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학가는 ‘나’와 전학보내는 ‘나’의 특별한 감정들 [책&생각]

한겨레 2024. 4. 26. 05: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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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든 어린이는 자신만의 경험과 감각을 가진 고유한 존재다.

'나'는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이 그림책이 '전학'을 주인공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만 다루었다면 이만큼 공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이 나는 정말 좋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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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학 가는 날
김선정 글· 조원희 그림 l 길벗어린이(2018)

모든 어린이는 자신만의 경험과 감각을 가진 고유한 존재다. 생김새와 목소리가 다르듯이 그림도 글씨도 제각각이고 좋아하는 것도 불편해하는 것도 저마다 다르다. 어린이는 그걸 스스로 확인하고 인정하면서 자기 자신에 대해 알아간다. ‘나는 나다’ ‘나의 주인은 나다’처럼 씩씩한 다짐은 말할 것도 없이 소중한 성장의 동력이다. 보통 때라면 그렇다. 하지만 전학을 앞두고 학교에서 마지막 하루를 보내는 지호(‘나’)에게는 ‘나’라는 의식, 즉 자의식이 낯설게 다가온다. 자기는 아주 특별한 순간들을 경험하고 있지만, 다른 사람들은 모두 평범한 하루를 보내고 있기 때문이다. 이 그림책을 볼 때마다 그 낯선 감정을 꼭 붙잡아낸 김선정 작가에게도, 그 서먹한 느낌을 과장하지 않고 따뜻하게 그려낸 조원희 작가에게도 감탄하게 된다.

지호는 저녁을 먹는 자리에서 엄마한테 “내일까지만” 학교에 간다는 말을 듣고 마음이 뒤숭숭해 잠을 설친다. 전혀 몰랐던 건 아니지만 막상 그날이 닥쳐오니 설레기도 하고 걱정도 되는 것이다. 그랬던 기분과 달리, 다음날 학교는 맨날 보던 그대로고 애들도 그대로다. 선생님마저 평소와 같은 표정에 평소와 같은 목소리로 수업을 하셔서 지호는 혹시 선생님이 내 전학 사실을 모르시는지 걱정이 될 지경이다. 지호에게는 쉬는 시간의 수다마저 이 학교에서의 마지막 일과인데 다른 아이들에게는 그냥 똑같은 하루라는 게 이상하다. 급식 당번은 지호의 부탁에도 만두를 하나 더 주지 않고, 아이들은 ‘고양이와 쥐’ 놀이에서 고양이도 한 번 안 시켜 준다. 어떻게 이렇게 평소와 똑같을 수가 있을까? 만일 내가 지호였다면 펑펑 울었을 것 같다.

내가 독립된 ‘나’인 것은 당연하지만, 또 좋은 것이지만, 그렇기 때문에 혼자서 감당해야 하는 상황과 감정도 있게 마련이다. ‘나’는 소중하고 특별한 존재이지만, 그렇다고 세상이 나를 중심으로 돌아가는 것도 아니다. 지호는 하루 동안에 그것을 몸으로 알게 된다. 그 깨달음과 서운함이 직접적인 감정 표현 대신 지호의 행동으로 표현되기 때문에 독자도 차근차근 지호의 마음을 따라갈 수 있다. 지호의 마음에만 집중하게 하는 그림도 독자의 안내자다.

이 그림책이 ‘전학’을 주인공의 개인적인 경험으로만 다루었다면 이만큼 공감하기 어려웠을 것이다. 지호가 이상한 하루를 보내면서 내면이 달라지는 순간, 달리 말해 어린이가 성장하는 순간은 언제나 조용히, 갑자기 찾아온다. 보통 어린이 자신은 알아차리지도 못할 정도이다. 이날 지호는 축구에서 상대의 공을 멀리 뻥 걷어내는 활약도 한다. 그렇게 평범하고 특별한 하루였다.

그런데 지호 자신은 잘 몰랐을 수도 있지만, 친구 기남이도 이 하루를 각별하게 보낸 것 같다. 지호가 전학 간다는 걸 아는 기남이는 자기 만두를 양보하고 축구 하는 지호를 응원하고 다른 아이들에게 지호의 소식을 알리기도 한다. 기남이에게도 이 하루가 ‘친구가 전학 간 날’로 기억에 남지 않을까.

친구들과 헤어지고 학교를 떠나기 전, 지호는 학교와 작별하는 자기만의 시간을 갖는다. 토끼장의 아기토끼를 만져 보고, 구름 사다리에게 인사하고, 마음속으로 기남이와 반 친구들에게도 안녕을 고한다. 이제 지호는 새 학교를 향해 달려갈 힘이 생겼다. 한 장을 닫고 새로운 장을 여는 일, 사실 어린이가 매일 하는 일이다. 어른도 매일 하는 일이다. 그런 것을 생각하게 하는 그림책이 나는 정말 좋다. <끝>

김소영 독서교육전문가

※‘김소영의 그림책 속 어린이’ 연재가 필자의 개인 사정으로 종료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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