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르포] 쓰레기 태운 열로 도시 난방 해결...반타시의 순환경제 실험

헬싱키(핀란드)=홍아름 기자 2024. 4. 26. 15:1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순환경제’로 기후위기 넘는 핀란드
2016년 세계 최초 순환경제 로드맵 발표
재료 재사용하고 폐기물 없애는 친환경 경제 모델
쓰레기로 난방 해결하고, 미생물로 고기 맛 나는 단백질 생산
반타 에너지는 핀란드 반타시 지역의 150만 가구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태워 나오는 열을 도시 전체에 공급한다. 모은 쓰레기는 인형뽑기기계의 팔을 닮은 장치로 고루 섞어준다. 에너지를 안정적으로 생산하기 위해서다./헬싱키=홍아름 기자

지난 23일 핀란드 헬싱키의 동북쪽의 반타(Vantaa)시는 하얀 눈이 도시 전체를 덮고 있었다. 한국을 떠날 때만 해도 짧은 봄을 건너 뛰고 여름이 성큼 다가오는 듯 했지만, 핀란드에 도착하자 다시 한 겨울의 추위가 기다리고 있었다. 반타시의 에너지를 담당하는 반타 에너지 건물에 들어서자 주하 루오말라 커뮤니케이션 이사가 기자를 맞았다. 그는 “4월에도 눈이 내리는 이런 지역에서는 많은 난방 시설이 필요하다”며 “탄소 배출을 줄이면서 동시에 겨울이면 영하 30도까지 기온이 떨어지는 상황에서 난방을 끊기지 않고 제공할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말했다.

반타 에너지가 찾은 해법은 쓰레기였다. 반타 에너지는 반타시 지역의 150만 가구에서 나오는 쓰레기를 태워 나오는 열로 물을 데운 뒤, 도시 전체를 순환하는 600㎞ 길이의 지하 파이프라인에 흘려보낸다. 루오말라 이사는 “주변 지역 건물의 90%가 파이프라인에 연결돼있다”며 “지역에 공급하는 난방 에너지의 57%는 재활용이 불가능한 폐기물에서 나온다”고 설명했다.

반타 에너지는 올해 여름에 새로운 도전에 나선다. 폐기물을 태워 나온 열을 저장하는 세계 최대의 에너지 저장 장치 ‘바란토(Varanto)’ 건설에 착수하는 것이다. 폭 20m, 길이 300m, 높이 40m 규모의 동굴 3곳에 섭씨 140도까지 가열된 물을 저장하는 방식이다. 2028년 바란토가 완공되면 총 90GWh(기가와트시)에 달하는 에너지를 저장할 수 있다. 핀란드의 중형 도시나 마을에 1년 동안 난방을 공급할 수 있는 양으로, 전기차 배터리 130만개에 해당한다.

반타 에너지가 처음부터 쓰레기를 이용해 지역 난방을 공급한 건 아니었다. 다른 나라처럼 석탄이나 천연가스를 사용했지만, 핀란드 정부가 2016년 세계 최초로 순환경제 로드맵을 발표하면서 반타 에너지도 쓰레기를 이용한 친환경 난방 에너지를 도입하게 됐다.

순환경제는 재료를 한 번 사용하고 폐기하는 것이 아닌, 재료를 재사용하고 폐기물을 없애는 친환경 경제 모델을 말한다. 핀란드는 2035년까지 공공, 민간 분야에 순환 경제 방식을 도입해 새로운 경제 구조를 꾸릴 계획이다. 조선비즈는 핀란드 외무부와 함께 지난 22일부터 25일까지 핀란드 곳곳을 취재하며 순환경제의 성공 동력을 살폈다.

순환경제 로드맵이 발표되고 8년이 지나면서 많은 기업들이 호응하고 있는데, 반타 에너지도 대표적인 성공 사례다. 반타 에너지는 2030년까지 탄소 네거티브(Carbon Negative)를 달성하기 위해 순환 경제 솔루션을 구축하고 있다. 탄소 네거티브는 이산화탄소의 배출량보다 흡수량이 많은 상태로 탄소 중립에서 한 단계 더 나아간 개념이다. 아직 남아 있는 석탄과 천연가스는 2026년까지 단계적으로 폐지할 계획이다.

