올라가는 온도, 치솟는 밥상 물가[정봉석의 기후환경 이야기](15)

2024. 4. 26. 16:0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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미국 워싱턴 타이달 베이슨 호숫가에 벚꽃이 만개했다. /언스플래시



미국의 수도 워싱턴 중심에 있는 내셔널몰(National Mall)은 “미국의 앞뜰”이라고 불리는 공원이다. 길이 3㎞, 폭 483m에 달하는 거대한 직사각형 잔디광장으로, 중앙에는 워싱턴의 가장 높은 건축물인 워싱턴기념탑(169.3m)이 우뚝 서 있다. 그 동쪽에는 연방 의사당이, 서쪽에는 링컨기념관이 자리 잡고 있고 북쪽으로는 백악관과도 연결된다. 미국 수도의 한복판이라는 상징성 때문에 이 광장에서는 역사적인 집회와 시위가 열리기도 한다. 1963년 ‘나에게는 꿈이 있습니다(I have a dream)’로 시작하는 마틴 루서 킹 목사의 그 유명한 연설이 있었던 곳이 바로 이 광장이다.

워싱턴기념탑 남쪽의 인공호수 타이달 베이슨(Tidal Basin)은 포토맥강과 연결돼 있는데, 이 주변에는 벚나무가 줄지어 있다. 매년 이맘때쯤 이 호수 주변으로 국가 주관 화려한 벚꽃 축제가 열린다. 1912년 일본이 기증한 벚나무를 옮겨 심은 날을 기념하는 축제다. 미국 동북부의 봄을 알리는 이 축제는 연날리기, 폭죽, 가장행렬 등 다채로운 행사로도 유명하다. 미국은 물론 전 세계에서 약 150만 명의 관광객이 모여 계절의 변화와 흩날리는 벚꽃잎을 즐긴다.

화려한 벚꽃 사이에 볼품이 없어 유명해진 벚꽃이 있다. 타이달 베이슨호 남쪽 호숫가에 있는 이 벚꽃은 나무속은 비어 있고, 줄기 몇 가지만 남은 못생긴 그루터기(Stump)지만, 지역주민들은 스텀피(Stumpy)라는 애칭도 붙여주었다. 소금기가 있는 호숫물이 뭍으로 밀고 들어와 많은 벚나무가 견디지 못하고 죽었지만, 스텀피는 달랐다. 그리고 다른 화려한 벚꽃 사이에서 자신의 소박한 분홍색 꽃을 매년 만들어냈다. 스텀피의 끈질긴 생명력에 지역 시민들은 열광했다. 특히 코로나19 팬데믹 시절, 고난을 이기고 꽃을 피울 수 있다는 희망을 전했다. 매년 벚꽃이 필 무렵 찾아가 아직 스텀피가 살아 있음을 확인하며 같이 기뻐했다.

하지만 이제 스텀피를 더 보기 어렵다. 지구온난화로 바닷물 수위가 상승하면서 포토맥강과 연결된 타이달 베이슨호의 수위도 같이 상승하기 때문이다. 호수의 방조제가 지어진 이후 한 세기 동안 호수 수위가 30㎝ 넘게 솟아올랐다. 호수 주변의 제퍼슨기념관 등 중요한 문화유산에도 침수 위협이 생겼다. 이에 국립공원관리청은 호숫가에 가까운 벚나무들을 올여름이 오기 전 베어 내고, 방조제 개축을 결정했다. 안타깝지만 어쩔 수 없는 결정이었다. 이 소식에 지역주민들은 스텀피의 마지막을 기억하기 위해 모여들었다. 각자의 방식으로 사진을 찍고, 손편지를 적으며 스텀피에게 이별을 고했다.

세계기상기구 지구 현황 보고서

스텀피처럼 지구온난화로 인한 자연의 변화는 이제 피할 수 없다. 그리고 변화의 정도가 빈번해지고, 강해진다. 세계기상기구(WMO)는 2022년 지구 대기 중의 주요 온실가스-이산화탄소, 메탄, 아산화질소-농도가 ‘기록적’인 수준을 보였다는 보고서를 내놨다. 이산화탄소 농도는 산업혁명 이전인 1750년쯤과 비교해 50% 높아졌다. 메탄과 아산화질소는 1750년 이전보다 각각 164%와 24% 증가했다. 구체적으로 이산화탄소 농도는 417.9ppm, 메탄 농도는 1923ppb, 아산화질소는 335.8ppb를 기록했다.

