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의 시간’은 다시 찾아올까…尹과 각 세울까, 오월동주 이어갈까
“韓, 정치인으로서 끝을 보고자 하는 의지 매우 강해”…전당대회 출마할까 주목
(시사저널=이원석 기자)
"총선 패배는 아쉬웠지만,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처럼 젊고 인기 있는 인물이 국민의힘에 아직 없다. '한동훈의 시간'이 다시 올 수밖에 없지 않겠나." 4·10 총선 패배 책임을 지고 사퇴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 대한 한 국민의힘 관계자의 평가이자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총선을 4개월여 앞두고 흔들리던 국민의힘의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되며 화려하게 시작된 '정치인 한동훈'의 시간은 107일 만에 총선 참패란 성적표를 받아들며 일단 끝이 났다. 하지만 정치권 내 한동훈의 존재감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고 있다. 그의 총선 이후 근황 하나하나에 관심이 주목되고 말 한마디, 일정 하나하나가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韓 "정교해지기 위해 공부하고 성찰할 것"
한 전 위원장이 어떻게 다음 정치적 행보를 이어갈지가 특히 큰 관심사다. 정치권에선 그가 어떤 형식으로든 복귀해 본격적인 정치의 길을 걸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총선 결과에 따라 직면하게 된 여러 한계와 과제들이 결코 가볍지 않다. 한 전 위원장은 사퇴 이후 약 10일 만에 올린 SNS 글에서 "정교해지기 위해 시간을 갖고 공부하고 성찰하겠다"고 밝혔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한 전 위원장이 시련의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연 한동훈의 시간은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사퇴 이후 칩거 중인 것으로 알려진 한 전 위원장은 여전히 정치인으로 남으려는 의지가 매우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전 위원장의 사정을 잘 아는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할 때부터 한 전 위원장은 이미 정치할 결심을 굳게 내렸고, 총선 결과가 어떻게 되든 정치인으로서 끝을 보고자 하는 의지가 아주 강했다. 그 마음은 여전할 것"이라고 전했다. 총선 바로 다음 날인 4월11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한 전 위원장은 '정치를 계속하느냐'는 질문에 "제가 한 약속을 지키겠다"며 정치 잔류 의지를 내비쳤다. 앞서 그는 선거운동 기간에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선거 이후에도 정치를 계속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공공선을 위해 정치라는 무대에서 나라와 시민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고 못 박은 바 있다.
그러나 거야(巨野) 192석 탄생을 허용하며 드러난 정치력의 한계는 뼈아프다. 여당 참패의 원인이 '윤석열 정부 심판론'이 강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많지만, 여권 일각에선 한 전 위원장 책임론이 나왔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한 전 위원장이) 대권놀이 하면서 정치 아이돌로 착각하고 셀카만 찍다가 말아먹었다"고 주장했다. 홍 시장의 거친 비판을 두고 대권 경쟁자에 대한 견제라는 시각도 있지만, 한 전 위원장의 정치력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는 여당 내 다른 목소리들도 존재했다.
국민의힘의 한 낙선자는 "한동훈 전 위원장이 들어오면서 언론의 주목을 가져오는 데는 성공했고 처음엔 정치 개혁 의제들을 던지면서 신선함이 있었지만, 공천 과정이나 선거가 다가올수록 좀 더 확실하게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려세울 전략, 한동훈만의 새로운 모습이 필요했는데, 그 점에서 아쉬웠던 부분이 분명 있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의 이번 총선 공천에 대해선 주류들 대다수가 살아남은 '밋밋한' 공천이란 평가가 나왔고, 갈수록 거친 표현으로 야당을 비판하는 데 많은 비중을 할애한 한 전 위원장의 선거 전략을 두고도 '국정 운영에 책임이 있는 여당의 선거 전략으로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국민의힘이 한 전 위원장 '원톱' 체제로 이번 선거를 치른 것에 대한 아쉬움도 나왔다. 다른 수도권 낙선자 측 관계자는 "원톱이 독이 됐다. 전국의 후보들이 한 전 위원장만 바라보는데 한 전 위원장은 주요 지역, 격전지 위주로 선거운동을 했다. 한 전 위원장이 거의 찾지 않았던 지역들은 소외됐고, 결국 표로 다 드러났다. 전략의 실패였다"고 꼬집었다. 실제 선거 직전에 한 전 위원장이 여러 지역을 묶어 유세를 다닐 때 그간 소외돼온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유세 현장에 불참하는 험지 후보들이 있었다는 후문도 돌았다.
