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보기]하이브-어도어 사태…폭로전 멈추고 해야 할 일을 할 때다

CBS노컷뉴스 김수정 기자 2024. 4. 26. 1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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왼쪽부터 민희진 어도어 대표, 방시혁 하이브 의장. 박종민 기자

기상천외했다. '경영권 침탈 의혹'으로 감사의 대상이 되어 하이브(HYBE)로부터 사임 요구를 받는 민희진 어도어(ADOR) 대표가 마련한 자리는 명목상 '긴급 기자회견'이었다. 실제로는 민 대표의 버라이어티 쇼에 가까웠다. 민 대표는 화를 내고 울고 웃고, 법률대리인인 변호사의 만류에도 끝내 하고 싶은 말을 해냈다.

지난 25일 편안한 차림으로 기자회견장에 나타난 민 대표는 긴 시간 원색적인 비난에 시달려온 것에 지친 듯 수척해 보였다. 쏟아지는 카메라 셔터 소리에도 괴로워하며 사진 취재진의 촬영 중단을 요청해 심상치 않은 시작을 알리고는, "오늘 얘기가 좀 길 것"이라는 예고에 맞게 2시간이 훌쩍 넘는 기자회견을 주도했다.

민 대표는 "미대 출신의 그냥 개인"과 "(뉴진스의) 에미(어미)"와 "무식해가지고 (…) 사인했다가 이 꼴"이 되었지만 "명예가 너무 중요한 사람"이고, "일을 잘한 죄밖에 없"는 "직장인"이자 "월급 사장"이라는 위치를 자유롭게 오가며, 이야기를 펼쳤다.

우선 민 대표는 "경영권 찬탈을 계획하거나 의도하거나 실행한 적이 없다"라고 웃으며 말했다. 하이브가 근거로 삼은 카카오톡 메시지나 문건을 두고는 "본질이랑 무관한 카톡까지 사찰"했다며 "마타도어"라고 일축했다. "상상"이자 "노는 얘기"를 왜 "진지병 환자"처럼 받아들이냐며 "제 입장에서는 얼마나 희대의 촌극"인지 모르겠다고 밝혔다.

시종일관 민 대표가 강조한 것은 '하이브가 이래서는 안 된다'라는 것이다. 민 대표는 '하이브 내부 고발'을 해서 밉보였기에 사내 감사 결과가 만천하에 공개되는 등 수모를 겪었다고 설명했다. 민 대표는 최근 하이브 산하 레이블 빌리프랩에서 데뷔한 아일릿(ILLIT)을 예로 들어 하이브의 '카피'(copy) 행태를 강도 높게 비판했다.

2022년 7월 데뷔한 뉴진스. 어도어 제공

2022년 7월 데뷔한 뉴진스(NewJeans)는 '민희진 걸그룹'으로 불리며 주목받았다. 이름조차 제대로 공개되지 않은 상태에서 데뷔곡 뮤직비디오부터 풀었는데도 단숨에 큰 인기를 끌었다. 듣기 편한 노래 장르인 '이지 리스닝'이나, 스타일링에 차용한 'Y2K 바이브'의 대표주자로 뉴진스가 곧잘 꼽힐 만큼, 뚜렷한 정체성을 가지고 빠르게 스타덤에 올랐다.

아일릿이 뉴진스와 너무 닮은 이미지라는 반응은 초반부터 나왔다. 민 대표는 "아일릿을 비방하는 게 아니다. 게네들이 무슨 죄가 있겠나. 어른들이 문제"라며 "우리의 제작 포뮬러 자체를 너무 모방했다는 것"이라고 꼬집었다. "각 레이블은 독립적이고 독창적인 크리에이티브 활동을 펼친다"라고 하이브는 밝히지만, 이미 고민 없는 '양산'이 시작됐고 결국 이것이 "업을 망가뜨린다"라는 게 민 대표의 주장이다.

하이브는 개성 있는 아티스트를 보유한 레이블 인수를 반복하면서 몸집을 불렸고, 엔터테인먼트 업계의 압도적인 1위 기업으로 올라섰다. 이때 하이브의 차별점이자 강점으로 거론된 것이 바로 '멀티 레이블 체제'다. 경쟁사인 SM도 '혁신'의 방안으로 하이브가 이미 실행 중인 '멀티 레이블로의 변화'를 제시할 정도였다.

