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자수첩] 정부는 日에 ‘라인’ 뺏겨도 뒷짐만 지고 있을건가

이경탁 기자 2024. 4. 26. 17: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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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일 관계가 좋기 때문에 우리 정부가 외교적 대응에 나선다면 일본도 네이버에 대한 라인 지분 매각 압박 강도가 약해질 수밖에 없을 것입니다.”

최근 일본이 네이버에 라인야후 지분 정리를 요구하는 ‘라인야후 사태’를 두고 한 학자가 한 말이다. 일본 정부가 대놓고 한국 기업에 압박을 가하는 만큼 우리도 정부가 개입해서 적극적으로 목소리를 내야 한다는 것이다. 현재 라인야후 사태에 유관 부처인 과학기술정보통신부·외교부·산업부 등은 그저 현안을 공유하며 상황을 주시하겠다는 입장이다.

네이버는 지난 2011년 일본에 메신저 서비스 ‘라인’을 출시해 글로벌 플랫폼으로 성장시켰다. 라인은 일본을 포함해 대만, 태국, 인도네시아 등에서 이용자가 2억명에 달한다. 네이버는 라인의 서비스 경쟁력 강화를 위해 인터넷 포털 야후재팬을 보유한 일본 소프트뱅크와 5대5로 출자한 라인야후를 설립했다.

문제는 지난해 11월 라인 이용자와 거래처, 종업원 등 개인정보 최소 51만건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하면서 시작됐다. 일본 총무성은 이를 빌미로 라인야후에 사이버보안 체계 점검을 넘어 ‘네이버와 자본 관계 재검토’를 포함한 경영 체제 개선을 요구하고 있다. 사실상 네이버가 라인야후 지분을 소프트뱅크에 넘기고 경영에서 손을 떼라는 의미다.

일본 정부의 이 같은 움직임은 ‘유니콘 사냥꾼’으로 불리는 손정의(일본명 손 마사요시) 소프트뱅크 회장과 이해관계가 맞아떨어진 것으로 보인다. 평소 손 회장은 “일본은 바보같은 나라”라면서 정부 규제 등을 강하게 비판해 왔지만, 이번에는 일본 정부에 적극 협력하는 모습이다.

플랫폼은 인공지능(AI) 서비스 경쟁력과 직결돼 미래 국가의 운명을 좌우할 중요 산업이다. ‘아날로그 공화국’으로 불리는 일본 입장에선 네이버가 13년이나 공들여 키운 라인을 100% 일본산 서비스로 재탄생시켜 국가 디지털 경쟁력을 강화하겠다는 계산을 하고 있는 것으로 파악된다.

손 회장은 ‘비전 펀드’를 운용하면서 전 세계 스타트업 생태계에 막대한 영향력을 미치고 있다. 일본 정부의 묵인 하에 라인을 삼키면 그의 영향력은 더 커질 수밖에 없다.

지금 전 세계 주요 국가들은 플랫폼 경쟁력 강화를 위해 온갖 수를 동원하고 있다. 미국에서만 1억7000만명의 사용자를 둔 동영상 공유 플랫폼 틱톡은 최근 미국에서 퇴출 위기에 놓였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틱톡 강제 매각 법안에 서명하면서 틱톡 운영사인 바이트댄스가 1년 안에 미국 내 사업을 매각하지 않을 경우 서비스 사용이 중단된다.

앞서 미국은 우리 정부가 국내외 대형 플랫폼 기업을 겨냥한 플랫폼법을 추진할 당시에도 주한미국대사관, 주한상공회의소 등을 활용해 법안 논의를 중단 시킨 바 있다. 유럽연합(EU)은 미국 빅테크 기업을 견제하기 위해 올해 디지털시장법(DMA)·디지털서비스법(DSA) 등을 시행했다.

이처럼 전 세계 국가들이 자국 플랫폼 산업 경쟁력 강화를 위해 전략적으로 움직이고 있지만 하지만 우리 정부 정책에서는 어떠한 전략도 방향성도 읽을 수 없다.

공정거래위원회는 문재인 정부 당시인 2020년 온라인플랫폼법 입법을 추진했지만, 관련 주무 부처인 방통위, 과기정통부와 주도권 다툼 끝에 결론을 내지 못했다. 이후 윤석열 정부가 출범 당시 플랫폼 자율규제를 내세웠지만, 지난해 다시 공정위 주도로 사전규제 법안인 플랫폼법이 추진됐다.

국내 IT 기업들이 글로벌 빅테크에 맞서 플랫폼 경쟁력을 강화해야 하는 상황에서 정부의 모호한 정책은 혼란만 가중시키고 있다. 정부가 기업들을 도와주지 못할 바엔 최소한 발목이라도 잡지 말아야 한다. 윤석열 정부가 한일 관계 정상화를 외교적 성과로 내세우는 만큼, 이번 라인야후 사태는 우리 정부의 역량을 보여줄 또 다른 시험대라는 사실을 잊어서는 안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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