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찰은 초대받지 못했다'...'눈물바다'된 의령 '우순경 사건' 위령제

임승제 2024. 4. 26. 17: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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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건 42년 만에 위령탑 제막, 위령제 거행...56명 사망, 34명 부상
26일 의령 궁류면 '4·26 추모공원'서 열려...유족 등 1000여명 참석
오태완 군수 "공권력이 저지른 만행, 국가가 책임져야"

[아이뉴스24 임승제 기자] 공권력에 의해 56명의 고귀한 생명을 앗아간 의령 '우순경 사건'의 첫 위령제가 26일 오전 10시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 평촌리 '의령 4.26 추모공원'에서 열렸다. 우순경 총기난사 사건이 일어난 지 42년 만이다.

이날 위령제에는 오태완 의령군수를 비롯한 류영환(64)·전도연(여·62) 씨 등 유족대표 125명, 도·군의원, 기관단체장, 주민 1000여명이 참석한 가운데 엄숙히 거행됐다.

박완수 경상남도지사는 추모사를 보내 희생자와 유족들을 위로했지만, 당시 사건의 해당 기관인 경찰은 유족들의 요청에 의해 초대 받지 못했다.

26일 오전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 평촌리 '의령 4.26 추모공원'에서 의령 '우순경 사건' 희생자 위령탑 제막식이 거행되고 있다. [사진=임승제 기자]

위령탑 제막과 제례를 시작으로 거행된 추모 행사는 희생자들의 넋을 달래는 공연과 살풀이춤, 장사익씨의 추모 공연이 진행됐다.

이날 '우순경 사건'으로 수십년간 응어리진 한을 품고 살아온 유족들은 끔찍했던 그날을 회상하고 눈물 바다를 이루며 희생자들을 추모했다.

의령군은 '우순경 사건' 추모 공원을 '볕이 잘 들고, 사람이 많이 모이고, 넓직한 곳'에 조성해 달라는 유족들의 뜻에 따라 햇살이 잘 들고 양지 바른 이곳에 위령탑을 건립했다.

26일 오전 오태완 경상남도 의령군수가 추모사를 낭독하다가 울컥하며 눈시울을 붉히고 있다. [사진=임승제 기자]

오태완 의령군수는 추모사에서 "오랜 시간 말로 다 할 수 없는 비통함을 가슴에 감추고 고통을 견디어 온 유가족 여러분께 진심으로 위로의 말씀을 드린다"며 "특히 이 사건은 공권력의 상징인 경찰이 저지른 만행으로 반드시 정리하고 가야 한다"고 울컥하며 눈물을 훔쳤다.

그러면서 "억울하게 고통 받은 분들의 상처를 치유하고 명예를 회복해 줘야 한다"며 "이것은 공권력이 저지른 만행으로 국가가 책임져야 할 도리이자 의무"라고 덧붙였다.

유족 대표 류영환 씨는 "역대 어떤 군수도 이루지 못한 일을 오태완 군수께서 유족들의 한을 풀어 주셨다"며 "너무 고맙고 감사하다. 오늘 행사로 여태껏 응어리진 한을 다 풀 수는 없겠지만, 그래도 42년 만에 꿈에도 그리던 위령제를 열어 조금이라 쌓인 한을 풀 수 있겠다"고 말했다.

26일 오전 유족 대표 전도연 씨가 편지 '보고 싶은 우리 엄마에게'를 낭독하다 오열하고 있다. [사진=임승제 기자]

특히 민중 가수였던 고(故) 김광석 씨의 '잊어야 한다는 마음으로' 반주에 맞춰 42년 전 이날의 사건으로 어머님과 생이별을 했던 전도연 씨가 '보고 싶은 우리 엄마에게'라는 제목의 편지를 낭송할 때는 유족들은 물론 참석한 내빈도 모두 눈물 바다가 됐다.

그녀는 눈시울이 붉은 채 하늘을 한번 쳐다보곤 편지를 읽어 내려갔다. "엄마, 잘 지내시지요. 엄마의 작은 딸 도연이에요. 어느덧 엄마 없는 4월 봄날이 벌써 마흔 두 번째나 지나가네요. 조용한 시골 마을에서 마른 하늘에 날벼락 같은 일이었습니다. 하루 아침에 엄마 없는 세상에서 살아가야 한다는 것이 정말 믿기지 않았습니다"라고 운을 뗐다.

이어 "당시 어머니는 마흔 아홉 살이었고 자신은 스무 살이었다"며 "갓 고등학교 졸업하고 사회생활 시작할 때였어요"라고 당시를 회상했다.

26일 오전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 평촌리에 조성된 '의령 4.26 추모공원에서 의령 '우순경 사건' 희생자들의 위령제가 열리고 있다. [사진=임승제 기자]

전 씨는 "그 일이 있기 며칠 전 엄마는 쑥떡을 해서 회사에 면회를 오셨지요. 환하게 웃으며 작은 딸 먹이려고 새벽부터 떡을 해오신 엄마의 마지막 모습이 아직도 가슴에 새겨져 잊혀지질 않네요. 이렇게 될 줄 알았으면 우리 엄마 얼굴 더 많이 봐둘 걸 그랬어요"라고 말문을 이어갔다.

