알고는 함부로 못 사는…‘청바지의 일생’ [책&생각]

양선아 기자 2024. 4. 26.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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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해 말, 국내 젊은 작가 이소연은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라는 책을 펴내 자원을 낭비하고 미세플라스틱을 양산하는 패스트패션의 폐해를 고발해 주목받았다.

청바지의 삶과 죽음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겠다고 말한 저자는 진짜로 중국 상하이 남쪽 샤오싱에 위치한 칭마오사를 방문해 면화를 원단으로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고, 바이어 행세를 하면서 데님 도매상을 만나 뻣뻣한 데님을 약품으로 부드럽게 만드는 과정도 관찰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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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 경제 지배하는 패션산업
청바지의 삶과 죽음 추적해
미국 텍사스 면화 농장부터
중국과 방글라데시, 가나까지
생산, 유통, 소비 과정 톺아봐
가나의 쓰레기 매립지에는 칸타만토 시장에서 매주 나오는 의류 쓰레기 77톤이 매립된다. 학고재 제공

지속 불가능한 패션 산업에 이의를 제기합니다
훼손, 오염, 유린과 착취로 뒤범벅된 청바지 잔혹사
맥신 베다 지음, 오애리·구태은 옮김 l 학고재 l 2만2000원

지난해 말, 국내 젊은 작가 이소연은 ‘옷을 사지 않기로 했습니다’라는 책을 펴내 자원을 낭비하고 미세플라스틱을 양산하는 패스트패션의 폐해를 고발해 주목받았다. 이번엔 국외 작가다. 미국 법학 전문 대학원에서 공부하고 유엔(UN) 산하 르완다 국제형사재판소에서 일한 경험이 있는 저자 맥신 베다가 화려한 패션 산업에 감춰진 심각한 환경 훼손과 노동 착취, 차별의 문제를 고발한다. 그는 ‘지속 불가능한 패션 산업에 이의를 제기합니다’에서 세계 경제를 지배하는 패션 산업이 어떻게 자본주의와 긴밀히 연결돼 있는지 설명하면서, 현재와 같은 옷의 생산, 유통, 소비 방식으로는 지구가 지속불가능하다고 경고한다.

무엇보다 저자가 이야기를 풀어가는 방식이 신선하고 흥미롭다. 그는 패션산업의 핵심이라고 할 수 있는 청바지의 일생을 추적한다. 농장부터 쓰레기 매립지까지 전세계인에게 사랑받는 청바지가 어떻게 태어나고 어떻게 죽어가는지 생생한 현장을 취재해 보여준다.

저자가 가장 먼저 방문한 곳은 미국 텍사스 북서부 러벅에 위치한 면화 농장이다. 이 농장주인 칼 페퍼는 화학비료와 농약을 쓰지 않고 윤작과 휴작을 통해 유기농 면화를 생산한다. 유기농 면화 농장은 초기 투자 비용이 많이 들어가고 수확량이나 이윤을 예측하기가 쉽지 않다. 그런데도 칼이 유기농 면화 생산을 고집하는 것은 가족들의 죽음 때문이다. 화학농법이 대중화된 1940년대 농장을 운영했던 칼의 아버지는 급성 백혈병으로 숨졌고, 동생은 뇌종양으로 세상을 떠났다. 저자는 칼의 가족 이야기를 통해 화약 물질의 위험성을 알려주면서 소비자인 우리가 왜 섬유 생산 과정에도 관심을 가져야 하는지 설득한다.

책은 또 기계로 목화송이를 따고 목화무더기를 특정 기계에 부어 덩어리를 만드는 면화 생산 과정을 눈앞에 그리듯 상세하게 설명한다. 이렇게 생산된 면화는 과거엔 미국 내 조면소나 방적, 방직 공장으로 보내졌지만, 이제는 ‘세계의 공장’으로 불리는 중국 등지로 옮겨진다. 청바지의 삶과 죽음을 자기 눈으로 확인하겠다고 말한 저자는 진짜로 중국 상하이 남쪽 샤오싱에 위치한 칭마오사를 방문해 면화를 원단으로 만드는 과정을 지켜보고, 바이어 행세를 하면서 데님 도매상을 만나 뻣뻣한 데님을 약품으로 부드럽게 만드는 과정도 관찰한다. 이 과정에서 그는 폐기물이 가득한 공장과 화학약품으로 훼손된 강도 목격한다. 이 담대하고 도전적인 포부를 가진 저자는 여기서 그치지 않는다. 재단과 재봉이 이뤄지는 방글라데시의 의류 생산 공장을 찾기도 하고, 로봇처럼 일하지 않으면 안 되는 온라인 마켓 아마존 물류센터와 각종 옷과 운동화 등이 산처럼 쌓여 있는 가나의 매립지까지 빠짐없이 방문한다. 이 여정에서 저자는 환경, 화학제품 사용 기준, 인종 불평등, 국제 무역 등에 관련된 다양한 문제들을 지적하면서, 청바지 한 벌을 사는 것이 갖는 함의를 독자가 스스로 깨닫도록 만든다.

저자의 여정을 함께 따라가보면 옷을 함부로 사지 말아야겠다는 생각이 저절로 든다. 책을 읽던 중 홈쇼핑에서 광고하는 화사한 봄 블라우스에 시선을 빼앗겼다가 저자가 말한 것처럼 “가나의 매립지가 불타고 있는 이미지”를 떠올려보니 소비 욕구를 자제할 수 있었다. 의미 있고 가치 있는 소비, 지속가능한 지구를 위해 당장 실천가능한 일들을 구체적으로 알려줘 실용적이기도 하다.

양선아 기자 anmadang@hani.co.kr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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