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훈의 시간’은 다시 찾아올까…尹과 각 세울까, 오월동주 이어갈까

이원석 기자 2024. 4. 26. 12: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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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이후에도 불거진 尹 대통령과의 갈등…韓 “尹과 가치는 공유…맹종하는 사이 아냐”
“韓, 정치인으로서 끝을 보고자 하는 의지 매우 강해”…전당대회 출마할까 주목

(시사저널=이원석 기자)

"총선 패배는 아쉬웠지만,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처럼 젊고 인기 있는 인물이 국민의힘에 아직 없다. '한동훈의 시간'이 다시 올 수밖에 없지 않겠나." 4·10 총선 패배 책임을 지고 사퇴한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 대한 한 국민의힘 관계자의 평가이자 전망이다. 지난해 12월 총선을 4개월여 앞두고 흔들리던 국민의힘의 비대위원장으로 추대되며 화려하게 시작된 '정치인 한동훈'의 시간은 107일 만에 총선 참패란 성적표를 받아들며 일단 끝이 났다. 하지만 정치권 내 한동훈의 존재감은 쉽사리 지워지지 않고 있다. 그의 총선 이후 근황 하나하나에 관심이 주목되고 말 한마디, 일정 하나하나가 여러 해석을 낳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韓 "정교해지기 위해 공부하고 성찰할 것"

한 전 위원장이 어떻게 다음 정치적 행보를 이어갈지가 특히 큰 관심사다. 정치권에선 그가 어떤 형식으로든 복귀해 본격적인 정치의 길을 걸을 것으로 보고 있다. 그러나 총선 결과에 따라 직면하게 된 여러 한계와 과제들이 결코 가볍지 않다. 한 전 위원장은 사퇴 이후 약 10일 만에 올린 SNS 글에서 "정교해지기 위해 시간을 갖고 공부하고 성찰하겠다"고 밝혔다. 이준한 인천대 교수는 "한 전 위원장이 시련의 시간을 갖게 될 것"이라고 내다봤다. 과연 한동훈의 시간은 다시 찾아올 수 있을까.

사퇴 이후 칩거 중인 것으로 알려진 한 전 위원장은 여전히 정치인으로 남으려는 의지가 매우 강한 것으로 전해진다. 한 전 위원장의 사정을 잘 아는 다른 국민의힘 관계자는 "비대위원장직을 수락할 때부터 한 전 위원장은 이미 정치할 결심을 굳게 내렸고, 총선 결과가 어떻게 되든 정치인으로서 끝을 보고자 하는 의지가 아주 강했다. 그 마음은 여전할 것"이라고 전했다. 총선 바로 다음 날인 4월11일 사퇴 기자회견에서 한 전 위원장은 '정치를 계속하느냐'는 질문에 "제가 한 약속을 지키겠다"며 정치 잔류 의지를 내비쳤다. 앞서 그는 선거운동 기간에 채널A와의 인터뷰에서 '선거 이후에도 정치를 계속할 것인가'라는 질문에 "공공선을 위해 정치라는 무대에서 나라와 시민을 위해 살기로 결심했다"고 못 박은 바 있다. 

그러나 거야(巨野) 192석 탄생을 허용하며 드러난 정치력의 한계는 뼈아프다. 여당 참패의 원인이 '윤석열 정부 심판론'이 강하게 작동했기 때문이란 분석도 많지만, 여권 일각에선 한 전 위원장 책임론이 나왔다. 홍준표 대구시장은 "(한 전 위원장이) 대권놀이 하면서 정치 아이돌로 착각하고 셀카만 찍다가 말아먹었다"고 주장했다. 홍 시장의 거친 비판을 두고 대권 경쟁자에 대한 견제라는 시각도 있지만, 한 전 위원장의 정치력에 대해 아쉬움을 표시하는 여당 내 다른 목소리들도 존재했다.

윤석열 대통령과 홍준표 대구시장이 2023년 11월7일 대구 엑스코에서 열린 한 행사에서 만나 대화하고 있다. ⓒ연합뉴스

국민의힘의 한 낙선자는 "한동훈 전 위원장이 들어오면서 언론의 주목을 가져오는 데는 성공했고 처음엔 정치 개혁 의제들을 던지면서 신선함이 있었지만, 공천 과정이나 선거가 다가올수록 좀 더 확실하게 유권자들의 마음을 돌려세울 전략, 한동훈만의 새로운 모습이 필요했는데, 그 점에서 아쉬웠던 부분이 분명 있었다"고 지적했다. 국민의힘의 이번 총선 공천에 대해선 주류들 대다수가 살아남은 '밋밋한' 공천이란 평가가 나왔고, 갈수록 거친 표현으로 야당을 비판하는 데 많은 비중을 할애한 한 전 위원장의 선거 전략을 두고도 '국정 운영에 책임이 있는 여당의 선거 전략으로는 부적절하다'는 지적이 있었다.

