단골도 2대째 칼국수, 자신감의 열무김치까지 ‘쓱’…가격도 착하네!

이승욱 기자 2024. 4. 26. 15: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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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인천 칼국숫집 부영분식
인천 중구 신포국제시장 골목에 있는 부영분식의 칼국수. 이승욱기자
관광객을 상대하는 북적이는 ‘TV 맛집’은 사절합니다. 지역의 특색있는 숨은 맛집, 누가 가장 잘 알까요? 한겨레 전국부 기자들이 미식가로 이름난 지역 공무원들에게 물었습니다. 대답을 망설이는 기색이 역력합니다. 한두 군데 마지못해 추천하면서 꼭 한마디를 덧붙이네요. “여기, 소문나면 곤란한데.”

인천시립박물관 조율재(30) 학예연구원은 스마트폰 지도 애플리케이션에 300곳이 넘는 맛집을 저장하고 다니는 자칭타칭 미식가다. 학교 후배이기도 해서 분기마다 모임을 갖는데, 장소를 정하는 건 항상 그의 몫이다.

“많이 알려지지 않았는데, 정말 맛있어서 남들한테 알려주고 싶지 않은, 그런 집 있어?”

“왜 없겠어요? 칼국수 맛집이 하나 있는데, 가게가 협소해서 알려주기가 좀 그래요. 손님 많아지면 안 되거든요.”

“오오, 딱 좋아, 딱 좋아.” 그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약속을 잡았다. 취재 대상을 정하고 나니 음식점과의 인연이 궁금했다. “어머니 때문이죠. 중학교 다닐 때부터 여기 칼국수를 즐겨 드셨대요. 저도 어머니랑 어렸을 때부터 자주 갔어요. 2대째 단골집인 거죠.”

부영분식은 신포국제시장 골목(인천 중구 우현로49번길 11-12)에 있다. 낡은 간판에 칼국수, 수제비, 콩국수 등의 메뉴를 써 붙인 식당 외관을 보니 ‘잘 찾아 왔다’는 생각이 들었다. 2층이지만 원룸 정도 크기의 공간이라 1층과 2층에 4인용 테이블이 각각 3개, 4개밖에 없었다. “칼제비 세그릇에 칼국수 한그릇이요”.

가격은 모두 6000원이었다. 싼 가격에 감탄하고 있을 때쯤 밑반찬으로 사장님이 직접 담근 열무김치가 나왔다. “밑반찬이 하나뿐이야. 웬만한 자신감이 아니면 이렇게 못 내와요. 정말로 맛으로 승부하는 가게인 거죠.”

동행한 조씨의 동료 학예사인 김아무개(31)씨가 한마디 했다. “그렇다니까요. 여기 진짜 ‘찐’ 맛집입니다.”

주문하고 10분 정도 지나자 음식들이 나왔다. 멸치육수가 베이스인 국물은 깔끔하고 시원했다. 개인적으로 면의 밀가루 맛이 느껴지는 것을 싫어하는데, 그런 맛이 전혀 나지 않았다. 국물을 몇 숟가락을 먹고, 다진 양념을 추가했더니 깔끔함에 얼큰함이 더해졌다. 그렇다고 너무 자극적이지는 않았다. 다진 양념을 만들 때 엄선한 고춧가루를 썼다는 걸 맛과 향에서 느낄 수 있었다. 칼국수 면은 시장에서 파는 기계 국수를 사용한다고 했다.

이날 부영분식을 찾은 부아무개(60)씨는 “옛날에 박문국민학교가 답동성당 근처에 있을 때부터 들렀다”며 “오늘 먹은 수제비가 6000원인데 그 착한 가격으로 바지락 맛까지 은은하게 난다는 게 부영분식의 장점”이라고 말했다.

부영분식 외관. 이승욱기자

부영분식이 있는 신포국제시장은 닭강정, 공갈빵, 쫄면 등 역사와 전통을 자랑하는 음식들이 많은 곳이다. 하지만 신포국제시장이 칼국수로 유명했다는 사실은 많이 잊혔다. 학생들을 상대로 저렴한 가격에 칼국수를 팔기 시작한 것이 신포시장 칼국수의 역사다. 그때 칼국수를 즐겨 먹었던 학생들은 지금 결혼을 하고 아이를 낳고 중년의 나이에 접어들었지만, 여전히 이곳을 찾는다. 어머니인 차아무개(89)씨에 이어 부영분식을 운영하는 딸은 “어머니 말로는 학생들이 정말 많이 왔다고 한다. 지금은 그 학생들이 자식과 함께 온다. 2대째 이어지는 집이라 2대째 이어지는 손님이 많다”고 했다. 부영분식을 소개해준 조 학예사가 “제가 바로 그 2대째 단골입니다”라고 웃었다.

부영분식 메뉴판. 이승욱기자

긴 역사를 자랑하던 칼국숫집이 많았던 신포국제시장이지만 지금은 대부분 폐업해 영업 중인 가게가 얼마 되지 않는다. 식사를 마친 다음 날 신포동의 칼국수 역사를 정리한 지역신문의 한 칼럼을 찾았다.

“과거 1970년대를 전후에 중구 신포동 55 일대에 ‘칼국수 골목’이 형성됐다. 처음엔 한 가게가 칼국수를 싸게 내놓아 주머니 사정이 가벼운 학생들에게 인기를 끌었다. 맛도 그렇지만, 싼값에 뜨끈하게 배를 채우기엔 그만이었다. 이 집이 호황을 이루자, 잇따라 칼국숫집들이 문을 열었다. 9곳이 경쟁할 만큼 잘됐다. 그러다가 2010년대에 이르러 주위 환경에 밀려 하나둘씩 폐업을 하면서 명맥을 잃어갔다.”

사장님이 직접 담근 열무김치. 이승욱기자

“자주 오세요”라던 사장님 말이 떠올라 음식점을 추천해준 조 학예사에게 카톡을 보냈다 “다음 주에 금요일에 부영분식에서 점심 어때?”

얼마 안 가 답 문자가 왔다. “기사 아직 안 썼죠? 근데 꼭 거기 나가야 해요? 너무 소문나면 우리가 못 가서 곤란하다니까요.”

글·사진 이승욱 기자 seugwookl@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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