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구 갖춘 영건들의 존재감 증명, ‘로켓’ 이동현의 역설 “구속 올리는 게 제구 잡는 것보다 쉬울 수 있다”

심진용 기자 2024. 4. 26. 11: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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키움 김인범이 지난 21일 잠실 두산전 더블헤더 2차전에 선발 등판해 투구하고 있다. 키움 히어로즈 제공


야구는 결국 스트라이크를 던져야 하는 경기다. 160㎞가 아니라 170㎞를 던져도, 사각존 안에 공을 넣지 못한다면 경기는 끝나지 않는다. 이른바 ‘구속 혁명’의 시대, 얼마나 빠른 공을 던지느냐에 자연히 먼저 눈길이 쏠리지만, 그럼에도 ‘투수의 기본은 제구’라는 걸 보여주는 영건들이 있다.

키움 김인범(24)의 지난 21일 잠실 두산전 투구가 그랬다. 데뷔 첫 선발 등판에서 김인범은 단 60구를 던지며 5이닝을 1피안타 무실점으로 막았다. 직구 평균 구속은 시속 138㎞, 가장 빠른 공도 140㎞에 그쳤다. 핵심은 우타자 기준 바깥쪽 제구였다. 이날 방송 중계를 하며 경기 내내 김인범을 극찬한 이동현 스포티비 해설위원은 스포츠경향과 통화에서 “최근 리그에 바깥쪽 제구 잘되는 선수가 많지 않은데 김인범은 달랐다”고 말했다.

완벽했던 김인범의 바깥쪽 제구


바깥쪽 제구는 생각처럼 쉽지 않다. 바깥쪽으로 던진다고 던졌는데, 공 움직임 때문에 가운데로 몰리는 경우가 적지 않다. 김인범은 달랐다. 바깥쪽 제구가 완벽에 가깝게 이뤄졌다. 이 위원은 “우투수가 바깥쪽을 잘 던질 수 있으면 몸쪽 슬라이더 같은 변화구 가치도 높일 수 있다”고 말했다. 바깥쪽을 잘 던진다면, 몸쪽 공도 훨씬 더 위력적으로 구사할 수 있다는 설명이다.

김인범뿐 아니다. KT 신인 투수 육청명(19)은 최근 2차례 선발 등판에서 각각 5이닝 1실점, 5이닝 3실점(2자책)으로 호투했다. 두산 최준호(20)도 지난 23일 잠실 NC전 첫 선발 등판에서 5이닝 동안 1점만 내줬다. 구속도 그리 나쁘지 않았지만, 이들 역시 특히 돋보인 건 제구였다. 육청명은 2차례 선발 등판에서 10이닝 동안 사사구는 4개만 허용했다. 최준호는 NC전 공 67개 중 스트라이크만 47개를 던졌다.

투수 조련에 일가견이 있는 이강철 KT 감독은 최근 취재진과 만나 육청명에 대해 “투구 수 80개 안으로 5이닝을 던져주면 팀으로선 정말 고맙다”며 “스트라이크를 잘 던진다. 육청명이 던지다가 다음 투수들이 볼만 던지면 답답할 정도”라고 칭찬했다. 이 감독은 ‘스트라이크를 던질 줄 아는’ 육청명을 당분간 선발 투수로 꾸준히 기용할 계획이다.

물론 구속은 중요하다. 빠른공을 던진다는 것 자체가 엄청난 무기다. 그래서 제구나 경기 운영이 다소 부족하더라도, 일단 공이 빠르면 큰 기대를 받고 프로에 입성하는 경우가 많다. 하지만 제구를 잡는다는 게 말처럼 쉽지는 않다. 한껏 기대를 모았던 ‘파이어볼러’ 신인들이 제구가 안 돼 1군 기회를 잡지 못하는 사례가 허다하다. 오히려 제구를 갖춘 선수들이 프로 입단 후 체계적인 관리를 통해 구속을 끌어올리는 게 더 쉬울 수 있다는 주장이 나온다.

KT 신인 투수 육청명이 지난 23일 수원 한화전 선발 등판해 박수 치고 있다. KT 위즈 제공


구속이냐, 제구냐


이동현 위원은 “제구야말로 감각을 타고나야 하는 것”이라고 말했다. 그는 “요즘 드라이브라인 같은 좋은 훈련 프로그램이 많지 않으냐. 체격 조건 같은 게 받쳐준다면, 훈련을 통해 구속을 끌어올릴 여지는 충분하다”고 말했다.

오히려 제구를 잡는 게 더 어렵다는 게 그의 생각이다. 현역 시절 그가 그랬다. 이 위원은 “저도 예전에 공은 빨라도 제구가 안 되는 선수였다”며 “김성근 감독님 만나서 캠프 동안 투구 수 많이 가져가고, 감각을 익히면서 제구를 잡았지만 고생이 많았다”고 말했다.

구속이 화두가 되면서 학생 선수들까지 공 스피드를 끌어올리는데 사활을 걸고 있다. 150㎞를 던지지 못하면 프로구단 스카우트 눈에 들기도 쉽지 않은 게 현실이다. 구속이야 빠를수록 당연히 좋겠지만, 비용이 만만찮다. 당장 건강 우려가 나온다. 미국 메이저리그(MLB) 레전드 투수인 존 스몰츠는 최근 학생 선수들까지 구속을 올리려고 너무 이른 나이부터 무리를 한다고 지적하며 “제대로 된 조치가 나오지 않는다면, 우리가 알아차리기도 전에 위대한 재능들이 그들의 팔을 갈아버리고 말 것”이라고 한탄했다. 한국 야구에도 적용될 수밖에 없는 이야기다.

스트라이크를 던질 줄 아는, 젊은 투수들이 1군 무대에서 경쟁력을 입증하고 있다. KIA 2년 차 좌완 윤영철은 평균 140㎞를 밑도는 구속으로 올해 역시 순항 중이다. ‘구속 혁명’의 시대, 그러나 제구의 가치는 영원하다.

두산 최준호가 지난 23일 잠실 NC전 선발 등판해 투구하고 있다. 두산 베어스 제공


심진용 기자 sim@kyunghyang.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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