분풀이조차 뒤풀이가 필요하다

이주현 기자 2024. 4. 26. 13:35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삐삐언니의 마음책방] 따귀맞은 영혼
에곤 실레의 ‘웅크린 남자’(1914년)
삐삐언니의 마음책방은?

책을 많이 읽으면 똑똑해지는 것은 확실합니다. 새로 알게 된 것보다 잊어버리는 게 더 많기 때문에 지식 총량이 늘어나는 건 잘 모르겠지만 이해력이 좋아지는 건 분명합니다. 나를 위로하고 타인을 격려하는 방법을 배우게 되지요. 좀더 씩씩하게 살아가고 싶은 삐삐언니가 책을 통해 마음 근육을 키우는 과정을 여러분과 함께합니다.

날씨는 이미 여름 턱밑까지 와 있지만, 오래전 겨울, 비참했던 경험을 하나 얘기해도 될까요? ‘따귀 맞은 영혼’이라는 처참한 제목의 책을 소개하려니 언급하지 않을 수 없네요.

흠흠, 진짜 진짜 옛날 일입니다. 당시 ‘썸’보다는 좀 더 깊은 관계를 몇달간 지속하던 SS가 있었어요. 그런데 어느날 갑자기 연락을 뚝 끊었습니다. 내 문자에 답을 안 한 지 하루, 이틀, 사흘. 열흘…지나 한달이 되었습니다. 나 스스로 정한 데드라인은 12월24일이었습니다. 연인이라면 당연히 같이 있어야 하는 날, 함께하지 못하겠다면 빨리 ‘정리’라도 해줘야 하지 않나요?

동방박사가 별빛 따라 예수를 만나러 간다는 뉴스에 많은 사람들이 기뻐한 날이었지만, SS로부터는 아무 소식이 없었습니다. 와인을 사들고 혼자 집에 돌아왔습니다. 알코올 증폭기에 슬픔과 비참함과 자기연민을 넣고 돌리자 무시무시한 분노가 피어올랐습니다. ‘나는 평생 너를 끝까지 저주하겠다’는 문자를 보냈습니다. 물론, 그 또한 씹혔지만요.

한참 뒤 알았습니다. 왜 옛사람들이 애쓰고 돈 들여서 저주 인형이나 부적을 만들었는지. 취해서 보낸 문자 저주는 아무 소용이 없었습니다. SS는 이후 도란도란, 이라는 부사가 딱 어울리는 가정을 꾸렸고… 즉, 잘 먹고 잘살았습니다.

오히려 저주는 나를 향하는 것 같았습니다. 연애는 계속 신통치 않았을 뿐만 아니라…‘젊은 여자’로 사는 일도 고달팠습니다. 공식·비공식 자리에서 수시로 쏟아졌던 성희롱과 폭언들. 신뢰했던 사람으로부터 급작스럽게 당한 폭력들. 이런 일이 거듭되자 나는 사랑받을 만한 사람인가, 하는 물음표가 껌딱지처럼 따라다녔습니다. ‘파니 핑크’라는 독일 영화(원제 Keiner Liebt Mich·아무도 나를 사랑하지 않아)를 여러 번 본 것도 그래서였습니다. 엉뚱한 연애로 인생이 까이곤 하는 주인공 파니는 낮아진 자존감을 극복하려고 ‘멘탈 트레이닝’을 합니다. 검은 관에 누워 녹음기에서 천천히 흘러나오는 말을 따라 하지요.

“나는 아름답다. 나는 똑똑하다. 나는 강하다.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는다.”

아름답고 똑똑하고 강하고 사랑하고 사랑받고. 너무 턱없이 완벽하지 않나요. 하지만 완벽함을 열망하는 만큼 결핍의 크기도 비례했습니다. 나와 파니 모두 따귀 맞은 영혼을 부여잡고 쩔쩔매고 있었던 거죠.

독일의 심리학자 베르벨 바르데츠키가 쓴 ‘따귀 맞은 영혼’(장현숙 옮김·궁리)은 주먹질로 멍든 얼굴처럼 ‘상한 마음’을 찬찬히 들여다보는 책입니다. 이 분야에서 ‘클래식’의 지위에 오른 책이라던데, 클래식이 왜 그냥 클래식이겠습니까. 처음엔 잠을 청할 겸 삐딱하게 누워서 보다가 촘촘하고도 설득력 있는 논리 전개에 매료되어 결국엔 정좌하고 책장을 넘기다 밤을 새우고야 말았습니다.

마음이 상했을 때 우리는 분노, 경멸, 실망감을 나타냅니다. 때로는 ‘가해자’를 공격합니다. 너무 심한 충격엔 무반응으로 일관하기도 합니다. 그러나 고통은 끝나지 않습니다. 불안, 수치심은 분풀이를 해봐도 사라지지 않습니다. 분노를 표현했는데도 왜 상한 마음은 여전히 낫지 않는 걸까요? 바르데츠키는 이렇게 설명합니다. “지금 앓고 있는 상처는 대개 이전의 상처받은 경험, 자존감을 건드린 경험과 결부되어 있습니다. 이런 기억들은 미해결과제가 되어, 해결이 되지 않은 채 무의식 속에 남아 있습니다. 무의식 안에서 미처 해결되지 않은 옛날의 상처가 되살아나면서 마음상함을 경험하게 되는 겁니다.”

