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생을 던져 ‘무법자의 자유’ 실험한 모녀 메리[북리뷰]

2024. 4. 26. 08:5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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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메리와 메리
샬럿 고든 지음│이미애 옮김│교양인
페미니즘의 창시자 엄마 메리
“영혼에는 성별이 없다” 외치며
여권 옹호하고 가부장에 균열
SF소설 장르의 창시자 딸 메리
출생 2주 만에 엄마 잃었지만
급진철학 물려받아 인습에 저항
‘여성의 권리 옹호’의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왼쪽 그림)와 ‘프랑켄슈타인’의 메리 셸리(오른쪽)는 각각 ‘페미니즘의 창시자’와 ‘과학소설 장르의 창시자’로 역사상 가장 유명한 모녀 작가로 꼽힌다. 교양인 제공

역사상 가장 유명한 모녀 작가는 누구일까? 아마도 메리 울스턴크래프트와 메리 셸리일 테다. 어머니 메리는 혁명가였다. 18세기 후반 그녀는 당대 인습을 깨부수고 스스로 직업을 얻어 생계를 꾸리는 급진적 생활방식을 실천했고, 학교를 열어 여성 교육에 뛰어들었으며 ‘여성의 권리 옹호’를 써서 여성이 남성과 동등하게 이성적 존재이고 보편적 인간 권리를 누려야 한다고 주장함으로써 가부장 세계에 균열을 냈다.

딸 메리는 천재 작가였다. 그녀는 열여덟 살에 남편 퍼시 셸리, 조지 바이런, 존 폴리돌리 등 시인들과 여행하던 도중 ‘프랑켄슈타인’을 썼다. 증기기관의 놀라운 생산력이 인류 진보를 가속하고, 합리와 이성의 빛이 인간 정신을 밝힐 때, 그녀는 영감과 상상의 힘으로 인간의 심연에 자리한 욕망과 광기를 꿰뚫어 보고 인간과 과학(이성)의 관계에 대한 새로운 사고법을 촉발했다. 우리는 지금 두 메리가 찾아낸 역사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해 분투 중이다.

‘메리와 메리’에서 샬럿 고든 미국 엔디콧대 영문과 교수는 자기 시대의 도덕률에 얽매이기를 거부하고 미래의 삶을 당겨 살고자 했던 두 여성의 파격적 인생 역정을 교차해서 780쪽에 달하는 거대한 태피스트리로 엮어낸다. 원제는 ‘romantic outlaw’, 두 메리는 지금 여기가 아니라 저기 다른 곳을 꿈꾸었던 낭만주의자였고, 사회 통념을 파괴하는 무법자였다. 그들은 쏟아지는 조롱과 모욕을 견디면서 ‘자신들에게 허락되지 않은 삶’을 살아갔고, ‘당대의 가장 위험한 논쟁’에 뛰어들었으며, 미혼모가 되는 등 자기 인생을 던져 ‘무법자’의 자유를 실험했다.

두 사람은 각각 유명하지만, 하나로 묶어 다루는 책은 드물었다. 어머니 메리가 딸을 낳은 지 열흘 만에 세상을 떠나서 두 사람의 삶은 겹치는 바가 거의 없는 까닭이다. 더욱이 열정적이고 외향적이며 사회 활동에 치중했던 어머니 메리와 달리 딸 메리는 조용하고 내성적이며 집안에서 지인들과 교류하는 걸 즐기는 등 기질적 차이도 컸다. 그러나 저자는 어머니 메리가 딸의 생애와 작품에 강력한 영향을 미쳤다고 주장한다. “울스턴크래프트의 급진 철학은 메리 셸리를 형성했고, 대단한 인물이 되어 자기 힘으로 걸작을 창조하겠다는 결의에 불을 붙였다.” 어머니의 원칙, 열망, 사상이 딸 메리의 삶에 스며들어, 특히 글쓰기를 통한 자유롭고 독립적인 삶을 살아가게 했다는 것이다.

어머니 메리의 삶은 투쟁의 연속이었다. 알코올 중독자의 딸로 태어난 그녀의 삶은 아버지의 가정 폭력에 맞서 가족들을 보호하는 힘겨운 노력으로 시작된다. 저자는 서평을 쓰는 일자리를 얻어 스스로 생계를 꾸리고, 여성 최초로 해외 특파원이 되어 프랑스 혁명을 취재하는 등 경제적 자립을 확보해서 비혼 독립 여성의 삶을 창조하려 했던 그녀의 고된 노력을 반복해서 강조한다. 어머니 메리는 말했다. “신은 여성을 남성의 딸랑이가 되도록 창조하지 않았다. 영혼에는 성별이 없다.”

30대에 이르러 뒤늦은 사랑도 찾아왔다. 특히, 아나키스트이자 사회 운동가였던 남편 윌리엄 고드윈과의 결혼은 독특했다. 두 사람은 별도로 살면서 따로 사교 생활을 즐기고, 사랑이 담긴 쪽지로 소통하곤 했다. “내 영혼을 위해 당신이 내 마음속에 박혀 있기를 원하지만, 당신이 항상 내 곁에 붙어 있는 것은 원하지 않아요.”

딸 메리의 삶도 격렬했다. 어머니와 마찬가지로 그녀 역시 스스로 자기 운명을 정했다. 열여섯 어린 나이에 그녀는 시인 퍼시 셸리와 만나 사랑에 빠졌고, 아버지 반대를 무릅쓰고 유부남인 셸리와 함께 가출했다. 문학과 사랑이 그녀의 동력이었다.

메리는 셸리와 함께 유럽 곳곳을 여행하면서 바이런 등 ‘제정신이 아닌, 못된, 위험한’ 예술가들과 만나 자유연애를 즐겼다. 세간에서는 인습에서 벗어나고자 했던 그들의 자유로운 삶을 ‘근친상간 모임’이라고 비웃었다. 저자는 사랑과 죽음과 예술이 뒤얽힌 그 복잡한 삶을 파헤치면서 낭만주의 운동에서 딸 메리가 차지했던 위치를 재조명한다.

두 메리는 모두 여성의 삶을 얽매는 사회적 족쇄와 용감하게 맞섰고, 사랑과 자립 사이에서 균형을 찾으려고 몸부림쳤다. “두 사람은 자기 자신이 되고자 했고, 여성이 자기 운명을 결정할 권리가 있다고 주장했으며, 그럼으로써 아직 끝나지 않은 혁명의 문을 열었다.” 무엇보다 둘은 글쓰기 속에서 구원의 가능성을 찾았다. 그들은 사상과 상상의 영토 속에 자신들 꿈을 아로새김으로써 여성의 자유와 독립을 실현하려고 했다. 그들에게 글쓰기는 “생계유지의 수단이자 인습을 타파하고 자신의 길을 개척하는 데 필요한 유일한 무기”였다.

두 메리의 꿈은 미래의 씨앗이 되었다. 시간이 흐르면서 그 싹에서 무수한 가지가 뻗어 나와 거대한 나무로 자라났다. 어머니는 ‘페미니즘의 창시자’가 되었고, 딸은 ‘과학소설(SF) 장르의 창시자’가 되었다. 현재와 미래에 가장 중요한 두 사상이 하나의 자궁에서 자라난 것이다. 우리는 이 책에서 새로운 사유가 얼마나 큰 고통 속에서 태어나는지를 생생하게 느낄 수 있다. 782쪽, 3만8000원.

장은수 출판평론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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