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환경-자연 영화] 초대형 산불의 80%, 최근 10년간 발생했다

신용관 조선뉴스프레스 기획취재위원 2024. 4. 26. 06:5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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그날, 패러다이스

지난 2월 26일 미국 텍사스 서북부 팬핸들 지역에서 산불이 발생해 4,354㎢의 면적이 불에 탔다. 이는 서울 면적(약 605㎢)의 7배가 넘는 것으로, 텍사스주 역사상 최대 규모의 화재로 기록됐다.

지구촌 곳곳에서 초대형 산불이 잇따르고 있다. 지난해 8월 미국 하와이주 마우이섬에서 발생한 산불은 100명의 사망자를 냈다. 1918년 미네소타주 산불(사망자 453명) 이후 105년 만에 미국에서 최악의 인명피해를 기록한 것이다.

유서 깊은 해변 마을 라하이나를 중심으로 건물 2,200여 채가 불탔고, 이재민 7,000~8,000명이 발생했다. 산불 발생 당시 4등급 허리케인 '도라'가 하와이 인근을 지나며 최고 시속 130㎞의 돌풍이 불어 산불이 삽시간에 섬 여러 곳을 덮쳤다.

그리스에서는 지난해 8월 기록적인 폭염 속에 동북부에서 산불이 발생, 최소 20명이 사망하고 810㎢가 불에 탔다. 이는 유럽연합EU 관측 사상 최대 규모의 산불로 기록됐다. 캐나다의 경우 2023년 한 해 산불로 불탄 면적이 18만㎢로 이전 최대치보다 2배 이상 늘어 역대 최악을 기록했다.

지구촌 곳곳 산불 규모 갈수록 커져

기후학자들은 지난 10년간 전 세계적으로 재난 수준의 산불이 다수 발생했으며, 많은 경우 기후변화가 초대형 산불을 가능케 하는 역할을 하고 있다고 지적한다. 실제 미국 캘리포니아주의 경우 역대 최대 규모 산불 중 약 80%가 최근 10년간 발생했다.

기온 상승은 산불 문제를 악화시키는 가장 분명한 기후변화 관련 요인으로 꼽힌다. 기온이 오르면 수풀의 습기를 없애 그만큼 불에 더 잘 탄다.

지구온난화로 가뭄이 전보다 더 길고 극심해지면서 식물이 바싹 말라 화재 가능성이 커지고 있다. 또 기후변화로 허리케인의 강도가 급격히 높아지는 등 강풍도 심해져서 급속한 산불 확산을 초래하고 있다.

고온은 또 식물 구성 변화도 초래한다. 마우이 산불이 발생한 하와이에서는 빨리 자라고 불에 더 잘 타는 외래종 식물이 고온의 영향으로 재래종을 밀어내고 자리를 잡으면서 화재가 심해졌다고 한다.

2023년 하와이 마우이 산불 이전, 1918년 미네소타주 산불 이후 100년 만에 미국에서 최악의 인명피해를 기록했던 산불은 2018년 캘리포니아주에서 발생한 대형 산불 '캠프파이어Camp Fire'였다.

캘리포니아주 북부 뷰트 카운티에서 발생한 산불은 3주 가까이 불타며 서울보다 넓은 620㎢ 지역을 잿더미로 만들었고 85명의 사망자를 냈다. 이 때문에 건물 1만8,000채가 전소했다. 미국에서는 관리와 기록의 편의를 위해 산불에 이름을 붙이는데, '캠프파이어'는 산불이 시작된 뷰트 카운티의 '캠프 크릭 로드'에서 따왔다.

2018년 미국 캘리포니아 산불 다뤄

<그날, 패러다이스Fire in Paradise>(감독 드레이 쿠퍼·재커리 카네파리, 2019)는 바로 이 '캠프파이어'를 다룬 다큐멘터리이다. 제목의 '패러다이스'는 산불이 덮쳤던 캘리포니아의 소도시 이름이다.

영화는 생존자들의 증언과 생사를 넘나든 주민들이 휴대폰으로 촬영한 영상, 차량 블랙박스 영상, 방송 화면 자료, 911 통화 녹음 등을 통해 당시의 긴박했던 상황을 생생하게 전한다.

2018년 11월 8일 캘리포니아주 북부에 있는 인구 2만6,561명의 패러다이스 타운. 911 상황실에 근무하는 산림방재국 배치 직원 '베스 보어속스'는 오전 6시쯤 풀가Pulga에서 불이 난 걸 봤다는 전화를 받았다.

"아주 외진 지역이고 바람이 거세 자주 불이 나는 곳이지요. '1~2시간 지켜보자. 별일 아닐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하지만 오전 7시 16분, "풀가와 콘카우 지역에 큰불이 났다"는 긴급 신고 전화를 시작으로, "산마루의 패러다이스 쪽에 다량의 비화飛火가 보인다", "비화가 마을 한가운데에서 발생했다" 등등 전화가 빗발치기 시작했다.

일단 산에서 불이 나면 상승기류로 인해 비화된다. 불붙은 물질의 일부가 상승기류를 타고 올라가서 산불이 확산되고 있는 지역 밖으로 날아가 떨어지는 현상을 '비산화飛散火'라고 한다. 비산화 때문에 연소 방향을 예측하기 어려워 방화선을 무력화시킬 정도로 먼 지역까지 화재가 확대되고, 이로 인해 소방관이나 진화팀이 위험에 빠질 수 있다.

