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전 지키던 ‘폐쇄형 방범창’…재난 땐 감옥으로 ‘돌변’ [현장, 그곳&]

김은진 기자 2024. 4. 26. 07:01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범죄 예방 및 사생활 보호를 위해 반지하주택 창문에 설치한 폐쇄형 방범창이 화재, 폭우 등 재난 발생 시 주민의 대피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돌변하고 있다. 사진은 수원특례시 장안구 한 반지하주택 방범창. 김시범기자

 

“물에 잠기거나 불이 나면 빠져나갈 수 없으니 탈출을 포기한 지 오랩니다.”

25일 오전 11시께 수원특례시 장안구 율전동의 한 주택가. 반지하로 내려가는 통로에는 곳곳에 물건이 쌓여 있어 성인 한 명이 지나가기도 어려워 보였다. 바깥 세상과 유일한 연결고리인 창문에는 폐쇄형 방범창이 설치돼 있었고, 사생활 보호를 위해 아크릴판까지 빈틈없이 막아 놔 위급상황이 오면 탈출은 불가능해 보였다. 창문 바로 옆 벽면에는 물이 나오는 배수관까지 있어 물에 잠기기 쉬운 모습이었다.

같은 날 오후 의왕시 삼동의 한 주택가도 상황은 비슷했다. 반지하주택 창문은 모두 폐쇄형 방범창으로 가로막혀 있었다. 창문 앞 도로에는 폭우 등의 상황에서 물이 빠져나갈 하수구도 없어 재난상황에 취약한 모습이었다. 이곳 주민인 선원재씨(39)는 “물에 잠기거나 불이 나면 탈출하는 건 포기한 지 오래”라고 토로했다.

범죄 예방을 위해 만들어진 방범창이 정작 재난 발생 시 대피로를 차단하게 되면서 주민들의 안전을 위협하고 있다. 특히 장마철이 얼마 남지 않은 만큼 대책 마련이 시급하다는 목소리가 나온다.

이날 경기도 등에 따르면 도내 반지하주택은 2020년 기준 8만7천914가구로 파악됐다. 이후에는 별도로 반지하주택 현황을 파악하지 않고 있다. 반지하 주택에서는 해마다 침수 피해가 잇따르는 실정이다. 최근 10년간(2014~2023년) 도내 반지하주택 침수 피해 건수는 8천800가구로 연 평균 880가구가 물에 잠기는 것으로 나타났다.

범죄 예방 및 사생활 보호를 위해 반지하주택 창문에 설치한 폐쇄형 방범창이 화재, 폭우 등 재난 발생 시 주민의 대피를 가로막는 장애물로 돌변하고 있다. 사진은 수원특례시 장안구 한 반지하주택 방범창. 김시범기자

반지하주택의 경우 통로가 제대로 확보돼 있지 않거나 탈출로가 협소한 경우가 많은데, 폐쇄형 방범창의 경우 안팎에서 열고 닫을 수 없어 인명 피해를 키운다는 지적이다.

지난 2022년 8월 서울 신림동에서는 폭우로 인해 잠긴 반지하주택에서 일가족 3명이 사망하기도 했다. 당시 해당 주택에도 폐쇄형 방범창이 설치돼 있어 탈출구가 막혀 피해를 키웠다. 이후 서울시는 은평구, 도봉구, 관악구 등 재난 취약 지역에 개폐형 방범창 설치를 지원했지만, 경기도는 별다른 움직임이 없는 상황이다.

도는 지난해 6월 재해에 취약한 반지하주택에 대한 문제를 해소하겠다며 대책을 내놨지만, 개폐형 방범창 설치에 대한 내용은 빠져 있었다.

채진 목원대 소방안전학부 교수는 “반지하주택의 경우 대피할 수 있는 공간이 없기 때문에 안에서 개방할 수 있는 방범창으로 바꿔야 한다”며 “지자체가 집주인과 비용을 분담해 금전적 부담을 줄여주는 것으로 인명 피해를 줄일 방법을 찾아야 한다”고 제언했다.

이에 대해 경기도 관계자는 “주택은 사유지라 집주인 동의 없이 개폐형 방범창 설치를 강제할 수 없다”면서도 “개폐형 방범창에 대한 사업은 검토 단계에 있으며 5월 중으로 수요 조사를 실시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김은진 기자 kimej@kyeonggi.com
박소민 기자 som@kyeonggi.com

Copyright © 경기일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