그녀는 또 "엄마? 우리 오남매는 다 결혼해서 아들 딸 낳고 잘 살고 있어요. 하지만 늘 엄마의 빈 자리가 그리워요. 엄마가 살아 계셨으면 손주들 재롱도 보시고 이 따뜻한 봄날 엄마랑 같이 꽃구경도 실컷 했을텐데요. 얼마나 좋아했을지 생각하면 지금도 한없이 가슴이 아려옵니다"라고 했다.

26일 오전 경남상도 의령군 궁류면 평촌리 '의령 4.26 추모공원'에서 열린 의령 '우순경 사건' 희생자들의 위령제에서 유족대표 류영환 씨가 오열하고 있다. [사진=임승제 기자]

전 씨는 편지를 읽어 내려가는 도중 결국 울컥하며 눈물을 쏟아내자 좌중은 숙연해지고 이를 지켜보던 유족들도 따라 눈물을 훔쳤다.

이내 어머니와 함께 찍은 예전 사진 한 장을 꺼내 보인 전 씨는 "그래도 오늘 만큼은 엄마를 보러 용기 내어 와 봤어요"라며 "엄마 이 사진 기억하세요. 얼마 전 앨범에서 엄마랑 둘이 찍은 사진을 보고 하염 없이 울었네요. 우리집 앞 벚꽃 나무 아래서 엄마랑 저랑 둘이 찍은 사진이에요. 사진 속 우리 엄마 여전히 예쁘고 그립고 보고 싶네요"라고 했다.

엄마가 무작정 그립다고 한 막내딸은 "다 괜찮아진 줄 알았는데 왜 이렇게 눈물이 나는지 모르겠어요. 세월이 많이 흘러 무뎌졌다고 생각했는데 그게 아니었던가 봐요. 엄마 오늘은 실컷 엄마 생각하고 울고 또 보고 싶어 할래요"라며 "엄마 42년 동안 벚꽃 피는 4월은 저에게 슬픈 봄이었는데 이제는 4월이 기다려질 것 같다"고 그리움을 표현했다.

전도연 씨는 "엄마 내년 4월에도 엄마 보러 올게요. 여기 따뜻한 곳에서 엄마 좋아 하시는 꽃 보며 편히 쉬고 계세요. 매일 보고 싶은 우리 엄마. 우리 또 만나요. 사랑합니다"라고 작별 인사를 건네며 마무리했다.

26일 오전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 평촌리 '의령 4.26 추모공원'에서 열린 의령 '우순경 사건' 유족들이 헌화하며 오열하고 있다. [사진=임승제 기자]

의령 '우순경 총기 난사' 사건은 지난 1982년 4월 26일 경남 의령경찰서 궁류지서에 근무하던 우범곤(당시 27세) 순경이 당시 동거녀 전모(여·당시 25세)씨와 사소한 말다툼으로 인해 욱한 우순경이 홧김에 저지른 비극적인 사건이다. 이때 우순경이 무기고에서 총과 수류탄을 탈취해와 마을 주민들을 향해 무차별 난사해 56명이 숨지고 34명이 부상을 입는 등 모두 90명의 사상자가 발생했다.

당시 궁류면 운계, 압곡, 토곡, 평촌리 4개 마을이 피해를 입었다. 이 사건은 단시간 최다 살인으로 기네스북에 오르는 사건으로 오래토록 국민들의 뇌리에 기억됐다. 그러나 이후 당시 전두환 정권의 보도 통제로 제대로 된 추모 행사는 여태껏 단 한 번도 열리지 못했다.

이에 의령군은 오태완 군수가 취임한 후 '우순경 총기난사 사건'의 중대성을 고려해 40년이 지난 2022년 추모공원 조성과 위령탑 건립 계획을 세워 추진했다.

26일 오전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 평촌리 '의령 4.26 추모공원'에서 열린 의령 '우순경 사건' 위령제 행사에 유족 등 1000여명이 참석해 희생자들을 추모하고 있다. [사진=임승제 기자]

오 군수는 문재인 정부 당시 김부겸 국무총리를 만나 추모공원 조성사업 지원을 요청했고, 행정안전부가 특별교부세로 지원했다.

의령군은 국비 7억원과 도·군비를 포함해 총 21억원의 사업비를 들여 위령탑과 추모공원 조성 사업을 추진해 42주기를 맞은 올해 위령탑은 완공했으며, 현재 추모 공원 공사는 막바지 작업이 한창이다.

'위령탑'은 희생자·유족·현세대를 위한 위령탑으로 지어졌다. 희생자를 '추모'하고 유가족을 '위로'하고 지금 우리 세대에게는 다시는 비극적인 죽음을 되풀이하지 않겠다는 '의지'의 세 가지 요소를 위령탑에 담았다. '위령탑' 비문에는 희생자 이름과 사건의 경위, 건립 취지문을 새겨 기록했다.

26일 오전 경상남도 의령군 궁류면 평촌리 '의령 4.26 추모공원'에서 열린 의령 '우순경 사건' 위령제 행사에서 유족 등 1000여명이 국민의례를 하고 있다. [사진=임승제 기자]
/의령=임승제 기자(isj2013@inews24.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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