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TF 수수료 0.0099%라지만… 200배 큰 비용 숨어 있었다

문수빈 기자 2024. 4. 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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0.01%도 안 되는 수수료와 달리 2~3%로 높은 운용 비용
초저수수료 홍보 탓에 투자자 현혹될 수 있어 주의

삼성자산운용이 1억원을 투자해도 연 수수료가 1만원이 안 되는 ‘초저수수료’ 상장지수펀드(ETF)를 출시하며 출혈 경쟁에 다시 불씨를 당겼지만, 실제 투자자가 부담해야 하는 각종 비용이 수수료보다 수백배는 더 많아 투자할 때 꼼꼼히 따져봐야 한다는 지적이 나오고 있다.

자산운용사들은 총보수만 공시할 뿐. 환 헤지(방어)나 스와프(교환) 등의 비용은 산출하기 어렵다는 이유로 고객에게 정확히 알리지 않고 있다. 즉 자산운용사가 수취하는 수수료가 저렴하더라도, 구조상 비용이 많이 발생하는 ETF라면 고객 입장에서는 타사의 다른 ETF를 선택하는 게 나을 수 있는 것이다. 하지만 정확한 비용 구조가 공개되지 않아 투자자들이 판단을 내리기 어려운 상황이다.

그래픽=손민균

26일 금융투자업계에 따르면 최근 ETF 상품을 매매할 때 가장 고려해야 하는 것은 환헤지 비용이다. 최근 미국 달러에 대한 원화(원·달러) 환율을 기준으로 환헤지 ETF의 헤지 비용은 순자산총액(AUM)의 연 2% 수준이다. 최근 삼성자산운용이 미국 대표지수를 추종하는 환헤지 ETF의 총보수를 0.0099%로 인하하겠다고 발표했는데, 이보다 200배 이상 큰 비용을 투자 판단할 때 고려해야 한다는 지적이다.

환헤지 ETF란 환율 등락에 따라 ETF 수익률이 좌지우지되는 걸 방지하기 위해 환율 변동 위험을 헤지(분산)한 상품이다. 환에 노출시킨 상품과 달리 자산운용사가 환헤지 ETF를 만들기 위해선 다른 금융사에 환율 변동에 따른 손익을 대신 감수해달라는 ‘헤지 계약’을 체결하면서 대가를 지급한다.

환헤지 ETF의 헤지 비용은 투자설명서의 총보수엔 포함되지 않는다. 총보수엔 ETF를 만든 자산운용사가 수취하는 몫과 ETF가 처음 만들어졌을 때 그 물량을 받아 투자자에게 판매하는 증권사인 지정참가회사(AP)의 몫 등만이 포함돼 있다.

자산운용사는 헤지 비용이 자사가 수취하는 ‘보수’가 아닌 만큼 총보수에 넣을 수는 없다는 입장을 밝히지만, 투자 판단할 때 중요한 요인이니만큼 다른 항목으로라도 안내해야 한다는 지적이 나온다. 한 금융권 관계자는 “수수료는 최저수수료인데, 운용 비용이 타사보다 훨씬 비싸다면 그 ETF는 저렴한 게 아니지 않겠느냐”면서 “최대한 구체적으로 밝혀야 한다”고 강조했다.

삼성자산운용 상장지수펀드(ETF)인 KODEX 미국나스닥100(H)의 환헤지 비용 칸이 비어있다./삼성자산운용 자산운용보고서

자산운용사들은 환헤지 비용을 정확히 산출하는 게 불가능하다는 입장을 밝히고 있다. 환헤지 전략을 수행할 때 장외파생상품을 쓰는 경우도 있는데, 장외파생상품은 비용이 정형화돼 있지 않다는 이유에서다.

하지만 상황에 따라 자산운용사는 비용이 정형화된 장내파생상품을 헤지 전략으로 쓰기도 하는데, 이에 대한 것도 공시하지 않고 있다. 이는 금융감독원의 지침과 반대되는 것이기도 하다. 금감원은 객관적 산출이 어려운 건을 제외하고는 ETF 운용 과정에서 발생하는 다양한 거래 비용을 주석으로 공시하도록 하고 있다.

더구나 이미 업계에서는 동원하는 상품의 유형과 상관없이 환헤지 비용이 현재 환율 기준으로 약 2%라는 걸 인지하고 있다. 정확한 환헤지 비용을 산출할 순 없다고 하더라도 0.01%라는 총보수와 비교해 2%는 결코 작지 않다. 투자판단을 내릴 때 영향을 미칠만한 유의미한 수치이나, 이는 자산운용사 직원이나 아는 정보에 그치고 있다.

투자자들이 생각지 못한 비용은 환헤지 비용 외에 또 있다. 합성형 ETF의 스와프 계약 비용이다. 합성형은 환헤지형처럼 ETF의 종류 중 하나로, 자산운용사가 ETF를 직접 운용하는 게 아니라 자산운용사와 스와프 계약을 맺은 증권사가 운용의 주체가 되는 상품이다. 원자재처럼 자산운용사가 직접 운용하기 어려운 투자 대상이 스와프 대상이 된다.

미래에셋자산운용의 상장지수펀드(ETF) 'TIGER미국나스닥100커버드콜'의 스와프 계약 비용이 기재돼 있다./미래에셋자산운용 투자설명서

스와프 계약에 따른 비용은 상품마다 천차만별이나 대개 2~3% 수준이다. 이 역시 0.01%로 수수료 경쟁을 하는 ETF 시장에선 무시할 수 없는 수치다. 다만 스와프 계약은 투자설명서 ‘장외파생상품의 수익조건 변경위험’ 항목에서 지난해 말 기준 비용을 찾을 수 있다. 다만 이 또한 최신 정보는 아니라는 점에서 참고만 해야 한다.

투자자가 ETF에 드는 총비용을 알려면 ETF의 기준가격과 기초지수의 차이인 추적오차를 보는 게 최선이란 조언이 나온다. ETF의 기준가격이란 ETF가 갖고 있는 상품들의 가격에서 관련 비용이 빠진 금액인데, 기초지수와의 차이가 벌어지면 그 비용이 많이 든다는 걸 유추할 수 있다.

금융투자업계 한 관계자는 “자산운용사 간 ETF 경쟁이 치열해지면서 총보수를 부각해 마케팅하고 있다”며 “투자자들이 실제로 부담하는 총비용에 대한 알림은 부족하다”라고 지적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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