마약 카르텔이 접수한 도시… 꼬마 메시가 공차던 300m 그 골목은 달랐다

로사리오(아르헨티나)/서유근 특파원 2024. 4. 26. 05: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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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서유근의 지구 반대편] ‘메시 성지순례’ 아르헨 로사리오 방문기
리오넬 메시가 2022년 12월 18일(현지 시각)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FIFA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손에 쥐고 기뻐하고 있다. /로이터 연합뉴스

‘고트(GOAT)’. ‘역사상 가장 위대한 선수(The Greatest Of All Time)’를 뜻하는 말로 국제축구연맹(FIFA)이 2022년 카타르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거머쥔 리오넬 메시를 이같이 수식했다.

메시는 수식에 걸맞게 한 해 세계 최고의 활약을 펼친 선수에게 수여하는 FIFA 올해의 선수상과 발롱도르 각 8회, 월드컵 골든볼(최우수선수) 2회 등 수많은 개인상을 수상했다. 뿐만 아니라 월드컵, 코파 아메리카, UEFA 챔피언스리그, 올림픽 등 축구 역사상 최다인 총 44개의 우승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우승으로 커리어 정점을 찍은 메시는 축구 역사를 넘어 스포츠 전체 역사를 통틀어 역대 최고 선수 중 하나로 거론된다.

메시가 아르헨티나 출신이라는 것을 모두가 알지만 영광의 순간 대부분을 유럽 시절에 보냈기에 아르헨에서 보낸 유년기는 상대적으로 덜 조명 받아왔다. 하지만 메시가 1987년 6월 24일 태어나 2000년 12월 스페인으로 떠나기 전까지 13년을 아르헨에서 보낸 만큼 고향 산타페주(州) 로사리오에는 축구팬이라면 누구라도 관심을 가질 법한 메시의 흔적이 많이 남아 있다. 최근 메시의 생가가 있는 라 바하다(La Bajada) 마을을 비롯, 메시의 발자취를 찾아 로사리오를 방문했다.

◇ 아르헨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 로사리오

지난달 19일(현지 시각)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서 '마약 밀매와의 전쟁'을 위해 투입된 연방군 장병들이 군 물자를 호송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로사리오는 수도 부에노스아이레스에서 북서쪽으로 300㎞가량 떨어진 인구 135만명의 대도시다. 아르헨에서 부에노스아이레스, 코르도바에 이은 제3 도시기도 하다. 브라질에서 시작돼 대서양으로 이어지는 파라냐강을 끼고 있어 항만을 통한 곡물 운송으로 번성했다.

하지만 지난 수년 간 마약 카르텔이 로사리오를 거점으로 전국에 마약을 공급하기 시작하면서 범죄의 온상으로 자리 잡았다. 지난해 인구 10만명당 살인 건수는 22명으로 전국 평균인 4.2명보다 5배 이상 높게 나타났다. 지난해 12월 집권한 하비에르 밀레이 대통령은 로사리오를 지목해 ‘마약 카르텔과의 전쟁’을 선포했다. 이에 반발한 카르텔이 지난달 무고한 시민 4명을 살해했다. 그러자 정부는 이례적으로 군 병력까지 투입해 치안을 강화했다. 지난 9일까지 정부가 30여 차례 카르텔을 급습하는 등 로사리오는 4월 현재까지도 국가가 공인한 ‘아르헨에서 가장 위험한 도시’다.

아르헨티나 산타페주 로사리오의 시내에 위치한 공원에서 시민들이 여가를 즐기고 있다. /서유근 특파원

하지만 우려와 달리 기자가 찾은 로사리오 시내 중심부는 여느 평화로운 도시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다. 시민들은 공원에 나와 일광욕을 즐기는 등 일상을 이어갔고, 해가 진 이후에도 반려견과 산책을 하는 사람들과 출입문을 열어둔 채 영업하는 상점도 많았다.

