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바이 교민, 최악의 홍수 겪어보니 [파일럿 Johan의 아라비안나이트]

2024. 4. 26. 11: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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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파일럿 Johan의 아라비안나이트-21]

“도로가 물에 다 잠겨서 폐쇄됐어, 어떻게 하지?”

머리가 지끈거린다. 비행기 이륙시간이 얼마 남지 않았는데, 공항까지 가는 도로가 다 폐쇄됐다고 한다. 승객이 있어도 그 비행기를 몰 조종사가 없으면 비행기는 못 뜬다. 어떻게 방법이 없을까 도로에 갇혀서 고민하던 차 회사 운항본부에서 문자가 왔다.

‘오늘 운항은 홍수 피해로 인해 취소됐습니다. 회사에서 추후 공지가 있을때까지 집에 가서 대기하기 바랍니다’

아랍에미리트(UAE) 두바이에 지난주 하루 동안 2년 치의 폭우가 쏟아져 도심 곳곳이 침수 피해를 입었다.

두바이 공항 기상관측소에 따르면 이날 두바이 전역에는 12시간 동안 거의 100㎜(약 4인치)에 달하는 폭우가 내렸다. 두바이 정부에 따르면 이는 평소 두바이에서 1년 동안 관측되는 강우량에 해당한다.

출처: CNBC
두바이가 물에 잠긴 날
세계에서 가장 바쁜 공항 중 하나인 두바이 국제 공항은 활주로가 물에 잠기며 이날 한때 운영이 중단되기도 했다. 두바이 공항에서 출발하는 항공편 수십 편이 지연되거나 결항됐다. 여객기들이 마치 강에 떠가는 배처럼 물에 잠겨 이동하는 모습이 포착되기도 했다.

많은 비행기들이 동시간때 근처 오만 같은 인접국가로 회항을 했다. 활주로에 일정 수준으로 물이 있으면 안전문제로 인해 착륙을 못하기 때문이다. 또한 공항으로 이어지는 주변 도로 대부분이 물에 잠겨 승객뿐 아니라 조종사도 공항에 가지 못해 대규모로 비행이 취소되는 사태가 벌어졌다.

동시에 단톡방에서는 동료 파일럿들의 문자가 쏟아지기 시작했다. “나 4시간만에 착륙했다.” “실시간 오만에도 자리가 없다는데” , “우리 다시 사우디로 돌아왔다.” 난리도 아주 이런 난리가 없다. 공항에 도착하기 전 비행이 얌전히 취소돼 집에 돌아온 나는 어찌보면 행운(?)인가 싶다.

중동 최대 항공사인 에미레이트 항공도 막대한 피해를 입었다. 팀 클라크 에미레이트항공 사장은 “약 400편의 항공편이 취소되고 이후 더 많은 항공편이 지연됐다”고 전했다. 클라크 사장은 “피해를 본 고객들에게 1만2000개의 호텔 객실과 25만개의 식사 바우처를 제공했다”며 “운항 차질로 밀린 승객들의 예약을 처리하는 데 며칠이 걸릴 것”이라고 덧붙였다.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는 건물과 주택 안으로 빗물이 들이닥치는 영상이 공유됐다. 쇼핑몰과 지하철역으로도 물이 들어와 아수라장이 벌어지는 모습이 포착됐다. 갑자기 불어난 물에 차를 버리고 도망가야할 수 밖에 없었던 사람들의 사연들도 전해졌다.

<출처: 틱톡 @merajahamad8848>
왜 이런일이
중동 한가운데 위치해 있어 고온건조한 기후를 가진 두바이의 이런 폭우는 매우 이례적이다. 일년에 2주정도 비가 오는것에 비해 이번 폭우는 두바이가 감내할 수 있는 단계를 넘어섰다. 기후 변로 인해 지구촌 곳곳에서 극단적인 이상 기후가 발생하고 있는 것과 무관하지 않다.