국민의힘이 한 전 위원장 '원톱' 체제로 이번 선거를 치른 것에 대한 아쉬움도 나왔다. 다른 수도권 낙선자 측 관계자는 "원톱이 독이 됐다. 전국의 후보들이 한 전 위원장만 바라보는데 한 전 위원장은 주요 지역, 격전지 위주로 선거운동을 했다. 한 전 위원장이 거의 찾지 않았던 지역들은 소외됐고, 결국 표로 다 드러났다. 전략의 실패였다"고 꼬집었다. 실제 선거 직전에 한 전 위원장이 여러 지역을 묶어 유세를 다닐 때 그간 소외돼온 것에 대해 불만을 품고 유세 현장에 불참하는 험지 후보들이 있었다는 후문도 돌았다. 

국민의힘 한 전직 다선 의원은 이번 총선에 대한 총평과 함께 한 전 위원장을 향한 조언을 이같이 남겼다. "한마디로 3무(無) 선거였다. 전략도, 혁신도, 인물도 없었다. 거기에 윤석열 정부의 여러 실정까지 부각되면서 총체적 난국이었다. 특히 한 전 위원장은 스타성 있는 인물이지만, 총선을 총지휘할 정치력은 전혀 입증이 안 된 상태였다. 한 전 위원장이 계속 정치를 하고자 한다면 겸손한 위치에서 차근차근 정무적 감각을 익혀가는 것이 맞지 않을까 싶다."

한동훈 당시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1월23일 충남 서천군 서천특화시장 화재 현장에서 윤석열 대통령에게 허리 숙여 인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애초부터 윤-한 주종 관계 아니었다"

윤석열 대통령과의 관계 설정은 총선에서는 물론 총선 이후 한동훈 전 위원장의 정치적 행로에서도 중대한 과제로 떠올랐다. 두 사람은 검찰 내에서부터 긴 시간, 여러 수사를 함께 하며 가까운 사이였던 것으로 알려져왔고, 윤 대통령은 초대 법무부 장관으로 40대였던 한 전 위원장을 파격 발탁하며 두터운 신뢰를 보였다. 그러나 한 전 위원장이 국민의힘 비대위원장에 취임하면서 두 사람의 관계는 급격히 멀어지기 시작했다. 선거 과정에서 몇 차례의 갈등이 반복됐다. 여권 내 여러 이야기를 종합하면 윤 대통령은 당이 정부와 발을 맞춰 선거를 치르길 원했으나 한 전 위원장은 정부 심판론이 부각되는 점을 우려했다. 공천에서도 입장차가 컸던 것으로 알려졌다. 윤 대통령은 한 전 위원장과의 갈등에 대해 주변에 "눈에 넣어도 아프지 않은 후배였는데… 가장 아끼던 사람에게 바보같이 뒤통수를 맞느냐는 소리까지 들었다"고 심경을 밝힌 것으로 전해지기도 했다.

총선 이후로도 두 사람의 관계는 좀처럼 회복되지 못하고 있다. 윤 대통령은 한 전 위원장을 강하게 비판한 홍준표 시장과 총선 직후인 4월16일 만찬 회동을 가졌다. 그 3일 후인 4월19일 윤 대통령이 이관섭 비서실장을 통해 한 전 위원장에게 오찬을 제안했으나 한 전 위원장이 '건강상 이유'를 들어 거절한 사실도 전해졌다. 한 전 위원장이 윤 대통령과의 거리두기에 나섰다는 관측이 나왔다. 오찬 거절 직후인 4월20일 한 전 위원장은 SNS에 "저는 무슨 일이 있어도 여러분을, 국민을 배신하지 않을 것이다. 정치인이 배신하지 않아야 할 대상은 여러분, 국민뿐"이라고 썼다. 홍 시장이 적극적으로 꺼낸 '한동훈 배신자론'에 대한 정면 반박으로 풀이됐다. 홍 시장과 가장 먼저 회동한 윤 대통령을 향한 간접적인 불만 표시라는 해석도 나왔다. 이후 한 전 위원장이 자신과 비대위를 함께 했던 인사들과는 만찬 회동을 가졌다는 소식이 뒤늦게 전해지기도 했다.

