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서 연구진 11명 꾸려 함께 막스플랑크 갑니다"

최준호 2024. 4. 27. 0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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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홍진기 창조인상 수상’ 차미영 막스플랑크연구소 단장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단장에 선임된 차미영 기초과학연구원 CI연구단장(KAIST 교수)이 기초과학연구원에서 인터뷰하고 있다. 김성태 객원기자
최근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 단장에 선임돼 화제가 된 차미영(44) KAIST 교수가 그간의 연구 성과와 장래성을 인정받아 지난 22일 제15회 홍진기 창조인상 과학기술부문 수상자로 선정됐다. 차 교수가 일하게 될 막스플랑크연구소는 독일은 물론 세계에 손꼽히는 대표적 기초과학 연구기관이다. 1911년 설립 이래 최근까지 31명의 노벨과학상 수상자를 배출했다. 단일기관으로 세계 최다다. 우리나라가 2011년 기초과학연구원(IBS)를 설립할 당시 롤모델로 꼽은 것이 바로 막스플랑크연구소다. 차 교수는 그 IBS에서 수리 및 계산과학 연구단 데이터사이언스그룹 CI연구단장도 맡고 있다.

최근 중앙SUNDAY와 만난 차 교수는 놀랍고도 반가운 소식부터 전했다. 6월 초 독일 서부 보훔의 막스플랑크 보안 및 정보보호 연구소로 떠날 예정인데, 함께 연구하던 IBS 연구단 박사후연구원 4명은 물론 IBS 연수학생 신분인 KAIST 박사과정 제자 7명도 함께 동행한다는 것이다. 국내 연구자가 막스플랑크연구소 단장에 선임된 것도 처음이지만, 단장이 되면서 모국에서 10명 이상의 팀원을 꾸려 함께 소속을 옮기는 것도 전례가 없다. IBS 연구원은 막스플랑크 소속 박사후연구원으로, KAIST 학생은 인턴연구원으로 일하면서 박사학위과정을 이어간다. 이쯤 되면, 국내 연구그룹 하나가 통째로 이민을 가는 셈이다.

Q : 막스플랑크 단장에 선임되면서, 단원까지 꾸려 출국하는 건 뜻밖이다.
A : “깜짝 놀라긴 하더라. 대개 신임 단장이 한 두 명의 연구자를 데리고 오는 경우는 있어도, 10명이 넘는 경우는 없었다고 한다. 하지만 막스플랑크에서 연구진을 꾸리는 건 단장의 고유 권한이다. 좋은 연구인력을 뽑는다는 건 너무 힘든 일이다. IBS 내 우리 그룹에는 정말 최고로 잘하는 분들이 계신다. 이들을 놓고 간다는 건 말이 안 된다. 연구를 위한 아이디어 단계에서 박사과정인 주니어 연구자들의 역할도 아주 중요하다. IBS에서 연수학생 신분으로 있는 박사과정 제자들이 독일로 같이 가는 이유다. IBS 연구진 외에도 독일 현지 연구진도 두 명 뽑아놓은 상태다.”
중학교까진 늘 1등, 과학고 입학하고는 꼴찌

Q : 막스플랑크연구소 단장의 고유 권한은 어디까지인가.
A : “무한대다. 연구원을 뽑는 것뿐 아니라, 연구주제를 정하는 것 등에 무한한 자유가 있다. 모든 것을 단장을 믿고 맡긴다. 막스플랑크에서 내가 운용할 수 있는 예산이 연간 20억원, 만 67세 정년까지 계산하면 500억원에 달한다. 물론 내 연봉을 제외하고서다. 우리가 하는 게 이론 연구라 큰 장비가 필요 없지만, 막스플랑크에선 바다 생물을 연구하는 데 필요하다고 하면 배도 사 줄 정도다. 물론 연구자는 이에 대한 책임을 져야 한다.”