폭우 직후 기후학자들은 “두바이 지역에 3개의 저기압대가 열차처럼 줄지어 제트 기류를 따라 이동한 대기천의 이동이 페르시아만까지 이어져 이번 폭우로 연결된 것”이라고 분석했다. 또한 이런 극단적인 폭우는 기후변화로 인한 것이며, 앞으로 지구 온난화로 인해 가뭄과 홍수도 잦아질 것이라고 경고했다.

특히 두바이의 피해가 큰 것은 평소때 비가 거의 내리지 않아 배수시설에 투자를 하지 않았던 탓도 있었다. 아마 대한민국 같으면 이정도 비는 별 피해 없이 그냥 지나갔을 것이다. 평소 지진이 일어나지 않는 지역에 지진이 한번 일어나면 큰 피해를 보는 것처럼, 이번 두바이도 마찬가지였다.

<출처: 인스타그램 @uaeweatherman>
인공강우때문?
일각에서는 두바이 정부의 인공강우를 원인으로 꼽기도 한다. 이번 기상이변이 두바이의 인공강우 프로젝트로 인해 발생된 것이란 주장이다.

인공강우는 구름을 인위적으로 조작해 비를 내리게 하는 기술이다. 구름에 요오드화 은이나 소금 같은 ‘구름씨앗’을 뿌리면, 구름씨앗이 구름 속의 물방울 입자들을 뭉쳐 비나 눈이 내리도록 하는 방법이다. 연 강수량이 90㎜ 안팎인 UAE는 물 부족을 해결하기 위해 수십년간 인공강우 실험을 벌여왔다.

하지만 인공강우가 비를 내리게 할 순 있어도 도심 일대가 침수될 정도의 폭우를 일으키긴 어렵다는 것이 중론이다. 곧 인공강우를 불러일으키는 구름씨앗 파종 기술은 마른 하늘에 비를 내리게 하는 기술이 아니라, 이미 형성된 구름대가 비를 더 빨리 내릴 수 있도록 촉매제 역할을 한단 의미다.

따라서 인공강우 기술로 늘릴 수 있는 강우량은 최소량에 불과하다는 것이다. 하긴 생각해보면, 이런 정도의 폭우를 내리게 하는 것이 인공적으로 가능하면 적국과 전쟁할때 무기하나 쏘지 않고 항복을 받아내는 것도 가능할 것이다.

홍수는 지나갔지만..
이번 홍수가 벌어지고 나서 이곳 UAE 주민들 사이에서는 “한동안 중고차 절대 구입하지 말아야 한다”는 말들이 나오고 있다. 수 많은 침수차들이 겉모습만 새단장한 채 중고차 시장으로 나올 가능성이 크다는 것이다.

필자의 집은 상대적으로 고지대에 위치해 있어 별 다른 피해는 없었지만 다른 집들을 보면 천장에서 물이 새고 창문으로 비가 들이치는 등 난리도 아니었다. 이게 전부 평소때 비가 거의 오지 않은 지역이라 이에 대한 대비가 약했던 탓이다. 아마 앞으로는 두바이 정부 차원에서도 좀더 신경을 쓸 것 같다.

무엇보다 이러한 대 자연 앞에서 인간은 참으로 무력하다는 것이 이번에 다시금 증명되어서 씁쓸하다. 인간 문명의 총집합체인 거대한 비행기가 맥없이 홍수에 떠밀려서 배처럼 둥둥 떠다니는 모습을 봐서 더욱 그런 것 같다.

16일 폭우 이후 일주일이 지난 지금 두바이는 이제 언제 그런 일이 있었냐는 듯이 다시 평상시 생활로 돌아왔지만, 앞으로 이런 변은 언제든지 일어날 수 있으니 일기예보도 항상 체크하고 더욱 대비하고 조심하는 모습을 갖춰야 할 것이다.

[원요환 UAE항공사 파일럿 (前매일경제 기자)]

john.won320@gmail.com

아랍 항공 전문가와 함께 중동으로 떠나시죠! 매일경제 기자출신으로 현재 중동 외항사 파일럿으로 일하고 있는 필자가 복잡하고 생소한 중동지역을 생생하고 쉽게 읽어드립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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