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이언스카페] 생쥐 뇌에서 자란 시궁쥐 신경, 후각 되찾았다

이영완 과학에디터 2024. 4. 26. 07:5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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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각 없앤 생쥐 배아에 시궁쥐 줄기세포 주입
뇌에서 시궁쥐 신경세포 성장, 후각 회복
異種 세포 융합해 질병 치료하는 키메라 연구
쥐 뇌에 환자 미니 뇌 주입, 유전자 치료 성과도
생쥐의 뇌 해마에서 시궁쥐 신경세포(붉은색)가 자란 모습./미 컬럼비아대

태어날 때부터 후각세포가 없던 생쥐가 다시 쿠키 냄새를 맡았다. 자신보다 더 큰 시궁쥐의 후각세포가 뇌에서 자란 덕분이다. 과학자들은 종(種)이 다른 동물들의 세포를 융합해 질병을 치료할 수 있음을 입증했다고 평가했다. 반면 연구가 무분별하게 진행되면 영화 ‘혹성탈출’처럼 사람의 의식을 가진 원숭이가 탄생할 수 있다고 우려하기도 한다.

크리스틴 볼드윈(Kristin Baldwin) 미국 컬럼비아대 의대 교수 연구진은 26일 국제 학술지 ‘셀’에 “생쥐가 시궁쥐의 줄기세포를 받아 뇌에서 두 동물의 세포가 융합하면서 잃어버렸던 후각을 되찾았다”고 밝혔다. 한 동물이 종이 다른 동물의 감각세포를 통해 세상을 감지하고 반응한 것은 이번이 처음이다.

쥐의 뇌에 있는 후각 처리 영역은 생쥐와 시궁쥐 세포가 섞여 있다. 붉은색은 시궁쥐, 녹색은 생쥐의 신경세포가 있는 부분이다./미 컬럼비아대

◇생쥐와 시궁쥐의 뇌세포 융합, 후각 회복

지난해 텍사스대 연구진은 생쥐의 배아(수정란)에 시궁쥐의 줄기세포를 이식해 뇌에서 두 동물의 세포가 융합된 것을 확인했다. 이번 연구진은 두 동물의 신경세포를 융합시켜 잃어버린 감각을 회복할 수 있는지 확인했다. 다른 동물의 세포로 질병을 치료할 수 있는지 알아본 것이다.

컬럼비아대 연구진은 생쥐의 배아에서 유전자를 변형시켜 후각세포가 자라지 못하게 했다. 그다음 생쥐 배아에 시궁쥐 줄기세포를 주입했다. 연구진은 나중에 생쥐가 다 자란 뒤 신경세포가 어떻게 작동하는지 조사했다.

분석 결과 생쥐와 시궁쥐의 세포가 연결되면서 냄새를 감지하는 신경 회로가 생긴 것으로 나타났다. 시궁쥐는 생쥐보다 느리게 자라고 뇌가 더 크지만, 생쥐 뇌에 있는 시궁쥐의 신경세포는 생쥐의 세포와 같은 속도와 형태로 자랐다. 볼드윈 교수는 “생쥐의 뇌 거의 모든 곳에서 시궁쥐 세포를 볼 수 있었다”며 “이는 다른 동물의 신경세포 도입에 대한 장벽이 거의 없다는 것을 의미한다”고 말했다.

연구진은 신경세포 융합으로 뇌 기능에 어떤 변화가 생겼는지 알아보기 위해 생쥐에게 숨겨둔 오레오 쿠키를 찾도록 했다. 실험 결과 유전자 변형으로 후각세포를 없앤 다른 생쥐와 달리 배아 단계에서 시궁쥐 세포를 주입받은 생쥐는 쉽게 쿠키를 찾았다.

후각세포가 자리지 못하게 한 생쥐(mouse)의 초기 배아에 시궁쥐(rat)의 줄기세포를 주입해 배반포 키메라(blastocyte chimera)를 만들었다(위). 나중에 생쥐의 뇌에 전체에서 시궁쥐 신경세포가 자랐다(가운데). 생쥐는 시궁쥐 세포 덕분에 후각을 회복하고 연구진이 숨긴 오레오 쿠기를 찾아냈다(아래)./Cell

특히 시궁쥐 세포를 가진 생쥐 중에도 쿠키를 더 잘 찾는 생쥐가 있었다. 연구진은 그런 생쥐는 발생 과정에서 원래 자신의 후각세포가 완전히 사라졌지만, 기능을 잃어도 여전히 고유의 후각세포를 유지한 생쥐는 쿠키를 찾는 능력이 떨어진다는 사실을 발견했다.

고장 난 부품을 빼고 다른 부품을 끼워 넣듯, 기능을 잃은 신경세포를 없앤 후에 다른 동물의 세포를 주입해야 기능을 회복할 수 있다는 의미이다. 볼드윈 교수는 “퇴행성 신경 질환과 자폐증, 조현병과 같은 신경 발달 장애를 다른 종의 신경세포로 치료하려면 먼저 기능을 하지 못하고 방치된 원래 신경세포를 비워내야 할 것”이라고 밝혔다.

