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석환의 이미 도착한 미래] 아직 명당 덕을 덜 본 것일까?

김석환 부산대 석좌교수·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2024. 4. 26. 03: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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김석환 부산대 석좌교수·전 한국인터넷진흥원장

“풍수지리하면 미신이니, 사기니 하는데, 전국 상위 1%에게 풍수지리는 종교이자 신앙이다.”

영화 ‘파묘’에서 지관의 대사처럼 지금도 부자나 권세가는 풍수를 중요시한다. 대통령을 꿈꾸었던 김대중 김종필 이회창 등은 좋다는 곳을 찾아 선조 묘지를 이장했었다. 과연 명당은 있는 것일까?

조선 말 철종의 사위이자 개화파였던 박영효는 우리나라에서 가장 이른 시기 태극기를 사용한 인물이었다. 그는 한성부판윤, 지금의 서울시장이던 1884년 김옥균 등과 함께 갑신정변을 일으켰고 생전에 2번의 망명과 1번의 유배 및 여러 번의 암살시도를 겪었다. 그러면서 그는 친일파가 되고 유교적 관료에서 기독교 신자로 변모한다.

박영효는 한일강제병합에 협조한 대가로 후작의 작위와 28만 원의 은사금을 받았다. 친일파의 대명사인 이완용보다 한 등급 높은 작위였고, 은사금도 이완용의 15만 원보다 배 가까이 많았다. 당시의 화폐가치를 지금의 화폐가치로 정확하게 환산하기는 어렵다. 생성형 인공지능인 구글 제미나이에 따르면 1910년의 28만 원은 물가 상승률을 고려하면 56억 원, 당시의 평균 임금과 지금 임금을 비교해 환산하면 280억 원 정도라고 한다.

박영효는 친일의 대가로 돈뿐만 아니라 동아일보사 초대 사장, 중추원 부의장, 일본 귀족원 의원 등 온갖 요직을 누렸다. 그는 전국의 풍수사를 동원해 자신의 묘자리를 찾았다. 그가 찾아낸 명당은 부산 다대포해수욕장이 훤히 보이는 산비탈이었다. 지관은 이곳을 태백산맥 줄기가 바다로 들어가기 전 마지막 기운이 모인 자리라고 했다. 그가 1939년 79세로 죽자 시신은 특별열차로 부산으로 실려 와 매장됐다. 하지만 19년 뒤 박영효의 손자는 전 재산을 말아먹고서 부장품을 노리고 무덤을 파헤쳤다. 무덤자리는 부산 송도에서 요리집을 하던 이에게 비싸게 팔아넘겼다. 묘자리를 사서 나중에 그 자리에 묻힌 사람의 뒤끝도 좋지 않았다고 전한다.

풍수에서는 무덤 자리는 음택, 사람이 사는 집터는 양택이라고 한다. 18세기 실학자 이중환의 ‘택리지’나 풍수가들이 공통으로 꼽은 삼남의 가장 살기 좋은 마을이 안동 반변천 앞 내앞마을이다. 임진왜란 당시 활동했던 학봉 김성일이 태어난 곳으로 그를 포함해 아들 5명이 모두 과거에 급제한 명당으로 알려져 있다. 이곳에서는 마을 단위 기준으로 한국에서 가장 많은 항일 독립운동가가 배출되었다. 모두 20명이 독립유공자로 서훈됐고, 마을 출신으로 다른 곳으로 이주한 이까지 다 합하면 33명에 이른다. 1910년 12월, 한일병합 4개월 뒤 내앞마을 양반 65살 김대락은 3000석 땅을 팔고, 한일병합 이후 최초로 일가족 150여 명이 독립운동을 위해 조선을 떠났다. 얼어붙은 겨울 압록강을 걸어서 건넌 그들은 서간도에 도착해 독립군 양성소인 신흥무관학교를 만들었다. 1911년부터 1920년까지 신흥무관학교에서 배출한 졸업생 3000여 명은 봉오동과 청산리전투의 주역이 되었다.

내앞마을은 항일독립운동의 성지이다. 역사에 바친 내앞마을의 숭고한 희생을 기리기 위해 경북 독립운동기념관도 내앞마을에 들어서 있다. 하지만 김대락은 무덤조차 잃어버렸고 간신히 살아남은 후손들은 거지꼴이 되었다. 이들 일가가 떠난 뒤 삼남 최고 길지라는 내앞마을은 일제 감시 속에서 꺾이고 잊혀 갔다. 내앞마을은 지금 인구 소멸위험 지역이다.

1995년 6월 29일 서울 삼풍백화점이 부실공사로 순식간에 붕괴하면서 502명이 죽고 937명이 다친다. 그 자리는 예전 풍수 개념으로는 죽은 자들의 원혼이 남아 있는 아주 흉한 터이다. 그곳에 들어선 것이 성곽 같은 아크로비스타이다. 대통령이 배출되었고 예전으로 치면 만석꾼이나 정승급도 이곳에 모여 산다. 결과만 보면 비교 대상조차 없는 최고의 길지인 셈이다.

후보 시절 손에 ‘임금 왕(王)’ 자를 쓰고 나타났던 윤석열 대통령은 2022년 3월 대선 승리 이후 청와대에서 단 하루도 머물지 않고 용산으로 관저를 이전했다. 그 과정에 개입한 것으로 알려진 인물이 풍수전문가 백재권이다. 그는 윤 대통령 선영 뒷산의 장군봉을 보고 대통령 당선을 예측했다면서, 풍수지리는 통계학이라고 주장한다. 작년 하반기 그는 서울지역 한 신문과의 인터뷰를 통해 22대 총선은 “민주당에서 이재명 체제가 유지되는 한 국민의힘이 승리할 것”이라고 밝혔었다.

풍수는 정말 과학일까? 생성형 인공지능인 챗GPT는 단호하게 말한다. “과학적으로 검증된 것으로 인정되려면, 재현 가능한 실험적 증거와 통계적으로 유의미한 결과가 필요합니다. 명당이나 점술과 같은 미신적인 신념들이 과학적으로 검증된 사례는 없습니다.”


런던의 웨스트민스터 사원은 우리로 치면 현충원에 해당되는 곳이다. 엘리자베스 1세 등 왕은 물론 뉴턴이나 다윈 같은 위인도 이곳에 잠들어 있다. 공간이 좁아 풍수적으로는 절대 금기인, 겹쳐서 매장된 인물도 적지 않다. 그랬는데도 영국은 오랜 기간 강대국의 영화를 누렸고 지금도 인공지능 국가 경쟁력이 미국 중국에 이어 세계 3위이다. 한국은 아직 7위다. 한국은 아직 명당 덕을 덜 본 것일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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