히틀러의 집권에 길을 깔아 준 '타넨베르크의 영웅' [역사&오늘]

김정한 기자 2024. 4. 26. 06: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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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5년 4월 26일,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바이마르공화국 제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프로이센 귀족 출신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1925년부터 1934년까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 격동의 바이마르 공화국을 9년간 통치했다.

그는 1911년에 대장으로 전역했으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군에 복귀했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힌덴부르크는 나치 정권을 탄생시킨 인물로 낙인찍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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4월 26일, 힌덴부르크의 독일 바이마르 공화국 대통령 당선
파울 폰 힌덴부르크(출처: Erich Salomon, 흑백사진(1934), Wikimedia Commons, Public Domain)

(서울=뉴스1) 김정한 기자 = 1925년 4월 26일, 파울 폰 힌덴부르크가 바이마르공화국 제2대 대통령에 당선됐다. 그는 프로이센 귀족 출신의 군인이자 정치인으로 1925년부터 1934년까지 제2차 세계대전 발발 전 격동의 바이마르 공화국을 9년간 통치했다.

힌덴부르크는 프로이센 왕국 포즈난의 몰락한 지주 집안에서 태어났다. 아버지는 프로이센의 장군이었고, 어머니는 평민 출신의 화가였다. 1866년 육군 유년학교를 졸업하고 소위로 임관해 프로이센-오스트리아 전쟁과 1870년 프랑스-프로이센 전쟁에 참전했다.

그는 1911년에 대장으로 전역했으나 1914년 제1차 세계대전이 일어나자 군에 복귀했다. 같은 해 동부 전선 타넨베르크에서 러시아군을 상대로 대승을 거둬 '타넨베르크의 영웅'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1916년 참모 총장까지 올랐으나, 독일의 패전 후 1919년 군에서 물러났다.

힌덴부르크는 1925년 대통령 선거에서 무소속 후보로 출마했음에도 높은 인기 덕분에 당선됐다. 그의 대통령 임기는 경제적 어려움과 정치적 혼란으로 점철됐다. 특히 1929년 시작된 대공황은 바이마르 공화국을 더욱 불안정하게 만들었고, 이는 궁극적으로 히틀러의 등장으로 이어졌다.

그는 1932년 재선에 성공했다. 하지만 이는 그가 혐오하는 사회민주당과 가톨릭 정당과의 마지 못한 연합에 따른 승리였다. 이 때문에 그는 재임 중 권위주의적 성향을 자주 드러냈다. 또한, 나치당의 히틀러를 총리로 임명했고, 이는 바이마르공화국의 붕괴를 재촉하는 결과를 낳았다. 그는 1934년 8월 2일 노환으로 사망했다.

히틀러는 자신의 정통성을 강조하고자 힌덴부르크를 '타넨베르크의 영웅'으로 추켜세우며 정치적으로 이용했다. 힌덴부르크의 이름을 딴 지명과 기념물이 쏟아졌고, 1937년 공중 폭발한 체펠린 비행선 '힌덴부르크호'도 그의 이름을 딴 것이다. 하지만 제2차 세계대전 이후 힌덴부르크는 나치 정권을 탄생시킨 인물로 낙인찍혔다.

acenes@news1.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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