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벌써 32년”…순직한 아들에 편지 900통 넘게 쓴 父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2024. 4. 26. 11: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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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한아, 너와 헤어진 지 벌써 32년이 되었구나.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 뒤늦게 이 말의 깊은 뜻을 알겠구나. 아빠도 이제 80대 중반으로 머리가 하얗고 허리가 구부정하고 걸음걸이가 느릿느릿하여 50이 넘은 너를 가슴에 담고 있는데 네 몸이 너무 무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훗날 아빠가 하늘나라로 가 네가 반갑게 아빠 손을 잡아줄 때 내 품에 너를 안고 싶다. 부디 네가 하늘나라에서 평화롭게 지내길 바란다. 아들아, 너를 사랑한다."

1991년 입대해 그해 순직한 고(故) 전새한 이병의 아버지 전태웅 씨는 26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현충광장에서 열린 제1회 순직의무군경의 날 기념식에서 '아버지의 편지'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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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한아, 너와 헤어진 지 벌써 32년이 되었구나.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 뒤늦게 이 말의 깊은 뜻을 알겠구나. 아빠도 이제 80대 중반으로 머리가 하얗고 허리가 구부정하고 걸음걸이가 느릿느릿하여 50이 넘은 너를 가슴에 담고 있는데 네 몸이 너무 무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훗날 아빠가 하늘나라로 가 네가 반갑게 아빠 손을 잡아줄 때 내 품에 너를 안고 싶다. 부디 네가 하늘나라에서 평화롭게 지내길 바란다. 아들아, 너를 사랑한다.”

1991년 입대해 그해 순직한 고(故) 전새한 이병의 아버지 전태웅 씨는 26일 오전 대전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 현충광장에서 열린 제1회 순직의무군경의 날 기념식에서 ‘아버지의 편지’를 통해 이렇게 말했다. 국가보훈부에 따르면 전 씨는 아들이 순직한 이후 30여 년 간 편지 900여 통을 써 묘소에 두거나 국립대전현충원 ‘하늘나라 우체통’에 넣었다.

26일 대전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순직의무군경의날 기념식에 참석한 유족 대표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26일 대전시 유성구 국립대전현충원에서 열린 순직의무군경의날 기념식에 참석한 유족 대표가 눈물을 흘리고 있다. 뉴시스
고(故) 전새한 이병의 아버지 전태웅 씨. KTV 국민방송 갈무리
보훈부는 올해부터 병역 의무를 이행하다가 순직한 젊은이들을 추모하기 위해 매년 4월 넷째 주 금요일을 국가기념일인 ‘순직의무군경의 날’로 기린다. 기념일을 4월로 지정한 건 가정의 달인 5월을 앞두고 가족을 잃은 유족을 위로하기 위해서다.

순직의무군경은 현재 1만 6000여 명이다. 한덕수 국무총리는 이날 기념식에서 “의무군경의 헌신을 최고의 예우로 보답하는 것은 국가의 기본적인 책무”라며 “대한민국은 남다른 사명감으로 국가와 국민을 사랑했던 청년들을 잊지 않겠다”고 했다.

고(故) 전새한 이병의 아버지 전태웅 씨의 편지

사랑하는 아들아, 4월의 봄은 올해에도 어김없이 찾아오고 겨울의 긴 추위 속에서 움츠려있던 생명체가 언 땅을 헤집고 다소곳하니 고개를 숙이며 새싹들이 솟아나는 구나. 나는 지금도 길에서 군복을 입은 병사를 보면 가슴이 철렁 내려앉으면서 너를 보는 듯 정신을 차릴 수가 없단다. 아직도 너와 함께 지낸 때의 기억이 새록새록 되새겨지는구나. 네가 고등학교에 입학하여 네 엄마에게 신발과 잠바를 사달라고 했을 때, 공부나 열심히 하라면서 나무라던 일이 정말 한이 된다. 네가 겨우 20여 년을 함께 살려고 했으면 차라리 태어나지 말지 왜 이렇게 가슴을 아프게 하느냐. 그 때 일을 후회하고 후회하여도 아빠는 너무 독선적이었고 인색하기 짝이 없었다. 그 나이에 얼마나 입고 싶고 하고 싶은 일이 많았을까. 살아있을 때 단 한 번이라도 네 행동에 칭찬하고 네가 원하던 모든 것을 해주었다면 아빠는 지금처럼 이렇게 가슴이 아프지 않았을 텐데. 향기 나는 딸기 철이나 싱그러운 포도 철에 그리고 맛있는 음식을 먹을 때마다 네가 생각나서 맛나게 먹을 엄두를 낼 수가 없다. 새한아, 너와 헤어진 지 벌써 32년이 되었구나. 부모님이 돌아가시면 산에 묻고 자식이 죽으면 가슴에 묻는다는 옛 어르신들의 말씀, 뒤늦게 이 말의 깊은 뜻을 알겠구나. 아빠도 이제 80대 중반으로 머리가 하얗고 허리가 구부정하고 걸음걸이가 느릿느릿하여 50이 넘은 너를 가슴에 담고 있는데 네 몸이 너무 무거워 어찌할 바를 모르겠다. 훗날 아빠가 하늘나라로 가 네가 반갑게 아빠 손을 잡아줄 때 내 품에 너를 안고 싶다. 부디 네가 하늘나라에서 평화롭게 지내길 바란다. 아들아, 너를 사랑한다. 2024년 4월 26일 아빠가 보낸다.

정봉오 동아닷컴 기자 bong087@dong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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