민 대표는 '하이브 1호 걸그룹'이라는 타이틀을, 먼저 준비하고 있던 뉴진스가 아닌 르세라핌(LE SSERAFIM)이 가져갔다고 주장하며 '멀티 레이블 체제'의 한계를 지적했다. 그는 "최고 결정권자가 위에 떠 있어야 한다. 그래야 자율적으로 경쟁하고 서로 건강하게 큰다"라며 방시혁 의장이 프로듀싱에서 물러나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전에 있던 우리의 유니크함과 브랜딩이 기성화"가 되기에, 모방 행태는 결국 "제 살 깎는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클린(clean)한 방식으로, 어떤 꼼수나 다른 방법을 찾지 않는 그런 방식으로 일을 잘했을 때 내가 어디까지 한번 성공해 볼 수 있을까, 이런 게 궁금해서 되게 도전했던 사람"이라고 스스로를 소개한 민 대표는 그간 업계의 고질적인 문제점도 가감 없이 화제에 올려 K팝 팬들에게도 호응을 얻었다. 앞서 말한 성공 공식을 그대로 따른 아이돌 양산 행태나, 랜덤 포토카드 및 럭키드로우 이벤트·팬 사인회 등을 빌미로 한 과도한 앨범 판매 유도 행위는 중단되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이날 민 대표가 한 이야기는 동석한 변호사도 말한 것처럼 논지를 벗어난 부분이 상당했다. '새끼'나 '시X' 등 비속어도 서슴지 않았고, 그때그때 감정에 치중해 산만하고 두서없었다. 원래 본인 성격이 숨김없이 할 말은 하는 편이라는 이유로, 비밀 유지 조항도 말하려고 해 아슬아슬한 순간이 찾아왔다. '다른 연습생은 나이가 너무 많다' '어릴 때가 예뻤다' 등의 루키즘·외모 평가 발언을 비롯해 수많은 이들의 실명을 거론하고, 나이 차가 큰 아티스트와의 애착 관계를 과시하기도 했다.

하이브 건물 사진. 김수정 기자

'경영권 침탈' '배임 혐의' 성립 여부나 향후 뉴진스와 본인 거취 등 기자회견의 개최 목적에서 벗어난 이야기가 많았고, 전반적으로 감정이 과잉된 태도였음에도 민 대표를 향한 여론은 반전됐다. 방 의장 등 하이브 경영진과 틀어지게 된 배경을 상세하게 전하고, '꼼수 없이 사회생활 해 보려는 여자'로서 일에 전념했으나 '술 마시고 골프치러 다니는' 다른 경영진보다 못한 대우를 받았다며 억울함을 토로해 많은 이들의 공감을 끌어냈다.

기업 리스크가 발생하자 하루 만에 시가총액 약 7500억 원이 빠진 '거대 기업' 하이브와, 뛰어난 능력으로 스카우트됐으나 모회사의 주도로 일할 때 여러 제약을 받는 '개인' 민희진이라는 구도를 만들어내는 데도 성공했다. 주주간 계약으로 하이브에 노예처럼 묶여 있다고도 폭로했다.

민 대표보다는 정제된 '기업의 언어'로 대응하긴 했지만, 언론을 통해 감사 내용을 흘리며 민 대표에게 불리한 상황을 유도하고, 기자회견 직전 '무속인을 통한 주술 경영 의혹'을 담은 보도자료를 배포한 하이브의 행태를 지탄하는 반응도 훨씬 커졌다. 특정 아티스트를 밟을 수 있냐는 둥 민 대표가 공개한 방 의장의 카카오톡 메시지도 반감을 샀다.

폭로와 비방은 쉽다. 흥미와 통쾌함을 동반하기에 환호받기도 쉽다. 하이브와 어도어(민희진) 양쪽이 모두 인지하듯 명백한 '어른 간의 문제'가 내부에서 소화되지 못한 채 대중의 심판대에 오르며 서로 타격을 입었다. 이 과정에서 미성년자 멤버도 포함된 아티스트는 충분히 보호받지 못했고, 팬덤과 대중은 혼란스러워했다. '업계 1위' 상장 기업의 가치는 곤두박질쳤다.

사이다에 비유되는 시원함 끝에, 훨씬 더 어렵고 까다로운 문제가 남았다. 단순한 두 주체 사이의 문제뿐 아니라, 막말이 곧 진정성을 담보하지 않는데도 공적 언어의 붕괴에 열광하는 행태, 뛰어난 창작(제작)자 개인이 부각되며 지워진 K팝 업계의 협업 노동, 즉각적인 재미를 최우선 가치로 두는 태도 등 여러 그림자를 노출했다.

하이브와 어도어도 이제 더이상 상대를 궁지에 몰기 위한 폭로전은 그만두고, 벌어진 사태를 수습할 때다. '지속 가능한' K팝 생태계를 위한 방안을 고민해야 한다. 덩치만 키우고 내실은 챙기지 못한 특정 기획사의 내분 해결에 그치지 않길 바란다.

팬을 향한 비이성적인 과금 유도와 '그래도 좋아하니까 살 거잖아'를 기반으로 한 홀대가 동시에 이루어지는 악습, 성공에 매몰돼 다채로움이 부족해진 K팝 제작 시스템을 포함해, 이미 모두 알고 있었지만 굳이 고치려 하지 않은 숱한 문제를 직시하고 개선하려 노력해야 할 때다. 내일이 없는 것처럼 '장사'에만 혈안이 된 업계는, 공급자(회사)뿐 아니라 수요자(팬)도 얼마든지 떠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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