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로의 품격… 앙숙처럼 싸우다 ‘우크라 지원’ 협치

워싱턴/김은중 특파원 2024. 4. 26. 03: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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70代 슈머·80代 매코널, 매파 설득해
6개월 표류하던 법안 통과 주도
지난 2월 27일 미치 매코널(왼쪽) 공화당 원내대표와 척 슈머 민주당 원내대표가 미 의회 의사당에서 만나 대화를 하고 있다. /AFP 연합뉴스

“그들은 모든 것에 서로 동의하진 않았다. 하지만 정말 중요할 때는 옳은 일을 위해 나섰다.” 조 바이든 미국 대통령이 의회가 입법 절차를 마친 우크라이나·이스라엘 등에 대한 안보 지원 예산 법안에 24일 서명한 후 낸 성명의 일부다. 바이든은 여당인 민주당과 야당인 공화당의 상·하원 지도부를 호명하며 “역사가 이 순간을 기억할 것”이라고 했다. 이 법안은 공화당 강경파의 반대에 발목이 잡혀 6개월 넘게 표류해 왔다. 반대를 고수하던 마이크 존슨 하원의장(공화당)이 마음을 바꾸면서 통과가 가능해졌는데, 상원의 양당 지도부 격인 민주당 척 슈머, 공화당 미치 매코널 원내대표의 협력도 그에 못지않게 주목받고 있다.

미 정치 매체 폴리티코는 이날 “슈머와 매코널이 우크라이나 지원에 반대하던 강경 보수들을 때려눕혔다”고 했다. 슈머는 1950년생, 매코널은 1942년생이다. 두 사람을 합하면 (상·하원 통틀어) 21선, 정치 경력은 83년이나 되는 백전노장들이다. 최근 미국의 정치 양극화가 극심해지고 우크라이나·이스라엘 지원에 반대하는 강경파 목소리가 주목을 더 받는 바람에 이들은 영향력이 예전만 못하고 노쇠했다는 평가도 받아왔다. 특히 2007년부터 17년을 상원 원내대표로 있는 매코널이 11월 사임 계획을 밝히면서 힘이 더 빠졌다. 매코널은 이른바 ‘매가(MAGA·미국을 다시 위대하게)’ 정치인들에 맞서 “은퇴 전까지 공화당 내 고립주의 외교 노선을 바로잡을 것”이라 했지만 당내에 진지하게 귀를 기울이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척 슈머 민주당 상원 원내대표. /EPA 연합뉴스

이 둘은 상원 주도권, 도널드 트럼프 전 대통령을 둘러싼 논란, 대법관 인준 문제 등을 놓고 때론 셧다운(예산안 처리 지연에 따른 연방정부 폐쇄)도 불사하는 벼랑 끝 대치를 마다하지 않았다. 하지만 공화당 강경파의 고집으로 우크라이나 등 우방국 지원 법안마저 가로막히자 2017년부터 양당 원내대표를 맡아온 두 노장의 ‘팀워크’는 빛을 발했다. 폴리티코는 “두 사람은 계속 만나서 전략에 대해 얘기하고 어떤 일이 일어날지 전망했다. 놀랍게도 얘기를 하면 할수록 기반 시설 투자부터 총기 안전 문제까지, 서로 동의하는 부분이 매우 많음을 알게 됐다”고 했다.

우크라이나 지원안이 하원에 계류 중이던 지난해 10월 하마스(팔레스타인 가자지구의 이슬람 무장 단체)가 미국의 우방인 이스라엘을 공격한 후 두 사람의 협업은 주목받기 시작했다. 당시 이들은 만나서 “이스라엘과 우크라이나 지원 법안을 분리하지 말자”고 결의했다. 공화당 내 강경파들이 우크라이나를 내버려두고 이스라엘 지원만 통과시키지 않을까 우려한 매코널이 제안한 것인데 슈머가 흔쾌히 받아들였다고 한다. 슈머는 “매코널 입장에선 판을 엎고 바이든을 비판하는 게 정치적으로 이득이었을 것”이라면서 “하지만 그는 엇나가지 않았다”고 했다.

미치 매코널 공화당 상원 원내대표. /AFP 연합뉴스

하원 통과의 결정적 변수였던 하원의장 존슨의 마음을 돌린 것도 두 사람이 노력한 결과였다. 슈머는 바이든, 매코널은 존슨을 설득해 지난 2월 백악관에서 바이든과 존슨이 만나도록 중재했다. 슈머가 “지금껏 백악관에서 경험한 회동 중 가장 격렬했다”라고 말했을 정도로 바이든과 존슨의 만남은 모든 걸 허심탄회하게 논의하는 자리였다. 바이든은 이후 존슨을 찍어서 비판하던 것을 멈추고, 빌 번스 중앙정보국(CIA) 국장 등을 불러 기밀 브리핑을 하면서 우크라이나와 나머지 세계가 처한 위협을 존슨에 이해시키는 데 공을 들였다고 한다. 법안 통과 한 달 전부터는 대통령 보좌관들이 존슨과 수시로 소통하며 의견을 주고받았고, 마이클 매콜 등 하원의 매파 성향 공화당 의원들도 불러 설득하는 과정을 거쳤다.

바이든은 법안이 통과된 후 “양당이 서로 다르지만 함께 뭉치면 무얼 해낼 수 있는지를 보여줬다”고 했다. 워싱턴포스트(WP)는 기명 칼럼을 통해 매코널을 로널드 레이건, 드와이트 아이젠하워 전 대통령과 함께 “지난 100년 동안 가장 중요한 공화당원 세 명”으로 꼽기도 했다. 정작 당사자들은 담담히 반응하고 있다. 매코널은 “(공화당 내 반대파 설득은) 바이든이나 슈머가 도와줄 수 있는 성격의 일이 아니었다. 그냥 우리가 합의에 이른 것”이라고 했다. 그러면서도 우크라이나 지원을 줄곧 비판했던 보수 진영의 방송인 터커 칼슨을 향해 “그가 우크라이나를 악마화하고 도널드 트럼프(전 대통령)가 미적거리는 바람에 지원이 늦어졌다”고 직격했다. 오랜 기간 카운터파트(동급의 상대)였던 매코널이 11월 퇴임하고 나면 슈머는 새로운 공화당 원내대표와 협력해야 한다. 슈머는 “그가 떠나도 또 다른 공화당원들과 오늘처럼 할 일을 할 것”이라고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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