저출생 학교 통폐합 전쟁 [0.7의 경고, 함께돌봄 2024]

2024. 4. 26. 11: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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신입생 급감 지방학교 직격탄
하동고-여고 통합 20년 갈등
‘3개교 통합’ 홍성 진통 극심
“통폐합 기준 가이드라인 시급”

저출생에 따른 인구 감소로 폐교 위기 학교 간 통폐합이 추진되고 있다. 그러나 거주민, 학부모, 학교, 동문회 등의 이해관계가 엇갈리면서 갈등으로 번지고 있다.

코로나19가 강타한 2020년, 출생아 수가 20만명대로 떨어졌다. 1970년대 한 해 100만명씩 태어나던 것과 비교하면 출생아가 3분의 1 수준에 불과한 것이다. ‘국가 멸종급’인 저출생 사태는 비수도권·지역 학교에 직격탄이 됐다. 전국에서 폐교가 속출했다. 자구책인 학교 간 통폐합은 이해관계가 달라 논의가 쉽지 않다. 인구 감소는 현실이다. 하지만 통폐합이 인구 감소를 더 가속화하는 현실은 막아야 한다. 전국 통폐합 현장에서 벌어지는 갈등과 제도적 보완점을 살펴봤다.

“저한테 학교 팔아먹는 놈이라대요.” 경남 하동에서 50년째 살고 있는 학부모 박성연 씨는 최근 헤럴드경제와 통화에서 이렇게 말했다. 하동군은 현재 하동여고를 하동고로 흡수·통합하는 통폐합을 추진 중인데, 하동지역 학교운영위원회장협의회장을 맡고 있는 박씨는 여기에 ‘찬성’ 입장이다.

문제 제기는 하동여고 동문회 측으로부터 나왔다. 박씨는 하동여고 동문회가 박씨에게 ‘학교를 팔아먹었다’고 비난했다고 했다. 학교를 없애는 데 어떻게 찬성할 수가 있냐는 것이 동문회 입장이다. 박씨 생각은 다르다. 하동여고 학생수는 지난 10년 사이 절반이 줄었다. 두 학교를 합치는 것이 폐교를 늦추는 최선의 방법이라는 것이 박씨의 생각이다. 하동군 관계자는 “이러다 두 학교 모두 형편 없는 소규모 학교로 전락할지 모른다”고 우려했다. ▶관련기사 4면

가파른 인구 감소로 전국에서 학교 통폐합을 둘러싼 갈등이 속출하고 있다. 통폐합은 인구 감소 여파로 학교들이 폐교 위기에 몰리기 전 최소한의 교육 여건을 보장하기 위해 교육청들이 택하는 대안이다. 그러나 지역에는 갈등의 불씨다. 거주민, 학부모, 학교, 동문회 등의 이해관계가 엇갈린다. 의견차가 좁혀지지 않는 사이 학생은 계속 줄어든다. 저출생 직격탄을 맞은 전국 곳곳이 ‘전쟁급’ 학교 통폐합 논쟁이 벌어지고 있다.

▶사립 재단 ‘보이콧’ 속 하동 학교 통합은 ‘20년째 갈등’=하동의 학교 통폐합 갈등은 20년째 해묵은 과제다. 행정안전부에 따르면 하동군의 인구는 50년 전 15만명 선에서 지난해에는 4만여 명 수준으로 떨어졌다. 하동여고 학생 수도 최근 10년 사이 절반으로, 하동고는 30% 가까이 줄었다. 다른 도시로 떠나는 학부모가 늘며 재학생 수 감소는 빨라지고 있다. 두 학교 모두 폐교 되기 전 학교를 합쳐 경쟁력을 살리려는 게 하동군의 계획이다.

두 학교 통합은 2000년대 초반부터 수차례 추진됐지만 번번이 무산됐다. 하동여고를 소유한 사립 재단인 학교법인 하동육영원 측 반대 때문이다. 하동군은 지난해 통폐합을 위한 TF팀을 다시 꾸렸지만 재단 입장은 여전하다. 사립학교는 학교 재단이 반대하면 통폐합을 강제할 수 없다.

교육혁신 업무 담당인 한성수 하동군 주무관은 “학교가 어느 정도 규모가 있어야 입시에서도 경쟁력이 있다 학부모들은 대체로 통합에 찬성하는 입장”이라며 “그러나 (하동여고)재단은 아직 학생이 충분하기 때문에 논의 자체를 보이콧하겠다는 입장으로 학교 관계자와 학부모, 주민이 함께 하는 회의에도 오고 있지 않다”고 말했다.