핀란드 반타시의 에너지 공급을 담당하는 반타 에너지는 쓰레기를 태운 뒤 나오는 열을 이용해 지역에 난방을 공급하고 있다. 탄소 배출을 줄이면서 난방 문제까지 해결했다./헬싱키=홍아름 기자

유럽 최초로 전기와 공기를 이용해 단백질을 생산하는 기업 ‘솔라 푸드’도 핀란드의 순환경제를 대표하는 기업이다. 솔라 푸드는 물을 전기 분해해서 얻은 수소와 공기에서 포집한 이산화탄소를 사용해 단백질 비중이 높은 미생물을 키운다. 이산화탄소는 솔라 푸드 본사의 중앙 에어컨 시스템에서 포집한다.

이렇게 키운 미생물을 건조시켜서 만든 제품 ‘솔린’은 단백질이 70%에 식이섬유와 지방, 미네랄이 들어있다. 솔라 푸드의 분석에 따르면 단백질 구성이 건조 쇠고기와 비슷하다. 솔라 푸드는 “맛이 나쁘지 않으면서도 안전하고, 잘 자라는 박테리아를 선별한 결과”라고 설명했다.

솔라 푸드의 방식은 기존의 단백질 생산 과정과 달리 물을 거의 사용하지 않고, 별도의 토지도 필요하지 않다는 장점이 있다. 기기에 전력을 공급할 태양광 패널만 있으면 어디든지 설치해 미생물을 키워 단백질을 얻을 수 있다. 동물이나 광합성 식물의 단백질 생산 효율과 비교하면 20배에서 최대 100배까지 높다. 솔라 푸드의 제품은 지난해 싱가포르 정부에서 승인을 받았고, 내년 말에는 유럽 승인을 받을 예정이다. 현재 싱가포르와 일본 식품 기업과도 협업하고 있다.

파시 바이니카 솔라 푸드 최고경영자(CEO)는 “에너지 공급이 원활하지 않은 사막 지역이나 농업이 어려운 곳, 전쟁 또는 재난 지역에도 도입할 수 있다”며 “태양광 패널이 달린 컨테이너 형태의 기기를 설치하면 하루에 300명분의 단백질을 생산할 수 있다”고 설명했다. 솔라 푸드는 ‘미 항공우주국(NASA) 딥 스페이스 푸드 챌린지’에도 참여해 유인 우주선에 설치할 수 있는 기기도 개발하고 있다. 우주선에서는 물을 분해해 산소와 수소를 만드는 데 산소는 승무원에게 공급되지만 수소는 그대로 버려진다. 솔라 푸드는 이 수소를 모아 미생물을 키우는 데 사용하자는 아이디어를 냈다. 작은 가정용 냉장고 크기의 기기만 있으면 가능해 실현 가능성이 높다는 평가다.

바이니카 CEO는 “전 세계 온실가스 배출량의 3분의 1이 음식에서 나온다”며 “기후 목표를 달성하기 위해서는 식량 시스템의 배출량을 많이 줄여야 한다”고 밝혔다. 이어 “10년 안에 생산 비용을 낮춰 완두콩이나 콩보다 경쟁력을 갖추는게 목표“라며 “유럽연합(EU)으로부터 지원을 받아 우유 단백질을 만드는 유전자 변형 미생물을 개발할 것”이라고도 덧붙였다.

솔라 푸드의 단백질 제품 '솔린'으로 만든 초콜릿 빵. 우유와 계란이 들어가지 않았지만 시중의 빵과 맛이 비슷했다./홍아름 기자

핀란드 최초의 다중 기업 네트워크 ‘팔로푸로 농생태학 공생’은 바이오 에너지와 재활용한 영양소를 사용해 지역 유기농 식품을 생산한다. 먼저 곡물을 수확한 뒤 제분하는 과정에서 나오는 잔여 곡물이나 폐기물을 암탉의 사료나 바이오가스 에너지원으로 사용한다. 곡물 폐기물과 가축의 분뇨를 섞으면 일종의 분해 과정을 거쳐 메탄, 이산화탄소, 수소와 같은 바이오 가스가 나오는데, 전력을 생산할 때 사용할 수 있다.

팔로푸로 마을에서 농장을 운영하는 마르쿠스 에롤라 매니저는 “이 과정을 바탕으로 에너지와 사료, 비료 구매량을 최소화하면서도 잉여 바이오에너지를 판매해 추가 수익을 올릴 수 있다”며 “온실가스 배출량을 줄이면서 에너지 자립도를 높일 수 있는 방법”이라고 설명했다.

- Copyright ⓒ 조선비즈 & Chosun.com -

Copyright © 조선비즈.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