국민의힘 한 전직 다선 의원은 이번 총선에 대한 총평과 함께 한 전 위원장을 향한 조언을 이같이 남겼다. "한마디로 3무(無) 선거였다. 전략도, 혁신도, 인물도 없었다. 거기에 윤석열 정부의 여러 실정까지 부각되면서 총체적 난국이었다. 특히 한 전 위원장은 스타성 있는 인물이지만, 총선을 총지휘할 정치력은 전혀 입증이 안 된 상태였다. 한 전 위원장이 계속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겸손한 위치에서 차근차근 정무적 감각을 익혀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애초부터 윤-한 주종 관계 아니었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은 총선에서는 물론 총선 이후 한동훈 전 위원장의 정치적 행로에서도 중대한 과제로 떠올랐다. 두 사람은 검찰 내에서부터 긴 시간, 여러 수사를 함께 하며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져왔고, 윤 대통령은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40대였던 한 전 위원장을 파격 발탁하며 두터운 신뢰를 보였다. 그러나 한 전 위원장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 취임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급격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선거 과정에서 몇 차례의 갈등이 반복됐다. 여권 내 여러 이야기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당이 정부와 발을 맞춰 선거를 치르길 원했으나 한 전 위원장은 정부 심판론이 부각되는 점을 우려했다. 공천에서도 입장차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한 전 위원장과의 갈등에 대해 주변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후배였는데… 가장 아끼던 사람에게 바보같이 뒤통수를 맞느냐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심경을 밝힌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총선 이후로도 두 사람의 관계는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한 전 위원장을 강하게 비판한 홍준표 시장과 총선 직후인 4월16일 만찬 회동을 가졌다. 그 3일 후인 4월19일 윤 대통령이 이관섭 비서실장을 통해 한 전 위원장에게 오찬을 제안했으나 한 전 위원장이 '건강상 이유'를 들어 거절한 사실도 전해졌다. 한 전 위원장이 윤 대통령과의 거리두기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왔다. 오찬 거절 직후인 4월20일 한 전 위원장은 SNS에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여러분을, 국민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이 배신하지 않아야 할 대상은 여러분, 국민뿐"이라고 썼다. 홍 시장이 적극적으로 꺼낸 '한동훈 배신자론'에 대한 정면 반박으로 풀이됐다. 홍 시장과 가장 먼저 회동한 윤 대통령을 향한 간접적인 불만 표시라는 해석도 나왔다. 이후 한 전 위원장이 자신과 비대위를 함께 했던 인사들과는 만찬 회동을 가졌다는 소식이 뒤늦게 전해지기도 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아는 주변에선 윤 대통령에 대한 한동훈 전 위원장의 태도를 '배신'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윤 대통령, 한 전 위원장과 검찰 내에서 함께 근무했던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두 사람이 여러 수사를 함께 하면서 가까웠던 건 사실이겠지만, 애초부터 주종(主從) 관계나 최측근으로 표현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능력이 있는 한 전 위원장이 필요했던 것이고, 둘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이었다고 보는 게 더 맞다"며 "정치를 하기로 결심한 이상 한 전 위원장이 친분 관계를 떠나서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가는 것이 맞는 것이지 그걸 어떻게 배신이라고 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과거 한 전 위원장도 직접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2021년 2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의 측근이냐'는 질문을 받고 내놓은 대답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훌륭한 검사고, 좋은 사람이다. 그분이나 저나 공직자이고, 할 일 했던 것뿐이다. 굳이 말하자면 가치를 공유하는지는 몰라도 이익을 공유하거나 맹종하는 사이는 아니니, 측근이라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정치권에선 한 전 위원장이 윤 대통령 그늘에서 벗어나야 정치인으로서의 길이 열린다는 시각과 윤 대통령과 '한 몸'이 돼야 정치적으로도 희망이 있다는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울지, 오월동주(吳越同舟)를 이어갈지 한 전 위원장도 깊은 고심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주변에선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 낮아"
한동훈 전 위원장의 복귀 시점은 언제가 될까. 벌써 여러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이르면 다음 전당대회에 당대표로 출마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한 전 위원장과 가까운 인사들은 그 가능성을 낮게 봤다. 비대위에서 함께 한 김경율 회계사는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전 위원장이) 당대표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며 "이번 총선 패배의 의미를 좀 곱씹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라고 했다. 총선 당시 당 인재영입위에서 한 전 위원장과 함께 활동한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아무리 좋은 건전지도 방전되면 시간이 필요하다. 정치를 길게 봐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한 전 위원장이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전당대회까지 몇 달의 시간이 있고, 그사이에 많은 상황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며 "시간이 길어지면 잊히고 당내 지형이 변해 더 복귀가 힘들어질 것이다. 물 들어올 때 배를 띄우는 게 현명한 생각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2026년 지방선거 전까지 전국 단위 선거가 없다는 점도 그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근거 중 하나다. 한 전 위원장이 곧장 다음 지방선거나 대선(2027년), 총선(2028년)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한 전 위원장은 최근 전 비대위원들과의 만찬 모임에서 "이런 시간에 익숙하다"며 "이 시간을 충분히 활용해서 내공을 쌓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에 그는 다시 '한동훈의 시간'을 포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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