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사난장] 소통을 위한 경청

권명환 해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부장 2024. 4. 26. 03:03
음성재생 설정
번역beta Translated by kaka i
글자크기 설정 파란원을 좌우로 움직이시면 글자크기가 변경 됩니다.

이 글자크기로 변경됩니다.

(예시) 가장 빠른 뉴스가 있고 다양한 정보, 쌍방향 소통이 숨쉬는 다음뉴스를 만나보세요. 다음뉴스는 국내외 주요이슈와 실시간 속보, 문화생활 및 다양한 분야의 뉴스를 입체적으로 전달하고 있습니다.

총선참패 대통령 불통 탓…뚝심과 불통 종이 한 장 차
최상 대화는 경청의 태도…그냥 듣는 게 아닌 공감을
권명환 해동병원 정신건강의학과 진료부장

동네에 ‘어신(漁神)’으로 불리는 어르신이 계시다. 물고기를 얼마나 잘 잡는지 바닷물에 손만 넣어도 물고기가 몰려온다는 소문의 주인공. 한 번은 진료실에서 대화를 나누다가 물고기 잘 낚는 비결을 여쭈었다. 어르신은 이렇게 말씀하셨다. “어부의 심정이 아닌, 물고기의 마음이 되어야 해요. 그리고 물고기를 상냥하게 대하면 됩니다.”

윤석열 대통령의 직무 수행에 대한 긍정 평가가 취임 후 최저인 23%를 기록한 여론조사가 지난 19일 발표됐다. 부정적으로 평가한다는 응답은 68%로 직전 조사보다 10%포인트 올랐으며, 이 역시 취임 후 최고치다. 윤 대통령의 직무 수행을 부정적으로 평가한 이들은 ‘경제·민생·물가’(18%), ‘소통 미흡’(17%), ’독단적·일방적’(10%) 순으로 이유를 꼽았다. 즉 시민의 세 명 가운데 한 명이 대통령의 불통을 지적한 것이다. 여권 원로인 국민의힘 상임고문단 역시 총선의 참패 이유를 대통령 불통에 대한 심판에서 찾았다.

윤 대통령은 지난 16일 4·10총선 참패에 대해 “국정 방향이 옳고 좋은 정책을 수없이 추진한다 해도 국민께서 변화를 느끼지 못한다면 정부 역할을 다하지 못한 것”이라고 밝혔다. 발언 도중 ‘그러나’ ‘하지만’ 같은 표현이 수차례 등장했는데 결국 정책의 방향은 옳았으나 국민에게 잘 전달되지 못한 것을 총선 참패의 원인으로 설명한 것이다. 몸을 낮춘 13분가량의 발언에서 사과의 마음을 느낀 사람이 있을까. 간단명료하게 “대통령인 제 잘못입니다”고 쿨하게 사과했다면 어땠을까. 자기 말만 한다거나 입틀막으로 상징되는 정권의 불통 이미지, 국무회의 발언 4시간 뒤 대통령실에서 대통령의 사과 발언을 대신 전달했다. 아마도 여론을 살핀 대통령실의 대응이겠지만, 이 장면이 역설적으로 불통의 스냅사진처럼 여겨진다.

춘추전국시대 묵자라는 사상가는 “하나의 귀로 듣는 것보다는 두 개의 귀로 듣는 것이 더 잘 들린다”는 말을 남겼다. 대화라는 게 혼자 하는 독백이 아니다 보니 대화의 주인공은 둘 또는 그 이상인 셈이다. 말을 잘하는 것보다 상대의 말을 잘 듣는 게 대화에서는 훨씬 중요하다. 우리 주변에는 말 잘하는 달변가이고 항상 대화를 주도하지만 정작 주변 사람은 하나둘 떠나가는 상황을 목격한 적이 있을 것이다. 일방적으로 자신의 말만 하면 소통이 이뤄지지 않는다. 소통을 위해서 대화의 주도권을 상대에게 넘기는 용기가 필요하다.

윤 대통령의 의대 정원 확대 관련 대국민담화 역시 아쉽긴 마찬가지다. 기자들이 참석조차 못 하고 질문도 없이, 새로운 내용도 없는 기존 일방적 주장만 한 시간 가깝게 전달한 것이다. 뚝심과 불통은 종이 한 장 차이다. 처한 상황에 따라 소신이 되기도 하고 독선이 되기도 한다. 과거 검사 시절의 뚝심이 장점이라면 대통령인 지금은 불통이 될 수도 있다. 정치란 문제를 해결하는 것이고 국민은 소통하는 정치, 대화와 타협을 통해 갈등을 조정하는 정치를 기대하는 게 아닐까.

듣는 것과 경청하는 건 분명한 차이가 있다. 최상의 대화는 듣는 게 아니라 경청하는 것이다. 경청은 무작정 듣고만 있는 게 아니라 상대의 마음을 헤아리고 공감을 표시하며 이야기를 듣는 능동적인 행위다. 경청에서 중요한 건 ‘난 모릅니다’와 같은 태도로 듣는 것이라 믿는다. 사람의 심리를 공부하고 임상 경험이 쌓일수록, 짧은 대화에서도 상대의 심리가 읽히고, 상대를 전부 알 것 같은 시기가 온다. 사실 그때가 상당히 위험한 시기이다. 좋은 상담사는 점 집의 도사처럼 한번 보고 운명을 맞추는 사람이 아니다. 상대가 이야기를 채 마치기도 전에 그 사람이 처한 상황이나 심리를 속단하기보다 ‘나는 알지 못합니다’는 마음으로 경청하며 상대의 마음을 살피는 과정이 중요한 것이다.

정신분석가 라캉은 “사람들이 대화를 주고받을 수 있는 건 서로 간의 오해 때문이다”고 했다. 말이란 건 투명한 게 아니다. 정신분석가나 심리상담사는 자신이 이해하지 못한 것처럼 행동해야 하고, 더 잘 듣기 위해 귀가 잘 들리지 않는 것처럼 행동하는 걸 두려워해서는 안 된다는 말이다.

진료실에서 만난 두 분으로부터 내 얼굴을 그린 그림을 선물 받은 적이 있다. 그림 하나는 서울 삼성의료원에 있을 때 여고생에게서, 다른 하나는 현재 진료하고 있는 30대 여성분이 그린 그림이다. 서로 다른 시간에 다른 공간에서 받은 그림인데 신기하게도 공통점이 있다. 두 그림 모두 귀를 과장해서 굉장히 크게 그렸다는 점이다. 자신들의 이야기를 잘 들어줘서, 경청해 줘서 고맙다는 뜻인가 생각했는데, 보면 볼수록 내담자의 말을 더욱 잘 경청해달라는 준엄한 요구가 아닌가 하는 생각이 든다.


소통을 위한 경청은 의사인 나에게도, 국정 운영을 담당하는 대통령과 공직자, 정치인에게도 대화를 하는 모든 사람에게 필요한 덕목이 아닐까 싶다.

Copyright © 국제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이 기사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