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임 비서실장 정진석은 ‘대통령실 비선 라인’ 정리할 수 있을까

박나영 기자 2024. 4. 26. 10:0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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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건희 여사와 일면식도 없다”는 정진석,  일성은  “대통령실 직원들 정치하지 마라”
 ‘박영선 총리·양정철 실장 기용설’로 표면에 떠오른 대통령실 내 ‘비선 라인’ 난맥상 주목

(시사저널=박나영 기자)

"정치는 대통령이 하는 것이지 비서들이 하는 게 아니다." 4월24일 정진석 신임 대통령실 비서실장의 첫 일성이다. 간단한 이야기가 아니다. 말 속에는 변화를 향한 결의가 엿보인다. 메시지가 겨냥하는 과녁도 다층적이다. 문제의식은 엄중하다. 최근 '박영선 총리·양정철 비서실장 기용설'로 표면에 떠오른 용산 대통령실의 난맥상이 단순한 메시지 혼선이 아니며 분명히 짚고 해결해야 한다는 문제의식이 담긴 공개 경고다. 첫 일성으로 공개적인 경고 메시지를 낸 데는 '비선 의혹'까지 불러온 현 상황에 대한 짙은 문제의식이 담겼다는 관측이 나온다. 지금 이 문제를 대통령비서실장으로서 자신이 가장 먼저, 시급하게, 반드시 해결해야 할 이슈로 꼽았다는 평가도 있다.

윤석열 대통령이 4월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인사 브리핑에서 신임 대통령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대통령실에 공개 경고 메시지 낸 정진석 

실제 4·10 총선 패배 이후 여권에 몰아닥친 후폭풍 중 가장 거센 비판과 공격의 대상도 바로 이 문제다. 야권의 공격은 물론 여권에서도 우려가 나오고 있다.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당선자는 "윤석열 정부 제2의 최순실(개명 후 최서원)은 누구인가 밝혀야 한다"며 "꼼수로 결국은 자기 사람 등용하는 사술이 계속되고 있다"고 맹공을 펼쳤다. 박 당선자는 "간보기" "위장협치" "야당 파괴 공작" 등 거친 메시지도 쏟아냈다. 그만큼 야권의 반발은 거셌다. 여권의 충격도 컸다. 친윤계 핵심으로 평가받는 권성동 국민의힘 의원은 '박영선·양정철 기용설'이 나오자 "당 정체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는 인사는 내정은 물론이고 검토조차 해선 안 된다. 많은 당원과 지지자분들께서 충격을 받았을 것"이라고 지적했다. 

절체절명의 순간에 구원투수 역할로 임명된 정진석 비서실장은 과연 대통령실을 둘러싼 여러 논란을 수습하고 내부 기강을 다잡을 수 있을까. 비정치인 출신이었던 전임 비서실장들과 달리 더 기울어진 여소야대 등 현재의 난관을 돌파하려면 '정무형 비서실장'이 필요하다는 의견과 대통령에게 쓴소리를 하고 행동 변화를 끌어낼 수 있는 '설득형 비서실장'이 필요하다는 주장이 엇갈리는 상황이었다. 윤 대통령의 선택은 정진석 비서실장이었다. 과연 정 비서실장은 '비선 라인'으로 통칭되는 김건희 여사 주변 인사들의 문제를 말끔히 해소하고, 현재의 여권에 몰아닥친 후폭풍을 잠재울 수 있을까. 

양정철 전 민주연구원장(왼쪽 사진)과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 ⓒ연합뉴스

이상민 "김 여사가 인사 문제에 관여한다는 소문 돌아"

시사저널 취재를 종합하면, 정 실장은 대통령실 내 이른바 공식·비공식 라인 간 암투로 비춰지는 현상을 정리해야 한다는 분명한 인식을 가지고 있는 것으로 파악됐다. 특히 정 실장은 비서실장 임명 후 주변에 비선 의혹과 관련한 언급을 하면서 "김 여사와는 일면식도 없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울러 그는 대통령실의 공식 라인이 아닌 곳에서, 대통령실의 공식 입장과 다른 의견이 산발적으로 외부에 흘러나가 혼란을 일으키는 점에 대해 상당한 문제의식을 갖고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대통령실에 '제3의 라인' 혹은 비선은 존재할까. 이 의혹을 수면 위로 끌어올려 폭발시킨 결정적 계기는 최근 불거진 '박영선 총리, 양정철 비서실장' 기용설이다. 대통령실이 공식 부인했음에도 '대통령실 핵심 관계자' '대통령실 관계자'를 인용해 "검토하고 있던 것은 맞다" "대통령이 의지가 있다"는 취지의 발언이 나오면서 대통령실의 난맥상은 고스란히 드러났다. 공식 인사 업무를 맡고 있지 않은 '제3의 라인'이 대통령실 공식 정무라인(비서실장+정무수석+홍보수석)을 패싱한 채 외부에 이런 이야기를 흘렸고, 대통령실의 "전혀 사실 무근"이라는 공식 발표를 또 한번 번복하는 상식 밖의 사건이 벌어진 것이다. 특히 대통령실 업무를 총괄하는 이관섭 당시 대통령비서실장은 물론 정무·홍보수석도 해당 인선설을 알지 못한 것으로 전해지면서 '비선 의혹'은 걷잡을 수 없이 커졌다. 

