파급효과 ‘300조’ vs ‘-15조’…산업은행 부산 이전의 딜레마

오종탁 기자 2024. 4. 26. 14: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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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부산 이전 둘러싼 갈등 국면 총선 후 더욱 심해져
문제 해결 구심점 없어 표류하는 산은…“윤석열-이재명 담판만이 답”

(시사저널=오종탁 기자)

"'부산업은행'(부산+산업은행)만 안 된다면 안 다닐 이유가 없다." 

최근 들어 기업 정보포털 잡플래닛의 KDB산업은행 직원 리뷰 코너에는 본점 부산 이전과 관련한 내용이 빠지지 않고 있다. 

해당 플랫폼에서 산업은행은 직원들로부터 '복지 및 급여' '업무와 삶의 균형' '사내 문화' 등에서 두루 준수한 평가를 받는 회사다. 전체 평점이 4점(5점 만점)으로 삼성전자(3.8점), 현대자동차(3.9점) 등 국내를 대표하는 대기업보다 높다. 그러나 윤석열 정부 출범 이후 국책은행인 산은의 부산 이전이 추진되면서 '더는 좋은 직장이 아닐 수 있다'고 걱정하는 직원이 많아지고 있다. 

4월24일 서울 여의도에 위치한 KDB산업은행 본점 ⓒ시사저널 이종현

더 복잡해진 정치 셈법에 '눈치 싸움'만 

산은의 한 직원은 리뷰를 남겨 "부산 이전 이슈로 조직 분위기와 문화가 말이 아니다"라고 내부 상황을 전했다. 다른 직원은 "경영진이 회사를 (부산으로 이전하지 않도록) 지키지 않고 다 팔아넘길 생각만 한다"며 "5년 후쯤엔 회사가 정말 많이 망가져 있을 것"이라고 우려를 표했다. 또 다른 직원도 "'부산업은행'만 안 된다면 안 다닐 이유가 없는데, 부산으로 가면 미래가 없다"면서 "인재들이 점점 빠져나가고 있다"고 한탄했다. 

실제로 한 해 30∼40명대 수준이던 산은 퇴사자는 부산 이전 논의가 시작된 후인 2022년 97명, 2023년 87명으로 급증했다. 특히 1~5년 차 젊은 직원들이 퇴사자의 40%에 달했다. 신입 공채 경쟁률도 2020년 67.2대 1에서 2024년 30.45대 1로 반 토막 났다. 지난해 산은 노조가 임직원 2052명을 대상으로 실시한 여론조사에서 본점 이전 시 부산으로 이주할 의향이 있다고 답한 임직원은 6%에 불과했으며, 94%는 이주 의사가 없다고 답했다. 

문제 해결의 구심점이나 실마리가 전혀 보이지 않는다는 점은 산은에 더욱 큰 리스크로 다가온다. 시사저널 취재에 따르면 산은 안팎의 어수선한 분위기는 4·10 총선을 지나며 한층 심해졌다. 

앞서 정부가 산은의 부산 이전을 위한 행정 절차를 마무리했으나, 여소야대 정국에서 본점 소재지를 서울로 규정한 산업은행법 개정은 막힌 상태였다. 야당은 산은 내부 설득과 사회적 합의 노력이 부족했다는 이유를 들어 정부·여당의 법 개정 추진에 협조하지 않았다. 그렇다고 아예 반대하지도 못했다. 국가 균형발전이라는 시대적 과제와 부산 지역 민심을 결코 등한시할 수 없기 때문이다. 

급기야 총선을 목전에 두고 야당 내에서 엇박자가 나기에 이르렀다. 더불어민주당 부산시당이 산은의 부산 이전을 22대 국회 회기 내 완료하겠다는 공약을 공식 발표했지만, 이 내용이 중앙당 공약집에는 들어가지 않았다. 더 나아가 민주당 총선상황실장을 맡은 김민석 의원은 자신의 지역구인 서울 영등포을에 있는 산은의 부산 이전을 막겠다고 공언했다. 이전을 반대하는 산은 노조가 소속된 전국금융산업노동조합(금융노조)은 민주당과 더불어민주연합을 공개적으로 지지한다는 입장을 밝혔다. 산은 내부 여론과 부산 민심은 제각기 들끓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는 복잡한 전후 사정을 의식한 듯 산은의 부산 이전 이슈를 놓고 침묵을 이어갔다. 

