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 대통령, 하던 ‘보스정치’ 계속하겠다는 걸까

한겨레21 2024. 4. 26. 09:2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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총선 대패 뒤 ‘정치하는 대통령’ 되겠다는 선언, 민심에 부응하는 국정기조 변화는 ‘글쎄올시다’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4월22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인사 브리핑에서 신임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된 정진석 의원을 소개하고 있다. 연합뉴스

총선 결과가 정권에 주는 메시지는 간명하다. 바뀌어야 한다는 거다. 그런데 어떻게 바뀌라는 걸까? 백 가지 얘기가 있지만 지금은 대통령 본인이 어떻게 생각하는지가 가장 중요하다. <조선일보>는 2024년 4월22일 윤석열 대통령이 참모들에게 “이제 ‘정치하는 대통령’이 되겠다”는 뜻을 밝혔다고 보도했다.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에게 이른바 ‘영수회담’을 제안한 직후 나온 얘기라고 한다.

이날 오전 대통령은 국회부의장을 지낸 5선 현역 정진석 국민의힘 의원을 대통령 비서실장에 임명한다고 기자들 앞에서 직접 발표했다. 기자, 국회의원, 국회부의장, 청와대 정무수석 등 다양한 이력을 고려할 때 내각과 여야, 시민사회와 두루 소통할 수 있는 인사로 판단했다는 설명이 곁들여졌다. 기자들에게는 거의 1년 반 만에 두 번의 질문 기회가 주어졌다. 이 중 하나는 ‘정치하는 대통령’에 대한 구상을 묻는 데 활용됐다.

취임 100일 후 처음으로 질문받은 대통령

대통령은 마치 기대한 질문이 나왔다는 듯 함박웃음을 지었는데, 장황한 답변을 요약하면 국민이 이해하기 쉬운 방식으로 메시지를 내고, 여당뿐 아니라 야당을 설득하는 데도 주력하겠다는 거였다. 그러니까 지금까지의 국정기조를 바꾸겠다는 것보다는 단지 방식을 달리하겠다는 취지다. 4월16일 국무회의에서 총선 이후 처음 나온 메시지에서 국정의 방향은 제대로 잡았지만 국민의 체감을 이끌어내는 데서 미진한 점이 있었다는 내용을 내놨다가 논란이 된 것과 크게 다르지 않다.

굳이 정진석 의원을 비서실장으로 낙점한 것도 같은 맥락으로 읽힌다. 정진석 실장은 ‘늘공’ 출신인 김대기, 이관섭 전 실장보다 나은 정무 능력을 가졌을 것이다. 문제는 그런 면모를 어떻게 활용할 것이냐다. 정진석 실장은 ‘이준석 축출’에 동조하고 ‘당원 100%’ 룰을 도입하는 데 앞장선 과거가 있다. 이런 방향을 계속 유지한다면 총선 결과에 드러난 민심에 부응하는 용산의 변화는 기대하기 어려울 거다.

아니, 오히려 그렇기에 대통령이 정진석 실장을 선택했다고 볼 수 있다. <동아일보>의 4월23일 보도에 인용된 여권 관계자 발언을 보면, 정진석 실장이 윤석열 대통령 취임 뒤 ‘대통령이 정치를 잘 모른다’는 언급을 했다가 이 사실이 대통령 귀에 들어가 윤석열 대통령에게 ‘혼쭐’난 일이 있었다고 돼 있다. ‘정치하는 대통령’이 ‘혼쭐나는 비서실장’을 선택한 또 하나의 이유를 짐작게 하는 대목이다.

‘정치한다’는 말은 좋은 뜻으로 쓰일 때도, 나쁜 뜻으로 쓰일 때도 있다. 대통령에게 “좋은 정치 하십시오”라고 할 때는 이견을 조율해 합의를 도출하는 걸 자기 고집보다 우선하라는 뜻이다. 반면 “그 사람은 정치적이야”라고 할 때는 진실되지 않고 술수를 앞세운다는 의미에 가깝다. 전자는 좋은 뜻, 후자는 나쁜 뜻이다. 대통령은 ‘정치하는 대통령’이란 말을 듣고 국민이 좋은 뜻을 떠올리길 바랐을 테지만, 실제 되려는 건 나쁜 뜻에 가깝지 않은지 의심된다.