'제3의 라인'과 관련해 일각에서는 '김건희 여사의 측근들'을 지목하는 목소리를 낸다. 이상민 국민의힘 의원은 KBC 토론 프로그램 《국민맞수》에 출연해 "김 여사가 이런 인사 문제 또는 정무 문제에 관여한다는 소문이 많이 돌고 있다. 진위는 모르겠다. 아직까지는 잘 알 수 없는 거고. 하지만 그 소문에 대해선 대통령도 아실 것"이라고 말했다. 정치권에서 오래전부터 돌던 얘기들이 언론보도와 고위 관계자, 의원들의 입을 통해 본격적으로 흘러나오는 양상이다. 천하람 국회의원 당선자도 SBS라디오 인터뷰에서 "김건희 여사 라인이라고 생각한다"며 "하루 이틀 된 이야기가 아니다. 지금 이 얘기들은 '인사 라인이 아니라 홍보기획 라인에서 나온다'는 설이 도는데 홍보기획 라인은 아무래도 김 여사의 입김이 좀 세게, 그 구성될 당시부터 들어간 게 아니냐는 얘기들이 정설처럼 돌고 있다"고 말했다. 

김 여사 측근으로 분류되는 대통령실 참모들이 실명과 함께 정치권 입방아에 오르내리면서 '비선 라인'의 실체는 점점 구체화되는 모습이다. 한 여권 핵심 관계자는 "3간신, 4간신 하다가 요즘은 8상시라는 말까지 나온다"며 김 여사와 인연이 깊은 인물들을 특정해 거론했다. 이에 대통령이 김 여사와 인사 문제를 논의하고 일부 참모가 이 내용을 세간에 흘린 게 아니냐는 추측도 나온다. 박영선 전 장관이나 양정철 전 원장은 김건희 여사와 친분이 있는 것으로 알려졌다. 박 전 장관은 2022년 1월 MBC라디오에서 "(김건희 여사와) 잘 안다. 옛날에 기획전시를 하시던 분이었는데 제가 문화부 기자를 했다. 윤석열 후보와 결혼하기 전부터 (김 여사를) 알았다"고 언급한 바 있다. 

네덜란드 국빈 방문 일정을 마친 윤석열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가 2월15일 성남 서울공항 2층 실내 행사장으로 귀국하고 있다. ⓒ연합뉴스

"3간신, 4간신 하다가 요즘 8상시란 말 나온다" 

추측이 꼬리를 무는 가운데 김 여사의 정치적 뿌리가 '친문재인(친문)과 맞닿아 있다는 설까지 흘러나왔다. 이현종 문화일보 논설위원, 신지호 전 새누리당(국민의힘 전신) 의원은 유튜브 채널 《어벤저스 전략회의》에서 박영선 전 장관, 양정철 전 원장과 대통령 부부의 친분관계를 소개하면서 "'3철(양정철·이호철·전해철)'로 불리는 문재인 전 대통령의 복심 중 한 명인 양 전 원장이 비서실장으로 임명된다면 정권의 정체성이 흔들리는 것은 물론, 윤석열 대통령의 핵심 지지층이 한순간에 다 붕괴될 것"이라고 비판했다. 핵심 지지층의 흔들림까지 감지되는 상황에 이르자 김건희 여사의 팬클럽 회장 강신업 변호사는 "용산 '3간신' 얘기가 파다하다. 대통령께서는 능력도 없으면서 자리를 차지하고 있는 무능 예스맨을 정리하시기 바란다"며 홍보, 의전, 대외협력 라인의 경질을 주장하기도 했다.  

정진석 비서실장은 그간 윤 대통령의 '역린'처럼 여겨져 왔던 김건희 여사와 관련된 논란을 해소할 수 있을까. 정치권에서는 긍정적인 기대감도 엿보인다. 정 실장이 '할 말은 하는 정치인'이라는 평가가 녹아있는 기대다. 야권에서도 이런 기대감은 나오고 있다. 박지원 민주당 당선자는 "윤 대통령은 검찰총장 출신이라 명령하려고 하는데 정진석 의원은 바른말을 하시는 분이니 함부로 못 할 것 아닌가"라고 말했다. 바로 이 점 때문에 대통령실의 혼란 수습은 물론 국정 기조 변화의 가능성에 무게를 두는 전망이 있다. 정 실장이 임명 이후 "김 여사와는 일면식도 없다"고 주변에 밝힌 점도 이런 기대감을 높이는 대목이다. 

