꽤 먹혀든 민희진의 감정호소, 그 역할은 여기까지

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2024. 4. 26.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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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이즈 ize 이덕행 기자

/사진=스타뉴스 DB

지금까지 많은 사람들이 '기자회견'이라는 단어에서 떠올린 그림은 정장을 차려입은 주인공이 엄숙한 분위기 속에서 미리 준비해 온 대본을 차분하게 읽는 모습이었다. 25일 어도어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은 달랐다. 푹 눌러쓴 모자와 편안한 티셔츠 차림으로 등장한 민희진 대표는 미리 써둔 대본에 의지하지 않고 '프리스타일 랩'을 하듯 자신의 울분을 쏟아냈다. 기자회견 서두에서 '평생 프레임을 깨며 살아왔다'는 민희진 대표는 그렇게 또 하나의 프레임을 깼다. 

두 시간가량의 기자회견에서 분명해진 몇 가지 것들이 있다. 하나는 하이브 경영진을 향한 민희진 대표의 분노가 알려진 것보다 깊다는 것이었다. 카피 문제는 단순한 트리거 역할을 했다. 대상도 광범위했다. 이날 민 대표의 분노는 방시혁 의장과 박지원 CEO에게만 향하지 않았다. 수 많은 기자들이 참석하고 라이브 스트리밍을 통해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지켜보는 상황 속에서 임원진의 실명을 언급했다는 건 그만큼 그들을 향한 분노가 오랜 기간 쌓여 있었다는 뜻이다.

광범위한 대상을 향한 민희진 대표의 분노는 기자회견장에서 절대 듣지 못할 것이라고 생각했던 수많은 단어들로 나타났다. 민희진 대표는 자신의 입장에서 본 여러 사건들의 전개 과정을 설명하며 왜 이렇게 될 수 밖에 없었는지 설명했지만, 그보다 더 효과적이었던 건 그 안에 담긴 말들이었다.

/사진=어도어

또 하나는 뉴진스를 향한 민희진 대표의 애틋함이 생각 이상으로 진하다는 것이다. 감정에 못 이겨 비속어를 남발하기도 했던 민 대표가 유일하게 울먹였던 순간은 뉴진스 멤버들에 대한 이야기를 꺼낼 때였다. 또한 민 대표는 '민지는 지금보다 어렸을 때 훨씬 이뻤다'·'하니는 보자마자 너무 귀엽고 재능이 넘쳤다'라며 팔불출 같은 면모를 보이기도 했다.

불과 몇 분 전까지 하이브 임원진들에게 독설을 쏘아대던 사람과 동일 인물이 맞는가 하는 의심이 들 정도였다. 뉴진스를 언급했다는 사실을 두고 누군가는 '뉴진스 팔이'를 한다고 지적할 수 있지만, 적어도 민희진 대표가 뉴진스를 두고 '아이를 출산한 것 같다'는 표현을 한 이유를 알 수 있다는 반응이 나오기도 했다. 

정제되지 않은 단어로 두 시간을 채워낸 후 민희진 대표의 모습은 기자회견 시작 전과는 전혀 달랐다. 자신의 울분을 모두 꺼내 후련하다는 인상과 동시에 시간만 주어진다면 말을 더 할 수 있다는 자신감까지 느껴졌다. 민희진 대표를 바라보는 시선 역시 다소 달라졌다. 민희진 대표의 감정 호소가 결국 사람들을 어느 정도 설득시킨 것이다. 과거 tvN '유퀴즈 온 더 블럭'에 나와 '사람은 논리로 설득이 안된다'는 주장을 펼쳤던 방시혁 의장의 모습이 오버랩되며 묘한 분위기를 풍기기도 했다.

/사진=어도어, 하이브

다만, 이러한 감정의 영역이 이성의 영역을 잠식해 나가는 것은 경계해야 한다. 이를테면 '민희진 대표의 기자회견을 보니 경영권 찬탈을 시도할 만한 깜냥이 되는 사람이 아닌 것처럼 보인다'는 주장 같은 것들이다. 이는 기자회견 이후 많은 사람들에게 지지를 얻고 있는 말이기도 하다. 

뉴진스를 향한 애정, 하이브 임원진을 향한 분노 등의 감정은 옳고 그름을 판단하는 영역의 것들이 아니다. 민 대표와 대립하고 있는 하이브 역시 이러한 감정의 영역에는 태클을 걸 수도 없다. 그러나 '경영권 찬탈'이라는 부분은 옳고 그름을 판단해야 하는 것이다. 민희진 대표의 감정이 이해된다고 해서 '단순한 사담'이라는 민 대표의 주장까지 받아들여서는 안 된다는 의미다. 

하이브 역시 해당 지점을 문제 삼고 있다. 앞서 하이브는 중간 감사 결과를 발표하며 "대표이사 주도로 경영권 탈취 계획이 수립됐다는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물증도 확보했다. 감사대상자 중 한 명은 조사 과정에서 사실을 인정했다"고 밝혔다. 이를 바탕으로 하이브는 민희진 대표를 고발했다.

기자회견장에 동석한 민 대표 측 법률 대리인은 '단순한 사담'이라는 민 대표의 주장을 정제된 언어로 상황을 설명했다. 법률 대리인의 입장은 배임죄가 될 수 없다는 것. 특히 "배임에는 예비죄가 없지만 있다고 하더라도 실현을 할 수 있는 정도가 되어야 하는데 이번 건은 그 정도도 안된다"며 혐의를 부인했다.

/사진=하이브

다시 배턴은 하이브에게 넘어갔다. 민 대표 측에서는 행위를 부정하는 것 이상의 액션을 취하기 힘들기 때문이다. 구체적인 사실을 확인하고 물증도 확보했다는 하이브가 그 근거를 보여줘야 한다. 물론, 이를 대중들에게 공개할 필요는 없다. 고소장을 제출한 만큼 경찰 혹은 법원에서 이를 공개하면 된다. 

하이브는 민 대표의 기자회견 이후 "모든 주장에 대해 반박할 수 있으나 답변할 가치가 없다고 판단해 일일이 거론하지 않겠다"라고 말했다. 민희진 대표 역시 26일 오전 CBS '김현정의 뉴스쇼'에 출연 "서로 할 만큼 했으니 대중 앞에서의 분쟁은 그만했으면 좋겠다"라는 의사를 내비쳤다. 사실상 양측 모두 철저한 논리의 싸움에 집중하겠다는 뜻으로 해석된다. 

앞으로의 진행 상황에서 이번 기자회견처럼 파격적인 이벤트는 보지 못할 확률이 높다는 뜻이다. 다른 분쟁처럼 증거와 증언을 바탕으로 한 치열한 논리싸움이 전개될 전망이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감정은 배제되어야 할 것이다. 민희진 대표의 감정 호소는 자신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던 대중을 어느 정도 돌려세우는 데는 성공했지만, 그 역할은 딱 여기까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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