WMO는 이 같은 온실가스 증가로 인해 지난해 전 지구 평균 지표면 온도는 1850~1900년 평균보다 1.45도 높아, 기상 관측이 시작된 이후 가장 따뜻한 해로 기록됐다고 밝혔다. 산업화 시기 대비 지구 기온 상승폭 1.5도는 ‘기후변화 마지노선’으로 불린다. 2015년 제21차 유엔기후변화협약 당사국 총회(COP21) 파리 기후협정에 따라 ‘지구 평균온도 상승폭을 1.5도 이내로 제한하고자 노력한다’고 합의를 했다. 이제 기후 마지노선에 0.05도 차로 근접했다.

육지 못지않게 바다도 뜨거웠다. 해수면 온도와 해양열 역시 최고 수준을 기록했다. 전 지구 평균 해수면 온도는 지난해 4월부터 사상 최고치를 기록했으며, 해양 열용량도 최고 수준에 도달했다. 이렇게 바다가 달궈지면서 남극과 북극의 해빙은 무서운 속도로 녹았다. 특히 남극의 해빙 면적은 지난해 2월 인공위성 관측이 시작된 이후 최소치를 기록했다.

남극과 북극 해빙이 사라지면서 지구 전체의 평균 해수면 상승 속도는 1990년대에 비해 2배 이상 빨라진 것으로 나타났다. 1993~2002년의 지구 평균 해수면 상승 속도는 연평균 2.13㎜였고, 2003~2012년에는 연평균 3.33㎜, 2014~2023년에는 연평균 4.77㎜로 계속 증가 중이다.

2023년에는 산불 피해도 극심했다. 캐나다는 산불 피해 면적이 1490만㏊(헥타르)로, 평균 대비 무려 7배가 넘었다. 2023년 8월 하와이에서 발생한 산불은 100명 이상의 인명 피해와 56억달러에 달하는 경제적 손실이 발생한 사건으로, 지난 100년 동안 미국에서 가장 치명적인 산불로 기록됐다.

지구온난화에 따라붙는 가격표

지구온난화는 또한 주변에 ‘가격표’를 새로 붙인다. 지난해 9월 과학 저널 ‘네이처 커뮤니케이션(Nature Communications)’은 기후위기가 가져온 경제적 손실을 밝힌 ‘기후변화로 인한 극한기후의 전 세계 비용’이라는 논문을 발표했다. 논문의 저자는 2000년부터 2019년까지 폭염과 홍수 등 기후위기로 인해 연평균 1430억달러(약 200조원)의 피해 비용이 발생한 것으로 계산했다. 지구온난화에 따른 기상이변의 영향을 받은 이들이 20년 동안 12억 명에 달했으며, 인명 피해에 따른 비용이 가장 큰 비중(63%)을 차지했다고 밝혔다. 극한기후 중 특히 폭풍(64%)으로 인한 피해가 가장 많은 기후 비용을 발생시켰으며, 폭염과 홍수·가뭄 피해에 따른 비용도 각각 16%, 10%였다고 덧붙였다.

지구온난화는 가깝게는 국내 장바구니 시장에도 영향을 미친다. 사과의 생산량이 30% 이상 감소하며, 사과를 비롯한 신선식품 가격의 급등을 이끌었다. 사과 가격은 작년 동월 대비, 1월 56.8%, 2월 71% 올랐다. 기온 상승으로 국내에서 사과 재배가 가능한 면적이 감소했기 때문이다. 증가하는 온실가스로 인해 국내 사과 재배는 장기적으로 계속 감소할 것으로 보인다.

커피 한 잔과 함께하는 초콜릿 한 조각의 여유도 부담스럽다. 최근 로부스타 커피의 선물가격은 1년 전보다 60% 넘게 오르며 역대 최고 기록을 썼다. 가격 폭등의 주원인은 주요 공급처인 베트남과 인도네시아에서 생산량 감소 때문이다. 초콜릿의 원료인 코코아 선물가격도 1년 만에 3배가 급등해 사상 최고를 기록했다. 세계 코코아 생산량의 80%를 차지하는 서아프리카를 덮친 가뭄으로 생산이 급감했기 때문이다.

기후위기는 먼 나라부터 가까운 장바구니까지 영향을 미친다. 그리고 곳곳마다 새로운 가격표를 붙인다. 안타깝게도 기후위기에 맞서 변할지, 안 변할지는 이제 우리에게 남은 선택사항이 아니다. 이미 기후 마지노선에 근접했기 때문이다. 남은 것은 우리가 원하는 방식으로 변화를 이끌지, 아니면 기후위기의 피해와 희생을 (스텀피처럼) 그대로 맞으며 변화에 끌려갈지만 남았다. 어쩌면 우리에게 남은 마지막 선택일지 모른다.

정봉석 JBS 수환경 R&C 대표·부산대학교 환경공학과 겸임교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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