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로봇은 5분 만에 고장, 사람 투입해"…히로시마 400배 방사능 내뿜은 이곳[뉴스속오늘]
[편집자주] [편집자주] 뉴스를 통해 우리를 웃고 울렸던 어제의 오늘을 다시 만나봅니다.
1986년 4월26일 오전1시26분. 옛 소련 우크라이나 소비에트 사회주의 공화국 키예프(현 우크라이나 키이우 주) 프리퍄티의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에서 엄청난 규모 폭발음이 들렸다.
주민들이 접한 정보라곤 원자력 발전소에서 사고가 발생했다는 정도였다. 당시 원자력과 방사능의 위험성에 대해 제대로 알고 있는 사람은 드물었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예견된 일이었다. 정확히 말하면 사고가 발생하지 않는 게 이상할 정도였다. 그 이유엔 여러 가지 설이 있다.
이 중 '무리한 원전 건설 일정' 때문이라는 근거가 제일 설득력 있다. 실제로 사고가 난 원전 4호기는 1983년 12월에 완공됐다. 옆에 있는 1호기는 1977년 12월 △2호기는 1978년 12월 △3호기는 81년 12월에 지어졌다.
이들의 공통점은 모두 12월에 지어졌다는 점이다. 연말 인센티브(보너스)를 받으려면 완공 시점이 해를 넘겨선 안됐다. 무리한 건설 일정에 맞추느라 제대로 된 안전 검사를 하지 못했다. 부실공사 위험은 가중됐다. 실제로 체르노빌 원전 4호기는 테스트 과정들이 모두 생략됐다.
사고를 예방할 기회가 아예 없었던 것은 아니다. 사고 약 10년 전인 1975년 레닌그라드(현 상트페테르부르크) 원전에서 방사능이 유출되는 사고가 발생했을 때, 이 사실을 투명하게 밝히고 관련자들을 처벌해 이런 일이 다시 발생하지 않도록 조처했을 수도 있었다.
하지만 소련 정부는 이 사실을 은폐했다. 유사시 안전 대책 매뉴얼이나 제대로 된 사후 처리 프로세스가 있었을 리 없었다.
원자력 발전소가 지어지기 전 했어야 하는 안전 테스트는 약 3년이 지난 1986년 4월25일로 일정이 잡혔다.
건설측은 원자로(핵연료·제어재·감속재·냉각재 등으로 구성돼 핵분열을 일으키는 곳)가 정지했을 때 원전에 설치된 터빈이 얼마나 냉각수를 원활하게 공급하는지 검증하려고 했다.
이 실험을 위해 1986년 4월25일 원전 전기 생산량을 절반으로 낮췄고 비상 발전기의 전원도 꺼버렸다. 그러자 키이우의 전력 담당 공무원이 '공장을 돌려야 할 전기가 필요하니 전력 생산량을 낮추지 말라'며 항의했다. 그 결과 실험은 이튿날인 1986년 4월26일 오전 1시로 미뤄지게 된다.
실험이 미뤄지는 동안 원전은 온종일 저출력 상태로 장시간 안전장치가 꺼진 채 운전했다.
실험 당일. 안전 실험을 진행했어야 할 25일 근무자들은 실험에 대해 잘 모르거나 초보 연구원들로 구성된 26일 근무자와 교대한다. 이 과정에서 인수인계가 제대로 이뤄지지 않은 채 실험이 시작됐다.
본래 실험은 전기 생산량을 절반으로 낮춘 채 진행하려고 했지만, 막상 실험을 진행하려 보니 절반이 아니라 바닥까지 떨어져 있었다. 실험이 미뤄진 시간 동안 저출력으로 운행해 원자로에 문제가 생겼다는 설 하나와 젊은 엔지니어가 실수했다는 두 번째 설 등이 주된 이유로 꼽힌다.
당시 실험 책임자였던 아나톨리 댜틀로프는 적잖이 당황했다. 이에 그는 전력을 높이기 위해 안전 규정을 어기고 핵분열을 제어하는 역할을 하는 안전봉을 제거하라고 명령한다. 보통의 경우라면 제어봉이 최소 15개 이상 꽂혀 있어야 했지만 이를 무시했다.
안전봉을 제거하자 원자로는 아예 통제 불능의 상태에 빠졌다. 결국 댜틀로프는 원자로의 비상 정지를 명령했다. 그러자 순간적으로 엄청난 열이 발생해 원전 폭발 사고가 발생한다.
체르노빌 4호기 폭발로 인해 히로시마에 떨어진 원자폭탄의 약 400배가 넘는 방사능이 유출됐다. 당시 원자로에 근무하던 직원 180여 명과 신고를 받고 현장에 출동한 소방관 등 많은 사람이 피폭돼 고통 속에서 죽어갔다. 이들은 방호복도 없이 사고 수습에 나서다 변을 당했다.
공기로 퍼진 방사능은 민가, 가축 그리고 농작물 등으로 퍼졌다. 소련 정부는 아예 체르노빌 4호기를 콘크리트 구조물로 덮겠다는 구상을 하게 된다.
이 과정에서 사람 4000여 명이 투입돼 방사능으로 뒤덮인 폭발 잔해물을 치웠다. 처음엔 무인 로봇을 투입했지만, 높은 방사능 수치 때문에 모두 고장 나자 사람을 썼다.
이 상황을 두고 국민들은 "미국산 로봇은 지붕에 올라간 지 5분 만에 고장이 났다. 일본산 로봇도 5분이 지나자 고장 났다. 러시아산 로봇(인간)은 거기 2시간이나 있었다"라는 자조적인 농담도 했다. 투입된 이들 대부분은 방사능에 피폭돼 젊은 나이에 사망했다.
이렇게 방사선 피폭 사고로 사망한 사람만 9만 명에 달하고, 최대 60만 명이 방사선에 노출됐다는 통계가 있다. 하지만 아직도 정확한 인명피해 수치는 공개되지 않고 있다.
일각에선 체르노빌 원전 사고가 발생한 지역이 정상화 되기까지 최소 2만년이 걸린다고 했다.
소련 정부는 이 같은 사고 사실을 철저히 은폐하려 했다. 하지만 고조되는 국제사회의 압박과 국민들의 분노에 못이겨 결국 사고 발생 19일 만에 공식 성명을 내 시인했다.
체르노빌 사태가 발생하자 '체르노빌 원자력 발전소 사고 위원회'의 수장을 맡아 수습 최전선에 선 무기화학자 발레리 레가소프는 죄책감에 시달리다 사고 2주년인 1988년 스스로 목숨을 끊는다.
체르노빌 원전 사고는 우리에게 핵을 필두로 한 민족주의와 고립주의가 어떤 결과를 초래하는지를 알려줬다. 또 원자력 에너지를 한 국가가 아닌 국제적 기구를 통해 안전하게 사용하는 것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일깨워 줬다.
원자력 발전소의 위험성을 알려 주기도 했지만, 무엇보다도 당장의 성과를 내기 위해 꼭 필요한 절차를 소홀히 하는 무사안일주의의 최후가 어떤 모습으로 귀결되는지도 보여줬다.
박상혁 기자 rafandy@mt.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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