Q : 연구평가는 안 받나.
A : “평가는 있기는 한데, 멘토가 가이드를 해준다는 느낌 정도다. 능력이 뛰어나고 의욕이 많은 분이 단장으로 오니 실적이 안 나올 수는 없을 것 같다. 도중에 연구주제를 바꾸는 것도 단장의 자유다. 이게 하르나크 원칙이라고 한다. ‘지원은 하되 간섭하지 않는다’는 자율의 정신이다. 대신 모럴 해저드(도덕적 해이)와 같은 부분은 굉장히 많이 강조한다. 단장 선임 과정에서 윤리 전문가와 아침부터 종일 인터뷰를 해야 했다.”

Q : 독일에 가면 무슨 연구를 하나.
A : “‘인류를 위한 데이터 과학’ 연구그룹을 이끌 예정이다. IBS에서 하던 연구를 그대로 한다고 보면 된다.”
차미영 교수(앞줄 왼쪽 넷째)와 함께 연구하던 기초과학연구원 연구단 박사후연구원 4명과 KAIST에서 박사과정 중인 7명이 차 교수와 함께 막스플랑크연구소로 간다. 김성태 객원기자
차 교수는 허위정보와 빈곤, 재난 탐지 등과 같은 어려운 사회문제를 다루는 새로운 빅데이터 기반 인공지능(AI) 계산방법을 개발하는 과학자다. 세계관세기구(WCO)와 함께 진행한 프로젝트를 통해 면세 범위 초과 물품, 위장 반입, 원산지 조작 등 세관에서 벌어지는 불법적 행위를 적발하는 딥러닝 알고리즘을 개발했다. 위성 영상 빅데이터 분석 AI기술을 개발하고, 북한 등 빈곤국의 경제지표를 6㎢ 단위에서 자세히 추정하는 기술도 선보였다. 코로나19 팬데믹 땐 각국의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를 분석, 가짜뉴스가 여러 나라에서 같은 내용으로 재생산되고 있는 것을 발견해, 이를 사전에 차단하기 위한 캠페인을 진행하기도 했다. 노도영 IBS 원장은 “차 단장의 연구는 학계는 물론 구글과 메타(옛 페이스북)를 비롯한 글로벌 플랫폼의 알고리즘 개선에 큰 영향을 줬다”며 “세계관세기구와 유엔을 비롯한 NGO에서 활용되는 ‘액셔너블 기초과학’이라는 새로운 연구의 가능성과 사회 파급력을 선보이고 있다”고 평가했다.

Q : 어떻게 막스플랑크연구소의 단장이 될 수 있었나.
A : “2022년 겨울이었다. 코로나19 팬데믹이 끝나고 저의 첫 국제 심포지엄이 축구 선수 차두리가 있던 독일 보훔에서 열렸다. 설립한 지 몇 년 안 된 막스플랑크 보안연구소가 소개도 할 겸 관련 연구자를 초대해 심포지엄을 한다고 하더라. 그래서 가벼운 마음으로 갔었다. 그런데 나중에 알고 보니 새로운 단장을 뽑기 위한 스크리닝 인터뷰였다. 심포지엄이 끝나는 날 아침에 디렉터 두 분과 식사를 했는데 ‘사실은 단장 자리를 뽑는 인터뷰였다. 당신을 1순위로 정했으니 지원해 볼 의향이 있냐’고 물어 깜짝 놀랐다.”

Q : 막스플랑크가 외국인인 당신을 왜 단장으로 뽑았을까.
A : “독일 국적 단장들이 많이 있는데, 점점 넓혀가려고 하는 분위기다. 여성 단장도 많지 않아 확대하려고 한다고 들었다. 막스플랑크는 그 분야 세계 최고로 잘하는 연구자를 모시는 것이 목표다. 꼭 국적에 얽매이지 않는다. 세계가 변하고 있지 않나. 독일은 이미 이민자를 아주 많이 받아들이고 있다. 어떻게 보면 이런 게 장기적인 투자라고 생각한다.”
차 교수는 초·중·고와 대학 박사과정까지 모두 국내에서 마친 ‘토종 과학자’다. 대전에서 태어났지만, 강원대 교수인 부친을 따라 3살부터 춘천에서 자랐다. 강원과학고를 2년 만에 조기졸업(수료)하고 1997년 KAIST 전산학과에 입학, 석·박사까지 마쳤다.