다만 거리와 식당, 호텔, 상점 등 다양한 곳에서 만난 주민 십수 명에게 치안에 대해 묻자 전부 “최근 매우 위험하다고 느낀다”고 답했다. 그러면서도 대다수는 “밤에 집에 더 일찍 들어가는 걸 제외하면 평상시랑 다를 건 크게 없다”고 말했다. 삶에 지장은 없지만 언제 어떤 사고나 범죄에 노출될지 모른다는 불안감은 항상 갖고 있다는 얘기다. 대규모 병력, 경력도 특별히 눈에 띄지는 않았다.

세계 최고의 축구 스타를 배출한 도시답게 로사리오 시내 이곳저곳에서 메시의 흔적을 발견할 수 있었다. 심지어 시내 고급 주거 지역의 한 아파트에는 벽면 전체가 메시로 그려져 있었다.

아르헨티나 로사리오 시내 한 아파트 벽면에 리오넬 메시가 그려져 있다. /서유근 특파원

◇ 전설의 시작...외할머니와의 추억이 담긴 아반데라도 그란돌리

메시의 고향 마을 라 바하다는 시내 중심부에서 남쪽으로 5㎞ 정도 떨어져 있다. 차로 15분 거리라 택시에 탑승했다. “메시의 고향 동네 쪽으로 가달라”고 하자, 택시기사는 “어디를 말하는지 모르겠다”고 했다. 이날 방문 예정인 장소 몇몇을 댔지만 택시기사가 잘 몰라 정확한 주소를 네비게이션에 찍어준 뒤에야 출발할 수 있었다. 그는 “메시가 로사리오 출신인 건 모두가 알지만, 메시가 자란 동네가 어딘지 정확히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라고 말했다.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의 아반데라도 그란돌리 축구장. 리오넬 메시가 처음으로 경기에 나선 장소다. /서유근 특파원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메시의 축구 인생이 본격적으로 시작된 아반데라도 그란돌리(Club Abanderado Grandoli) 축구장.

4살 메시는 친형 마티아스가 뛰는 것을 보기 위해 외할머니 셀리아의 손을 잡고 이곳을 찾았다. 당시 경기에 뛸 선수 한 명이 부족했다. 메시는 자신이 뛰길 원했지만, 체격 조건이 월등한 2살 이상 차이 나는 형들과 부딪혀야 하기에 주변에서 만류했다고 한다.

단지 외할머니만이 메시의 재능이 뛰어나다고 주장하며 감독 살바도르 아파리시오를 강력히 설득해 결국 손자가 출전할 수 있도록 했다. 메시는 우려를 깨고 형들 사이에서 결승골 포함 2골을 넣으며 전설의 시작을 알렸다. 이 일화는 메시의 일대기를 다룬 다큐멘터리 영화 ‘메시’(2014)에서도 나온다.

영화 '메시'(2014)에서 리오넬 메시의 외할머니 셀리아가 감독에게 자신의 손자가 경기에 뛸 수 있게 설득하는 장면. /유튜브
영화 '메시'(2014)에서 리오넬 메시의 외할머니가 어린 메시에게 "넌 훗날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거야"라며 용기를 북돋아주는 장면. /유튜브

이때를 비롯해 항상 손자에게 “넌 훗날 세계 최고의 선수가 될 거야”라며 용기를 북돋아 준 외할머니에 대한 메시의 애정은 각별하다. 메시는 지금까지도 골을 넣을 때마다 양팔을 들어 검지를 하늘을 향해 가리키는 세리머니를 한다. 10살 때 돌아가신 외할머니에게 골을 바친다는 의미다.

아반데라도 그란돌리 경기장은 외관상 푸른 그라운드 하나에 낡은 스탠드만 덩그러니 있는 평범한 축구장에 불과하다. 하지만 일화를 되새기고 나니, 스탠드에 앉아 손자를 응원하는 외할머니와 그라운드에서 첫 활약을 펼친 메시의 모습이 머릿속에 그려지며 느낌이 새롭게 다가온다.