◇서로 다른 동물 융합하는 키메라 연구

이번 연구는 이른바 ‘키메라(chimera)’ 연구의 일환이다. 그리스 신화에서 사자의 머리에 염소의 몸, 뱀의 꼬리를 한 동물인 키메라처럼, 한 동물에서 종이 다른 동물의 줄기세포를 키워 발생과 질병을 연구하고 나아가 갈수록 부족해지는 이식용 장기까지 얻자는 것이다.

이를테면 심장 크기가 사람과 비슷한 돼지 배아에 사람 줄기세포를 넣어 인간화된 심장을 얻는 식이다. 그 가능성을 보여준 게 2017년 나카우치 히로마쓰 스탠퍼드대 교수의 실험이었다. 당시 연구진은 시궁쥐의 몸에서 생쥐의 체장을 키웠다. 나중에 이 췌장을 당뇨병에 걸린 생쥐에게 이식했더니 치료됐다.

사람과 원숭이 세포 결합한 키메라 배아./조선DB

인간 세포를 가진 키메라 동물도 나왔다. 2017년 소크 연구소의 후안 카를로스 이즈피수아 벨몬테 교수는 사람 줄기세포를 돼지 배아에 이식했다. 수정란을 대리모 암컷 돼지의 자궁에 이식해 3~4주 배양하자 돼지 태아의 근육과 장기에서 사람 세포가 자랐다. 인간과 같은 영장류 사이의 키메라도 성공했다. 벨몬테 교수는 지난 1월에는 셀에 “사람 피부세포에서 유래한 줄기세포를 긴꼬리원숭이의 배아 132개에 25개씩 이식해 20일까지 키웠다”고 밝혔다.

키메라 연구는 본격적인 이종 장기 이식 전에 인간의 질병을 연구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 볼드윈 교수는 “현재 파킨슨병과 뇌전증(간질) 환자에게 줄기세포와 신경세포를 이식하고 있지만 얼마나 효과가 있을지 아직 잘 모른다”며 “두 동물의 세포가 결합한 하이브리드 뇌 모델을 사용하면 임상시험보다 더 빨리 답을 얻을 수 있다”고 말했다.

◇오가노이드와 하이브리드 뇌의 경쟁

인간의 미니 뇌를 키워 다른 동물과 결합하는 키메라 연구도 있다. 세르지우 파스카(Sergiu Pasca) 스탠퍼드대 교수 연구진은 2022년 ‘네이처’에 “배양 용기에서 키운 인간 뇌 오가노이드(organoid)를 어린 쥐에게 이식해 신경세포들이 통합되도록 하는 데 성공했다”고 밝혔다. 오가노이드는 줄기세포를 장기와 유사한 입체 구조로 배양한 것으로, 미니 장기(臟器)라고 불린다. 이전에는 인체 세포를 평면 배양접시에서 키워 인체 내부를 제대로 반영하지 못했다.

볼드윈 교수는 앞서 연구는 뇌가 이미 발달한 상태에서 오가노이드를 이식해 두 세포가 제대로 연결되기 어려웠다고 봤다. 이번에는 수정한 지 몇 시간 지난 배반포 단계에서 생쥐 배아에 시궁쥐 줄기세포를 주입했다. 생쥐와 시궁쥐의 신경세포가 함께 성장하고 스스로 통합될 수 있도록 한 것이다.

미 스팬퍼드대의 세르지우 파스카 교수가 미니 뇌가 들어있는 실험용기를 보고 있다. 배경은 미니 뇌. 파스카 교수는 인간 미니 뇌를 쥐의 뇌에 이식해 하나가 되게 하는 데 성공했다./미 스탠퍼드대

아직 어느 쪽이 더 나은지 결론을 내리기 어렵다. 오가노이드 키메라도 상당한 성과를 거뒀다. 파스카 교수는 지난 25일 네이처에 인간 뇌 오가노이드를 생쥐의 뇌에 융합하고 중증 신경 발달 장애인 티모시 증후군을 유전자로 치료할 수 있음을 확인했다고 밝혔다. 연구진은 티모시 증후군 환자의 줄기세포로 뇌 오가노이드를 만들었다. 이를 생쥐의 뇌에 주입했다.

생쥐가 자라면서 뇌 오가노이드와 생쥐 뇌가 완전히 결합했다. 티모시 증후군은 세포막에서 전기를 띤 물질들이 오가는 통로에 문제가 생겨 신경 신호가 오작동하는 질병이다. 생쥐는 티모시 증후군 환자와 같은 문제를 보였다. 연구진은 유전물질인 리보핵산(RNA) 가닥으로 문제가 된 세포막 통로의 변이 유전자를 억제했다. 그러자 생쥐의 세포막이 정상 상태로 돌아왔다. 오가노이드를 통해 유전자 치료 효과를 확인한 것이다. 연구 경쟁이 치열할수록 질병 치료의 문은 더 빨리 열릴 것이다.

참고 자료

Cell(2024), DOI: https://doi.org/10.1016/j.cell.2024.03.042

Nature(2024), DOI: https://doi.org/10.1038/d41586-024-00911-1

bioRxiv(2023), DOI: https://doi.org/10.1101/2023.04.13.536774

Nature(2022), DOI: https://doi.org/10.1038/s41586-022-05277-w

Nature(2017), DOI: https://doi.org/10.1038/nature21070

Cell(2017), DOI: https://doi.org/10.1016/j.cell.2016.12.0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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