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연고 사망자를 배웅하는 사람들…배안용 목사의 ‘공영장례’ [따만사]

최재호 동아닷컴 기자 2024. 4. 26. 14: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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태블릿으로 추도문을 읽고 있는 배안용 목사.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OOO님, OOO님 그리고 OOO님께 영전에 삼가 고합니다. 아무리 슬퍼도 헤어져야 하는 것이 세상의 이치인 것을 어찌하겠습니까. 외롭고 힘들었던 삶의 무게를 내려놓고 영원히 가시는 길이 아쉬워 이렇게 술 한 잔 올려드렸습니다. 안타까운 마음 그지없으나 고인 길 떠나소서.”

지난달 30일 경기도 고양시에 있는 서울시립승화원 ‘그리다’ 빈소에는 무연고 사망자 3명의 위폐가 마련됐다. '사단법인 나눔과나눔' 이사장인 배안용 목사는 추도문을 읽으며 무연고 사망자 장례식인 ‘공영장례’를 주도했고, 박진옥 이사와 자원봉사자들은 유족들과 주변 사람들을 위로했다.

무연고 사망자가 급증하면서 서울시립승화원에서는 매일 공영장례가 진행되고, 여러 봉사자가 교대로 참여한다. 배 목사는 매주 토요일마다 봉사자와 함께 참여해 공영장례를 진행한다. 이들은 오전 9시부터 오후 12시 30분까지, 오후 12시 30분부터 오후 3시 30분까지 총 2회로 나눠 4~6명의 무연고 사망자 장례를 치르고 있고, 떠나가는 사람들을 위해 주말을 포기한다.

배 목사와 이들은 서울지역 내 구청에서 무연고자 사망자로 분류된 사람들을 공영장례라는 절차를 통해 인간의 존엄성을 되찾아주고 있다.

공영장례의 시작

공영장례를 진행하고 있는 배안용 목사.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배 목사의 이같은 공영장례식은 생각지도 못했다고 한다. 그는 원래 종로구 마을공동체 활동을 하면서 종로구 돈의동 쪽방촌에서 사는 주민들을 돕는 활동도 함께 했다.

배 목사는 “2015년 당시 종로 주민들의 행복을 위해서 진행된 ‘종로구 행복드림 사업’에서 쪽방촌 주민들에게 희망을 주자는 취지의 사업을 진행했다”며 “주민들의 편의 시설을 만들어 고립된 주민들에게 관심을 환기하고자 꽃밭 만들기, 요리교실, 노래교실 등 다양한 사업을 진행했다”고 전했다.

배 목사는 쪽방촌 주민들과 가까워지면서 쪽방촌에서 생활하다 사망하는 무연고자들에 대한 장례에도 관심을 가지기 시작했다고 한다. 그는 “당시 쪽방촌에서 무연고 사망자가 나오면 병원 장례식장으로부터 빈소를 1~2시간 빌려 장례를 진행했다”며 “사망한 분들을 위해 작은 예배를 올리거나 제사를 지내줬다”고 전했다.

배 목사는 이후 무연고 사망자가 증가하자 이들을 지원하던 ‘나눔과나눔’에서 종교 봉사를 하면서 이들의 장례를 지원하기 시작했다고 한다.

당시에는 무연고 사망자에 대해 장례를 진행하는 절차나 조례가 특별히 없었다. 그는 이런 상황을 안타깝게 생각해 지속적으로 서울시 의회와 시의원들과 소통하면서 공영장례 조례를 발의할 준비를 했다.

서울시와의 공영장례 조례안 발의

서울시립승화원에 있는 ‘그리다’ 빈소.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배 목사는 서울시 의원과 협의, 시민사회단체와의 연대 등의 노력 끝에 무연고·고독사 사망자 등을 위한 ‘공영장례 조례안’을 만들어 발의했다. 조례안은 이후 서울시의회를 통과했다.

그는 “공영장례를 할 때 가장 문제가 되는 건 장례를 진행할 빈소를 구하는 일이다”라며 “서울시 공영장례 조례가 발의되기 전에는 병원 장례식장에 가서 빈소를 빌리느라 고생을 했다. 하지만 서울시 공영장례 조례가 제정되면서 서울시가 ‘서울시립승화원’에 공영장례를 위한 ‘그리다’ 빈소를 만들었고, 관련 문제는 해결됐다”고 말했다.

조례가 발의되기 전만 해도 공영장례에 대한 공무원들과 사람들의 인식이 부족해 체계적이지 못했다고 한다. 배 목사는 “예전에는 이런 무연고 사망자에 대한 장례가 의례 과정이 포함된 장례 절차라기보다는 ‘시신처리’에 가까웠다. 장례식장에 안치되었다가 화장하는 직장(直葬) 방식으로 시신만 처리했다”며 “이제는 전통 방식의 의례절차를 포함한 공영장례가 되었고 유족을 찾는 절차도 공문을 통해 체계적으로 진행돼 전보다 더 나아졌다”고 전했다.

