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계최초 괴물 만든 딸, 남자들에 맞서 싸운 엄마…“모녀가 세상을 바꿨다” [Books]

송경은 기자(kyungeun@mk.co.kr) 2024. 4. 26. 17: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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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성의 권리 옹호’ 발표한 엄마
근대 최초 페미니스트로 평가
1819년 ‘프랑켄슈타인’ 쓴 딸
남성중심주의에 신랄한 비판
태어난지 열흘만에 죽은 엄마와
평생에 걸쳐 정신적 유산 공유
메리와 메리, 샬럿 고든 지음, 이미애 옮김, 교양인 펴냄, 3만8000원

영국 런던 출신의 메리 셸리는 열아홉 살이던 1919년 과학 실험으로 만들어진 한 괴물에 대한 소설을 썼다. 제목은 ‘프랑켄슈타인’. 이 소설은 과학소설(SF)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열었다. 100년이 지난 지금까지 전 세계적으로 스테디셀러일 뿐만 아니라 영화, 희곡으로도 끊임없이 관객과 만날 정도로 역작으로 꼽힌다.

그러나 메리 셸리가 죽었을 당시 그녀에 대한 세간의 평가는 시인 퍼시 비시 셸리의 아내 또는 정치철학자 윌리엄 고드윈의 딸이라는 데 초점을 맞췄고, 작가나 편집자로서의 업적은 과소평가됐다. 1851년 53세라는 비교적 젊은 나이에 뇌종양으로 일찍 세상을 떠난 메리 셸리는 생전에 수많은 글을 남겼지만 1970년대까지도 큰 조명을 받지 못했다.

18세기 여성들의 삶을 구속한 불공정한 법과 편견을 비판한 ‘여성의 권리 옹호’를 발표해 자유주의적 여성주의 이론의 토대를 닦은 여성 인권 운동가 메리 울스턴크래프트도 비슷했다. 지금은 여성 해방을 외친 근대 최초의 페미니스트로 평가되지만 당대에는 전혀 빛을 보지 못했다. 오히려 대중의 격렬한 분노를 샀다. 그녀가 살았던 시대는 아버지가 딸에게 “혹시라도 학식을 조금 얻게 되면 비밀로 깊이 간직하라”고 당부하는 게 일반적인 일이었다. 유명한 지식인이었던 메리 워틀리 몬터규조차도 손녀에게 뛰어난 수학적 재능을 굽은 허리나 절름거리는 다리를 숨기듯 최대한 감추라고 조언한 것으로 전해진다.

두 인물을 각각 알면서도 두 사람이 모녀라는 사실을 알고 놀라는 사람들이 아직도 간혹 있다. 그도 그럴 것이 두 사람은 모녀 지간이지만 함께한 시간은 메리 셸리가 태어난 뒤 고작 열흘뿐이었다. 메리 셸리를 낳을 때 아이가 위험한 상황에 놓인 다급한 상황에서 의사가 절개술을 하면서 당시 가장 위험한 질병 중 하나였던 산욕열을 일으키는 세균을 옮긴 탓에 38세에 세상을 떠났기 때문이다. 하지만 오히려 그 짧았던 시간 때문에 메리 셸리는 평생에 걸쳐 어머니가 남긴 글과 같은 흔적을 탐구하고 어머니의 사상을 체화했으며 끊임없이 흠모했다.

신간 ‘메리와 메리’는 처음으로 메리 울스턴크래프트(1759~1797)와 그의 딸 메리 셸리(1797~1851)의 생애와 업적을 상세히 탐구한 책이다. 정치적으로나 문화적으로나 격변기였던 18~19세기 낭만주의 시대 영국에 남다른 족적을 남긴 울스턴크래프트와 셸리의 생애를 각자의 시간 순으로 번갈아 살펴본다. 그러면서 셸리의 편지나 일기, 소설에 등장하는 울스턴크래프트의 생각과 울스턴크래프트가 생전에 미래에 자신이 키우려 했던 딸에게 얼마나 자주 말을 걸었는지를 교차시켜 보여준다. 첫째 딸이자 메리의 언니인 패니와의 일화를 통해서도 울스턴크래프트가 어머니로서 어떤 면모를 지니고 있었고 어떤 가치관으로 여성을 바라봤는지 엿볼 수 있다.

울스턴크래프트와 셸리는 서로 다른 시간을 살았지만 공통적으로 여성이 직면한 불의에 도전하며 세상을 변화시킬 중요한 책을 썼다. 메리 울스턴크래프트가 프랑스 혁명을 직접 목격하고 쓴 정치철학서들은 토머스 페인, 존 애덤스 같은 혁명가들에게 널리 읽혔다. 1796년 울스턴크래프트의 ‘스웨덴, 노르웨이, 덴마크에서의 짧은 체류 동안 쓴 편지’는 낭만주의를 개창하는 데 중대한 역할을 한 것으로 평가되는 영국의 낭만주의 시인 윌리엄 워즈워스보다 앞서 낭만주의의 중요한 신조를 밝힌 책이었다.

메리 셸리는 아버지 윌리엄 고드윈과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의 영향을 받아 급진적인 정치 사상을 펼쳤다. ‘프랑켄슈타인’ 역시 남성적 가치가 세상에 초래하는 고통을 괴물에 빗대 비판한 것이다. 셸리는 여러 작품을 통해 당시 여성들이 가진 협력과 조화의 힘으로 시민사회를 재구성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이는 당대 낭만주의와 개인주의, 남성중심주의에 대한 직접적인 도전이었다. 셸리는 역사와 시대정신을 담은 소설도 많이 저술했는데 역사소설 ‘발퍼가’(1823)와 ‘퍼킨 워벡의 행운’(1830)이 대표적이다. 저자는 이처럼 그동안 잘 알려져 있지 않았던 두 모녀가 남긴 모든 문헌 자료를 꼼꼼하게 파헤쳐 두 사람의 거울 같은 생애를 재구성한다.

울스턴크래프트와 셸리가 여성이 남성의 소유물로 취급되던 영국 사회에서 낡은 관습과 금기에 맞서 실현하고자 했던 것은 자유와 독립이라는 새로운 가치였다. 이들의 일대기는 상류층 가문에서 가정교사로 일하던 가난한 집안의 소녀 가장이 어떻게 페미니즘의 성서라 일컬어지는 책을 쓴 급진주의 사상가가 될 수 있었는지, 어머니와 평생 대화 한 번 나누지 못한 딸이 어떻게 어머니의 정신적 유산을 물려받아 문학사를 뒤바꾼 획기적인 소설을 쓸 수 있었는지 생생하게 전해 준다. 지금 우리가 당연하듯 누리고 있는 권리와 한 세기가 지나도록 해결되지 못한 문제는 무엇인지 생각해보게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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