총선 패배로 사표를 낸 한덕수 국무총리의 후임을 찾는 과정에서 불거진 논란도 이런 의심을 뒷받침한다. 김한길, 권영세, 김병준 등 측근형 인물의 이름이 오르내리는 가운데 야권 인사인 박영선 전 중소벤처기업부 장관의 이름이 ‘양정철 비서실장설’과 함께 등장한 것은 신선한(?) 충격이었다. 야권 인사를 국무총리 후보로 지명하고 대통령 비서실장으로 임명하지 말라는 법은 없다. 그러나 국무총리는 국무위원에 대한 임명제청권을 갖는다. 야권 인사를 총리 후보로 추천하려면 향후 내각 운영에 대한 구상 역시 반영돼야 한다. 그런 점에서 보면, 먼저 대통령의 국정기조 대전환 선언이 있었어야 한다. 또 국회 혹은 야당과의 만남을 추진하겠다는 의사 표명이 있어야 했다. 여기서 논의가 진행된 이후 구체적 인사가 거명돼야 했다. 그러나 대통령은 4월16일 국무회의 모두발언을 통해 오히려 지금까지의 국정기조는 잘못되지 않았다고 주장했다. 그러니 ‘박영선·양정철 기용설’은 이해할 수 없는 이야기가 되는 거다.

“국정 방향 옳다”면서 나온 야권 총리 기용설

김건희 여사가 2023년 12월12일 네덜란드 암스테르담 동물보호재단을 방문했을 때 모습. 대통령실 누리집 갈무리

4월17일 오전 티브이(TV)조선과 와이티엔(YTN) 등의 보도로 등장한 ‘박영선·양정철 기용설’은 이날 여당 내 반발이 커지고 대통령실이 공식적으로 부인에 나서면서 해프닝으로 끝나는 듯했다. 그러나 인사 업무와 무관한 대통령실 참모가 거듭 언론에 “유력하게 검토하고 있는 것은 맞다”는 취지로 언급하면서 엉뚱하게도 ‘비선’ 논란에 불이 붙기 시작했다.

다음날인 4월18일 <동아일보>는 “공식 인사 업무를 맡고 있지 않은 윤 대통령 측근 그룹”이 인사 추천에 관여했고 이를 대통령실 내 인사위원장인 비서실장이 알지 못했으며 이 때문에 내부 회의에서 문제 제기가 있었다고 보도하면서 사설에서는 “만일 대통령 부부의 측근 그룹이 기획했다면 대통령실 내부의 업무 난맥을 고스란히 드러낸 것”이라고 했다. ‘대통령의 측근’이라는 말은 익숙한데, ‘대통령 부부의 측근 그룹’이라는 표현은 생소하다. 생소한 표현을 특별히 선택한 이유가 있을 것이다.

<중앙일보>는 “여권 일각에선 최근 윤 대통령이 관저에 머무는 시간이 늘어나며 ‘관저 정치’라는 말까지 등장했다”고 썼다. <조선일보> 역시 사설에 “비서실장 등의 공조직과 다른, 실제 대통령실을 움직이는 비선 라인이 있다는 논란이 뒤따를 수 있다” “이런 일이 처음도 아니다”라고 썼다. 앞서 논란이 된 4월16일의 국무회의 메시지도 공식적인 메시지 업무와 관계없는 인사가 작성에 관여했을 가능성을 시사한 것이다.

이런 일련의 보도가 가리키는 것은 무엇일까? 총선 패배 이후 주요 참모들이 모두 사의를 표명한 상황에서 대통령이 주로 관저에서 소수 측근과 메시지 및 인사 논의를 해왔다는 것 아닐까? 그렇다면 총선 패배 이후 정치적 상식에 맞지 않는 메시지가 잇따라 나온 이유가 어느 정도 설명된다. 그런데 왜 하필 관저인가? 그건 김건희 여사의 존재를 빼면 설명할 수 없을 거다. 실제 <동아일보>는 4월23일 사설에 “김건희 여사와 가깝다는 참모들로 인해 빚어진 ‘박영선 총리-양정철 비서실장’ 언론 보도 소동”이라고 정확히 썼다. 즉, 대통령과 ‘김건희 여사와 가깝다는 참모들’이 생각하기에 ‘박영선·양정철 기용설’은 나름대로 기발한 정치적 묘수였다는 건데, 이거야말로 ‘정치하는 대통령’의 본질에 대한 어떤 단서가 아닌가 한다.

어찌 됐든 ‘정치하는 대통령’이 당장 넘어야 할 산은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와의 회담이다. 대통령이 굳이 ‘정치하는 대통령’이라는 발언을 노출하는 ‘정치’를 감행한 것도 어느 정도는 이 일정을 의식한 행보였을 거다. 지금 상황에 회담은 분명 돌파구가 될 수 있다. 그러나 도움이 되는 면만 있는 건 아니다. 회담에 성과가 있다는 건 민생회복지원금이나 채상병 특검 등의 쟁점에서 대통령이 야당 요구를 수용한 것일텐데 이 경우 지지층 내 균열이 일어날 수 있고, 반대로 성과가 없다면 “달라진 게 없다”는 평가를 집권 세력 내외에서 받게 될 것이기 때문이다.

