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재명 대표 힘자랑 말고, 윤 대통령은 고집 꺾어야 [쓴소리 곧은 소리]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2024. 4. 26. 15:02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영수회담에서 두 사람이 갖출 태도…‘의·정 갈등’ 풀 합의문 도출 필요
여소야대 때 김대중-이회창 두 번 만나…박근혜 땐 한 번도 없어

(시사저널=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세상의 8할은 협상이다!" 협상학의 대가로 미국 역대 대통령들에게 자문해온 허브 코헨(Herb Cohen)의 말을 빌리자면, 정치의 8할도 협상이다. 전쟁 같은 22대 총선이 끝나고 여야 협상의 백미(白眉)인 영수회담이 열리게 되자 국민적 관심이 뜨겁다. 영수회담의 결말에 따라 정국은 다시 격랑 속으로 빠져들거나 협치의 물꼬가 트일 수도 있다. 선거와 회담은 크게 다르다. 선거의 목표는 승리지만, 회담의 목표는 윈-윈 협상이기 때문이다. 

이번 영수회담이 성공하려면 무엇보다 상대방에 대한 인식 전환이 필요하다. 윤 대통령이 지난 2년 동안 이재명 대표와의 만남을 거부한 이유는 무엇이겠는가? 대장동 게이트를 비롯한 각종 비리 의혹 사건의 몸통으로 언제 감옥에 갈지 모르는 범죄 피의자이자 국정의 방해꾼 정도가 아니었을까? 마찬가지로 이재명 대표는 윤 대통령을 강골 검사 출신으로 운 좋게 권력을 거머쥐었고, 잘만 하면 탄핵까지 몰고 갈 수 있는 벼랑 끝의 권력자 정도로 생각하지 않을까? 

이런 편견을 버려야 냉철한 자세로 협상을 유리하게 이끌어갈 수 있다. 서로가 5000만 나라 살림을 책임진 국정의 최고책임자와 190석이 넘는 범야권을 주도하는 제1야당 대표라고 인식할 때 진정한 대화가 오갈 수 있다. "협상에서 사용되는 언어는 결코 상대를 깔보거나 기분을 상하게 해서는 안 된다. 이것 아니면 저것이라는 식으로 무뚝뚝한 최후통첩은 협상을 실패하게 만드는 말들이다." 코헨의 이 말처럼 상대를 적이 아니라 파트너로 대해야 승리할 수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월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홍철호 신임 대통령실 정무수석을 직접 소개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밤샌 뒤엔 원수 없다"…박정희 때도 5차례

과거 우리 역대 대통령들의 영수회담 사례를 보면, "밤샌 뒤엔 원수가 없다"는 교훈을 실감하게 된다. 서슬 퍼런 박정희 전 대통령도 재임 중에 박순천, 유진산, 김영삼, 이철승 같은 야권 지도자와 5차례나 영수회담을 갖고 국정의 협조를 구하기도 했다. 정치적으로 격돌했지만 경제적으로는 협력과 경쟁 관계를 병행하면서 한강의 기적을 함께 만들어갔다. 

헌정 이래 지금까지 대통령과 제1야당 총재 간에 총 25차례의 영수회담이 열렸는데, 이 가운데 8번의 정상회담이 김대중 정부에서 이루어졌다. 김대중 전 대통령은 재임 5년 동안 조순·이회창 총재와 무려 8번의 회담을 갖고 국정의 협조를 구했다. 특히 2000년 4·13 총선에서 패배하자 10일 만에 이회창 총재와 영수회담을 갖고 11개항에 걸쳐 합의했다. 

"김대중 대통령과 이회창 총재는 영수회담을 갖고…국민 대통합과 여야 협력을 통한 상생의 정치를 실천하는 것이 무엇보다 중요하다는 데 인식을 같이하고, 다음과 같이 협력하기로 하였다"는 공동선언문에는 두 사람의 신뢰가 담겨있다. 두 사람은 두 달 후인 6월에 다시 한번 영수회담을 갖고 당시 난제였던 의료대란(의약분업) 문제를 함께 풀어나갔다. 반면에 재임 중 한 차례도 영수회담을 갖지 못했던 박근혜 전 대통령은 2016년 16대 총선에서 여당인 새누리당이 옥새 파동 등으로 참패했는데도 모호한 사과문을 내놓고 기존의 국정 운영 기조를 그대로 밀고 나갔다가 탄핵 국면에 처하게 되었다. 

"힘을 과시하려고 할수록 엉뚱한 역효과를 내게 된다!" 코헨의 협상 어드바이스지만, 영수회담을 앞둔 윤 대통령과 이재명 대표가 염두에 두어야 할 말 같다.

