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독] 총선날 출근 못한 與싱크탱크…여의도연구원 붕괴 위기

신유경 기자(softsun@mk.co.kr), 안정훈 기자(esoterica@mk.co.kr) 2024. 4. 26. 17:1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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인력 축소로 정책기능 약화
전문성 없어 연구 외주 맡겨
내부에서도 내분 심한 상황
대선후 2년새 원장 세 번 교체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국민의힘 산하 싱크탱크 여의도연구원으로 들어가는 문이 26일 굳게 닫혀 있다. [사진=박자경 기자]
4·10 총선에서 국민의힘이 참패한 원인을 두고 다양한 원인이 지적되는 가운데 집권 여당 싱크탱크이자 지난 1995년 설립된 국내 최초의 정당정책 연구소 ‘여의도연구원(이하 여연)’의 추락이 그 중심에 있다는 주장이 26일 제기됐다.

이날 매일경제는 이같은 내용이 담긴 여의도연구원 노동조합의 입장문을 입수했다. 노조는 홍영림 원장의 인사 전횡 등을 폭로하며 사퇴까지 전격 요구했다.

정치권에서는 여연이 누적돼온 고질적인 문제를 해결하지 못하며 사실상 ‘싱크탱크’ 역할을 상실했다는 평가를 내놨다. 우선 인력 축소에 따른 정책 기능 약화가 꼽힌다. 특히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 여연은 빠르게 힘을 잃으며 인원도 대거 줄었다.

무엇보다 여의도연구원 정책실 인원이 급격히 감소했다. 노조에 따르면 박근혜 전 대통령 탄핵 이후에도 정책실 인원은 10여 명에 달했다고 한다. 하지만 최근 6명의 인력 중 2명이 나가면서 정책실 인원은 4명으로 쪼그라들었다. 당 사무처에서 파견하는 연구지원실(5명) 인력보다도 적은 현실이다. 대선 국면에서 2~3명 정도 남아있던 박사급 인력 역시 현재 한 명뿐이다. 노조는 “정책실 연구인력 충원은 지난 수년 간 사실상 전혀 이뤄지지 않고 있다”고 지적했다.

또 현재 연구진 중에는 경제학 전공자가 1명도 없는 것으로 알려졌다. ‘경제에 강한 보수 정당’을 자임하는 국민의힘 싱크탱크에 경제학 전공자가 전무하다는 얘기다.

여연 내부에서 공채 인력인 정책실과 당 사무처 파견 인력인 연구지원실 사이의 반목도 극심한 상황이다. 과거 여연 사정에 정통한 한 관계자는 “당에서 여연으로 파견된 일반 당무직 인력들이 여연에 특수 전문직이 들어오는 것을 경계한다”며 “여연 내에서도 당 공채 출신들이 주축이 돼서 움직이는데, 전문직들이 들어오면 ‘본류’로서의 비중 자체가 줄어들기 때문”이라고 말했다.

과거엔 선거기간 전원 비상근무
수당 문제로 총선당일 출근 못해
홍영림 “총선 후 수당 문제 해결하려”
이번 총선 기간에는 정책실 인원이 주말과 선거일 당일 출근을 하지 못하는 기이한 현상이 벌어지기도 했다. 통상 총선을 50~60일을 앞둔 상황에서는 여연 인력 전원이 비상근무를 했다. 그간 정책실은 비상근무 기간에 선거대책위원장 일정에 맞춰 지역구에 소구할 수 있는 공약을 개발해왔다. 이번에는 이 업무를 평일에 몰아서 할 수밖에 없었다는 게 정책실 측 주장이다. 여연 노조측 관계자는 “이번에 노조에서 비상근무 수당 산정 방식을 연구지원실에 문의했는데, 이후 정책실까지는 비상근무를 할 필요가 없다고 지시가 내려왔다”고 밝혔다.

이에 대해 홍영림 여의도연구원장은 “사무처 파견 인력의 수당이 정책실 등 다른 인력 대비 비교적 낮아 일단은 선거를 치른 후에 검토를 하자고 했던 상황”이라고 말했다.

총선 국면에서 긴밀한 협업이 필요한 정책실과 전략실 간 소통도 부재했다. 연구원 관계자는 “전체 선거기획을 하면 정책실이 어떻게 받쳐줘야할지 협조를 해야 하는데, 이번에는 그러지 못했다”고 전했다.

당 지도부의 결정에 따라 여연 권한과 역할이 제한된다는 점도 문제로 제기된다. 과거 여연 소속이었던 한 인사는 “여연이 조사를 바탕으로 전략을 짜면 지도부가 이를 수용해야 하는데 받아들이지 않았다”고 목소리를 높였다.

여연 노조는 이로 인해 여연이 싱크탱크로서 중장기 과제에 집중할 수 없다는 점을 꼬집었다. 노조는 “원장은 당 최고위원회의에 배석하며, 이 자리에서 당대표의 숙제를 받아오거나 본인의 정치적 어필을 위해 당장 눈앞의 현실만 다루는 초단기 현안과제에 집중한다”며 “원장이 바뀌면 다음 원장은 ‘여의도연구원은 그 동안 뭐 했느냐’며 핀잔을 준다”고 지적했다.

그러면서 “이번 총선 패배에서 드러났듯 2030세대, 4050세대 등 세대별 집중 연구가 필요하다. 2026년 지방선거를 대비한 시대과제 연구 등도 지금부터 준비해야 한다”며 “그러나 현 연구원 구조에서는 실현할 수 없다는 것이 문제”라고 비판했다.

이번 총선에서는 여연이 여론조사 결과조차 각 후보들에게 공유하지 않다가 막판에 전달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때문에 후보들이 ‘깜깜이’ 선거 대응을 할 수밖에 없었다. 또다른 여연 관계자는 “원래는 시도별로 후보들한테 여론조사 결과를 곧바로 전달했는데, 이번에는 전체적인 전략이 우선이라고 생각한 지도부의 판단이 있었던 것 같다”고 말했다.

지도부 부침으로 인해 여연 수장이 자주 교체되고 조직·업무 연속성이 약화된다는 것도 문제로 제기된다. 대선 이후 2년간 여의도연구원장은 세 번이나 바뀌었다. 김용태 전 의원, 박수영 의원, 김성원 의원을 거쳐 홍영림 원장이 현재 여연을 이끌고 있다. 박수영 의원이 원장일 당시 조직을 정비했지만 일부 조직은 원장이 바뀐 후 다시 통폐합되는 등 부침을 겪었다고 한다.

당 지도부가 바뀌면서 지도부에서 소위 ‘내리꽂는’ 연구인력들이 생기는 것도 문제란 지적이 나온다. 전문성 없는 연구인력들이 유입되면서 연구를 외주로 맡기는 악순환이 반복된다는 설명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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