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디터 프리즘] ‘추적 60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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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긴 불황이 만든 고심 어린 간판들
자영업자, 고금리·고물가 또 위기
」
소규모 유통업을 하는 정모(57)씨는 “쿠팡에다 중국 알리익스프레스와 테무 등쌀에 못 견딜 판인데 은행도, 저축은행도 대출 문턱을 높이니 막막하다”고 합니다. 지난 2월 개인사업자 대출 연체율은 0.61%. 2년 전(0.2%)과 비교하면 3배 넘게 폭등했습니다. 꽉 막힌 은행 대출을 피해 제2금융권으로 발길을 돌려도 마찬가지입니다. 저축은행 연체율은 지난해 12월 말 기준 6.55%로 2015년 12월 이후 최고치를 기록했습니다.
지난 1분기 실질 국내총생산(GDP)이 1.3% 깜짝 성장했어도 체감 경기는 부진합니다. 물가상승률은 둔화하고 있지만, 여전히 1년에 3% 이상 오르고 있는 수준입니다. 지난 한 달 새 배춧값이 36%나 뛰었고, 사과는 지난해 대비 136% 올랐습니다. 게다가 서비스업의 물가 상승 압력은 거셉니다.
그래서일까요. 북한산 아래 고깃집 입간판에는 ‘삼겹살 180g 1만원’ 자리에 ‘1만2000원’이 덧써져 있었습니다. 아직도 그 가격이면 ‘서울에서 둘째로 싼 집’이라고 붙여도 될 것 같습니다만, 왠지 아쉽습니다. 고깃집 사장님은 “버티기 힘들다. 물가가 너무 올라 올릴 수밖에 없었다”며 “소주도 4000원에서 5000원으로 올리고 싶지만…”이라며 슬쩍 제 눈치를 봤습니다. 술값 인상은 음식·주점의 마지노선(최후 방어선)이기 때문이죠. 손님이 떨어져 나가 소비 부진의 악순환을 부를 수도 있습니다.
편의점에 들러 막걸리 한 통을 샀습니다. 사장님은 얼마 전 다른 편의점 하나를 정리했답니다. 두 곳에서 나는 이익보다 비용이 더 많다면서요. 그가 말한 비용은 인건비입니다. ‘편의점 점주보다 알바(아르바이트생)가 더 번다’는 말에는 이런 상황도 포함되겠지요. 인건비는 임대료와 함께 자영업자들의 고정비용 양대 축입니다.
내년 최저임금 심의 절차가 진행 중입니다. 현재 최저임금은 시간당 9860원. 최근 5년간(2020~24년) 평균 인상률은 약 3.4%입니다. 1.4%인 140원만 인상돼도 1만원을 넘게 됩니다. 자영업자들에게 얼마나 영향을 미칠까요. 그 편의점에서 주말 야간 아르바이트를 하는 20대 청년을 내년 이맘때도 볼 수 있을까요. 아니면 사장님이 인건비 줄인다며 아예 아르바이트생을 내보내고 ‘고용원 없는 자영업자’가 될까요.
북한산에 올랐습니다. 일하는 사람의 19.6%(무급 가족 종사자 제외)가 자영업자인 대한민국이 펼쳐집니다. 한때 37%까지 치솟았던 자영업자 비율은 차츰 떨어져 지난해 처음으로 20% 아래가 됐습니다. 경제협력개발기구(OECD) 회원국 평균 15%대보다 높지만, 산업 구조 변화가 아닌 경기 부진과 고금리·고물가가 이유라면 문제입니다. 정부는 최근 대형마트·편의점에 물가 안정을 위한 협조를 요청했습니다. 반면 한국갤럽은 26일 우리 국민의 경기 전망 비관론이 한 달 새 7%포인트 올라 55%가 됐다고 발표했습니다. 안갯속입니다.
산에서 내려오는 길. 다시 ‘추적 60병’이 보입니다. 사라지지 않기를 바랍니다. 그런데 ‘주당 수첩(M본부)’ ‘그것이 마시고 싶다(S본부)’라는 간판도 어디엔가 있을까요.
김홍준 기획담당선임기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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