"부산 이전 결정 번복, 이제 와 불가능" 

총선 결과 여당이 부산 18개 지역구 중 17개 지역구를 차지했다. 야당이 사수한 1개 지역구(부산 북구갑)도 산은의 부산 이전 예정지(남구)가 아니었다. 21대 국회에서 산은법 개정안을 추가 발의하는 등 산은의 부산 이전을 위해 앞장서온 박재호 민주당 의원(남구을)은 부산 남구 갑·을 선거구 통합 후 치러진 이번 총선에서 역시 현역 의원인 박수영 국민의힘 의원에게 패했다. 이후 '야당 입장에서 산은 이전에 동의할 이유가 소멸했다'는 해석과 '산은의 부산 이전이 무기한 연기될 가능성이 크다'는 추측이 퍼져나갔다. 박재호 의원은 시사저널과의 통화에서 부산시당과 달리 중앙당은 산은의 부산 이전 이슈에 미온적인 민주당 내 기류를 전하며 "이제 내가 원외에서 목소리를 내본들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는 모르겠다. (법 개정을 위한) 여야 합의가 한동안은 어려울 것 같다"고 말했다. 

22대 국회에서 산은의 부산 이전 반대 목소리가 더 커질 것은 자명해 보인다. 김민석 의원이 4선에 성공한 데다 박홍배 전 금융노조위원장도 민주당의 위성정당 더불어민주연합의 비례대표(8번)로 당선됐다. 총선 다음 날인 4월11일 박홍배 당선인은 '산은 부산 이전 규탄 집회'에 참석해 "산은 동지, 금융노조, 한국노동조합총연맹과 함께 산은 부산 이전을 저지하기 위해 최선을 다하겠다"고 밝혔다. 산은 본점 직원 김형수씨(가명·38)는 "내부에서 노조를 중심으로 단결해 부산 이전 리스크를 최대한 저지해 왔다고 생각한다"며 "여당이 참패한 총선 결과를 희망적으로 느끼는 동료가 적지 않다. 부산 이전 계획이 완전히 무산되길 기대한다"고 말했다. 

하지만 시사저널이 만나본 금융권 고위 관계자 상당수는 '산은의 부산 이전 결정 자체를 번복하는 건 거의 불가능하다'는 의견을 내비쳤다. 산은과 같은 국책은행인 IBK기업은행의 한 임원은 "여당의 총선 참패로 법 개정이 더 지연될 순 있겠으나, 이미 이전 절차가 궤도에 올랐고 국가 균형발전 어젠다나 2년 후 있을 지방선거 등도 다 같이 맞물린 만큼 야당이 부산 이전을 반대할 명분과 동력은 크지 않다"고 분석했다. 4대 시중은행 중 한 곳의 임원도 "산은의 부산 이전을 위한 행정 작업이 다 진행됐고 혹여 계획이 무산된다면 즉시 여당이든 야당이든 지역(부산) 표심을 완전히 놓치게 될 텐데, 누가 반대할 수 있겠나"라면서 이전은 시간문제라고 내다봤다. 다만 그는 "정부도 정치권도 문제 해결에 나서긴커녕 엉킨 실타래를 풀고자 하는 의지조차 나타내지 않고 있어 시간이 얼마나 걸릴지는 장담할 수 없다"며 "다들 눈치 싸움만 하고 있는 셈"이라고 덧붙였다. 