총선 대패 뒤에도 ‘그립’ 놓지 않는 대통령

윤석열 대통령이 2024년 4월24일 서울 용산 대통령실 청사에서 열린 장성 진급·보직 신고 및 삼정검 수치 수여식에서 대장으로 진급한 강호필 신임 합동참모본부 차장으로부터 거수경례를 받고 있다. 연합뉴스

여당이 이중적 차원의 권력 재편기에 들어간 상황이라는 것도 윤석열 대통령 입장에서 머리가 아픈 대목이다. 비상대책위원회를 어떤 형태로 할지, 전당대회 룰을 어떻게 할지 등의 쟁점을 놓고 여당 내 논쟁이 오가는 것 같지만, 당권의 향방은 ‘범친윤’ 범주를 벗어나지 못할 것으로 예상된다. 거론되는 원내대표군은 거의 다 ‘친윤’ 후보들이다. 총선에서 대패한 상황에서 ‘정치하는 대통령’이 여당을 가만히 내버려뒀는데 이런 구도가 됐다고 상상하기는 어렵다. 뭔가 ‘그립’이 작용하고 있으리라 보는 게 상식적이다.

당권 수습을 둘러싼 ‘정치’가 상대적으로 조용하게 이뤄지고 있다면, 조기 점화된 차기 대권 경쟁은 좀 요란하다. 한동훈 전 비상대책위원장이 윤석열 대통령과 밥을 먹네 마네 하는 대목은 의미심장하다. 보도에 따르면 한동훈 전 위원장은 대통령실의 오찬 회동 요청은 병을 이유로 물리쳤으면서, 자신과 함께 일했던 비대위원들과의 회동은 마다하지 않았다고 한다. 이러다보니 벌써 ‘대통령과 정권 2인자의 갈등’이라는 식의 해석이 뒤따르는데, 한 전 위원장 입장에선 대통령을 들이받았다기보다는 굳이 봉합 또는 화해하는 기회를 조기에 만들지 않으려 했다고 표현함이 적절할 거다.

여기서 또 ‘정치하는 대통령’의 행보가 눈에 띈다. 윤 대통령은 한 전 위원장에게 오찬 회동을 제안하기 전에 홍준표 대구시장을 만나 국무총리 후임 등에 대한 조언을 들었다고 한다. 홍준표 시장은 최근 한 전 위원장 비판에 열을 올리고 있는데 총선책임론, 보수궤멸론, 검사한계론 등 판본이 다양하다. 이게 대통령을 만난 이후에도 계속돼 호사가들은 홍준표 시장의 난사에 가까운 공격에 대통령의 의중이 실린 것 아니냐는 해석도 내놓고 있다. 마침 대통령이 총선 패배의 책임은 한동훈 전 위원장에 있다고 생각하는 것 아니냐는 관측이 나오던 와중이다.

문제는 이렇게 되면 마치 차기 주자 간 경쟁을 대통령이 ‘관리’하는 게 아니라 ‘관여’하는 것처럼 돼버린다는 거다. 주자들끼리 견제와 경쟁의 결과는 자신들이 감당할 몫이지만 현직 대통령은 이 맥락에서 끼어들어 얻을 게 별로 없다. 이 대목은 한동훈 전 위원장도 차기 당권 주자일 수 있다는 점을 고려해야 이해 가능하다. 대통령이 만일 한 전 위원장을 견제한다면 그건 역시 ‘그립’의 문제일 수 있다는 거다.

크게 다르지 않을 ‘정치하는 대통령’

대통령실 직제를 개편해 가칭 법률수석실을 신설한다는 구상이 나오는 것도 비슷한 맥락으로 해석된다. 어떤 이는 ‘로펌’과 ‘합동수사본부’에 비유했다. 야당의 특검 정국을 법률적으로 방어하면서 사정 정국을 조성해 여야를 우회적으로 컨트롤하려는 것 아니냐는 의심이다. 대통령실은 민심 청취가 목적이고 사정 기능 총괄은 논외로 한다지만 벌써 검사 출신 인사들이 초대 수석으로 언급되는 걸 보면 여러 의심이 드는 것은 사실이다. 이게 ‘정치하는 대통령’의 결말을 예고하는 듯한 느낌도 든다. 선을 넘나들며 틀어쥐고 배제하며 장악하는 정치. 이렇게 보면 ‘정치하는 대통령’ 선언은 새삼스럽다. 대통령은 여태 이미 그런 정치로 일관해오지 않았나?

김민하 정치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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