4살이던 리오넬 메시가 외할머니 셀리아와 함께 앉아있던 아반데라도 그란돌리 경기장의 스탠드. /서유근 특파원
외할머니에게 바치는 특유의 골 세리머니 동작을 선보이는 리오넬 메시. /EPA 연합뉴스

◇ 두 번의 불심검문 끝에 만난 발롱도르

감상에 젖어 사진을 찍던 중 순찰 중이던 산타페주 경찰이 차를 세우고 다가왔다. 거동 수상자로 오인해 불심검문을 하려는 것이었다. 신분증을 내밀며 자초지종을 설명하자 경찰관은 “원래도 치안이 좋지 않은 지역인데 최근 마약 카르텔 문제 때문에 국가 차원에서 주의하고 있다”며 얼른 볼일을 보고 떠날 것을 권고했다. 특파원으로서 아르헨티나에서 지낸 지난 1년간 불심검문을 받은 건 이날이 처음이다.

나쁜 치안 상황 때문인지 이날 로사리오시 경찰로부터 한 번 더 검문을 받았다. 시 경찰 역시 웬만하면 차로 이동하라고 조언했다. 그제서야 대낮임에도 아무도 없는 황량한 거리가 눈에 들어왔다. 외진 곳이라 택시도 없고 우버도 잡히지 않았다.

발걸음을 재촉해 1km를 걸어 산타페 스포츠 박물관(Museo del Deporte Santafesino)에 도착했다. 산타페주 지역의 스포츠 종목별 역사를 다루는 공간이다. 이곳에서도 메시와 관련한 여러 흔적을 찾아볼 수 있다.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의 산타페 스포츠 박물관에 전시돼 있는 리오넬 메시의 뉴웰스 올드보이스 유소년팀 시절 선수카드와 유니폼. /서유근 특파원

외할머니 지지에 힘입어 아반데라도 그란돌리에서 커리어를 시작한 메시는 1994년 지역 명문 구단인 뉴웰스 올드보이스의 유소년팀에 입단했다. 박물관에선 메시가 입고 뛰던 올드보이스 유소년팀의 유니폼, 그의 인적사항과 사진이 있는 출전 선수 카드 등을 볼 수 있다. 메시 외에 앙헬 디마리아, 하비에르 마스체라노, 가브리엘 바티스투타 등 산타페주 출신 유명 선수들의 유소년 시절 유니폼과 선수 카드도 진열돼있다.

리오넬 메시가 2019년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의 산타페 스포츠 박물관에 기증한 발롱도르 트로피. /서유근 특파원

박물관의 하이라이트는 지하에 마련된 트로피 공간이다. 이곳에는 메시가 기증한 2019년 발롱도르 트로피와 유럽리그 한 시즌 최다 득점자에게 수여하는 유러피언 골든슈가 전시돼있다.

이와 함께 월드컵 우승 트로피 FIFA컵 진품의 모양과 무게를 그대로 본뜬 레플리카 트로피도 있다. 2022 카타르 월드컵 우승 직후 아르헨티나 축구협회(AFA)가 제작해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진품은 아니지만 레플리카 트로피라도 직접 만지고 들며 사진을 남길 수 있는 곳은 흔치 않다.

트로피 크기만 보고 한 손으로 쉽게 들려고 하니 생각보다 무게가 느껴졌다. 6kg이 넘는 트로피를 얕본 아이들이 힘겨워하는 모습을 볼 수 있었다.

지난달 23일(현지 시각)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의 산타페 스포츠 박물관에 아르헨티나 축구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방문한 어린이들이 FIFA 월드컵 트로피 레플리카를 만져보고 있다. /서유근 특파원

◇ 온통 메시로 꾸며진 고향 마을 라 바하다(La Bajada)

리오넬 메시가 다녔던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의 라스 에라스 초등학교 건물 벽면에 메시가 골을 넣고 포효하는 모습이 그려져 있다. /서유근 특파원

박물관을 나와 도보 5분 거리에 있는 메시의 모교로 향했다. 집에서 대여섯 블록 거리의 라스 에라스 초등학교(Escuela primaria Las Heras)를 다닌 메시는 수줍고 조용한 소년이었다. 하지만 쉬는 시간마다 친구들과 어울려 공을 찼다고 한다.

학교 건물 외벽에는 메시가 이곳 출신이라는 것을 알리듯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고 환호하는 메시의 모습이 그려져 있다. 학교 옆에는 FIFA컵 모양의 비둘기집 탑이 있고 ‘메시는 챔피언’이라고 적혀 있었다.