반면 '옷만 갈아입은 것뿐 속은 바뀌지 않을 것'이라는 부정적인 관측도 나온다. 박성민 정치컨설턴트는 CBS라디오 인터뷰에서 "(정 실장을 두고) 정무통이라고들 하는데 정무통이 여야를 두루두루 만나는 친화력을 얘기하는 거라면 적임자라고 할 수 있지만 정치력을 발휘해야 하는 지략가 쪽이라면 적임은 아닌 것 같다"고 평가했다. 그는 "국회부의장도 했고 당대표 격인 비대위원장도 했다는 점에서 격도 잘 안 맞고 특히 비대위원장을 하면서 '100% 당원투표'를 앞장서서 만들었고 이준석 전 당대표를 내쫓는 데 앞장섰던 분"이라며 "대통령에게 할 말 하는 실장이 필요한 현시점에서 그렇게 할 수 있을지 회의적"이라고 평가했다.  

관건은 제2부속실 혹은 법률수석실 신설 여부다. 이런 직제가 대통령실에 새로 설치되면 영부인을 공적 시스템에서 관리하게 된다. 김건희 여사의 일정·메시지·의상·수행 등이 공식적·제도적으로 통제되는 셈이다. 윤 대통령은 총선을 앞두고 제2부속실을 검토할 수 있다고 한 바 있다. 세간엔 법률수석실이라는 이름으로 사실상 민정수석실 부활설이 나오기도 하는데 법률수석실엔 '대통령 친인척 관리' 업무도 포함돼 있다.  

정 실장이 돌파해야 할 난제는 이외에도 수두룩하다. 윤 대통령의 국정 지지율이 최순실 국정농단 의혹 초기 박근혜 대통령의 지지율(25%)보다 낮은 23%(한국갤럽 4월19일)로 조사된 점은 현재 여권이 처한 위기 상황을 고스란히 보여준다. 대통령실을 둘러싼 여러 논란을 수습하고 내부 기강을 다잡아, 끝이 보이지 않는 의-정 갈등과 정상회담보다 어렵다는 평가가 나오는 이재명 대표와의 영수회담, 수직적 당정 관계에 변화의 물꼬를 틀 수 있을지 주목된다.

윤석열 대통령이 4월23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에서 열린 이관섭 비서실장 퇴임 행사 후 청사를 떠나는 이 비서실장을 배웅하고 있다. ⓒ연합뉴스
윤석열 대통령이 4월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홍철호 신임 정무수석비서관에게 임명장을 수여하고 있다. ⓒ연합뉴스

안철수 "홍철호 신임 정무수석은 대통령의 변화 조짐"

"And now the end is here(이제 끝이 보이네)." 4월24일 용산 대통령실에 프랭크 시나트라의 팝송 《마이 웨이(My way)》가 울려퍼졌다. 이관섭 전 대통령비서실장의 퇴임식 자리였다. 윤 대통령은 청사 밖까지 따라나가 이 전 실장이 탑승한 차량의 문을 직접 여닫아주며 차가 멀어질 때까지 자리를 떠나지 않았다고 한다. 1년8개월간 지근거리에서 자신을 보좌한 참모와의 이별을 받아들이기 힘들었던 걸까. 퇴임하는 참모의 노고를 격려하는 행사가 열린 것도, 이 자리에 대통령이 직접 참석한 것도 매우 이례적인 일이라고 한다. 

'아는 사람'만 곁에 두던 윤 대통령이 총선 참패와 지지율 최저치를 겪으면서 마침내 변하고 있다는 분석이 나온다. 윤 대통령은 4월24일 총선에서 낙선하거나 공천받지 못한 국민의힘 의원들을 청와대 영빈관으로 초청해 오찬을 함께 하면서 "제 부족함을 깊이 성찰하고 있다"고 말한 것으로 전해졌다. 낙선자들은 이 자리에서 "의견이 다른 비윤(非윤석열)계의 목소리도 들어 달라" "모든 것을 바꾸고 고쳐보겠다는 각오를 해야 한다" 등의 의견을 낸 것으로 전해졌다. 윤 대통령은 앞서 22일 정 실장을 임명하는 자리에서는 17개월 만에 기자들의 질문을 받기도 했다.

안철수 의원은 특히 홍철호 전 의원을 정무수석으로 임명한 것과 관련해 "변화의 조짐"이라고 평가했다. 그는 "지금까지 스타일을 보면 대부분 대통령께서 그전까지 알던 사람, 친밀한 사람들을 많이 쓰셨다. 이번 정무수석 같은 경우 그런 사람은 아니어서 저도 약간 의외라고 생각했고 변화의 조짐이 아닌가 한다"고 했다. 윤 대통령이 '친윤'이지만 '찐윤'은 아니라는 평가를 받는 정진석 실장이 직언을 한다면 들을지, 일파만파 커지고 있는 '비선 라인' 의혹과 관련해 어떤 방식으로든 매듭을 지을지 이목이 집중되는 시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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