車의 가치를 높이는 지속가능한 가죽 [류청희의 젠틀맨 드라이버]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2024. 4. 26. 03:0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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럭셔리 車 업계, 가죽 생산 전 과정에 친환경 시스템 구축
원단 이력 확인 시스템 도입해 지속가능성 높이고
태닝 공정서 유기농 소재 사용해 화학물질 저감 노력
현재 럭셔리 자동차에 쓰이는 가죽은 업계에서 가장 지속가능성이 뛰어나다. Bentley Motors 제공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가죽 산업에서 자동차가 차지하는 영역은 매우 크다. 특히 럭셔리 자동차에서 가죽은 특유의 질감에서 비롯되는 고급스러움과 뛰어난 내구성 때문에 목재와 함께 빼놓을 수 없는 소재로 자리 잡고 있다.

기업의 ESG 경영이 중요해진 가운데 환경과 윤리에 대한 관심이 커지면서 가죽을 바라보는 시선은 과거 어느 때보다 더 불편해지고 있다. 우리가 주변에서 흔히 접할 수 있는 가죽은 대부분 대량 생산에 초점을 맞춘 공정에 의해 만들어진다. 짧은 시간 동안 많은 양의 가죽을 생산하기 위해 많은 물과 다양한 화학물질을 쓸 뿐 아니라 단가를 낮추기 위해 저임금 노동자들이 열악한 환경 속에서 작업하는 경우도 많다. 나아가 동물권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도 무시할 수 없다.

벤틀리는 지속가능한 가죽 사용을 위해 자동차 업계 처음으로 레더 워킹 그룹에 가입했다. Bentley Motors 제공
그래서 가죽 산업 전반은 물론 럭셔리 자동차 업계에서도 가죽의 지속가능성을 고민해 왔다. 가죽 생산과 소비를 둘러싼 환경을 더 안전하고 건강하게 만들려는 노력을 이어왔다. 4월 26일은 가죽 업계가 주축이 돼 만든 비영리단체인 ‘레더 워킹 그룹(LWG)’이 오랫동안 지속되는 가죽의 아름다움과 순환 경제에서 가죽이 차지하는 입지를 되새긴다는 뜻으로 정한 ‘세계 가죽의 날’이다. 세계 가죽의 날을 맞아 가죽에 대한 오해를 풀고 점점 더 친환경적으로 바뀌고 있는 모습을 살펴보는 것도 의미가 있을 것이다.
벤틀리 벤테이가 EWB와 같은 럭셔리 자동차의 실내에는 상당히 넓은 면적의 가죽이 쓰인다. Bentley Motors 제공
가죽이 환경에 주는 악영향을 줄이기 위한 노력은 지난 20여 년간 많은 변화를 불러왔다. 특히 자동차에서는 일찌감치 높은 수준의 환경 관련 기준이 반영돼 왔다. 자동차의 실내는 환기가 자유롭지 않고 햇빛과 기온 등 환경 변화에 쉽게 노출되는 만큼 내장재에서 배출되는 물질이 탑승자의 건강에 직접적인 영향을 줄 수 있기 때문이다.

특히 럭셔리 자동차의 실내에는 사람이 입거나 지니는 의류나 액세서리보다 훨씬 더 넓은 면적의 가죽이 쓰인다. 그래서 지금 생산되는 럭셔리 자동차에는 엄격한 환경 관련 기준을 충족하면서 처리 가공 기술을 갖고 있는 소수의 전문 업체가 공급하는 가죽을 쓰고 있다. 즉, 자동차 업계에서 가장 지속가능한 가죽이 사용되고 있다고 보아도 좋다. 지속가능한 가죽은 가죽이 나오는 동물의 사육에서부터 가공과 생산, 소비와 활용 전반에 이르는 모든 과정이 친환경적인 것을 뜻한다.

물론 지속가능한 가죽을 만드는 데는 큰 비용과 시간이 들기 마련이다. 그러나 럭셔리 자동차에서는 오히려 그런 가죽을 쓰는 것이 차의 가치를 높이는 데 도움을 줄 뿐 아니라 철저하게 이력이 관리된 제품을 쓰기 때문에 일반 가죽보다 지속가능성을 높게 유지하기에 좋은 조건이기도 하다. 실제로 롤스로이스와 벤틀리는 모두 가죽 원단의 이력을 확인할 수 있는 시스템을 갖추고 있다.

전체 가죽 생산 과정에서 물 소비와 유해 물질 사용이 가장 많은 것은 필수 공정인 태닝(무두질)이다. 이 공정에서 폐수를 정화하고 여과해 다시 쓰는 순환 공정을 도입하고 가공에 쓰이는 화학물질을 친환경 물질로 대체하는 작업도 계속되고 있다.

자동차 업계 처음으로 LWG에 가입한 벤틀리는 지난해 처음으로 선택할 수 있는 옵션에 올리브 탠 가죽을 추가했다. 올리브 탠 가죽은 올리브오일 생산 과정에서 나온 유기농 소재를 태닝 공정에 쓴 것이 특징이다. 벤틀리는 이렇게 만들어진 가죽을 더 폭넓은 제품군에 제공할 계획이다.

브리지 오브 위어가 개발한 바이오 기반 가죽과 생분해성 가죽. Bridge of Weir 제공
애스턴 마틴, 맥라렌, 재규어 랜드로버 등에 가죽을 공급하고 있는 ‘브리지 오브 위어’는 최근 태닝 공정에 바이오 기반 소재를 쓴 바이오 기반 가죽과 생분해성 가죽을 새로 개발해 선보였다. 특히 생분해성 가죽은 사용이 끝난 뒤에 매립하면 완전히 생분해되므로 유독성 폐기물을 남기지 않는다.

동물에서 유래한 천연가죽의 대안도 꾸준히 선보이고 있지만 일부 우려의 목소리도 나오고 있다. 흔히 비건 가죽이라 불리는 인조 가죽의 상당수는 폴리우레탄이나 폴리염화비닐(PVC) 등 석유화학 소재를 써 친환경적 대안으로는 한계가 있다. 최근에는 파인애플이나 선인장, 버섯 등을 이용해 만든 합성가죽들이 등장해 주목받고 있는데 이들이 천연가죽을 완벽하게 대체하기에는 아직 개선할 점이 많다.

사실 가죽은 내구성이 뛰어난 소재다. 잘 관리만 한다면 차의 수명만큼 오래 쓸 수 있다. 그리고 가죽만을 얻기 위해 동물을 키우는 경우는 지극히 드물다. 원료 자체가 부산물인 셈이어서 가죽을 쓰는 것은 동물이 죽어 생기는 폐기물을 줄이는 데도 도움을 준다. 생산 과정의 지속가능성을 높이려는 업계의 노력에 환경을 생각하는 사용자의 노력이 더해진다면 럭셔리 자동차를 돋보이게 만드는 부드럽고 편안한 천연가죽의 매력은 앞으로도 빛이 바래지 않을 것이다.

류청희 자동차 칼럼니스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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