초등학교를 떠나 이번 여정의 가장 중요한 목적지인 메시의 생가로 향했다. 학교에서 메시 생가로 향하는 길을 비롯해 라 바하다 지역의 반경 300m에선 메시와 관련된 벽화 30여 작품을 감상할 수 있다. 지역의 자랑인 메시를 기념하기 위해 동네 주민들이 자발적으로 조성했다.

메시가 세계적인 스타로 거듭난 후 마을 주민들이 로사리오시에 증언한 바에 따르면, 어린 메시가 동네 길가에서 밤늦게까지 공을 차다 이웃집 대문을 맞추는 일이 종종 생겨 이웃들이 잠들지 못한 경우가 종종 있었다. 당시 이웃들은 ‘그 성가신 소년’이 훗날 세계적인 선수가 될 줄 알았을까.

리오넬 메시의 고향 아르헨티나 로사리오 라 바하다 마을 일대에 그려져 있는 메시 관련 벽화. /서유근 특파원
리오넬 메시의 고향 아르헨티나 로사리오 라 바하다 마을 일대에 그려져 있는 메시 관련 벽화. /서유근 특파원
리오넬 메시의 고향 아르헨티나 로사리오 라 바하다 마을 일대에 그려져 있는 메시 관련 벽화. /서유근 특파원
리오넬 메시의 고향 아르헨티나 로사리오 라 바하다 마을 일대에 그려져 있는 메시 관련 벽화. /서유근 특파원
리오넬 메시의 고향 아르헨티나 로사리오 라 바하다 마을 일대에 그려져 있는 메시 관련 벽화. /서유근 특파원

◇ 메시 생가...그곳에서 만난 메시의 어린 시절 지인들

아르헨티나 산타페주 로사리오 에스타도 데 이스라엘 525번지에 있는 리오넬 메시의 생가. /서유근 특파원

벽화를 따라 걸으니 얼마 지나지 않아 메시의 생가 ‘에스타도 데 이스라엘 525번지’(Estado de Israel 525)에 다다랐다. 메시가 태어나서 13세에 바르셀로나로 떠나기 전까지 살며 유년기 전체를 보낸 곳이다.

평범한 2층짜리 주택이지만 건물 벽면에는 국가대표팀 유니폼을 입은 메시가 경기장 한가운데 앉아 하늘을 응시하는 모습이 그려져있다. 세계 각지를 돌며 축구 관련 벽화를 그리는 브라질 출신 예술가 파울로 콘센티노의 작품이다. 출입문에는 이웃들과 방문객들이 아르헨티나 국기 모양의 리본에 메시에게 감사와 경의를 표하는 문구를 적어 걸어놓았다.

아르헨 현지에선 대체로 이 주택에 이름 모를 평범한 사람들이 살고 있는 것으로 알려져 있다. 하지만 이날 만난 다수의 동네 주민들은 여전히 주택이 메시 가문의 소유이며 친형 마티아스가 산다고 했다. 다만 요즘은 메시의 현재 소속팀(인터 마이애미)이 있는 미국 마이애미에 머물고 있어 집에 사람이 없는 경우가 많다고 전했다.

혹시나 메시와 관련된 숨겨진 얘기를 들을 수 있을까 싶은 마음에 지나가는 주민 몇몇을 붙잡고 대화를 나누던 중, 한 마을 주민이 근처에 메시와 관련 있는 또 다른 장소가 있다며 50m쯤 떨어진 곳을 가리켰다.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의 엘 캄피토. 어린 시절 리오넬 메시의 놀이터였던 곳이다. /서유근 특파원

그는 그곳의 이름이 엘 캄피토(El Campito)라고 소개했다. ‘작은 들판’이라는 뜻 그대로 실내 풋살장만한 잔디 깔린 작은 공터가 있었다. 메시가 뛰놀던 당시에는 흙으로 된 공터였다. 어린 메시는 그곳에서 친구들과 공을 차고 자전거를 타거나 모래성을 쌓기도 했다고 한다. 어린 메시의 놀이터였던 셈이다.

