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파 논란에서 밝혀야 할 저널리즘적 사실 [미디어 리터러시]

최지향 2024. 4. 26. 07:4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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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번 총선의 주인공 중 하나는 대파였다.

3월18일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 물가 점검차 하나로마트 서울 양재점에 방문한 당시 할인 행사 중인 대파를 두고 "대파 한 단 875원이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는 보도 이후 대통령이 현실 물가를 모른다는 여론이 거세지면서 총선 판도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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언론에 대한 반감이 어느 때보다 높습니다. 역으로 생각하면 '좋은 언론'을 향한 갈구는 더 커지고 있다는 의미이겠지요. 매체를 비판적으로 이해하고 활용하는 능력, 곧 '미디어 리터러시'가 중요해지는 시대, 우리 언론의 방향을 모색합니다.
3월29일 서울시 한 대형마트에서 시민이 대파를 고르고 있다.ⓒ연합뉴스

이번 총선의 주인공 중 하나는 대파였다. 3월18일 윤석열 대통령이 민생 물가 점검차 하나로마트 서울 양재점에 방문한 당시 할인 행사 중인 대파를 두고 “대파 한 단 875원이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는 보도 이후 대통령이 현실 물가를 모른다는 여론이 거세지면서 총선 판도에 영향을 미쳤기 때문이다.

대파 보도의 여파는 영 이상한 방향으로 흘러갔다. 선거방송심의위원회에 민원이 제기됐고, 위원회가 선거방송 특별규정 제12조(사실 보도), 포괄규정 제8조(객관성) 등을 적용해 이 건을 심의할 것으로 보인다는 보도(〈연합뉴스〉 3월26일)가 나오면서다. 현재로서는 해당 건이 정식 안건으로 상정될지 미지수이지만, 예를 들어 사실 보도 관련 규정을 적용해 이 건을 심의할 경우 도대체 어떤 판단을 내려야 할지 상상해본다. 규정 제12조 제1항은 “방송은 선거방송에서 유권자의 판단에 영향을 미칠 수 있는 중요한 사실을 과장·부각 또는 축소·은폐하는 등으로 왜곡하여 보도하여서는 아니된다”라고 되어 있다. 즉 사실을 과장·부각 또는 축소·은폐했는지를 따져봐야 할 텐데, 해당일에 실제로 대파 한 단이 하나로마트에서 875원에 팔렸고 그 가격이면 합리적이라 생각하는 데 문제는 없어 보인다. 그러면 이 사실만을 보도하는 것이 엄밀한 사실 보도이고 이 사실 이외의 부분을 보도한다면 과장·부각 또는 축소·은폐하는 것인가?

그렇지는 않다. 허위 정보 시대에 많은 이들이 언론의 사실 보도가 중요하다고 이야기한다. 하지만 언론의 역할은 단순한 사실의 조각을 나열하는 데 있지 않다. 개별 사실의 맥락을 파악하는 것이 더 중요하다. 맥락을 읽음으로써 사실을 더욱 분명히 드러내기 위해 언론은 가정된 사실을 여러 개 수집하고, 교차확인하는 과정을 거쳐 사실성의 망을 구성한다. 저널리즘 교과서에 나오는 예시가 있다. 공직자 A가 부패 스캔들에 휘말려 있는 상황인데 다른 고위공직자 B가 한 행사에서 A를 칭찬한 경우, 언론이 “A가 칭찬받았다”라고 보도하는 것은 잘못된 사실 보도다. 언론은 사실의 맥락을 짚어 보도해야 한다.

이 보도에 제대로 반응한다면 내놓아야 할 것

언론이 전달하고자 한 중요한 사실은 당일 대파 가격이 실제로 875원이었다거나 그 가격을 합리적이라고 볼 수 있느냐는 아닐 것이다. 저널리즘적으로 검증하고자 한 사실은 정부가 제대로 물가정책을 세우고 있는지 아닌지였을 것이고, 당일 대파 한 단 가격이 875원이었고 대통령이 그 정도 가격이면 합리적이라고 말했다는 사실은 사실성의 망을 형성하는 조각 중 하나일 뿐이다. 관련 보도에서 당일 대파의 도매시세가 3300원, 대형마트 가격이 4250원이었고, 875원은 하나로마트 특별행사 가격이었음을 밝혀 실제 물가와 차이가 있음을 드러낸다. 즉 이 보도의 궁극적 목표는 제대로 된 물가정책 수립을 촉구하는 데 있다.

그렇기 때문에 이 보도에 제대로 반응한다면 정부, 여야를 막론하고 제대로 된 물가 안정책을 내놓아야 할 것이다. 이 건을 정치적으로만 이용하려는 태도도 나쁘다. 당일 윤 대통령의 발언을 살펴보면 대파가 요즘 싸다는 반응은 아니었다. 대통령은 “하나로마트는 이렇게 하는데 다른 데는 그렇게 싸게 사기 어려울 거 아니에요. 대파 한 단 875원이면 합리적”이라고 언급했다. 즉 875원 정도면 합리적이라는 것이다. 야당은 대파를 정권심판론에 불을 지펴서 표를 얻는 도구로 사용했다. 비록 이재명 더불어민주당 대표가 1인당 25만원 민생회복지원금을 제안하긴 했지만, 지금처럼 농산물 중심으로 물가가 높아지게 한 유통 구조나 이상기후 대책을 각 정당이 심도 있게 논의하지는 않았다. 물가정책의 책임이 한쪽에만 있지 않다.

최지향 (이화여대 커뮤니케이션·미디어학부 교수) editor@sisain.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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