Q : 타고난 천재인가. 학생 땐 어떤 사람이었나.
A : “그건 아니다. IQ는 그냥 중상위권이었다. 춘천에서 IQ가 제일 높아 유명했던 친언니와 달리 나는 그냥 스스로 알아서 열심히 공부하는 타입이었다. 굳이 말하자면 자율주도형. 학원은 과학고 입시 전에 두 달 다닌 게 전부였다. 그러다 보니 중학교까진 늘 1등이었는데 과학고에 입학하고 꼴찌가 됐다. 그래도 졸업(수료)할 땐 수석은 아니지만, 전교 5등 안엔 들었던 것 같다.”

Q : 어떻게 따라잡았나.
A : “그냥 열심히 공부했다. 과학고 공부가 너무 힘들었다. 빨리 마칠 수 있는 방법을 찾다 보니 2년 만에 수료하게 됐다. 내가 보면 집요한 성격이 있다. 보고서를 준비할 때도 자다가 갑자기 뭔가 생각이 나 벌떡 일어나 컴퓨터 켜고 수정하기도 한다.”

Q : 좋아하는 게 있다면.
A : “책 읽기를 정말 좋아한다. ‘올해 목표 60권 읽기’ 이런 목표도 세운다. 다양하게 책을 읽지만, 소설보다는 역사학자가 쓴 『100년 후』라는 책처럼 통찰력을 주는 분야를 좋아한다. 여성 리더십에 대한 책도 자주 읽는다. 음악도 좋아한다. 어릴 때부터 피아노를 쳤고, 지금은 플루트도 배우고 있다.”

Q : 하루를 어떻게 살아가는지 궁금하다.
A : “단순하고 재미없는 루틴(routine)이다. 신기한 게 새벽 5시면 알람 없어도 눈이 떠진다. 아마도 하고 싶은 게 많아서인 것 같다. 일어나면 세수도 안 하고 곧바로 서재로 달려간다. 줄 칠 만한 것을 찾을 때까지 책을 읽는다. 그렇게 한 시간 동안 책 5권을 10페이지씩 읽는다. 뭐 이런 식이다. 포스트잇을 붙이고, 밑줄을 치다 보니 책이 너덜너덜해진다. 운동은 스쿼트로 아침에 50번, 저녁에 50번을 한다. 퇴근은 오후 7~8시쯤, 집에 와서 저녁을 먹는다. 이후엔 아이들과 시간을 보내다 12시에 잠든다. 하루 5시간 자는 셈인데 익숙하다. 대신 주말에는 오전 8시쯤 일어난다.”
독서 정말 좋아해…유튜브 중독성 강해 기피

Q : 유튜브나 페이스북은 안 한다고 들었다.
A : “중독성이 너무 강해서 멀리한다. 유튜브나 네이버 앱 같은 건 아예 지운다. 인터넷 쇼핑이 필요할 땐 앱을 깔았다가 지워버리는 식으로 한다.”

Q : 삶의 신조가 있나.
A : “신조라고 하기엔 조금 거창한데 ‘오늘 하루가 내 삶의 미니어처다’라는 말을 좋아한다. 로빈 샤르마가 쓴 『변화의 시작 5AM 클럽』에 나오는 말인데, 그 말을 따라서 살려고 노력한다.”
차미영 1979년생. 강원과학고를 졸업하고 KAIST에서 전산학으로 학·석·박사 학위를 받았다. 독일 막스플랑크연구소에서 박사후연구원을 지낸 뒤, 2010년부터 KAIST에서 문화기술대학원을 거쳐 전산학부 교수로 활동하고 있다. 페이스북 초빙교수를 지냈으며, 2009년부터 기초과학연구원(IBS) 수리및계산과학연구단 CI연구단장을 겸임하고 있다.

대전=최준호 과학 전문기자, 논설위원 joonho@joongang.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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