문이 잠겨 안을 제대로 들여다볼 수는 없었지만, 얼핏 틈새로 메시 벽화가 그려져 있는 게 보였다. 들어가 잠시 사진이라도 찍을 수 있을까 하는 마음에 “멀리 한국에서 왔는데 그냥 가기 아쉽다”고 하자, 근처에 사는 관리인을 불러내 문을 열어줬다.

잔디가 깔린 평범한 공터인 엘 캄피토에는 마을 아이들을 위한 작은 축구 클럽이 활동 중이라고 설명했다. 관리인은 “고향 아이들을 위해 메시가 종종 축구 용품 등 선물을 보내주고 있다”고 했다.

이런저런 대화를 나누다 한국에서 온 기자라고 하자, 관리인은 자신의 이름이 마르셀라며 메시의 형수인 로사나 바셰호스의 언니라고 소개했다. 또 어릴 때부터 메시와 같이 자라 그를 잘 알고 있고 여전히 연락을 주고받는다고 말했다. 그는 “메시는 어릴 때부터 속임수 없는 단순한 사람이었다”며 “항상 형수와 조카 등 가족 하나하나를 세심히 챙길 정도로 가정적인 사람”이라고 했다.

마르셀라는 저녁에 근처 관공서에서 마을 주민들이 단체로 모여 메시와 아르헨티나의 월드컵 우승 여정을 다룬 영화를 관람할 예정이라며 그곳에 초대했다. 로사리오시가 마을 주민들을 대상으로 지난해 12월 아르헨티나에서 개봉한 영화 ‘엘리호 끄레에르’(Elijo creer·챔피언으로 가는 길에 대한 믿음을 택하다) 무료 상영에 나선 것이다.

◇ 메시에 울고 웃는 고향 사람들...“늘 자랑스러워”

리오넬 메시의 고향 아르헨티나 로사리오 라 바하다 주민들이 메시의 카타르 월드컵 우승 여정을 다룬 영화 '엘리호 끄레에르'(Elijo creer)를 관람하고 있다. /서유근 특파원

관공서 안 야외 광장에는 영화 상영을 위한 대형 스크린이 설치돼 있었다. 주민들이 하나둘씩 모이더니 오후 6시쯤 약 200명이 착석했다. 영화 시작 전 여전히 마을에 사는 메시의 오랜 지인들을 만날 수 있었다. 메시와 동갑이자 죽마고우라는 디에고는 “메시는 어릴 적부터 남달랐다”며 “유소년팀 입단 전에는 축구를 같이 한 기억이 있는데 그 이후 도저히 같이 할 실력이 안 됐다”고 회상했다.

영화는 아르헨티나의 카타르 월드컵 전 경기를 되짚으며 메시를 비롯한 선수들이 당시 생각과 감정을 돌아보는 내용으로 구성됐다. 관객 모두가 우승이란 결과를 이미 알고 있지만 조별리그 1차전에서 사우디아라비아에 패배한 장면에선 탄식을 내뱉었다. 유년 시절 메시의 성장 과정을 봐왔다는 로제르는 “그땐 정말 메시의 마지막 월드컵이 이대로 끝나는 걸까 싶어 두려웠다”고 했다.

이후 분위기를 반전한 아르헨티나 승승장구했다. 어린아이들은 마냥 좋아했지만, 메시와 자국이 이전 몇 차례 대회의 우승 문턱에서 겪었던 수난을 기억하는 어른들은 감동의 순간들을 다시 보며 눈물을 훔치기도 했다. 결국 우승을 이뤄낸 장면에서는 관객 모두가 생중계 경기를 보듯 박수갈채와 환호를 보냈다.

마르셀라는 그런 마을 사람들의 모습들을 연신 휴대폰 카메라에 담았다. 그는 이날 찍은 사진을 메시에게 보여줄 것이라고 했다. 그는 “고향 사람들이 항상 자랑스럽게 여기고 그가 무엇을 하든 뒤에서 응원하고 있다는 걸 전하고 싶다”고 했다.