두 사람의 관계를 잘 아는 주변에선 윤 대통령에 대한 한동훈 전 위원장의 태도를 '배신'으로 규정하기는 어렵다는 이야기도 나온다. 윤 대통령, 한 전 위원장과 검찰 내에서 함께 근무했던 한 검사 출신 변호사는 "두 사람이 여러 수사를 함께 하면서 가까웠던 건 사실이겠지만, 애초부터 주종(主從) 관계나 최측근으로 표현하는 데는 무리가 있다. 윤 대통령 입장에선 능력이 있는 한 전 위원장이 필요했던 것이고, 둘의 관계는 상호보완적이었다고 보는 게 더 맞다"며 "정치를 하기로 결심한 이상 한 전 위원장이 친분 관계를 떠나서 옳다고 생각하는 대로 가는 것이 맞는 것이지 그걸 어떻게 배신이라고 할 수 있겠나"라고 했다.

과거 한 전 위원장도 직접 비슷한 취지의 말을 했다. 2021년 2월 조선일보와의 인터뷰에서 '윤석열의 측근이냐'는 질문을 받고 내놓은 대답이다. "윤석열 검찰총장은 훌륭한 검사고, 좋은 사람이다. 그분이나 저나 공직자이고, 할 일 했던 것뿐이다. 굳이 말하자면 가치를 공유하는지는 몰라도 이익을 공유하거나 맹종하는 사이는 아니니, 측근이라는 말이 맞는지도 모르겠다."

정치권에선 한 전 위원장이 윤 대통령 그늘에서 벗어나야 정치인으로서의 길이 열린다는 시각과 윤 대통령과 '한 몸'이 돼야 정치적으로도 희망이 있다는 시각이 공존하고 있다. 윤 대통령과 각을 세울지, 오월동주(吳越同舟)를 이어갈지 한 전 위원장도 깊은 고심에 빠진 것으로 보인다. 

한동훈 전 국민의힘 비상대책위원장이 총선 다음 날인 4월11일 사퇴 입장을 밝힌 후 여의도 당사를 떠나고 있다. ⓒ시사저널 박은숙

주변에선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 낮아"

한동훈 전 위원장의 복귀 시점은 언제가 될까. 벌써 여러 시나리오가 거론된다. 이르면 다음 전당대회에 당대표로 출마할 것이란 전망도 나온다. 그러나 한 전 위원장과 가까운 인사들은 그 가능성을 낮게 봤다. 비대위에서 함께 한 김경율 회계사는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한 전 위원장이) 당대표 선거에는 출마하지 않을 것이라고 본다"며 "이번 총선 패배의 의미를 좀 곱씹는 시간이 필요하지 않나"라고 했다. 총선 당시 당 인재영입위에서 한 전 위원장과 함께 활동한 조정훈 국민의힘 의원도 시사저널과의 인터뷰에서 "아무리 좋은 건전지도 방전되면 시간이 필요하다. 정치를 길게 봐야 한다. 개인적으로는 한 전 위원장이 재충전의 시간을 가졌으면 좋겠다"고 견해를 밝혔다.

그러나 전당대회 출마 가능성을 아예 배제할 수 없다는 관측도 있다. 한 여권 관계자는 "전당대회까지 몇 달의 시간이 있고, 그사이에 많은 상황의 변화가 있을 수 있다"며 "시간이 길어지면 잊히고 당내 지형이 변해 더 복귀가 힘들어질 것이다. 물 들어올 때 배를 띄우는 게 현명한 생각일 수 있다"고 내다봤다. 2026년 지방선거 전까지 전국 단위 선거가 없다는 점도 그 가능성을 점칠 수 있는 근거 중 하나다. 한 전 위원장이 곧장 다음 지방선거나 대선(2027년), 총선(2028년)에 나설 가능성도 있다. 

한 전 위원장은 최근 전 비대위원들과의 만찬 모임에서 "이런 시간에 익숙하다"며 "이 시간을 충분히 활용해서 내공을 쌓겠다"는 취지로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이 시간이 지나고 난 다음에 그는 다시 '한동훈의 시간'을 포착할 수 있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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