 강탈자의 침입’은 공산주의를 경계하는 내용일 수도 있지만, 이념의 자유를 억압하려는 누군가의 지배 의식을 비판하는 내용일 수도 있다. 이 영화는 그래서 꽤나 양가적(兩價的)이다.

일본영화 ‘기생수’는 ‘신체강탈자의 침입’이 갖는 정치경제학을 완전히 들어냈다. 거기에 일본인 특유의 기벽이자 성벽에 해당하는 괴수 취향을 비벼 넣되 그것을 아예 주가 되게 만들었다. 일본 사람들은 환호했다. 오다쿠들이 생겨났다. 이번 넷플릭스의 ‘기생수’ 버전인 ‘기생수 더 그레이’를 만든 연상호 감독은 두 가지 모두에서 벗어 나려고 애를 쓴 흔적이 역력하다. 일본식 괴수 영화만으로는 가지 않겠다는 점 하나와, 원본에 해당하는 ‘신체 강탈자의 침입’이 지닌 복잡한 층위의 이데올로기 성향으로도 가지 않겠다는 것이다. 특히 어려운 정치경제학을 결합시키면 보편성, 대중성을 확장시키기 어려울 것이라고 생각한 것으로 보인다.

‘기생수’는 어느 날 외계(에서 온 것으로 추정되는) 유충이 인간의 몸 속에 들어가 뇌를 파먹고 변이를 일으켜 괴물로 변하게 한다는 설정이다. 주인공 수민(전소니)은 이 외계 존재에게 완전히 ‘먹히지 않아’ 돌연변이를 일으킨다. 드라마는 내내, 주인공 수민을 둘러싸고 동족이라 불리는 기생수들과 이들을 없애려는 인간들의 전쟁을 그린다. 남일군 남일 경찰서라는 가상의 공간에서 경감인 철민(권해효)과 경사 원석(김인권)이 갈등을 일으키고 프로파일러 출신의 경정이자 기생생물 전담반인 ‘더 그레이’의 팀장인 최준경(이정현)이 과욕과 집착을 부리는 이야기이다. 여기에 남일군이 고향인 조폭 강우(구교환)의 에피소드가 겹쳐진다. 특이한 것은 이 동족들의 집합 장소가 교회라는 점이고 모임의 방식이 부흥회라는 것이다. 연상호의 트레이드 마크인 종교 비판의 테마가 중첩된다.

모든 좀비물, 바이러스 영화의 원조 격인 1956년작 ‘신체 강탈자의 침입’. [사진 넷플릭스]
연상호의 대중 전법이야 말로 넷플릭스가 연상호를 ‘최애하는’ 이유이다. 넷플릭스는 연상호와 특이하다 싶을 만큼 잇따라 작품을 내놓고 있는 바, ‘지옥’으로 시작해 ‘방법 재차의’가 있었고, ‘정이’가 있었으며 ‘선산’까지 만들었다. 이 정도면 거의 편애하는 수준이며 극한의 정도이다. 특히 넷플릭스 앞에 놓인 국내 영화계의 기획서, 시나리오가 천 편이 넘는 것으로 알려진 점을 고려하면, 연상호는 넷플릭스로부터 특혜 아닌 특혜를 누리고 있는 셈이다.

넷플릭스는 왜 연상호를 이토록 ‘애모’하는 것일까. 어쩌면 연상호의 작품에 대한 발상, 작업 방식이야 말로 넷플릭스 철학에 최적화 된 무엇일 수 있다. 연상호는 넷플릭스가 추구하는 최적화된 장르영화를 만들고 있다. 넷플릭스는 전 세계 시장을 염두에 둔다. 이 전체 시장을 관통시키려면 가장 보편적이고 일반적인, 그래서 어쩌면 덜 철학적이고, 덜 어려우며, 특정의 계급과 계층, 이데올로기에 치우치지 않는 논조의 영화를 원한다. 누구나, 어떤 상황에 처한 사람이더라도, 그리고 어떤 나라의 어떤 국민이더라도, 저 얘기가 자신들의 것과 같은 것이라는 동일화, 동조화를 일으켜야 한다.

