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왕의 가방, 가방의 여왕

최보윤 기자 2024. 4. 26. 10: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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델보 DELVAUX
최근 드라마 ‘눈물의 여왕’에서 재벌 3세 상속녀 홍해인으로 활약하며 화제몰이를 하고 있는 배우 김지원. /하이지음스튜디오 주식회사 제공

‘눈물의 여왕’, ‘반전의 여왕’, ‘시청률의 여왕’…. 앞에 뭐가 붙든 간에 배우 김지원을 향한 결론은 하나다. ‘여왕’. 동시대 같은 또래 배우 중 그녀만큼 ‘여왕’이 가장 잘 어울리는 배우가 또 있을까. 연기력도, 미모도 압도적이란 평가와 함께 가장 주목받는 스타로 떠오르고 있다.

보석처럼 화사하고 뚜렷한 이목구비를 가졌음에도 극도로 자연스러운 조화가 오히려 희소성 있게 느껴질 정도다. 측면에서 봐야 알아채는 단단하고 각진 턱은 해외에서 각광받는 일명 ‘귀족턱’이다. 속삭일 때도 귀에 쏙 들어오는 발음이 발성 좋기로 소문난 상대배우 김수현에 전혀 밀리지 않는다. 일부러 처진 입매를 연기하며 세상 다 산 표정에, 일부 풀린 듯한 눈빛, 나른한 말투로 화면을 가득 채울 때나(나의 해방일지), 가슴이 비어 있는 듯 ‘거리 두기’ 표정에 철제 인형 같은 스타카토식 얼음장 말투로 포장해도 화면에 포착된 그의 커다란 눈망울은 배역 속 따스한 진심을 그대로 투사해낸다.(눈물의 여왕).

브리앙 PM 블랙.

◇여왕의 패션, 패션의 여왕

경쾌하되 가볍지 않고, 화려하되 천박하지 않다. 요즘 갖추기 어려운 균형 감각에 소박해 보이기까지 한 품성은 드라마를 넘어서 대중의 사랑을 끌어내기에 충분해 보인다. 그렇다 보니 그의 패션도 화제다. 극 중 재벌가에 맞게 고급 브랜드 옷을 계속 바꿔 입고 나오지만, 옷이 비싸다고 해서 가방이 한정판이라고 해서 배우가 빛나는 건 아니다. 재벌가 누구를 연상케 하며 따라 하는 것도 아니고, 그렇다고 요즘 유행하는 ‘조용한 럭셔리’로만 옷장을 채우는 것도 아니다. 예쁜 옷을 입기 위해 코르셋을 조여가며 숨도 제대로 못 쉬고 옷에 몸을 맞추는 게 아니라, 가끔은 털썩 땅에 주저앉을 수도 있는 김지원식 털털함이 오히려 더 고급스럽게 보이게 한다. 의상은 곧 태도이니까.

브리앙 Mini 비죵. /델보 제공

김지원이 극 중 착용했던 셀린느, 발망, 생로랑, 발렌티노, 델보 등 해외 명품 브랜드부터 아보아보 등 국내 패션 브랜드까지 드라마의 인기와 함께 주목받았다. 그중에서 특히 입소문을 탔던 건 델보의 가방들. 셋업 슈트와 청바지 등 캐주얼한 분위기 의상에 착용하는 모습이었다. 팬들은 드라마에서 스쳐 지나가는 장면까지 놓치지 않고 제품이 무엇인지 정보를 찾아내곤 했다. 델보가 평소에 적극적인 연예인 협찬이나 마케팅을 진행하는 브랜드가 아니기에 김지원이 소화해낸 모습은 ‘스타일의 정석’으로 꼽히고 있다.

◇여왕의 가방, 가방의 여왕

우연이겠지만, 델보가 유명해진 건 진짜 ‘왕실’ 덕분이다. 일명 ‘여왕의 가방’이랄까. 델보의 팬이자 현재 벨기에 왕대비인 파올라 루포 디 칼라브리아가 왕비가 되기 이전 공주 시절부터, 또 이후 왕비가 된 뒤에도 ‘애착 가방’처럼 자주 이용했다. 벨기에 파울라 왕비가 들고 다니는 모습이 해외 매체 카메라에 담기면서 유럽에선 왕가와 귀족의 가방으로 자리매김했다.

1959년 벨기에 국왕 알버트 2세와 파올라 왕비의 결혼선물로 제작된 델보의 몽 그랜드 보뇌르 백.

