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널뛰기 의대증원 입시판도 뒤흔든다”…의정갈등 해결만큼 중요한 또 하나 [데스크 칼럼]

이호승 기자(jbravo@mk.co.kr) 2024. 4. 26. 1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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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화일로 의정갈등 사태
전국민 피해 우려돼
혼란 빚는 정책 되풀이
의견수렴보다 대통령 의중 우선 탓
방향 옳아도 결과는 별개

복잡미묘한 문제 단칼에 못풀어
속도보다 숙고와 숙의 중요
정부 공무원이 현실성 없는 탁상정책을 내놓으며 사회가 혼란에 빠지고 이해당사자들이 반발하는 모습을 챗GPT가 이미지화한 그림.
의정갈등이 평행선을 벗어나 발산선을 달리고 있다. 답답한 교착을 넘어서 상황은 악화일로다.

정부가 얼마전 대학별 의대 증원 규모 일부 자율화 카드를 내놓고 한발 다가섰지만, 의사 단체는 증원 백지화 관철을 고집하며 더 멀어졌다. 주요 대학병원 교수들이 주1회 휴진에 돌입하기로 했다. 25일부터 교수 집단 사직도 본격화하고 있다. 어느 한쪽이 백기투항하기 전까진 해결 기미가 보이질 않으니 이러다 의료 체계가 붕괴하는 것 아니냔 걱정이 나온다.

당연한 이야기겠지만 의료 공백 장기화의 가장 큰 희생자는 환자와 가족이다. 정부의 밀어붙이기와 의사 집단의 이기심이 충돌하는 사이에서 가장 큰 고통을 겪는 이들은 일반 국민이다. 2월부터 운영되고 있는 의사 집단행동 피해신고·지원센터에는 약 두 달간 678건 피해사례가 신고 접수됐다. 아직까지 의료공백으로 인한 피해로 인정받은 사례는 없다지만 의료대란이 계속된다면 피해자들이 속출할 염려가 크다.

당장 생명과 건강을 위협받는 것은 아니지만, 수험생과 학부모도 의정갈등의 피해자다. ‘0→2000명→1000~2000명’ 으로 불과 두 달 사이에 의대 정원 증원 규모가 널을 뛰고 있다. 대학 상당수가 내부 갈등으로 다음달 중순이나 돼야 내년도 모집 인원을 확정할 수 있을 것 같다. 이래저래 수험생들의 혼란과 불안이 클 수밖에 없다. 의대 입시는 최상위권 학생들만의 리그에서 그치지 않는다. 치대·약대·한의대는 물론 이공계 커트라인, ‘N수생’ 규모 등에 연쇄적으로 영향을 주기 때문에 전체 입시 판도를 뒤흔들 수 있다. 입시업체 종로학원 분석에 따르면 의대 정원이 2000명이 늘면 수능 국어, 수학, 탐구 2과목 백분위 합산 최저 합격선이 현재보다 3.9점 하락하지만, 1500명 증원되면 2.91점, 1000명 증가시엔 2.4점 떨어질 것으로 예측된다.

현 정부에선 설익은 정책으로 혼란이 빚어지는 일이 되풀이되고 있다. 지난해에는 수능이 5개월도 채 남지 않은 시점에 킬러문항 배제를 내세우면서 시험 출제 기조를 바꿨다. 교육현장이 일순 패닉에 빠졌다. 그 전해에는 만5세 초등학교 입학 학제개편 논란이 터졌다. 그 책임으로 교육부 장관이 사퇴했다.

일련의 사태에는 공통점이 있다. 충분한 준비 없이 급발진하다 사고가 났단 점이다. 민감하고 복잡다단한 문제들에 난자수참(亂者須斬)식 해법을 들이댔다. 다양한 이해관계자들의 목소리를 듣고 변수와 부작용까지 예상해 정책을 설계하는 노력이 부족했다. 의견수렴과 협의보다 통치권자의 의중 파악과 지시이행이 더 중요했다

‘방향은 옳을’ 것이다. 학생들 골탕 먹이고 사교육 배만 불려주는 킬러문항을 배제하고, 초등학교 입학 연령을 낮춰 교육결손을 막는다는데 국민 누가 반대할까. 부족한 의사 수를 늘리고 지방의료를 살리겠다는데, 싫어할 국민이 있을까.

하지만 의대 정원 확대는 그렇게 간단한 일이 아님을 모두가 안다. 역대 정권마다 증원을 추진했지만 매번 의사들의 거센 반대에 부딪혔다. 지난 27년간 단 한 명도 늘리지 못했다. 갑자기 2000명 증원 카드부터 들이밀었을 때 어떤 사태가 벌어질지는 충분히 예상할 수 있었다. 필수의료 지원이나 과잉진료 방지, 건보재정 개혁 등 정작 중요한 다른 의료개혁 이슈들이 2000명 숫자에 묻혀버리고 강행과 반대의 극한 대치만 낳았다. 의료개혁과제를 논의하는 의료개혁특별위원회가 뒤늦게 출범했는데, 순서가 한참 뒤바뀌었다. 선논의 후발표의 프로세스가 뒤집힌 것이다.

의료대란이 의사 단체의 양보와 정부의 협상력 발휘로 원만히 해결돼야 함은 두말할 필요 없다. 여기에 더해 정부는 이번 사태에서 제발 교훈을 얻었으면 한다. 방향이 옳다고 결과물까지 옳은건 아니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좀더 숙고하고 숙의하는 과정을 충실히 밟은 뒤 정책을 내놓길 바란다.

이호승 콘텐츠기획부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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