구로사와 아키라의 1954년작 ‘7인의 사무라이’. [사진 넷플릭스]
그러면서도 동질화까지는 가지 말아야 한다. 연상호의 끈덕지게 이어지는 좀비물, 종교적 광기에 대한 경계심리 등등 작품적 요소가 전 세계에서 아주 쉽게, 일반론으로 받아들여지는 이유이다. ‘똑똑한’ 연상호는 넷플릭스가 그런 걸 원한다는 걸 가장 잘 이해하고 받아들이고 있으며, 넷플릭스 측과 늘 절충하되 감독의 자존심도 적당히 내세울 줄 아는 작가가 된 것으로 보인다. 무엇보다 그의 상상력을 한국의 CG 능력과 특수효과 기술이 완벽하게 뒷받침 하고 있다. 그가 ‘넷플릭스라는 은하계’에서 거의 최고 등급으로 올라 간 이유이다. 특히 넷플릭스는 현재 동남아 시장, 특히 ASEAN 10개국에서 점유율 1위 자리를 지키려고 노력하고 있으며(현재 동남아 시장 전체 OTT의 47%를 차지하고 있다.) 여기에는 K-드라마가 가장 중요한 역할을 하고 있는데 그 중에서도 연상호의 작품이 내놓을 때마다 거의 매번 톱 위치로 오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기생수’는 4월 8일 공개된 후 4월 14일까지 일주일 간 980만 뷰를 기록해 글로벌 시청 1위를 기록했다.

‘기생수’가 평단에서 다소 엇갈리는 반응을 얻고 있는 것과 달리, 넷플릭스 초대형 블록버스터인 잭 스나이더의 ‘레벨 문’은 망작 중의 망작이라는 비난을 받으며 두들겨 맞고 있다. 이 작품은 파트 1과 파트 2로 나누어 공개됐으며 ‘파트 2 스카키버’는 최근에 올라 갔다. 파트 별로 약 150분 분량이고 제작비는 약 2억 달러가 소요됐다. 현재 파트 6까지 기획돼 있는 것으로 전해지고 있다. 넷플릭스는 할리우드가 가장 사랑하는 ‘자식’ 쯤으로 여기는 잭 스나이더를 데려와 물심양면으로 그를 후원한 것인데, 한 마디로 ‘앞으로 벌고 뒤로 손해보는 꼴’이 됐다.

초대형 블록버스터 ‘레벨 문’ 망작 평가

넷플릭스 초대형 블록버스터 ‘레벨 문’. 배두나가 출연해 화제를 모았다. [사진 넷플릭스]
잭 스나이더의 이 저급한 SF도 ‘기생수’ 처럼 어디서 가져 온 것이긴 하다. 한 마을을 지키기 위하여 다수의 용병들을 선발해서 데려온다는 이야기는 일본의 거장 구로사와 아키라의 1954년작 ‘7인의 사무라이’와 판박이다. 아키라의 이 전설적 영화는 안톤 후쿠아 감독이 2016년에 ‘매그니피센트7’로 리메이크 하기도 했다. 이병헌이 출연한 작품이다. ‘레벨 문’에는 배두나가 출연한다. 넷플릭스의 ‘단순 무식’ 제작 원칙에 따라 ‘레벨 문’에는 ‘7인의 사무라이’가 표방하는 사회적, 개인적 정의의 간극이 어떻게 시대에 따라 변질되는가 따위의 얘기는 나오지 않는다.

넷플릭스를 좋아하는 사람들은 이들이 초기에 보여 준 예술 지상주의 스피릿이 모두는 아니더라도 일부라도 복원돼야 한다고 생각한다. 넷플릭스는 초기에 현대 영화사의 전설로 꼽히는 오손 웰즈의 미완성작 ‘바람의 저편(The Other Side of the Wind)’을 프로듀서였던 피터 보그다노비치와의 협업을 자청해 완성하기도 했다. 2018년에는 알폰소 쿠아론의 ‘로마’를 만들어 아카데미 감독상을 타기도 했다. 넷플릭스가 연상호를 애정하는 것은 누가 뭐라 할 것이 아니다. 대대적으로 실패했다 해도 잭 스나이더를 좋아하는 것도 뭐라 할 수가 없다. 다만 작은 영화, 의미 있는 작가영화에의 관심이 줄어드는 것이 아무래도 불안해 보인다. 넷플릭스의 장기 플랜은 비즈니스가 아니라 예술적 정신에서 나와야 한다. 그것이 초기 넷플릭스의 계획이었다. 스틱 투 더 플랜. 인생이나 사업이나 계획대로 해야 할 일이다.

오동진 영화평론가. 연합뉴스·YTN에서 기자 생활을 했고 이후 영화주간지 ‘FILM2.0’창간, ‘씨네버스’ 편집장을 역임했다. 부산국제영화제 아시아컨텐츠필름마켓 위원장을 지냈다. 『사랑은 혁명처럼 혁명은 영화처럼』 등 평론서와 에세이 『영화, 그곳에 가고 싶다』를 썼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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