기술에 대한 과장된 두려움[IT 칼럼]

2024. 4. 26. 16: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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쇼핑객이 아마존의 대시 카트에 상품을 넣고 있다. 아마존 웹사이트 캡처



글로벌 빅테크 아마존이 식료품 매장 확장을 18개월 만에 재개했다. 계산대 앞에서 줄 서서 기다리는 쇼핑몰의 풍경을 역사에서 ‘삭제’하겠다는 야망에 다시 불을 지핀 셈이다. 일단 떠들썩했다. ‘AI 자동화의 미래’로 상징되는 무인화 매장이 일상에 스며들 만큼 가까이 왔다는 걸 보여주는 빅테크의 이벤트여서다. 그런데 이전과 분위기는 사뭇 달랐다. 현란하게 홍보했던 인간 계산원 대체 기술 ‘저스트 워크아웃’이 새 매장엔 보이지 않아서다.

저스트 워크아웃은 아마존 혁신의 대표 상품 중 하나다. AI와 컴퓨터 비전 기술이 결합한 쇼핑 경험 기술의 정수다. 하지만 과장된 기술이라는 게 지난해 증명됐다. ‘디 인포메이션’이라는 기술 전문 미디어가 아마존 ‘저스트 워크아웃’의 기술적 허실을 폭로하면서다. 이 매체는 생성 AI와 컴퓨터 비전 기술이 결합하긴 했지만 중요한 구매 목록 판별은 인도의 수백 명 저가 노동자가 해온 사실을 밝혀냈다. 망신이었다. 올핸 ‘대시 카트’라는 특수 제작된 쇼핑 카트를 과장의 새로운 무기로 꺼내 들었다. 1980년대 처음 소개된 셀프 계산대를 이동식 카트에 옮겨붙인 기계다. 아마존 원이라는 손바닥 기반 개인식별 시스템도 거들고 있다. 그러면서 슬금슬금 저스트 워크아웃 기술을 뒷자리로 밀어내고 있다. 소규모 매장에 어울리는 기술이라는 명분이었다.

저스트 워크아웃에서 대시 카트로 넘어가는 과정은 AI와 노동의 관계가 역동적이고 복합적이라는 사실을 시사한다. 쇼핑 매장에서 인간의 노동을 걷어내 자동화를 실현하고 줄서기의 불편함을 해결하려 했던 과제는 더 많은 아웃소싱 노동과 기술 개발 비용을 불러왔다. 노동자의 위치와 공간만 영국에서 인도로 바뀌었을 뿐 달라진 건 크지 않았다. 18개월 만에 내린 결론은 40년 전부터 활용된 인기 없는 기술과 카트를 접목하고 AI 소프트웨어를 얹는 방식이었다. 아마존은 기술적 과장을 늘어놓았지만 반응은 시큰둥한 편이다. 대시 카트의 비용이 많이 들어 확대 운영하기엔 한계가 있다는 지적도 이어지고 있다.

자신들의 AI 기술을 과대 포장한 아마존은 AI의 노동 대체를 쉽사리 단정하는 또 다른 과장을 불러낸다. 둘은 한 몸처럼 뒤섞이며 기술결정론적 사회를 떠받치고 있다. 이들에게 우리의 판단을 위임하고 의존하는 건 경계해야 한다. 한 명의 노동은 여러 개의 작업과 기예의 묶음이다. 작업 하나를 AI로 바꿔놓는다고 해서 한 명의 노동 전체가 대체되기는 어렵다. 저스트 워크아웃처럼 또 다른 하위 노동을 덧붙여야만 작동하는 기형적인 AI 기술이 탄생하기도 한다. 적지 않은 AI가 이런 방식으로 운용된다. 물론 대체 가능한 작업이 AI 기술의 고도화에 따라 늘어날 것이라는 점은 부인하기 어렵다. 이는 범주와 범위의 문제이지 대체 여부에 관한 것은 아니다.

“미래의 일자리는 기술이 아니라 협약”이라고 했다. 갈등과 협상을 통해 결정되는 관계라는 의미에서다. 기술이 전적으로 일자리를 줄이지도 그렇다고 늘리지도 못한다. 두려워할 것은 AI라는 작업의 대체 기술 그 자체가 아니다. 더 많은 수익을 위해 기술을 설계하고 증폭해 인간의 일자리를 줄이고자 하는 인간의 탐욕이다. 두려움의 대상과 방향을 정조준할 시점이다.

이성규 미디어스피어 대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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