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정 잡다 가해자 가출” 학폭조사관제 회의론… 교육청들 ‘선택제’ 전환

2024. 4. 26. 10: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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교사 민원 해방 취지 학폭 전담조사관
교사들 민원에 교육창들 ‘선택제’ 전환
[123RF]

[헤럴드경제=박혜원 기자] #.“언제쯤 심의를 할 수 있을지….” 인천의 한 중학교 교사 A씨는 최근 학내에서 발생한 폭행 사건 때문에 고민이 크다. 외부인인 학교폭력 전담조사관과 학생들 간 면담 일정을 조율하던 중 가해 학생이 ‘가출’을 하면서다. 당연히 사안 조사는 ‘올스톱’ 됐다. 사건 발생 일주일 만이다. 이 교사는 “조사관이 개입하면서 오히려 사안 처리가 길어지고, 그 사이 학생들과 학부모들 관계가 돌이킬 수 없이 악화하는 경우가 많다”고 털어놨다.

학교폭력 조사 업무를 학교가 아닌 외부인이 맡도록 하는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를 둘러싸고 전국 곳곳에서 ‘회의론’이 나오고 있다. 모든 학교폭력에 조사관이 개입하며 오히려 교사 부담이 늘어나거나 처리가 늦어진다는 민원이 잇따르면서다. 일부 교육청들은 조사관 개입을 의무제에서 ‘선택제’로 전환하거나, 전환 검토를 위해 현황 전수조사에 들어갔다.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시행 두달…교육청 3곳서 이미 ‘선택제’ 전환

26일 전국 17개 시도 교육청에 따르면 현재 3개 교육청(서울·강원·전남)은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제도를 ‘선택제’로 운영하고 있다. 당초 피·가해자 연령이나 심각성 정도에 상관 없이 모든 사안에 조사관을 파견하도록 한 교육부 지침과는 반대되는 방향이다.

학교폭력 전담조사관은 퇴직 경찰이나 교원을 전국 교육지원청이 위촉직으로 선발해 교사 대신 학교폭력 조사를 맡고 징계 수위를 결정하는 심의위원회에도 참석한다. 그간 교사들이 학교폭력 조사를 맡으면서 학부모들의 악성 민원에 노출됐다는 지적이 잇따르면서 마련된 조치다. 조사관 수는 지난달 기준 전국에 1880여명이다.

다만 모든 학교폭력 사안에 조사관을 파견하게끔 하는 지침과 관련해 현장에선 회의적인 의견들도 잇따랐다. 특히 경미한 사안은 학교에서 직접 해결할 수 있도록 해달라는 민원이 많았다. 일부 교육청들이 제도 시행 두 달이 채 지나기도 전에 조사관 개입을 선택제로 바꾼 이유다.

서울시교육청은 지난달 학교폭력 전담조사관 관련 전수조사를 거쳐 이같은 조치를 했다. 서울시교육청 관계자는 “학교들이 선택할 수 있게끔 했더니 조사관을 거치지 않고 자체적으로 해결한 사례들이 적지 않았다”고 설명했다. 강원도교육청은 “성범죄 사안은 외부인에 맡기는 것이 더욱 껄끄러운 경우가 많아 이를 고려해 학교들이 선택하도록 했다”고 했다.

교사들 항의 잇따라…전수조사 나선 교육청들도
지난 2월 서울 중구 성동공업고등학교에서 열린 학교폭력 전담 조사관 역량강화 연수 개회식에서 한 조사관이 안내 책자를 읽고 있다. [연합]

선택제 전환을 검토하기 위해 현장 의견 수렴에 착수한 곳들도 있다. 인천시의회는 오는 5월 2일 인천교육정책원과 함께 현장 교사들과 토론회를 열기로 했다. 전담조사관 제도가 당초 취지를 살리지 못한다는 의견들이 잇따르면서다.

경남교육청은 이달 중 관내 모든 학교를 대상으로 하는 전수조사를 마치고 학교들이 조사관 개입을 선택하게끔 할지 여부를 결정할 계획이다. 경기도교육청 역시 “조사관 개입이 교육적 해결에 방해된다는 의견도 있어 계속해서 일단은 청취하고 있다”고 했다.

전남은 조사관 의무배정을 원칙으로 하고 있지만, 외부 조사관보다는 교육청 소속 별도 조사관 선호가 더욱 높다. 전남교육청 관계자는 “5년 임기제로 활동해 전문성이 높은 교육청 소속 조사관을 학교에서 원하는 경우가 더욱 많다”고 했다.

다만 교육부는 당초 취지대로 모든 사안에 대한 조사관 파견이 원칙이란 입장이다. 교육부 학교폭력대책과 관계자는 “외부인이 조사하도록 함으로써 객관성을 높이고, 교사 민원과 업무 부담을 줄이도록 한다는 원칙은 분명하다”고 말했다.

업무 부담 여전, 개인정보 유출…교사들 우려는 계속

현장의 의견은 엇갈린다. 교사를 학부모 민원으로부터 차단하는 효과를 무시할 수 없다는 긍정적 의견도 있지만 업무 부담을 줄이는 데엔 큰 효과가 없다는 지적도 함께 나온다. 인천의 교사 B씨는 “조사관들이 학생들 얼굴과 이름을 모르니 폐쇄회로(CC)TV를 볼 때도 같이 봐야하고, 사안 처리 기간이 길어지면서 교사가 부담을 떠안게 된다”고 말했다.

전북의 한 학교폭력 담당 교사 C씨는 “학교폭력이 발생하면 처벌도 중요하지만 학생들의 관계회복을 돕는 일도 중요한데, 외부인이 들어오면서 오히려 학부모와 학생들 감정의 골만 더 깊어지는 일들도 많다”고 했다.

조사관에 학교폭력 조사를 맡기는 과정에서 개인정보가 무분별하게 노출된다는 우려도 있었다. 한 교사는 “학생들의 민감한 정보가 다 담긴 학교폭력 문서를 메일로 주고 받는 과정에서 어떻게 자료가 유출될지 학교 입장에선 알 수가 없다”고 했다.

대전의 한 교사는 “교사들 민원 노출을 방지한다는 효과는 절대 무시할 수 없고, 선택제로 전환할 경우 학교장 의견에 좌지우지되기 쉬워 조심스러운 부분”이라면서도 “집단폭행으로 끝나거나 성범죄인 극단적 사례가 아닌 경우 대개 처분이 ‘출석정지’에 그쳐 실효성이 없다는 근본적 문제는 바뀌지 않았다”고 지적했다.

klee@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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