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미나 늙은 말의 지혜까지 빌리라는 건 그가 멍청해서가 아니다 [스프]

심영구 기자 2024. 4. 26. 09: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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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말 도도라는 새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비자'의 설림(說林) 편에는 두 개의 동물 설화가 나오는데 앞서 소개했던 '훼'라는 뱀과 '도도'라는 새 이야기입니다.

한 몸뚱아리에 두 개의 입을 가진 훼나 머리가 무거워 혼자서는 물을 마시지 못하는 도도는 실존 가능성이 없는 상징적 동물이죠.

개미나 늙은 말의 지혜까지 빌리는 낮은 자세가 난관을 돌파하거나 자신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지혜라는 것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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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비자-정치적 인간의 우화 ⑦] '혼자 다 할 수 없어' 네 가지 이야기가 전하는 지혜 (글 : 양선희 소설가)
#1
도도라는 새가 있는데 머리는 무겁고 꼬리는 굽어서 물가에서 물을 마시려고 하면 반드시 뒤집어진다. 그래서 누가 그 날개를 물어줘야 마실 수 있다.
도도처럼 혼자서는 물을 잘 마실 줄 모르는 사람도 있는데 그는 곁에서 도와줄 사람을 찾아야만 한다.

정말 도도라는 새가 있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한비자'의 설림(說林) 편에는 두 개의 동물 설화가 나오는데 앞서 소개했던 '훼'라는 뱀과 '도도'라는 새 이야기입니다. 한 몸뚱아리에 두 개의 입을 가진 훼나 머리가 무거워 혼자서는 물을 마시지 못하는 도도는 실존 가능성이 없는 상징적 동물이죠.

여기서 훼는 싸움박질에 이골이 난 정치인들을 비유하는 것이라면, 도도는 최고 리더인 '군주' 혹은 '왕'으로 볼 수 있습니다. 이 이야기가 의미하는 것을 유추하자면 왕이란 혼자서 모든 걸 할 수 없고, 반드시 주변의 도움을 받아야 한다는 얘기이겠죠.

서로 협력하거나 도움을 받아야 일이 성사된다는 사례들은 많이 있습니다.
 
#2
관중과 포숙이 서로 이야기를 나눴다. "군주의 음란이 심하니 반드시 나라를 잃을 것이다. 제나라의 여러 공자 중 보좌할 만한 사람은 외국에 볼모로 가 있는 공자 규와 소백이 있다. 그대와 함께 각자 한 사람씩 맡아 먼저 성공한 사람이 서로 거두기로 하자."
그리하여 관중은 공자 규를 따랐고, 포숙은 소백(훗날 제환공)을 따랐다. 나라 사람들이 결국 군주를 살해했다. 소백이 먼저 들어가 군주가 되었다. 규를 따르던 관중은 노나라 사람에게 붙잡혀 소백에게 바쳐졌다. 그러자 포숙은 소백에게 말하여 관중을 재상으로 삼으라고 천거하여, 소백이 받아들였다.
그래서 옛말에 이런 말이 있다.
"용한 무당인 무함이 잘 빌어도 자기의 재앙을 없애지는 못하고, 진나라 의원이 병을 잘 고쳐도 자기 스스로에게 침을 놓지는 못한다."
관중도 포숙의 도움을 기다려야 했다. 이를 두고 시쳇말로 "노예가 갖옷을 팔면 팔리지 않고, 선비가 말솜씨로 자신을 미화해도 믿지 않는다"고 하는 것이다.

관중은 공자 규를 위하여 먼저 제나라로 들어가는 소백에게 활을 쏜 것으로도 유명합니다. 그런데 소백은 그런 그를 재상으로 삼지요. 여기엔 포숙의 천거가 주효했습니다. 포숙이 아니었다면 자신에게 화살을 날린 관중을 받아들였을까요.
서로 돕는다는 건 아름다운 일이지만, 아무하고나 상부상조해선 안 됩니다. 바로 그 일에 가장 적합한 사람과 도와야 하는 것이 관건입니다.
 
#3
관중과 습붕*은 제환공을 종사해 고죽을 정벌했다. 봄에 가서 겨울에 돌아오다 길을 잃고 헤맸다. 관중은 "늙은 말의 지혜가 쓸 만합니다"고 말하곤 늙은 말을 풀어 그 뒤를 따라가 마침내 길을 찾았다.
산중에서 물이 떨어졌다. 습붕이 말했다.
"개미는 겨울에는 산의 양지바른 곳에 살고, 여름에는 음지에 삽니다. 개미집이 한 촌이 넘으면 물이 있을 것입니다."
그러고는 이내 땅을 파서 물을 얻었다.
관중의 능력과 습붕의 지혜로도 할 수 없을 땐 늙은 말이나 개미를 스승으로 삼는 데 주저하지 않았다. 그런데 지금 사람들은 마음이 어리석어 성인의 지혜를 스승으로 삼을 줄도 모른다. 어찌 잘못되지 않겠는가.

*습붕 : 관중이 죽기 직전에 군주인 제환공에게 차기 재상으로 천거했던 제나라 환공 시절의 현명한 신하.

개미나 늙은 말의 지혜까지 빌리는 낮은 자세가 난관을 돌파하거나 자신의 목표에 도달할 수 있는 지혜라는 것이죠. 자신의 능력을 과신하고 상대를 얕잡아 보는 것은 가까운 사람에게조차 비웃음을 삽니다. 세상일이 똑똑한 한 사람의 자신감과 예단으로 해결될 만큼 그렇게 만만하지 않거든요.

(남은 이야기는 스프에서)

심영구 기자 so5what@sbs.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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