민주당은 용산 대통령실과 영수회담 협상 도중에도 이른바 '운동권 셀프 특혜법'으로 불리는 민주유공자법을 일방 처리하는 등 거대 야당의 폭주 행태를 보였다. 이번 영수회담에서도 이 대표는 내심 윤 대통령을 거세게 밀어붙여 국정의 주도권을 완전히 장악하려 할 가능성이 크다. 조금 우월적 위치에 있다고 점령군 행세를 하거나 단칼에 다 해치우려고 하지 말라는 얘기다. 이 대표는 마음만 먹으면 190석이 넘는 범야권 세력으로 윤 대통령의 행정권력과 입법권력을 좌지우지할 수도 있다. 

실제로 민주당은 이미 이번 영수회담의 의제 1호로 민생지원금 1인당 25만원 공약 이행을 공개 천명했고, 4월24일 최고위원회의에서 '마키아벨리'까지 언급하며 "21대 국회가 끝나기 전에 채 상병 특검법을 반드시 통과시키라는 것이 국민의 뜻"이라고 여권을 압박했다. 아마 이 대표가 이번 영수회담에서 가장 조심해야 할 것은 거대 야당의 힘자랑하는 듯한 모습일 것이다. 

가장 민감한 것이 김건희 여사의 특검 문제다. 어찌 보면 윤 대통령의 아킬레스건이라고 할 수 있는 김 여사 문제를 정면으로 과잉 제기할 경우 역효과가 나거나 자칫 영수회담이 파국으로 치달을 수 있다. 이번 영수회담에서 이재명 대표가 어느 정도 수위 조절과 절제력을 발휘할지가 중요한 관전 포인트가 될 것이다.  

영수회담에서 또 하나 유심히 볼 것은 윤 대통령의 태도 변화 여부다. 윤 대통령이 회담에서 이른바 고집과 불통의 이미지를 탈피하고 수용과 소통의 이미지를 확실하게 보여줄 수 있느냐는 것이다. 사실 윤 대통령은 지난 2년 동안 이태원 참사 문제와 김 여사의 디올백 논란 등에 대해 대국민 담화 등 국민 앞에 나설 때 속 시원하게 사과하고 이해를 구하기보다는 두루뭉술하게 넘어가거나 버티는 듯한 모습을 보이기도 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4월22일 국회에서 열린 최고위원회의에서 발언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 선호·여야 공감대 있는 이슈 우선시해야

영수회담에서 윤 대통령은 좀 더 따듯하고 낮은 자세로 제1야당 대표로서 예우해줄 필요가 있다. 윤 대통령이 내키지 않더라도 국민을 위해 필요하다고 판단되면, 고집을 꺾고 과감히 물러서는 모습도 보여줄 필요가 있다. 결국 회담의 성패는 이 대표가 과도하게 선을 넘지 않는 자기 통제력의 모습을 보여주고, 윤 대통령도 양보할 건 양보하는 통 큰 리더십을 보여주는 것이 국민을 위해 윈-윈하는 길이라고 본다.

첫술에 배부를 수는 없다. 과욕을 부리지 말라는 얘기다. 우선 정치 이슈는 여야 간에 공감대를 쉽게 이룰 수 있는 것이면 좋겠다. 예컨대, 후임 총리나 좋은 장관 후보를 추천받아도 좋을 성싶다. 사실 독일, 프랑스, 네덜란드, 덴마크 등 유럽 국가에서는 영수회담에서 연립정부 구성 문제를 곧잘 논의하지만, 우리나라는 좀 더 시간을 필요로 한다. 이번 영수회담은 민생 이슈에 주력하는 것이 여야 모두에 도움이 될 것이다. 당장 의료 갈등 문제, 얼마나 시급한가? 민생 중 민생이다. 만약 윤 대통령과 이 대표가 영수회담에서 의대 증원 문제에 대한 해법을 찾는다면 국민들부터 뜨거운 박수를 받을 것이다. 김대중 정부 시절 꽉 막혔던 의약분업 사태도 김대중-이회창 영수회담에서 실마리가 풀렸다는 걸 기억하자. 아울러 영수회담이 다시 열릴 수 있도록 실무자의 상시 대화 창구를 개설하기 바란다. 

오랜 가뭄 속의 단비처럼 이루어진 이번 영수회담을 계기로 여야 간에 대화와 협치의 문이 열리기를 기대한다. 어느 한쪽이 패배하거나 서로 불만을 토로하는 식의 회담이라면, 그 회담이 다시 열리기는 쉽지 않을 것이다. 영수회담 후에 나올 밝은 내용의 공동선언문을 기대해 본다.

※ 외부 필진의 칼럼은 본지의 편집 방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최진 대통령리더십연구원장

Copyright © 시사저널.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