◇ 메시의 과거와 미래가 담긴 뉴웰스 올드보이스

리오넬 메시가 뉴웰스 올드보이스 유소년팀 소속으로 뛰었던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의 콤플레호 말비나스 훈련장. /서유근 특파원

다음날 메시가 유소년 시절 활약했던 뉴웰스 올드보이스 유소년팀의 경기장 ‘콤플레호 말비나스(Complejo Malvinas)’를 찾았다. 시내 중심부에서 멀지 않은 이곳은 메시가 소속됐을 당시와 마찬가지로 여전히 유소년팀의 훈련장 겸 홈구장으로 사용되고 있다. 메시는 1994년 3월 30일 올드보이스와 계약했다. 데뷔전에서 그는 4골을 넣으며 팀의 6대0 대승을 이끌었다. 이후 FC바르셀로나로 이적하기 전까지 7년간 176경기에 출전해 총 234골을 넣었다.

이어 근처의 뉴웰스 올드보이스 성인팀의 홈 경기장 에스타디오 마르셀로 비엘사로 향했다. 경기가 없던 이날 구단 연간회원을 대상으로 구장 투어를 진행하고 있었다. 비회원이라 원칙적으로 입장이 불가능하지만 “멀리 한국에서 왔는데 꼭 들어가보고 싶다”고 사정한 끝에 10분간 입장을 허가받았다.

하지만 보카 주니어스 바지를 입고 있었던 것이 문제가 됐다. 일반적으로 남미에서 축구 경기 당일에는 팬들간 물리적 충돌을 방지하기 위해 다른 팀 물건을 소지한 사람은 입장을 허가하지 않는다. 경기장 투어 때는 대체로 관대한 편이나 올드보이스는 엄격했다. 셔츠를 하의에 둘러 보카 주니어스 엠블럼을 가린 뒤에야 입장할 수 있었다.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에 위치한 뉴웰스 올드보이스의 홈 경기장 에스타디오 마르셀로 비엘사. /서유근 특파원

수용인원 5만명인 경기장에 들어서자 골대 뒤쪽 2층에 숫자 ‘10′과 ‘디에고 아르만도 마라도나’가 적혀 있는 것이 눈에 띄었다. 유럽 생활을 마무리한 마라도나는 1993년부터 이듬해까지 올드보이스에서 뛰었다. 선수 생활 막바지에 접어든 마라도나는 올드보이스에서 이전 같은 활약을 펼치진 못했다. 하지만 관중석만 봐도 자국의 전설이 팀을 거쳐갔다는 사실을 자랑스러워한다는 것을 느낄 수 있었다.

올드보이스는 아르헨티나의 두 축구 전설 마라도나와 메시를 모두 품었던 전 세계 유일한 클럽이다. 정확히 따지면 메시는 유소년팀만 거쳤기 때문에 에스타디오 마르셀로 비엘사에서는 뛰지 않았다.

그렇지만 메시가 로사리오에서 다시 뛰는 것은 시간문제로 여겨진다. 메시가 줄곧 고향팀 올드보이스에서 은퇴하고 싶다는 의사를 밝혔기 때문이다. 당장 내년에 인터 마이애미와 계약 종료 뒤 뉴웰스 올드보이스로 이적할 수 있다는 외신 보도도 나오고 있다.

아르헨티나인들은 메시가 자신을 키워준 고향팀에 다시 돌아와서 선수 생활의 마지막을 보내는 ‘낭만’을 실현하길 기대하고 있다. 이런 기대 때문일까. 근처 여러 노점에서는 벌써부터 메시의 이름과 등번호 10을 새긴 뉴웰스 올드보이스 유니폼을 팔고 있었다.

아르헨티나 로사리오의 뉴웰스 올드보이스 홈 경기장 근처 노점. 리오넬 메시의 이름과 등번호 10이 적힌 뉴웰스 올드보이스 유니폼을 판매하고 있다. /서유근 특파원
리오넬 메시가 2022년 12월 18일(현지 시각) 카타르 루사일 스타디움에서 FIFA 월드컵 우승 트로피를 손에 쥐고 환호하고 있다. /AP 연합뉴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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