인상적인 대목은 ‘사과’의 비유였습니다. 내가 사과를 집어 베어 물고 맛을 느끼며 삼키면 사과는 위에서 소화돼 영양을 제공합니다. 사과는 나의 일부가 됩니다. ‘동화’가 된 거죠. 만약 사과가 내 안에 들어와 소화되지 않고 딱딱한 돌처럼 이물질로 남는다면 어떻게 될까요? 바깥의 무엇인가가 건드릴 때마다 고통스럽게 의식하게 되겠지요. 이 사과처럼 제대로 처리되지 못한 체험은 외부에서 어떤 사건이 일어날 때마다 자극을 받아 불쾌함을 일으킵니다

이런 미해결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선 마음상함의 밑바닥을 들여다보는 것이 중요합니다. 우리는 어려서부터 여러가지 신호와 자극을 받으며 살아왔습니다. 이중 어떤 메시지는 씹지 않은 채 삼켜지면서 내면화됩니다. ‘내사’라는 개념입니다. ‘나는 남의 사랑을 받을 가치가 없어’ ‘나는 좀더 완벽해져야 해’ ‘나는 실수하면 안 돼’ 처럼요. 성격뿐 아니라 인생관을 결정하기도 합니다. ‘남을 믿지 마. 모두들 너를 등치려고 할 거야’ 또는 ‘세상은 아름답고 친절한 곳이야’ 등등.

존 싱어 사전트의 ‘베니스의 거리’(1882년작). 깊은 상처를 입은 표정으로 걸어가는 여자 뒤로 수군거리는 남자들의 시선이 느껴진다.

우리가 계속 고통받는 이유는 소화되지 못한 채 이물질로 남아 있는 이 내사를 몸의 일부처럼 착각하면서 떨쳐내지 못하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내사(나)와의 거리두기가 절실하다고 바르데츠키는 말합니다. 여기에서 거리를 둔다는 것은 관계를 끊는다는 것이 아니라 “상황을 다른 각도에서 관찰하거나 방금 일어난 일을 이해하려고 노력하고 감정을 적당한 수준으로 축소하는” 일입니다. 이처럼 한발 물러남으로써 우리는 무작정 마음상함으로 고통받는 것 외에 다른 선택을 할 수 있는 심리적 공간을 확보할 수 있고, ‘온전한 자신’과 화해할 가능성이 열릴 수 있다는 것이죠.

돌이켜보니, 나의 마음상함의 기원은 ‘괜찮은 척’에 있었습니다. 나는 걱정 끼치지 않을 거야, 잘해 나갈 거야, 잘해야 돼…. 아무렇지도 않은 척,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척 애쓰다 보면 고통은 시간과 함께 지나갔지만 멍든 마음은 낫지 않았습니다. 말하지 못한/않은 것, 풀어내지 않은 느낌을 곰곰이 들여다볼 기회가 없었습니다. 애도의 시기를 놓쳐 우물쭈물 지내다 후일 큰 슬픔에 되치기 당하기도 했습니다. 상처는 그냥 흘려보낼 일이 아니었습니다. 모든 감정엔 뒤풀이가 필요했습니다.

운 좋게도, 세상은 거절과 배신만이 아니라 친절과 상냥함으로 다가와 주기적으로 나를 밀고 당겼습니다. 한 발자국씩 내디디면서 조금씩 어렴풋이 깨닫고 있습니다. 세상의 유불리는 언제나 변한다, 모든 불리함에는 유리함이 있다, 그러니 그냥 오늘의 나를 살자.

바르데츠키는 ‘기대하지 말고 희망하라’는 당부로 책을 끝맺습니다. 기대는 지금 이뤄지지 않으면 실망을 낳고 마음을 상하게 합니다. 희망은 이와 달라요.

“희망은 기다릴 여지를 많이 갖고 있고 반드시 지금 이뤄져야 한다고 졸라대지 않습니다. 희망은 꼭 만족되어야 한다는 요구가 아니라 필요한 것을 우리가 얻게 될 것이란 믿음, 얻고 싶다는 바람입니다. 희망은 미래를 향하고 있으므로 여기와 지금이라는 조건에 얽매이지 않습니다. 희망함으로써 우리는 기대와 결별하고 기대치가 반드시 이뤄져야 한다는 생각도 버리게 됩니다.”

어느덧, 나는 영화 속 파니 핑크보다 훨씬 나이를 먹어 버렸습니다. 그래도 즐거운 마음으로 주문을 따라 해보겠습니다. 사랑을 기대해서가 아니라 사랑을 희망하고 싶으니까요.

“나는 아름답다. 나는 똑똑하다. 나는 강하다. 나는 사랑하고 사랑받는다.”

이주현 기자 edigna@hani.co.kr

Copyright © 한겨레. All rights reserved. 무단 전재, 재배포 및 크롤링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