첫 화학자 리용규·노벨상 거론 김량하… 한국과학 영웅들[북리뷰]

신재우 기자 2024. 4. 26. 09: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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과학자를 생각하면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들은 누구인가.

그렇다면 '한국인' 과학자의 이름을 대보라고 한다면 과연 누구를 댈 수 있을까.

"한국에도 감동을 주는 탁월한 과학자들이 있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은 바로 이 공백의 역사를 메우기 위해 출간됐다.

20세기 한국에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 과학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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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
김근배·이은경·선유정 지음│세로북스
일제 치하 ~ 해방 후 자연과학
학자 30人 사연과 업적 조명
김량하, 비타민E 결정 추출
정치활동탓 北서 숙청 ‘비극’
심상철은 유기광화학서 두각
‘소랄렌’ 연구로 세계적 주목

과학자를 생각하면 우리 머릿속에 떠오르는 이들은 누구인가. 아이작 뉴턴, 마리 퀴리, 알베르트 아인슈타인 등 역사에 기록된 수많은 이름이 있을 것이다. 그렇다면 ‘한국인’ 과학자의 이름을 대보라고 한다면 과연 누구를 댈 수 있을까. 끙끙거리며 머리를 붙잡고 고뇌한 뒤 불현듯 떠오르는 이름은 고작 하나다. “장영실?”

이처럼 우리 역사에서 과학은 거대한 구멍처럼 자리 잡고 있다. 그럼에도 일제강점기부터 해방 후까지 과학의 토대를 만든 과학자들은 분명히 존재한다. “한국에도 감동을 주는 탁월한 과학자들이 있었다”는 문장으로 시작하는 이 책 ‘대한민국 과학자의 탄생’은 바로 이 공백의 역사를 메우기 위해 출간됐다.

우리나라의 근현대 과학사는 한국인 첫 화학자인 리용규(1881∼?)로부터 시작된다. 하와이 사탕수수 농장에서 일하기 위해 이민 길에 오른 그는 주경야독 끝에 네브래스카대 화학과에 진학한다. 그곳에서 화학 석사 학위까지 받은 뒤 다시 한국으로 돌아와서는 만년필용 모란잉크를 개발해 산업계에 기여하기도 했다.

20세기 한국에도 노벨상 후보로 거론된 과학자들이 있었다는 사실은 우리를 놀라게 한다. 바로 김량하(1901∼?)와 심상철(1936∼2002)이다. 김량하의 경우 일제강점기 시절 일본 최고의 연구기관인 이화학연구소에서 일하면서 세계 최초로 비타민E 결정체 추출에 성공해 순식간에 노벨상 유력 후보로 거론됐다. 당시 국제 과학계에서는 비타민 연구가 한창이었고 학계에선 미지의 비타민E에 대한 경쟁이 치열했다. 그리고 바로 이 순간, 김량하는 자신이 개발한 추출법으로 비타민E 결정체로 추정되는 물질을 얻었다. 이후 이 추출법은 ‘김의 방법’(Kim’s Method)이라고 불리면서 그 성취를 인정받기도 했다.

그로부터 약 30년 뒤 다시 한 번 한국 과학사에 노벨상이 언급된 것은 유기광화학 분야에서 두각을 드러낸 심상철이다. 오늘날 건선, 습진, 백반증 등의 피부질환 치료에 이용되는 식물 추출물인 소랄렌에 대한 연구는 그가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된 계기가 됐다. 소랄렌의 성질에 대한 연구는 미국이 최첨단 설비와 연구진을 바탕으로 앞지르기는 했으나 그는 소랄렌과 관련해 54편의 논문을 발표하는 등 끈을 놓지 않았다.

이 외에도 석주명(1908∼1950)은 ‘나비박사’라는 호칭으로 비교적 알려진 과학자이지만 이조차도 반은 맞고 반은 틀렸다. 석주명은 실제로는 박사 학위를 받은 적이 없지만 평생을 나비에 몰두한 나비 연구자였다. 42세의 나이로 요절하기 전까지 그는 한국의 나비분류학을 정립하고 나비 분포도를 제시했다. 짧은 생애에도 한국 과학 역사상 최초로 국제적 영문 학술서를 출간하기도 했다. 제자인 이우태에 따르면 그는 “한 줄의 논문을 쓰기 위해 3만 마리의 나비를 만져본 일이 있다”며 “지금 나는 눈을 감아도 손끝으로 그 나비의 빛깔과 종류를 알아낼 수가 있다”고 할 정도로 연구에 열과 성을 다했다.

역사 속에서 리용규, 김량하, 석주명 등의 이름이 삭제된 데는 다양한 이유가 있다. 해방 전후의 과학자는 좌우 이념 대립과 정치 활동으로 격동의 역사를 보냈다. 김량하는 해방 후 여러 정치 단체에 참여한 결과 북한에서 숙청을 당했고 석주명은 평안도 사투리를 쓴다는 이유로 공산당으로 오인돼 길에서 총을 맞아 사망하기도 했다.

이처럼 책에는 다양한 사연과 업적을 가진 자연과학 분야 학자 30명의 생애와 성과가 사진과 함께 담겨 있다. 물론 700쪽이 넘는 분량과 이해하기 어려운 과학 용어들은 진입장벽으로 느껴지지만 흥미가 가는 과학자를 한 명씩 골라 읽다 보면 어느새 장영실에서 시작해 한국인 최초로 필즈상을 수상한 허준이까지의 시간이 차곡차곡 채워진다. 752쪽, 4만9000원.

신재우 기자 shin2roo@munhwa.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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