벨기에 왕국이 네덜란드로부터 독립한 1830년보다도 1년 먼저인 1829년 샤를 델보(Charles Delvaux)가 벨기에 브뤼셀에 여행용 가죽 제품 전문점을 열며 탄생한 델보는 세계 최초의 럭셔리 레더 하우스로 발돋움했다. 1883년 ‘벨기에 왕실 공식 공급업체’로 선정되며 품격을 높였다. 일부를 위한 제품은 통찰력으로 세상을 바꿔놓는다. 교통의 발달로 여행이 대중화될 것을 내다보고 1908년 핸드백 디자인 특허를 내놓은 것이다. 요즘 의미의 현대적인 핸드백이 델보의 특허를 통해 세상에 나왔다. 델보는 물건을 넣어 열고 닫으며 가지고 다닐 수 있는 ‘휴대’라는 개념을 창작하고, 그 역할에 걸맞는 새로운 ‘사물’을 탄생시킨 것이다.

델보는 3000개가 넘는 핸드백 디자인이 포함된 아카이브를 보유한 것도 특징. 1908년을 시작으로 오늘날까지 완성된 모든 제품의 상세한 설명과 스케치들은 델보의 골든북 ‘르 리브르 도르(Le Livre d’Or·황금책이란 뜻)’에 기록되고 있다. 가장 상징적인 핸드백 중 하나인 ‘브리앙(Brillant)’은 1958년 브뤼셀 세계 박람회를 기념해 디자인됐다. 64개의 레더와 메탈 피스로 완성되는 브리앙 제작은 까다로운 기술과 정확성이 뒷받침됐다. 피스 조립에만 8시간 이상이 필요하다. 풍부한 유산을 바탕으로 델보는 설립 190주년을 기념해 브뤼셀 아스날 지역 델보 본사에 델보 박물관을 열었다. 2021년엔 까르띠에·바쉐론 콘스탄틴·반클리프아펠·몽블랑 등을 보유한 글로벌 명품 그룹 리치몬트 그룹에 새롭게 합류하며 또 다른 도약을 꿈꾸고 있다.

땅페트 PM 코리아 익스클루시브.

◇동·서양 문화를 잇는 다리가 되다.

델보의 ‘브리앙’은 프랑스어로 빛난다는 뜻. 장인정신을 바탕으로 제작된 고가의 가방 그 자체가 빛날 수도 있고, 가방을 드는 이를 빛나게 한다는 의미로 붙은 명칭이기도 하다. 찬란한 유산을 담은 델보는 이번엔 ‘정신적인 찬란함’을 선보였다. 단순히 가방이라는 상품보다는, 동양과 서양의 정신을 잇는 예술적인 면모를 강조한 것이다.

1829년 탄생한 세계 최초의 레더 하우스 델보는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서울 북촌 휘겸재에서 2024 Haute Maroquinerie(오뜨 마호키느히) 이벤트를 진행했다. ‘SAVOIRS ET SAVOIR-FAIRE(지식과 노하우)’를 주제로 한 이번 이벤트에서는 200여 년간 이어온 델보의 가죽 공예 기술력과 벨기에 예술의 생동감 넘치는 융합의 장을 선보였다.

한글로 델보라고 쓰인 로고 현판이 장식된 휘겸재 입구. 이곳에서 지난 16일부터 18일까지 2024 Haute Maroquinerie(오뜨 마호키느히) 이벤트를 진행했다. ‘SAVOIRS ET SAVOIR-FAIRE(지식과 노하우)’를 주제로 한 이번 이벤트에서는 200여 년간 이어온 델보의 가죽 공예 기술력과 벨기에 예술의 생동감 넘치는 융합의 장을 선보였다.

한글로 델보라고 쓰인 로고 현판이 장식된 입구로 입장과 동시에 만난 SAVOIRS ET SAVOIR-FAIRE 문구는 자개장, 달 항아리 오브제 그리고 벚나무 장식과 함께 어울려 동서양 문화의 우아한 조화를 표현했다. 중앙의 좁은 통로 끝엔 델보의 브리앙 컬렉션 이미지가 눈길을 끌었다. 1958년 탄생한 브리앙 컬렉션 액자 이미지와 조선시대 고가구의 멋스러운 조화를 바라보며 걷다 만나게 되는 대청마루에선 절대 시들지 않고, 사시사철 영롱한 ‘꽃’이 피어 있었다.

라벤더, 옥 덩굴, 데이지 등의 꽃 모티브를 이용한 오뜨 꾸튀르 컬렉션과, 벚나무에서 영감을 받아 디자인하고 수준 높은 수공 비즈 장식 기법을 더해 탄생한 Korea Exclusive(코리아 익스클루시브) 에디션 등이 한옥의 풍경을 더욱 풍성하게 했다. 경쾌하면서도 절대 나대거나 가볍지 않고, 화려하면서도 사치스럽거나 천박하지 않은 균형감각이 고스란히 펼쳐져 있었다. 2024년 가을-겨울 신제품 카프리스 컬렉션이 아시아 최초로 공개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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