"맑았던 하늘이 20분 만에 갑자기 주황색으로 물들었다"(초등학교 교사 '메리 루드윅'), "출근했는데 하늘에서 재가 떨어졌다. 마치 화산 밑에 있는 것 같았다"(패러다이스 경찰관 '롭 니콜스' 경사).

마을 주민 4만여 명 전체 대피

화재는 급속히 확산됐다. 당시 상황실 근무자 베스의 증언이다.

"자신들 집은 아직 불이 안 붙었다거나 동네가 아직 멀쩡하다거나 차가 있다고 한 사람들에게 말했죠. '당장 대피하세요. 아무도 도우러 가지 못하니까요. 구조하러 갈 인력이 없어요.'"

경찰과 소방대는 4만여 명에 이르는 패러다이스 인근 주민 전체를 대피시키기 시작했다. 학교 아이들을 스쿨버스에 태우고 대피 길에 올랐던 젊은 여교사 '애비 데이비스'의 말이다.

"도로는 꽉 막힌 상태였고. 버스 안은 아주 더웠어요. 연기도 자욱했죠. 주변이 모두 불에 타고 있었어요. 그러고는 완전히 컴컴해졌어요. 아이들이 물었지요. '선생님 지금 몇 시에요?', '지금 10시야', '밤인가요? 밤 10시요?'"

산림방재국 경찰 '숀 노먼', 자원봉사 소방대원 '레이 존슨', 거주민 '데이샤 윌리엄스' 등이 들려주는 이야기도 생생하다.

"성경에서나 볼 법한 이만한 불덩이들이 떨어졌어요. 하늘에서 불덩이가 떨어진다는 얘기 있잖아요. 제가 하늘에서 잉걸불과 불덩이가 떨어지는 걸 보게 될 줄 몰랐죠."(노인 '조이 비슨')

지역주민 '제니퍼 존슨'이 어린 자식들을 차에 태운 채 칠흑 같은 어둠과 시뻘건 불길 속에서 천신만고 끝에 벗어나는 장면은 공포 그 자체이다. 아마도 딸이 촬영했을 휴대폰 영상은 가까스로 사선을 넘은 한 가족의 분투를 절절하게 보여 준다.

학교 아이들을 무사히 구한 교사 메리의 증언도 너무 절박하다. 도로에서 꼼짝 못 하고 있던 스쿨버스에서 메리와 동료 애비는 버스 기사 케빈과 함께 셔츠를 여러 조각낸 뒤 물에 적셔서 모든 아이들이 숨 쉴 수 있게 여과 도구로 썼다.

"아이들을 돌보고 있었는데, 애비가 제 옆에 와서 앉더니 '메리, 못 벗어날 것 같아요'라고 말했어요. 아이들 앞이라 두려움을 내보이지 않으려 하며 서로 부둥켜안고 기도를 드렸죠. (눈물을 글썽이며) 속으로, 연기 흡입으로 죽기를 기도했어요. 힘든 기도였죠. 그러고는 심호흡을 하고 다시 아이들을 돌봤어요."

이들은 스쿨버스에서 6시간 동안 버텼다.

교차로에서 차가 엉켜 오도 가도 못 하고 있던 주민 150여 명은 경관의 지시로 차에서 내려 작은 주차장 공터에 모였다. 25~30m 불길이 집들을 태우며 맹렬하게 이들에게 다가오고 있었다. 인근 프로판 탱크 저장소에서 10여 초마다 '펑펑' 프로판이 터졌다.

건물 9,700가구 잿더미로

그 현장에 있었던 주민 데이샤의 말이다.

"소방관들은 대피할 곳이 없다고 했죠. 불길에 둘러싸여서 살아남을 유일한 희망은 시멘트 슬래브 건물 안에 몸을 낮추고 있는 것뿐이랬어요. 비명이 이어졌고 노래를 부르는 사람도 있었어요. 프로판 탱크는 터지고 출구는 없었죠. 담요를 뒤집어쓴 채 아들의 손을 잡고 기도했어요. 그게 몇 시간 동안 우리 현실이었어요."

최악의 산불 '캠프파이어'로 1,000여 명의 실종자가 발생, 생사 여부를 확인하는 데에도 오랜 시간이 걸렸고 최종 85명이 사망한 것으로 집계되었다. 사망자 대부분은 뷰트 카운티 내 패러다이스 타운과 인근 콘카우에서 발생했다. 주민 2만6,000여 명의 평화롭던 패러다이스 타운은 건물 9,700가구가 무너지며 완전히 잿더미로 변했다.

산림방재국 경찰 숀 노먼은 토머스 파이어Thomas Fire, 멘도시노Mendocino 파이어, 카Carr 파이어 등을 나열하며, "지난 10년간 발생한 일련의 사건은 캘리포니아 소방 활동 역사를 무색하게 만들었다. 대량 파괴를 일으키는 극도로 빠른 산불 확산은 그 어떤 소방 장비로도 제압이 불가능하다. 가장 큰 영향을 주는 건 날씨다. 매년 기록을 경신하며 화재를 키우고 있다"고 지적했다.

거대한 괴물처럼 이글거리는 산불과 그 속에 처한 사람들의 절망과 공포를 절실하게 담아낸 다큐 <그날, 패러다이스>는 해마다 크고 작은 산불을 겪고 있는 우리가 꼭 봐야 할 수작이다.

월간산 4월호 기사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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