배 목사는 이 과정에서 공영장례를 지원해 주는 봉사자들이 생겼다고 전했다. 특히 이 중에는 자신이 비번일 때마다 공영장례 자원봉사자를 자처해 장례 진행을 도와주는 소방공무원, 집이 대전임에도 시간이 될 때마다 장례 진행을 도와주기 위해 서울로 올라오는 직장인 등 적지 않은 시민들이 자원봉사로 참여하고 있다고 전했다.

그는 “적극적인 동참은 바랄 수는 없는 걸 안다”며 “다만 서울시민들이었던 사람이 갑자기 이렇게 사망하면 어떻게 되는지, 어떻게 이웃을 마지막까지 배웅을 해주는구나 알아줬으면 좋겠다”고 말했다.

공영장례, 사람의 존엄성을 채워주는 일

공영장례 유족들과 함께 화장터로 이동하는 배안용 목사.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배 목사는 무연고 사망자들이 마지막에는 인간의 존엄성을 갖고 이승을 떠날 수 있도록 공영장례를 이끌고 있다고 주장했다.

그는 “유럽에서 유인원으로 추정되는 한 시신이 발굴됐다. 시신의 대퇴부는 부러졌다가 붙은 흔적이 있었다”며 “이는 인류의 조상들이 이때부터 공동체를 이루고 서로 돌봄을 실천했다는 뜻이다. 이들은 연민을 갖고 돌봄을 실천하면서 인간 존엄성을 갖출 수 있었던 것”이라고 말했다.

이어 “우리 사회가 인간을 존중하는 사회인지를 알고 싶으면 돌봄을 생각하면 된다”며 “수많은 무연고자 사망 사례를 보면 많은 사람들이 돌봄과 존중을 받지 못하고 있는 게 현실”이라고 전했다.

배 목사는 나눔과 나눔이 지금까지 수많은 공영장례를 지원한 부분에 대해 어두운 사회에 ‘작은 촛불’을 켰다고 비유했다. 그는 사회에서 돌봄을 받지 못한 사람들이 공영장례를 통해 마지막 존엄성을 지킬 수 있는 것이라고 보고있다.

하지만 무엇을 하든 돈 문제

공영장례 유족들과 함께 화장터로 이동하는 배안용 목사. 최재호 기자 cjh1225@donga.com

배 목사는 대한민국 장례의 근본적인 문제는 돈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우리나라의 평균 장례비가 1000만 원에서 2000만 원이 필요하다고 언급하며 “돈 위주로 진행되는 우리나라의 장례문화가 바뀌어야 한다”고 강조했다.

배 목사는 “서울시 무연고 사망자의 경우 고인의 가족들을 파악하고 장례를 하기까지 평균 한 달이 걸린다. 구청 공문으로 가족을 찾을 때까지 시신을 영안실에다가 보관해야 하는데 그렇게 되면 장례식장에서 하루에 평균 10만 원 정도의 안치료를 받는다”며 “나중에 시신을 최종 인계하는 사람이 이 비용을 부담 하는데 그렇게 되면 이 비용 또한 장례에 부담이 될 수밖에 없다. 사망직전 병원에 있었으면 병원비까지 부담해야 하기 때문에 장례비도 문제지만 이렇게 추가적인 비용 발생은 장례를 치르는데 걸림돌이 된다”고 말했다.

배 목사가 이끌고 있는 ‘나눔과나눔’ 사단법인은 이같은 비용들을 모두 자체 후원금으로 해결하고 있다. 공영장례 조례로 서울시에서는 빈소에서 사용할 제물 음식이나 염습 및 운구 등을 담당하는 상조회사 장례지도사들에 대한 비용을 예산으로 지원하고 있지만, 나눔과나눔이 서울시 공영장례 지원상담터를 운영하면서 담당하는 역할에 대한 부분은 법인이 전부 후원금으로 운영하고 있다.

그는 “저희 법인은 후원금이 코로나를 겪어도 많이 떨어지지 않았다. 인건비로 쓴다고 자세히 설명하고 투명하게 공개를 해서 많은 사람들이 믿어준다”며 “하지만 공영장례 횟수가 점점 증가하면서 활동가 부족과 비용 부담이 증가하고 있다”며 화장터로 이동했다.

■ ‘따뜻한 세상을 만들어가는 사람들’(따만사)은 기부와 봉사로 나눔을 실천하는 사람들, 자기 몸을 아끼지 않고 위기에 빠진 타인을 도운 의인들, 사회적 약자를 위해 공간을 만드는 사람들 등 우리 사회에 선한 영향력을 행사하는 이웃들에 대한 이야기입니다. 주변에 숨겨진 ‘따만사’가 있으면 메일(ddamansa@donga.com) 주세요.

최재호 동아닷컴 기자 cjh1225@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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