4월24일 서울 여의도 산업은행 본점 로비에 부산 이전에 반대한다는 내용의 현수막이 걸려있다. ⓒ시사저널 이종현

특단 대책 있어야 문제 해결 실마리 

복잡한 정치 셈법이 만들어낸 교착 국면에서 피해는 결국 산은 직원들에게 고스란히 돌아가는 모습이다. 올해 들어서도 산은에선 퇴사자가 속출하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강석훈 산은 회장은 2년여 전에 산은 내부의 부산 이전 반대 여론에 대해 "국정과제로 선정된 일을 거부할 수는 없다"고 밝힌 이후 이렇다 할 갈등 봉합 노력을 하지 않았다. 산은 노조가 요구한 '노사 공동 이전 타당성 태스크포스(TF)' 구성과 공개토론회 개최도 무위로 끝났다. 이런 가운데 산은은 동남권 조직을 확대하는 등 부산 이전을 위한 물밑 준비를 착착 해왔다. 

산은의 부산 이전이 불러올 경제적 파급효과에 관해 산은 경영진과 노조 측은 각각 상반된 분석 결과를 내세우고 있다. 산은 경영진과 정부·여당은 '산은의 부산 이전과 함께 2045년까지 비수도권에 125조1000억원이 투자되고, 이에 따라 300조7000억원의 전국적 생산유발효과가 전망된다'는 금융위원회 자료로 파급효과를 추산한다. 반면 노조는 '부산 이전 후 10년간 기관으로는 7조원의 손실이, 국가 경제적으론 15조원의 손실이 예상된다'는 한국재무학회 분석을 인용해 대외에 이전 불가를 호소하는 중이다. 

'300조원'과 '마이너스(-) 15조원'의 엄청난 차이는 특단의 대책이 없다면 문제를 해결하기 힘들다는 사실을 방증한다. 박재호 의원은 "윤석열 대통령이 이재명 대표와 만나야만 교착 국면 해소의 가능성이 생길 수 있다고 본다"며 "(윤 대통령이 이 대표에게) 산은 부산 이전이 왜 절실한지를 설명하며 법 개정에 협조해 달라고 정중히 요청하고, 이 밖에 공공기관의 2차 지방 이전 시 부산 외 다른 지역에도 혜택이 갈 수 있도록 하는 방안을 서로 터놓고 얘기해야 한다"고 강조했다. 

■ 공공기관 10곳 중 4곳 이상은 여전히 수도권에 

국가 균형발전을 위해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이 추진됐으나, 공공기관 10곳 중 4곳 이상은 여전히 수도권에 자리 잡고 있는 것으로 나타났다. 

공공기관 경영정보 공개 시스템인 알리오에 따르면 공공기관 362개 중 서울 등 수도권에 44.5%인 161개가 있는 것으로 집계됐다. 서울이 122개로 전체의 33.7%를 차지했고 경기 31개(8.6%), 인천 8개(2.2%)다. 

17개 시도별로 보면 서울이 압도적으로 많고 그다음으로는 대전(40개), 경기(31개), 세종(26개), 부산(21개), 전남(16개), 대구·충북(각 14개) 등 순이었다. 광주는 3개로 가장 적었고 제주(4개), 충남(7개), 인천(8개) 등도 적은 편이었다.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은 참여정부(노무현 정부) 때인 2005년 계획이 수립됐고, 2014년부터 본격적으로 시행돼 2019년 마무리됐다. 공공기관 지방 이전을 계기로 부산, 대구, 광주·전남, 울산, 강원, 충북, 전북, 경북, 경남, 제주 등 10곳에 혁신도시도 형성됐다. 

그러나 여전히 공공기관의 40% 이상이 수도권에 있다 보니 추가로 지방 이전을 요구하는 목소리가 계속 이어져 왔다. 공공기관의 2차 지방 이전이 국가 균형발전이란 시대적 과제를 완수하기 위한 중요한 어젠다라는 데는 여야 간에도 큰 이견은 없었다. 

20대 대통령직인수위원회 산하 지역균형발전특별위원회는 2022년 4월27일 '지역 균형발전 비전 및 국정과제'를 발표하면서 공공기관의 지방 이전을 15개 국정과제 중 하나로 제시했다. 이재명 민주당 대표도 대선후보 시절 수도권에 남아있는 공공기관을 모두 지방으로 옮기겠다고 공약한 바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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