박성연씨는 “하동군과 가까운 (경남)진주 소재 고등학교에 아이를 보내려는 학부모가 늘고 있다. 하동에 있는 학교를 보내는 학부모는 마치 능력이 없어서인 것처럼 느껴질 정도”라고 했다. 하동여고는 학생수 부족으로 기숙사 학생들 대상 아침 계약도 이미 끊겼다. 내년 전면 도입 예정인 고교학점제도 역시 이들에겐 고민거리다. 고교학점제는 다양한 과목을 학생이 직접 선택하도록 하는데, 학생과 교사 수가 적다면 여러 수업을 개설하는 것 자체가 어렵기 때문이다.

▶“통합할 거면, 우리 동네 학교부터”…‘3개교 통합’ 홍성 진통=어떤 학교를 살리고 어떤 학교를 닫을지도 역시 통폐합의 갈등 요인 중 하나다. 충남 홍성에서는 3개 학교 통합 논의가 진행 중이다. 통합 대상인 학교들의 신입생은 지난해 기준 각각 결성초 1명, 은하초 2명, 신당초 6명에 그쳤다. 이들 학교는 각각 다른 면에 위치해 있다. 학교 간 거리는 10㎞ 안팎이다. 충남도교육청은 지난해 학교 간 통합을 시도했지만 학부모들의 반대로 무산됐다. 충남교육청은 올해 다시 학부모 설득에 나설 예정이다. 소규모 학교까지 모두 교사를 배치하느라 교사들이 여러 학교에서 ‘순회’ 수업을 하는 등 부담이 크다는 것이 충남교육청의 설명이다.

학부모들의 고민도 크다. 지난해 전교생이 18명에 불과한 결성초의 한 학부모는 “우리 마을에는 정말 학교가 없으면 안된다”고 했다. 결성초 인근 결성중은 6년 전 폐교됐다. 이후 학교 부지에 야구단이 들어서긴 했지만, 동네가 눈에 띄게 한적해졌다는 게 그의 설명이다. 이 학부모는 “야구단 학생들은 결국 외지인이다. 젊은층 유입엔 도움이 되지 않는다”며 “만약 결성초를 살리는 방향이 아니라면 통합에 찬성하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학부모 사이에서는 학교 통합이 지역 소멸을 부추길 것이란 우려도 크다. 표미자 홍성군학교학부모회장단협의회장은 “(통합하면)교장 선생님도 하나 없어지고, 선생님도 줄어드는 문제가 있어 대부분 학부모는 반대하고 있다”며 “홍성에선 청년 귀농을 홍보해왔으면서 정작 이들의 자녀가 갈 학교를 없애는 건 앞뒤가 안 맞다”고 지적했다.

이어 “이미 지역마다 유치원도 없어지고 어린이집도 없어지는 상황에 동네가 소멸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든다”고 덧붙였다.

▶“지역 갈등 끝 ‘줄폐교’ 악순환…통폐합 가이드라인 필요”=문제는 이렇듯 학교 통합을 둘러싸고 수년째 갈등이 이어지면 결국 폐교 수순을 밟을 개연성이 커진다는 점이다. 학교 통합은 폐교를 늦추기 위한 고육책인데 통합에 대한 이해관계자들의 입장 차가 클수록 결국 폐교 수순을 밟게 될 가능성이 커지게 된다는 설명이다.

실제로 강원 춘천 A면에서는 통폐합을 둘러싸고 20년 가까이 갈등이 계속되다 4개 초등학교·초등학교 분교, 1개 중학교가 모두 문을 닫았다. 갈등 이유는 학부모들과 지역민들 사이의 이해관계가 달라서였다. 학부모들은 학교들이 통폐합되지 않는다면 춘천 등 다른 대도시로 자녀들을 보내고 싶어했다. 그러나 각 마을 주민들은 ‘우리 동네 학교가 남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입장은 엇갈렸고 각 학교들은 모두 폐교됐다.

해당 사례를 연구한 이동성 전주교대 초등교육과 교수는 한 마을 주민으로부터 “여러 마을의 사람들이 한 자리에 모였는데 합의가 안 됐다. ‘솔직히 누가 자기 모교 아닌 다른 학교를 살리고 싶겠느냐’는 말을 들었다”고 했다.

일각에선 학생 수가 절대 기준인 현행 제도의 문제가 되레 지역 소멸을 부추긴다는 지적도 나온다. 학령인구 감소로 통폐합을 막을 수 없는 것이 현실인 만큼, 해당 지역의 특성과 이해관계자들의 요구를 절충할 수 있는 세부 가이드라인이 필요하다는 설명이다.

이 교수는 “천편일률적으로 학생 수만 기준으로 해 통폐합을 결정하고 학부모 투표만으로 쉽게 결정하는 것이 문제”라며 “지역의 경제라든지 문화, 인구 수 등 복합적인 요인들을 고려해 통폐합 가이드라인을 만들어야 한다”고 말했다. 현재 교육청들의 통폐합 대상 학교 분류는 초등학교 기준 ‘전교생 360명’이 기준이다.

박혜원 기자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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