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도 넘치게 '힙'하다…전설의 힙노시스, 대중이 여전히 열광하는 이유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4. 2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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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취향저격] 자본의 논리보다 '예술의 용기'가 우선일 때 -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 (글 : 김작가 대중음악평론가)


코로나19 시대, LP는 때아닌 호황을 맞이했다. 이와 관련한 여러 해석이 있었다. 본질에서 가장 빗나간 건 '복고 코드'였다. LP를 재생하기 위해서는 턴테이블이 필수다. 하지만 턴테이블 매출은 그만큼 올라가지 않았다. 그렇다면 사람들, 특히 MZ는 왜 LP를 샀을까. 이에 대한 정답은 오는 5월 개봉하는 영화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에 인터뷰이로 나오는 노엘 갤러거의 말이 가장 가까이 있다.

"LP 커버는 대중이 가장 쉽게 소유할 수 있는 예술" 그리고 "새 앨범의 커버 이미지 회의를 하고 돌아왔는데, 우리 딸은 앨범 커버가 뭔지 모르더라". 그렇다. 가로X세로 약 30cm의 정사각형 안에 담긴 매혹적인 이미지는 인스타그램에 올리기 너무나 좋은 예술작품이다. (인스타그램의 프레임 또한 정사각형 아닌가) 물성으로서의 음악, 그리고 이를 '소유'하고 있다는 인증으로서 LP는 최적의 매체다. 야외 활동과 사회적 관계가 봉쇄됐던 팬데믹 시대에 LP는 꽤 훌륭한 SNS 콘텐츠였던 것이다.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은 음반 커버를 예술로 승화시켰던 영국의 디자인 그룹, 힙노시스의 작품 세계를 조명한다. 1974년 발매된 후 가장 오랫동안 빌보드 앨범 차트에 머물렀던, 1970년대 록에 관심 없더라도 한 번쯤은 봤을, 검정 바탕에 빛이 투과되는 프리즘의 그래픽이 담긴 핑크 플로이드의 <Dark Side Of The Moon>을 비롯한 그들의 걸작들이 어떻게 탄생했는지를 다룬다.

핑크 플로이드의 친구이자 로열 컬리지 오브 아트 출신이었던 스톰 토거슨과 오브리 파월이 이끌었던 힙노시스는 핑크 플로이드의 2집 <Sauceful Of Secret>을 시작으로 핑크 플로이드의 명작들을 디자인했다. 레드 제플린부터 폴 매카트니까지 당대의 아티스트들과도 작업했다. 힙노시스로 인해 아티스트의 사진과 앨범 제목 정도가 담겨 있는 '포장재'였던 커버 디자인은 예술로 승화됐다. CD와 MTV가 없었던 1970년대, 앨범 커버는 음악을 시각화하는 가장 효과적인 수단이었고, 힙노시스는 앨범 안에 담긴 사운드와 메시지를 신비로운 사진과 그래픽으로 구현했다.

영화는 힙노시스의 사진 담당이었던 오브리 파월을 시작으로 고인이 된 스톰 토거슨의 생전 인터뷰를 토대로 진행된다. 데이빗 길모어, 로저 워터스, 닉 메이슨 같은 핑크 플로이드 멤버는 물론이고 레드 제플린의 지미 페이지와 로버트 플랜트, 그리고 폴 매카트니와 피터 가브리엘 등 힙노시스의 고객이자 그들의 수혜자였던 이들이 비하인드 스토리를 전한다. 영국 음악을 다룬 다큐멘터리에 단골로 등장하는 노엘 갤러거 또한 특유의 입담으로 앨범 커버의 중요성과 힙노시스의 정신적 유산을 증명한다.

영화는 내추럴 본 디지털 세대에게는 충분히 신선하다. 오브리 파월은 힙노시스의 아트 북인 <바이닐. 앨범. 커버. 아트>에서 이렇게 쓴 바 있다. "당시에는 MTV도 VH1도 이렇다 할 뮤직비디오도 없었고 화려한 잡지나 타블로이드도 음악 주간지도 거의 없었다. (…) 그랬던 시절, 앨범 커버는 정보의 상징이자 안에 담긴 음악의 이정표, 그리고 각 밴드 특유의 이미지에 대한 시각적 해석이었다." 시각적 독점이라는 매혹적인 지위를 위하여, 힙노시스는 당대의 조명 기술과 사진술을 총동원하고 여러 사진을 자르고 붙이며 현실에 존재하지 않는 이미지를 만들어냈다. 2차원과 3차원의 벽을 허물고, 우주의 풍경을 묘사했고, 무의식의 단면을 재현했고, 기술에 대한 긍정과 부정을 담아냈다.

"노랫말이나 밴드 이미지 또는 음악 자체와 어떤 상관이 있든 없든, 좋은 디자인은 항상 흥미를 불러일으킨다"는 모토에 따라 단 한 장의 사진을 찍기 위해 이집트와 모로코로 날아가는 수고를 아끼지 않았다. 에베레스트에 올라가고 런던 상공에 거대한 돼지 모양 풍선을 띄웠다. 막대한 시간과 예산이 필요한 일이지만 한 장의 이미지를 위해 그들은 기꺼이 혁신적 아이디어를 제안했다. 계산기보다는 예술적 시도를 우선했던 아티스트들 또한 기꺼이 음반사 고위층을 설득했다. 아티스트들이 산업의 주도권을 잡고 있던, 즉 레코드 회사가 아니라 아티스트들이 직접 힙노시스와 클라이언트 관계를 맺고 있던 낭만의 시대였기 때문에 가능했다.

누구나 포토샵으로 이미지를 보정한다. 모든 사진 어플에는 손쉽게 다룰 수 있는 필터가 있다. 이미지의 재가공이 더 이상 특출난 무엇이 아니라는 얘기다. 포토샵은커녕 PC도 없었던 시대에 힙노시스는 자신들의 상상력을 오로지 아날로그적 수고를 통해 구현했다. 그것은 사진이 등장하기 전에 화가들이 현실을 캔버스에 옮기려 기울였던 노력과 같다. 기술이 진보하면서 자연스럽게 사라지는 이전 세대 기술의 결과 말이다. <힙노시스: LP 커버의 전설>은 따라서 디지털이 보급되기 직전, 즉 PC와 CD가 등장하기 전 세상의 예술을 담아낸 풍속도다.

핑크 플로이드 <Wish You Were Here> 앨범 커버


예를 들어 불타고 있는 사람과 악수를 하는 핑크 플로이드의 <Wish You Were Here>가 지금 제작됐다고 가정해 보자. 악수하는 두 사람을 찍은 후 포토샵과 일러스트로 불을 합성하면 끝이다. 그러나, 그 시대엔 모든 게 실제 상황으로 연출되어야 했다. 미국의 스턴트맨을 고용해 찍은 이 커버는 <Dark Side Of The Moon> 못지않게 유명한 이미지가 됐다. 커버의 주인공인 스턴트맨은 촬영 당시 핑크 플로이드가 누군지도 몰랐지만, 결과적으로 자신이 출연했던 어떤 영화보다 많은 사람들이 이 앨범을 통해 자신을 알게 됐다고 회고한다.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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