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생인권만 강조하다 '부메랑'···경기·광주도 폐지 추진

박성규 기자 2024. 4. 26. 1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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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울 학생인권조례 12년만에 폐지
차별 받지않을 권리 등 담겼지만
'서이초 사건' 계기로 논의 급물살
"교권 추락·교육위축 원인" 지목
조희연, 천막농성 돌입·재의 요구
26일 서울 중구 서울시의회 앞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를 두고 찬반 집회가 동시에 열리고 있다. 연합뉴스
[서울경제]

전국 7개 지방자치단체에서 시행 중인 학생인권조례가 존폐 위기에 놓였다. 조례가 도입되면서 학생 체벌과 엄격한 두발·복장 규제 등이 사라지는 등 학생 권익이 향상됐다는 평을 받았다. 하지만 학생 인권이 과도하게 강조되면서 학교 현장에서 교사들의 교육 활동이 위축됐다는 목소리도 거세졌다. 특히 지난해 7월 ‘서이초 교사 사망’을 계기로 교권을 보호해야 한다는 요구가 커졌고, 교권 침해 원인 중 하나로 지목되면서 학생인권조례를 시행 중인 지자체에서 폐지 논의가 본격화하기 시작했다.

서울시의회는 26일 제323회 임시회 제3차 본회의를 열고 ‘서울시 학생인권조례 폐지조례안’을 상정해 재석 의원 60명 전원의 찬성으로 통과시켰다.

지난해 3월 김현기 서울시의회 의장은 학생인권 폐지조례안을 발의했다. “조례를 폐지해달라”는 ‘서울시학생인권조례폐지범시민연대’의 조례 청구를 받아들인 것이다. 그로부터 1년여 만에 서울시의회는 2012년 제정돼 12년간 시행돼온 학생인권조례를 폐지했다.

학생인권조례는 경기도교육청이 2010년 도입한 뒤 서울·광주·인천·전북·충남·제주 등 7개 시도에서 시행 중인 조례로 △차별받지 않을 권리 △사생활 보장 등을 담고 있다.

서울시교육청은 폐지 시도를 막기 위해 다양한 노력을 했지만 소용없었다. 지난해 10월에는 학생의 책임과 의무를 별도의 장으로 신설하는 내용 등의 학생인권조례 개정안을 마련해 의회에 제출하기도 했으나 개정안은 상정조차 이뤄지지 못했다. 최근에는 서울 초중고생과 학부모들에게 타인의 인권을 침해하면 안 된다는 내용이 주요 골자인 학생인권조례 조항을 안내하기도 했다. 학생·보호자 교육 자료에 학생 책임을 명기한 학생인권조례 개별 조항을 담은 것은 사실상 이번이 처음으로 알려졌다. 서이초 사태 이후 교권 침해가 학생의 인권만 강조한 학생인권조례 때문이라는 목소리가 커지고 있는 가운데 인권조례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통해 교육 3주체가 상생할 수 있는 학교 분위기를 만들겠다는 취지다.

그러나 국민의힘 의원이 다수인 서울시의회 설득하는 데는 실패했다. 서울시교육청은 재의 요구 등 모든 절차를 통해 서울시의회 결정을 뒤집겠다는 방침이다. 조희연 교육감은 교육청 본청에서 학생인권조례 폐지의 부당함을 알리는 천막 농성에 돌입했다.

조 교육감은 “사흘 동안 (조례 폐지를 막지 못해) 죄송하다는 말씀을 드리고, 항의 의사도 표현하고 많은 분을 만날 것”이라며 “폐지를 번복시키기 위한 ‘이동 버스(이동 집무실)’도 운영하겠다”고 설명했다.

또한 야당에서 추진 필요성이 언급되는 ‘학생인권법’ 제정을 위해 각 정당의 대표를 만나고 서울시교육청 차원에서 학생인권법 초안을 마련하는 것도 검토하겠다고 덧붙였다. 그러나 국민의힘 의원이 절대다수인 만큼 충남 학생인권조례 전철을 밟을 가능성이 크다. 앞서 24일 충남에서 2020년 제정된 학생인권조례가 폐지됐다. 2010년 경기도에서 처음으로 제정돼 시행된 학생인권조례가 지자체 표결을 통해 폐지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충남교육청은 대법원에 소송을 제기할 예정이지만 대법원이 충남교육청의 손을 들어줄지는 미지수다. 일각에서는 사실상 폐지가 확정됐다는 분석도 나온다. 소송을 통해서도 폐지를 막지 못할 경우 학생 인권뿐 아니라 교권과의 상생을 강화하는 내용을 담은 3기 학생인권종합계획(2024~2026년) 발표가 무산될 가능성도 있다.

학생인권조례 제44조는 교육감이 3년마다 학생인권종합계획을 수립·시행하도록 규정하고 있어 조례가 폐지되면 사실상 학생인권종합계획을 수립하기 어렵기 때문이다.

서울과 충남 학생인권조례 폐지로 조례 폐지 분위기가 다른 시도로 확산할 수 있다는 분석도 나온다.

박남기 광주교대 교육학과 교수는 “이미 서울과 충남에서 조례가 폐지됐기 때문에 국민의힘이 주도하는 지자체에서 폐지를 강하게 밀어붙일 가능성이 크다”고 짚었다. 다만 이번 학생인권조례 폐지로 학생 인권이 침해받는 일은 없을 것으로 예상했다. 박 교수는 “아동학대금지법 등이 시행 중인 만큼 학생들의 인권이 조례 폐지에 따라 영향을 받지는 않을 것으로 보인다”고 밝혔다.

박성규 기자 exculpate2@sedaily.com성채윤 기자 chae@sedaily.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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